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삼은 청소년들의 3D 업종"교실에서 보고 느낀 한국·한국교육, 그리고 불합리한 교육정책 질타

'학교대사전'을 보면, 10대들이 보인다
"고삼은 청소년들의 3D 업종"
교실에서 보고 느낀 한국·한국교육, 그리고 불합리한 교육정책 질타


사면초가 - 주변의 애들이 모두 잠들어서 내가 선생의 눈에 잘 띄게 되는 현상.

상전벽해 - 자다가 눈을 떠보니 하교시간이 되었다.

소탐대실 - 한 문제 컨닝하려다가 한 과목이 0점 처리되는 현상을 말한다.

무엇일까. 지난 2월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 ‘편찬’한 ‘학교대사전(http://schooldic.wo.to)’의 일부다. 현역 고등학생(백인식ㆍ이세준ㆍ주덕진)들이 정리한 이 사전은 학내에서 통용되는 ‘특수용어’들의 설명과 함께 열악한 학교환경과 입시위주의 교육, 부합리한 교육정책 등을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어, 동병상련의 학생들은 물론, 학부모, 심지어 일선 교사들에게까지도 인기다. 학교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창(窓)과 학원생활의 면면을 살펴볼 수 있는 돋보기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고3 시절 1년간 끼적인 것에 투고 받은 것들까지 합쳐 600여 개의 표제어들로 구성된 이 사전의 방문(열람) 횟수는 40만을 눈앞에 두고 있다. 개장 두 달 만의 일이다.

강남의 한 입시학원에서 수능준비에 여념이 없는 고 3학생

자유를 빼앗긴 우리시대의 고 3
고삼 - 아플 자유도, 딴청 필 자유도, 게다가 놀 자유는 더욱 없는 다소(?) 불운한 종족을 말한다. 일단 긴 근무시간이 제일 문제이며 두 번째로는 근무시간과 여가시간이 구분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이다. 놀아도 노는 것이 아니고 일해도 일하는 것이 아니다. 3D업종 중 하나로 청소년들이 가장 기피하는 직업으로 꼽힌다.

골품제도 - (과거) 성적의 높고 낮음에 따라 반장, 부반장, 전교회장 등의 출마를 규제한 신분제도.

관성의 법칙 - 자는 사람은 어째서 계속하여 자게 되는지를 알려주는 절대 불변의 원리. 누구나 한번쯤은 이것을 체감한다.

관습법 - 교칙에 명시되어 있지 않은 사항도 단속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암묵적인 0순위 교칙. 교칙을 만들 때 미처 고려하지 못했거나 의도하지 않았던 부작용이 나타나면 이 법을 적용한다.

‘ㄱ’ 항목부터 훑어 내려가자면,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치게 되고 연방 터져 나오는 웃음을 주체할 수 없게 된다. 웃음이 잦아들 즈음이면 눈가에는 눈물도 맺힌다. 심하게 웃은 탓이리라,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고삼(高3)’에 대한 정의 아래의 ‘참고’표시가 된 ‘고3의 사랑 노래’로 따라가보면 찔끔 맺힌 눈물이 심하게 웃은 탓만은 아님을 금세 알 수 있다. 대한민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이라면.

고3의 사랑 노래
원작 가난한 사랑 노래 - 신경림

고3이라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공부가 끝나 돌아오는
가로등 밝힌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고3이라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성적표 오는 소리 매미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고3이라고 해서 재미를 버렸겠는가
컴퓨터 하고 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
복합 상영관에 한 관 남았을
보고싶던 영화도 그려보지만.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뒤에 터지던 네 울음.
고3이라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고3이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외로움과 두려움, 그리움과 사랑 등 인간적인 진실함을 모두 가진 한 사람의 인간이지만, 오로지 ‘고3’이기 때문에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하는 대한민국 고등학교 3학년의 현실을 자조어린 어조로 풀어낸 것이다. 이 외에도 시편에는 각색된 ‘입시무’, ‘서시’, ‘입천’, ‘학교별곡’, ‘너에게 묻는다’, ‘송인’, ‘정읍사’에서도 ‘공부하는 기계’들의 삶과 고민을 묻혀내고 있다.

사전에는 그들의 고민과 삶만 다룬 것은 아니다. 그들의 예리한 시선은 학교 밖으로도 향한다. 그들의 눈에 비친 교육당국의 모습을 보자.

이기준 3일천하 '갑신정변'
갑신정변 - 이기준씨가 잠시 교육부 총리가 되었다가 물러난 사건. 삼일천하로 끝난 그의 임기 기간은 교육관련 정책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를 충격적으로 드러내 주었다. (2004년은 갑신년이다)

장학사 - 학교에 간혹 방문하는 교육청의 파견요원. 이들이 다녀가는 날에는 평소 쓰지 않던 뒷칠판에 학습목표란이 생기기도 하며, 급식이 유난히도 맛있어진다.

‘백년지대계’가 조삼모사로 이뤄지고, 교육현장은 어느새 연극무대로 바뀌어있다. 세세하게 적은 것은 아니지만, 최근 불거진 교내 폭력과 관련, 형식적인 학교당국의 학교폭력 근절 노력에도 사전은 일침을 가하고 있다.

서울 경복고등학교 고3수업장면. 입시를 앞두고 긴장감이 역력하다.

학교폭력 신고함 - 거미줄이 한가득 붙어있는 정체불명의 나무상자. 필요한 사람은 있는 듯하나 정작 이용하려 드는 사람은 없다. 장학사가 들이닥칠 것을 대비해 학교에서 유일하게 버려지지 않는 쓰레기.

물론, 학교에서는 인터넷이 발달된 요즘, 교사들의 이메일, 학교 홈페이지의 익명 게시판 등을 통해서 신고를 받고 있다고 해명할 수 있겠지만, 거미줄 쳐진 신고함의 모습은 그 신고함 자체만의 모습을 얘기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또 다름은 어떤가.

학생회 - 자유주의 원칙에 따라 학교에서 세운 어용단체. 학생회의 지키지 못할 약속들 1)두발자유화를 하겠다. 2)급식을 개선하겠다. 3)학생회를 적극 운영하겠다. 4)매점을 더욱 업그레이드하겠다. 5) (남학교의 경우)여학교와 교류를 증대하겠다.

학원 내의 민주ㆍ자주의 상징이었던 학생회를 권력에 영합해 줏대 없이 행동하는 ‘어용단체’, 그것도 학교에서 세운 단체로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는 노동운동의 비장함마저 새나온다. 학생회가 이럴진대 그 수장은 어떻게 묘사하고 있을까.

전교회장1 - 선거 시즌이 되면 엄청나게 부각되는 자리이나 선거가 끝나고 나면 관심 밖의 대상이 된다. 시간이 흐르면 누가 전교 회장인지도 잊게 되며 그로부터 시간이 더 지나면 그런 것이 있었는지도 망각하게 된다. 필자는 이런 대화를 들은 적이 있다. (애국조회 시간) 학생A: 쟤가 뭔데 사회를 보고 있냐? - 학생B: 쟤, 학생회장이잖아. - 학생A: 뭣이, 아직도 그런 것이 존재하고 있었단 말인가?

전교회장2- 수련회 입소식이나 금연서약 따위의 글을 대표로 읽는 제물. 졸업하는 학생들에게 주는 교지에 쓸 글을 짓고 자신의 얼굴을 올리게 되는 사람. 이 때문에 학생들은 학생회장을 얼굴로 뽑는 경향이 있다.

언론에서는 남학생은 고교생으로 표기하면서 여고생은 고교생이 아닌 여고생 그대로 표기한다. 사진은 고교 교실으 ㄹ무대로 한 영화 <잠복근무> 중 한 장면.
언론에서는 남학생은 고교생으로 표기하면서 여고생은 고교생이 아닌 여고생 그대로 표기한다. 사진은 고교 교실을무대로 한 영화 <잠복근무> 중 한 장면.

학생회장을 얼굴로 뽑는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우리 사회에 만연된 외모 지상주의, 얼짱 신드롬이 학원에서는 어느 정도까지 파급돼 있는지,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볼 수 있다. 사전은 학교로 전이된 사회현상의 문제 뿐만 아니라, 고등학생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비뚤어진 시각도 빠뜨리지 않고 지적한다.

여고생 - 여자인 고등학생. 언론에서 매우 좋아하는 단어이다. 여자인 고등학생이 무엇인가 주목할 만한 일을 하면 기자들은 반드시 ‘여고생’이라고 강조한다. 반면 남자인 고등학생이 뭔가 일을 하면 ‘고교생’, ‘고등학생’ 정도로만 설명해 준다. 남고생은 여고생의 상대어가 아니라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이 밑에는 학교와 학생들을 상업주의로 연결, 자신들에게서 이득을 보려는 얄팍한 계산이 깔렸다는 신문 기사도 하나 링크시켜 놨다. “ ‘시험을 보기 싫다’ 여고생들 교무실에 화염병 투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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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학교대사전> 저자 이세준·주덕진·백인식

학생, 교사, 부모, 심지어 언론까지도 피해갈 수 없는 사전, ‘학교대사전.’ 요즘 학교가 궁금하다면, 이 사전을 클릭해보라. 서두에 “이 사전은 객관적이지 않다”는 겸사를 달아두긴 했지만, 얼마지 않아 연신 끄떡여지는 자신의 고개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정민승 기자


입력시간 : 2005-03-23 15:10


정민승 기자 msj@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