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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호회 탐방] 책에 날개를 다는 사람들
책꽂이에 갇힌 책들에게 자유를…
한국판 푹크로싱 운동, 제2·제3의 독자에게로 이어지는 '책 돌려보기'




뚝섬에서 펼쳐진 ‘아름다운 나눔장터’에 모인 동호회원들. 앙증맞은 날개를 단 책 캐릭터가 인상 깊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집 앞 공원으로 저녁 운동을 나간 회사원 이은오(32) 씨. 잠깐 숨을 고르려고 벤치에 앉았다가 책 한 권을 발견한다. 누군가 깜빡 잊고 간 것일까 궁금해 하던 은오 씨의 눈에, 책 표지에 붙은 큼지막한 스티커가 들어 온다.

“데려가 주세요. 버려진 책이 아닙니다. 여행 중인 책입니다.” 여행 중인 책이라?

표지 스티커에 씌어진 URL에 접속해 보니, ‘책에 날개를 다는 사람들’(cafe.naver.com/crossingbook.cafe)이란 홈 페이지가 뜬다. 게시판에는 은오 씨처럼 우연히 책을 발견한 사람은 물론, 자신의 책을 바깥 세상으로 날려 해방시킨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의미와 재미 함께 추구하는 ‘책 돌려보기’
운영자 차우진(31ㆍ별명 나른고냥) 씨가 2004년 2월 네이버에 개설한 이 동호회는 한국판 ‘북크로싱(bookcrossing)’ 운동을 표방한다. 2001년 미국의 론 혼베이커(Ron Hornbaker)가 창안한 이 운동은 개인의 책꽂이에만 꽂혀 있던 책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볼 수 있도록, 공공 장소에 놓아두어 가져가게끔 하는 일종의 ‘책 돌려보기 운동’이다. 아는 사람끼리만 책을 돌려보고 되돌려 받는 것이 아니라, 책에게 새 주인을 찾아주기 위해 조건 없이 세상 속으로 내보낸다는 점에서 나눔의 정신과 이어져 있다. 날려 보낸 책이 제2, 제3의 독자에게로 이어지니 ‘예측 불가능한 책 릴레이’라고도 부를 만하다.

지난 2월로 창립 1주년을 맞이한 ‘책에 날개를 다는 사람들’ 동호회에서는 현재 4,000여 명의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처음에는 운영자의 사적인 동호회로 시작했지만, 책 애호가들이 동호회 취지에 공감하며 속속 모여 들었고, 우연한 계기로 ‘날려진 책’을 발견한 사람들도 책 표지에 안내된 URL을 따라 이 곳으로 찾아 들면서 회원 수도 급증했다.

동호회 대문에 들어서면, 슈퍼맨처럼 두 팔을 벌리고 책 표지에 달린 날개를 팔락거리는 귀여운 책 캐릭터가 책 손님을 맞이한다. “저는 매우 특별한 책입니다. 한때는 비좁은 책장에 꽂혀있었지만, 제 책 친구가 저에게 날개를 달아주어서 지금은 보시다시피 친구들을 만나며 여행 중이랍니다. 그리고 지금 당신을 만났습니다. 당신이 또 다른 제 친구들을 만났으면 좋겠습니다”라는 안내 문구가 동호회 성격을 잘 말해 준다.

갖고 있던 책에게 새 주인을 찾아 주고 싶은 사람은 ‘책을 날려요’ 게시판에 책을 날릴 날짜와 시간, 장소를 공지한다. 글을 올릴 때는 말머리로 ‘책 번호 + 지역 명’을 적는 것이 원칙. 이곳에 쓰는 글은 단순히 책을 날린다는 사실을 공표하는 의미만 지니는 것이 아니다. 책에 얽힌 사연이 소개되고 책 내용이 전달되는 간단한 독후감이면서, 책 주인이 어떤 취향을 갖고 있는지 보여주는 글이기도 하다.

책을 공공 장소에 날릴 수도 있지만, 회원들은 신촌의 ‘카페 그루브’나 대학로의 ‘카페 오렌지카운티’ 처럼 오프 라인 모임 장소 또는 즐겨 찾는 카페에 책을 갖다 놓는다. 간혹 날려 보낸 책이 분실되거나 버려지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북크로싱 운동을 이해하는 곳에서 안전하게 책이 전달될 가능성이 많은 곳을 애용하는 것. 현재 이런 과정을 거쳐 새 주인을 찾아간 책들은 모두 7백여 권에 이른다. 사람들 속으로 날아간 책들의 이동 경로는 ‘책을 발견했어요’ 게시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책으로 실천하는 지식과 정보의 즐거운 나눔
‘책을 발견했어요’ 게시판에서는 자유를 찾아 여행을 떠난 책들을 발견한 사람들의 사연이 이어진다. 전시회를 보러 덕수궁에 들렀다가 ‘무라카미 하루키 수필집’을 발견했다는 badubop 회원은 “돌의자에 앉아 쉬는데 책이 눈에 띄었다”며 “여행 중인 책이라는 말이 너무 멋져 일단 가져왔다”고 설레는 마음을 털어 놓았다. “이렇게 큰 기쁨을 주신 분이 있어 고맙고 세상은 여전히 아름다운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fullmoonmind이라는 또 다른 회원은 “저녁 11시경 월드컵 경기장 역에서 ‘다빈치 코드’ 1, 2권을 발견했다”며 “조만간 꼭 린?싶던 책인데, 책을 날려 주신 분께 감사하다”고 연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더불어 “내가 모르는 누군가를 위해 나의 소중한 책을 날린다는 것 역시 대단한 사회 운동인 것 같다”며 “제 책장 속의 쓸 만한 책들도 날려 보겠다”고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동호회를 드나들면서 책 나누는 방법을 익히고 직접 책을 날릴 마음의 준비가 되면, ‘북 카드:다운로드용’이라는 게시판에 들러 보자. 동호회원들이 직접 만든 북 카드를 다운로드한 후 책에 붙이면, 세상 속으로 날개를 달고 날아갈 책의 이름표가 된다. 공식 북 카드 디자인이 정해진 것이 아니어서, 직접 만들어 사용할 수도 있다. ‘북 카드: 만들어 보기’라는 게시판에 가면 관련 자료를 받을 수 있다. 부지런히 동호회에 방문하는 사람에게는 재미있는 선물도 주어진다. 방문 수, 덧글 수, 게시물 수로 매달 순위를 정해, 운영자가 회원들에게 책 선물을 하는 것.

운영자 차우진 씨는 “모임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자발성과 만족감”이라며, “어떤 것도 강요하지 않고, 최소의 절차와 형식만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느리고 더디게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내가 즐거우니까 한다’라는 첫 마음을 지켜나가면서 소박하고 조용하게 운영해 나갈 생각”이라고 토로했다. 이를 위해 매달 한 차례씩 대형 서점이나 헌책방 등 책이 있는 곳에서 정기 모임을 꾸준히 개최하는 것, 그리고 작년 7월 제작되어 호응을 얻었던 독서노트 ‘날림’ 2호를 펴내는 것이 ‘책에 날개를 다는 사람들’의 2005년 목표다.

아직 많은 사람들이 북크로싱 운동을 모르는 까닭에 힘들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에게 내 것을 주는 기쁨을 알게 된 것이 무엇보다 큰 수확이라고 밝히는 차우진 씨. 아마 책에 날개를 달아주는 다른 동호회원들의 마음도 이와 같을 것이다.



고경원 객원기자 aponian@hanmail.net


입력시간 : 2005-03-09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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