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禪의 세계, 문을 열다
산중 아닌 도심에서의 개달음, 대중 곁으로 다가온 참선수행





깊은 산사(山寺)에서 스님들이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한 참선(參禪)이 도심으로, 대중 곁으로 다가오고 있다.

불교 조계종 고승들이 한국 선불교의 참선수행법인 간화선(看話禪ㆍ화두를 붙잡고 좌선 등에 정진해 깨달음을 얻는 참선법)의 알리기 위해 산사의 은둔을 접고 대중 앞에 몸소 나섰다. 선(禪)을 향한 문을 대중들에게 활짝 열어 주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서울 조계사ㆍ대구 동화사가 개최한 ‘선원장 초청 대법회’에 이어, 올해는 ‘선찰 대본산(禪刹 大本山)’ 부산 범어사가 ‘문 없는 문을 열다’라는 주제로 오는 3월 5일부터 5월 7일까지 ‘간선화 대중화를 위한 10대 선사 설선대법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이번 범어사 법회에 나선 10대 선사는 범어사 조실 지유 스님, 동화사 조실 진제 스님, 석종사 선원장 혜국 스님, 각화사 선덕 고우 스님, 범어사 금어선원장 인각 스님, 화엄사 선등선원장 현산 스님, 조계종 기본선원장 지환 스님, 축서사 선원장 무여 스님, 해인총림 수좌 원융 스님, 봉암사 태고선원장 정광 스님이다. 원융 스님이 공개 법회에 나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선(禪)’ 대중화를 위한 획기적인 발걸음이다.

'선 대중화'포교 활발
종단 차원의 이런 ‘선 대중화’ 포교는 최근 웰빙의 이름으로 유행하는 명상이나 요가 등의 바람과도 무관하지 않다. 현재 명상, 요가 수련인이 국내서만 100만명을 상회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런 규모 탓에 일각에서는 이런 명상, 요가 등 소위 ‘마음 수련법’을 산업으로까지 정의할 정도다. 하지만 명상 종가의 참선법인 한국 불교의 간화선은 최고의 마음 공부법임에도 불구, 제대로 대접 받지 못했다. 세계로의 수출은 커녕 국내인에게도 외면 받고 있는 실정이다.

요즘 웰빙 차원에서 유행하는 명상은 티벳 불교나 남방 불교에 뿌리를 둔 서구식, 특히 미국화한 정신 건강 수련법이 대종을 이룬다. 이것은 전통적 한국 불교에서 말하는 ‘간화선(화두선)’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원철 스님(대한불교조계종 포교원 신도국장)은 최근 유행하는 명상이나 요가가 웰빙 바람이 그랬던 것처럼 쉽게 상업화로 귀결되어, 결국 물질적 욕망의 확대로 흐르지 않을까 우려한다. 그는 “미국 등지에서 수입된 요가나 명상 수련법은 마음의 안정을 찾아 번뇌를 잠재우는 것이 요체”라며 이는 ‘번뇌의 근원을 없애는’ 선적(禪的) 사유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설명한다.

서구적 명상은 물질적 삶에 익숙한 현대인에게 쉽게 어필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런 류의 명상법은 결국 질 높게 살고자 하는 현실적 삶의 욕망의 또 다른 반영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힘들다. 그를 두고 ‘유물론적 명상’이라 하는 까닭이다. 한국 불교가 추구하는 바, 간화선을 통한 참선의 세계와는 더더욱 반대의 길이다.

원철 스님은 그러나 “요즘 사람들이 유행처럼 추구하는 명상 문화를 나쁘다고만 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 동안 한국 불교계가 대중들이 ‘참 마음의 공부’ 를 할 수 있게, 보다 발빠르고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한 것을 아쉬워 한다.

지금까지 간화선 수행법은 아직 일반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고, 출가 스님들조차 쉽게 수행의 진전을 얻지 못하는 어려운 수행법으로 알려져 있다. 또 간화선은 그 동안 난해함과 더불어 신비함까지 덧붙여져 재가 불자들로서는 쉽게 다가가기 힘들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불교 조계종의 참선 수행법 ‘간화선’은 어떤 것인가. 서울 도심, 종로구 가회동서 9년째 간화선 수행을 설파하고 있는 ‘안국선원(安國禪院ㆍ원장 수불 스님)을 찾은 것은 그에 대한 명료한 해답을 구하기 위해서다.

현재 일반 신도(재가자) 1,500여명이 이 곳에서 간화선 아래 정진하고 있다. 이밖에 부산의 안국선원에 1,300여명, 창원에 150여명의 신도가 있다. 최근 들어 신도 회원수가 급속히 늘고 있는 추세다.

재가 불자 은암 거사(안국선원 홍법운영팀장)는 “이번 동안거에도 서울 800여명, 부산 700여명 등 간화선을 공부하는 안국선원 재가 불자가 하루 4시간 선방의 승려들과 다름없이 정진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그는 “간화선 수행은 일반에 알려져 있듯 그렇게 신비한 수행법이 아니라, 여기서 보듯 대중적일 수 있는 수법”이라르옥滑? 세간의 선입견부터 경계한다. 그는 “요즘 유행하는 티벳이나 남방 불교의 수행법은 조용한 자리에서 마음의 평정을 찾는 명상인 반면, 한국 불교의 간화선은 화두를 붙들고 하는 참선”으로 구분한다. 은암거사는 2월 23일, 동안거(100일간의 겨울 집중 수행)를 막 끝냈다. 간화선 정진은 어떻게 이뤄질까. 우선 선지식의 높은 스님으로부터 화두를 받고, 그로 인해 생긴 의단(疑團ㆍ의심 덩어리)을 깨기 위해 좌선 등의 정진을 하며 선승으로부터 지도를 받는다. 이런 정진 과정을 거쳐 어느 순간 의단이 뿌리 채 해소되었을 때, 마침내 ‘돈오(頓悟ㆍ일순간 깨우침을 얻는 것)’를 체험하게 되는 수행법이다.

화두 붙들고 수행정진
안국선원에서 화두를 붙잡고 하는 간화선 공부는 한 달 가까이 배우는 기초 법문 과정으로 시작된다. 그런 뒤 스님이 던진 화두에 대해 의심하는 법을 1주일~10일 정도 지도 받는다. 스님으로부터 받은 화두를 의심하고 나아가 체험하는 모습은 수행자 마다 천차만별이다. 화두에 잠긴 초심자들은 업이 녹아 내리는 듯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 내기도 한다. 안국선원 초보자반에 들어가 9일 간의 간화선 수행을 경험한 김기현 변호사는 “화두를 들고 3일간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며“9일째 되는 날은 드디어 나를 괴롭히는 온갖 번뇌가 정수리를 통해 밀려 나가는 체험을 했다”고 밝힌다.

간화선의 수행법은 좌선에만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선잠을 자거나 걸어 다니면서도 가능하다. 일반적인 명상법과는 구별되는 대목이다. 무엇을 하든 화두를 온 정신과 몸으로 붙들고 있으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간화선은 화두선이라고도 부른다.

간화선 대중화의 걸림돌은 역시 화두다. 간화선을 수행하기 위해선 전제 조건이라 할 화두(지식이나 사리분별만 갖고는 이해할 수 없는 것)를 선지식이 높은 스님에게서 받아야 하고, 화두를 타파하는 과정에도 선승의 지도 없이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선지식을 쌓은 선승들은 대개 사찰 선방 등에서 은둔 생활을 해 온 탓에 여타 스님이나 일반인들과의 접촉이 대단히 제한적이었다. 간화선 대중화의 문제점으로 흔히 지적받는 대목이다.

1989년에 안국선원을 설립해 간화선 수련의 대중화에 앞장서온 수불 스님은 “산중에서도 쉽지 않은 간화선을 시중에서도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스님들은 믿기 어려울 것”이라며 그 간 불교계내 인식을 설명한다. 그는 “간화선이 비밀스러운 것으로 여겨진 까닭에 소수의 사람들만 할 수 있는 어렵고 신비한 것으로 인식돼 있다”고 전제하고 “이제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며 간화선은 이제 현대 불교의 중요한 포교법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실제로 불교 조계종은 지난 해부터 간화선을 포교의 중심 테마로 잡고, 잇단 대규모 담선(談禪)법회를 열어 온 것을 비롯해 간화선 수행 체계를 알기 쉽게 풀이한 대중용 지침서도 출간할 예정이다.

삶의 근원적 답을 구하기 못하고 ‘고해의 바다’를 표류하는 중생들에게 한국 불교 특유의 간화선이 번뇌의 고리를 끊어줄지 모를 일이다. 지금 한국 불교 선승들의 가르침에 귀 기울여 보라. ‘출가하지 않아도 구도(求道)의 길은 활짝 열려 있다’는 설파에.



조신 차장 shincho@hk.co.kr  


입력시간 : 2005-03-02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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