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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제화 외길 30년 신발박사 ㈜잔디로 노진구 사장
정직한 가죽사용으로 편안하고 반듯한 신발 만들기
드레스화·골프화에 이어 등산화로 외제 브랜드에 도전장






“소재(素材)만큼 정직한 것도 없습니다.”

서울 노량진서 수제화를 만든 지 올해로 30년. 제 아무리 아름다운 신발이라 하더라도 소재에서 ‘반칙’하면 결국에는 소리없이 도태되고 마는 이 바닥의 생리를 체득한 ㈜잔디로 노진구(51) 사장의 첫 마디다.

“가죽을 생산하는 과정에서는 분명 용도별, 단계별로 구분됩니다. 그런데 그게 시장에 나오면 막 섞여요. 가방용 가죽이 신발로 가고, 허리띠용 가죽이 가방으로 갑니다. 제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가죽의 용도 선정에 실패한 거죠.” 결국 돈 문제 때문에 가죽이 제 갈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가죽 수제화만을 고집해 온 그답게 일장 연설이 이어진다. “가죽은 기본적으로 사용하면 늘어나고, 사용하지 않으면 복원되는 성질이 있습니다. 가방이나 지갑처럼 그냥 차거나 넣고 다니는 제품들은 보다 광범한 가죽을 사용해도 큰 무리는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발과 손처럼 움직이는 부분을 커버하는 신발, 장갑에서만큼은 그 용도가 반드시 구분되어야 하죠. 체형에 맞지 않는 신발이 사람 몸을 얼마나 피곤하게 하는 지는 주지의 사실 아닙니까.” 신발 박사가 아니라, 숫제 가죽 박사다. “디자인이 사람을 감동시키는 논리라고 하지만, 그것도 적확한 소재가 사용된 다음의 얘깁니다. 디자인에 감동됐다가도 금세 발이 불편해지면 그 감동도 분노로 바뀌지 않겠습니까?”

1970년대 중반 가죽 수제화를 시작으로 학생 교복화, 드레스화, 웰트화, 골프화 등 안 만들어 본 신발이 없을 정도인 그의 30년 신발 인생은 4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 삼촌댁 옆에 신발 공장이 있었습니다. 신발이 만들어지던 그 광경이 어린 나이에 어찌나 신기하던지, 아예 거기서 살 정도였죠.” 이후 상경한 그는 노량진 수제화 공장들 틈에 작은 수제화 공장을 차렸다. 호기심으로 맺은 신발과의 인연이었지만 호기심에서 끝내지 않은 것이다. “길거리 사람들 태반이 시커먼 고무신이고 제대로 된 신발 한번 신어 보는 게 많은 사람들의 소원이던 시절, 그 소원을 저렴한 가격으로 풀어 주고 싶었습니다.”

골프화·골프장갑 40% 안팎의 점유율
그로부터 30년. 꿈은 어느 정도 이뤄졌을까. 노 사장의 답은 “아직 멀었다”다. 정확하게는 그 꿈이 변했다고 했다. “이상하게 한국 사람들이 한국 물건을 외면하더라니까요. 아무리 비싼 신발이라도 ‘외제’라면 날개 돋힌 듯 팔려나가는데 참을 수가 있어야죠.” 1989년 당시 외제 일색이던 국내 골프화 시장에 ‘잔디로’라는 자체 브랜드로 외제 브랜드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 그 변화의 첫 신호였다.

“처음에는 ‘촌스럽다’, ‘빈약해 보인다’며 반신 반의 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골수 고객들이 돼서 매장을 다시 찾고 있습니다.” 실제로 지난 15년간 잔디로는 골퍼들의 입소문을 타고 골프화, 골프장갑 등에서는 40% 안팎의 점유율을 차지할 정도로 그 세를 확장해 놓고 있다. 본점을 포함 전국에 6군데의 직영점과 김포공항, 제주 롯데면세점 등 100곳의 쇼핑몰에 입점해 해외의 유명 브랜드들과 당당히 경쟁하고 있다. 노진구 사장의 ‘신발’이라는 한 우물 파기가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잔디로는 이례적인 구조로 갖춰진 중소 기업이기도 하다. 자체 생산(국내), 자체 브랜드, 자체 디자인 그리고 자체 매장을 이용한 판매 등 기획서부터 제품의 애프터서비스까지 모든 과정을 독자적으로 운영한다. “한 분야에 전문화 돼 있기 때문에 중소 기업이긴 하지만, 웬만한 외부 충격에는 까딱 않는 조직이죠.” 이러한 조직의 안정성 덕분에 루이비통 등 세계 유수의 브랜드들에게 원자재를 공급하고 있는 영국의 피타즈(Pittards)사로부터 소재를 공급 받고 있다. 피타즈사는 100년의 전통과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가죽을 전문 생산 업체.

그 결과 조직의 안정성, 소재의 안정적인 공급, 상승하는 브랜드 인지도 등을 바탕으로 ㈜잔디로는 2004년 12월 국내 등산화 시장에도 도전장을 냈다. 골프화에 이어 등산화에 들이닥친 외제 바람이 심상치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주 5일 근무제가 정착하면서 등산 인구가 많이 늘었어요. 그 만큼 외국의 등산화 업체들이 국내 시장에서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죠.” 등산화 출시도 골프화 잔디로에 이어 ‘변화된 꿈’의 연장선상에 있는 셈이다. 그가 내 놓은 등산화 브랜드명은 ‘산야로.’ 노 사장이 직접 고안했다.

"세계적 브랜드로 키우겠다"
그는 ‘산야로’ 출시 이후 이번엔 매일 아침 등산을 하고 있다. 건강을 챙겨야 겠다는 계산도 있었겠지만 등산화 테스트를 위해서다. 이 참에 지난 달에는 아예 60평짜리 아파트에서 북한산 밑 구기동의 30평짜리 주택으로 이사도 했다. “하루는 이 신발, 또 하루는 저 신발을 신고 오릅니다. 그러다가 어떤 날에는 양 발에 각기 다른 등산화를 착용합니다.”

말마따나 사무실 곳곳이 등산화 천지다. 별난 풍경이 눈에 띈다. 칼로 도려지거나, 아예 해체된 신발들이 수두룩하다. “아, 그거요? 신고 다니다가 조금이라도 불편한 부분이 생기면 궁금해 죽을 지경인데, 안 뜯어볼 수가 있어야지.” 에누리 없는 신발 인생이다.

학생 교복화, 드레스화, 웰트화, 골프화에 이어 등산화까지. 왜 이렇게 신발에 집착하는가? “황영조 선수가 3,000원짜리 러닝 팬티 입지만, 신발만은 1억 짜리를 신고 달려 금메달을 땄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만큼 신발은 모든 운동의 기본이죠.”

골프화 ‘골프로’, 등산화 ‘산야로’, 캐주얼화 ‘내발로.’ 세계로 뻗어 나가는 한국의 신발 브랜드로 키우고야 말겠다는 노진구 사장. “한국의 브랜드가 세계 각지로 뻗어 나가, 세계적 브랜드 되지 말란 법은 없죠. 삼성ㆍ현대는 한국 브랜드 아닙니까?”



정민승 기자 prufrock@empal.com


입력시간 : 2005-03-02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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