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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지대 르포] 군산 대표윤락가 '감둑'
사위어 가는 불빛, 화장은 지워지고…
대명동·개복동 화재사건 이후 자취 감춘 성매매, 명맥만 이어가는 유흥업소






군산에서 발생한 두 차례의 대형 화재사건은 한국 사회의 성매매 문화를 크게 뒤바꿔 놓은 계기가 됐다. 지난 2000년 9월 19일 군산시 대명동의 속칭 ‘쉬파리골목’의 무허가 윤락업소에서 발생한 화재사건으로 인해 윤락녀 5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로 인해 군산 소재의 무허가 집창촌이었던 ‘쉬파리골목’에서 자행되어 왔던 감금, 윤락 강요 등이 만천하에 알려지면서 전국이 충격에 휩싸인 바 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완전히 종적을 감춘 것으로 알려진 무허가 윤락업소의 감금과 윤락 강요는 사라지지 않았다. 이로부터 채 2년도 되지 않은 2002년 1월29일 군산시 개복동 소재의 유흥음식점 ‘대가’에서 다시 한번 화재 참사가 발생했고 이로 인해 윤락여성 1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역시 감금과 윤락 강요가 자행되고 있었다. 특히 바깥과 안에서 모두 잠글 수 있는 ‘2중키’는 이들 무허가 윤락가의 2중?3중 특수 감금장치의 대표적인 예로 대한민국 성매매 업소의 현실을 여과없이 보여줬다.

당시 정부에서는 좀 더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각성이 일었고 결국 지난 해 9·23사태를 불러온 성매매 특별법까지 시행된 것이다. 다시 반년이 지난 2005년 3월 1일. 과연 대한민국 성매매 문화의 근본을 뒤흔든 두 번의 화제 사건을 만들어낸 군산의 요즘은 어떤 모습일까. 용산에서 출발하는 KTX를 타고 다시 익산에서 군산으로 향하는 통근열차에 몸을 실었다.

군산역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5시경. 역전 광장은 한산했고 바로 우측에 위치한 재래시장에는 오가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일반적으로 역전 부근은 집창촌의 근원지인 법. 군산에서 발생한 첫 번째 화재사건 역시 군산역 부근인 대명동이었다. 당시 전국민의 눈과 귀를 집중시킨 대명동 ‘쉬파리골목’의 화재현장은 여전히 방치되어 있었다. 사람이 살지 않는 화재현장, 그렇게 군산시의 집창촌은 2000년을 마지막으로 그 종적을 감췄다.

역전 부근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던 기자는 새로운 윤락가를 찾아냈다. 군산역에서 군산의 번화가인 영동으로 가는 길복에 위치한 이 윤락가에는 방석집 수십여 곳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너무 이른 6시라는 시간 탓인지 윤락가는 조용했다. 단 한군데도 문을 연 곳이 없었고 인근 주민들만 오갈 뿐이었다.

그러나 방석집 십여 곳이 자리 잡고 있을 뿐 그 규모나 모양이 군산을 대표하는 역전 인근의 윤락가라고 보기에는 어려움이 따랐다. 그렇다면 군산 어딘가에 또 다른 신흥 윤락가가 있다는 이야기일까. 우선 그 해답을 얻기 위해 역전 파출소를 찾았다.



파출소는 군산역 바로 우측에 위치해 재래시장 바로 건너편이었다. 파출소 안에는 경찰 두 명과 민원인으로 보이는 중년 여성 두 명이 있었다. 과연 군산에 아직 집창촌이 있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해 경찰은 “전혀 없다”고 잘라말했다. 이에 옆에 있던 민원인들 역시 “두 번의 대형 화재사건으로 인해 군산은 커다란 망신을 당했다”면서 “이제 군산은 윤락가에 대해서만큼은 가장 깨끗한 도시이다”라고 얘기한다. 결국 군산에서는 더 이상의 무허가 불법 윤락은 사라졌다는 얘기가 된다.

다음으로 기자는 택시에 올라탔다. “군산은 초행길인데 여자와 놀 수 있는 술집을 가고 싶다”고 얘기하자 택시기사는 ‘감둑’이라는 곳과 ‘나운동 일대’를 추천했다. 가장 먼저 추천한 곳은 ‘감둑’이었으나 아직 시간이 이르다는 얘기에 우선 나운동 일대를 둘러본 뒤 감둑으로 가 달라고 부탁했다.

군산에 집창촌은 없다
택시기사 역시 군산에는 집창촌이 없다고 얘기한다. 나운동 역시 기존의 중심가인 영동에 이어 최근 급성장한 신시가지로 일반적인 유흥가일 뿐 성매매 관련 업소는 없다고.

어렵게 도착한 나운동 일대는 서울의 변두리 시가지 유흥가와 별 다른 게 없었다. 단란주점과 룸살롱, 그리고 러브호텔과 스탠드바가 밀집되어 있었고 나이트클럽도 눈에 띄었다. 이런 유흥업소들이 운집한 블록이 바로 나운동 일대의 유흥가인 것. 이는 일반적인 도시의 유흥가과 다를 바 없는 수준으로, 성매매 관련 업소를 대표하는 집창촌, 안마시술소, 남성휴게텔 등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물론 룸살롱이나 단람주점에서 은밀히 2차를 나가는 방식의 성매매 가 이뤄지고 있을 가능성고 배재할 수 없으나 이런 가능성은 그 어느 곳에나 존재하기 마련이다.

다시 올라탄 택시는 ‘감둑’으로 향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감둑은 먼저 둘러봤던 군산역 부근의 방석집들이 몰려 있는 골목이었다. 이미 시간은 7시를 넘어가고 있었지만 여전히 감둑은 조용했다. 곶감 도매상이 밀집해 있어 감둑이라는 호칭으로 불리던 이 근방에 언젠가부터 방석집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고 이제는 군산을 대표하는 윤락가가 됐다.

근대사회를 지나가면서 한국 사회는 두 가지 형태의 성매매 업소를 갖게 된다. 우선 하나는 집창촌이고 또 하나는 요정이었다. 이후 요정 형식의 윤락업소는 지금의 방석집으로 변해갔다. 군산 역시 이는 매한가지. 대명동에는 집창촌이, 개복동에는 방석집이 자리를 잡고 오랜 시간 군산의 대표적인 유흥업소로 군림해왔다. 하지만 2000년 화재사건으로 대명동 집창촌이, 2002년 화재사건으로 개복동 방석집이 치명타를 맞게 된 것이다. 그렇게 군산의 양대 성매매 관련 유흥업소가 그 자취를 감추게 된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대명동 방석집 밀집지역, 다시 말해 감둑이 이제 유일한 성매매 공간으로 남겨진 것이다. 하지만 별 다른 풍경은 살펴볼 수 없었다. 밤 9시가 넘은 시간까지 감둑 일대의 방석집들 가운데 간판에 불을 켠 업소는 채 1/3도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남은 감둑 역시 사라져가고 있는 것일까. 이제 군산은 국내에서 가장 깨끗한 도시로 불려도 손색이 없을 만큼 달라진 것일까.

정확한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불이 켜진 방석집 가운데 한 곳을 찾아 들어갔다. 그런데 이 업소의 바깥 구조는 방석집의 형태이나 간판은 단란주점으로 적혀 있었다. 내부 구조 역시 서울에서 살펴본 방석집과는 전혀 달랐다. 분명 내부는 단란주점이었다.

업주의 설명인즉 이곳은 방석집이 아닌 단란주점이었다. 뿐만 아니라 인근에 간판에 불을 켜고 영업중인 업소는 모두 단란주점일 뿐 방석집이 아니라고 얘기한다. 물론 등록 역시 단란주점으로 되어있다고.

“불 꺼진 업소 가운데 몇몇 곳이 여전히 몰래 영업중인데 예전 방석집 형태 그대로 돌아가고 있다”는 업주는 “우리는 깨끗하게 운영중이다. 두 번의 화재사건 이후 군산에서는 성매매 관련 업소가 대부분 사라졌다”고 얘기한다.

단속 피하려고 불 꺼놓고 영업
자세한 이야기는 이 업소에서 일하는 접대부 여성에게 들을 수 있었다. 감둑 일대의 몇몇 업소가 겉에서 보기에는 문을 닫았지만 몰래 불을 꺼 놓은 채 영업하고 있다고. 가격은 세 명 기준으로 20만원가량으로 주류는 맥주가 나오고 술을 마시며 놀다가 성매매까지 이뤄지고 있다는 게 이 접대 여성의 설명이다. 몇몇 업소에서는 양주가 나오는 데 그럴 경우 가격이 두배인 40만원으로 올라간가고. 하지만 워낙 경찰의 단속이 심한데다 두 번의 화재사건을 군산의 치욕이라 여기는 시민들이 많아서인지 손님의 발길도 뜸한 편이라고 한다. 또한 군산 지역의 여성·사회단체인 (사)군산여성의전화와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시민모임’ 등의 적극적인 활약으로 구제된 윤락 여성도 상당수라는 게 이 접대여성의 설명.

성매매 특별법 시행 이후 한국 사회는 윤락업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의 세력은 줄어들지 않았고 이제는 지난해 9월 23일 이후의 모습으로 다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확인 결과 성매매가 거의 사라져가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군산시의 모습은 우리 사회에 많은 가르침을 건네주고 있다. 적어도 군산에서 만큼은 성매매 특별법과 이에 따른 대대적인 단속이 아닌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두 차례의 화재사건이 성매매 근절의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해냈다. 그렇다면 다른 도시들 역시 이 같은 참사를 겪은 뒤에야 성매매를 근절할 수 있다는 것일까. 이 보다는 업주와 윤락여성, 그리고 이를 이용하는 일반인의 각성이 더욱 시급할 것이다. 이들의 각성만 뒷받침된다면 이런 참사를 막고 성매매를 근절할 수 있지 않을까. 다시 한번 당시 화재사건으로 아깝게 목숨을 잃은 고인들의 명복을 빌며 군산발 열차에 몸을 실었다.

입력시간 : 2005-03-17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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