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과 나누는 순수와 낭만의 대화국내 유일의 별빛 보호구역별마니아·아마추어 관측가들이 찾는 명소

강원도 횡성 <> 체험
별과 나누는 순수와 낭만의 대화
국내 유일의 별빛 보호구역
별마니아·아마추어 관측가들이 찾는 명소


천문인 마을

“누군가는 해야죠 /누군가 별을 닦아 줘야 해요 /별들이 좀 어두워 보이니까요 /누군가 별들을 닦아 줘야 해요 /독수리도 찌르레기도 갈매기도 모두들 /별들이 모두 녹슬고 낡았다고 불평이거든요 /새 별을 달아 달래지만 형편이 되어야죠 /그러니까 여러분, 걸레와 광내는 약을 가져오세요 /누군가는 별을 닦아 줘야 해요”(셸 실버슈타인) 서울의 창공에서 북두칠성을 보는 것이 쉽지 만은 않은 요즘, 고속도로를 타고 2시간 정도 지나, 섶다리와 돌다리를 배경으로 한 비포장 도로를 버스로 10분간 들어 가면 쏟아질 듯 떠 있는 별의 폭포 아래 한 마을이 나온다. 강원도 횡성군 강림면 월현리 . 이 곳은 국내외 많은 아마추어 천문인들의 관측 장소이며 어린이, 가족 캠프 등을 통해서 일반인들이 별과 우주를 접하는 장소로도 활용되고 있다.

110개의 별 찾기 '메시지에 마라톤'
추운 겨울일수록, 어둠이 깊을수록 별은 더 밝게 빛난다고 했던가? 봄 기운이 아직 온전히 자리잡지 않은 3월 12~13일, 에서는 ‘제 5회 메시에 마라톤’이 열렸다.

18세기에 활동했던 프랑스 천문학자 샤를 메시에의 이름을 딴 ‘메시에 마라톤’은 ‘메시에 목록’(메시에가 새로운 혜성을 찾기 위해 천구상에 고정돼 있는 은하나 성단, 성운의 위치를 숫자 앞에 M1, M2와 같이 알파벳 M을 붙여 표시한 목록)에 속해 있는 천체 110개를 누가 빨리 그리고 많이 관측하느냐를 경쟁하는 행사.

이 마을은 지난 1997년 화백 조현배(49) 관장이 해발 650m인 치악산 자락이 이어지는 부곡계곡 들머리인 월현리에 천체 관측 시설을 짓고 장비를 갖춰 설립한 사설 천문대다. 조 관장은 “연중 청정 일수가 많고, 광해(光害)가 없어 국내에서 유일하게 ‘별빛 보호 지구’로 선포(1999년 5월)된 곳”이라며 “원래는 1층에 아틀리에를 만들고 2층에는 별을 관측할 수 있게 하려는 의도였는데, 너무 많이 알려져서 지금은 별 마니아와 아마추어 관측가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라고 소개했다.

평소에 적으면 5~7명에서 많으면 100명 남짓의 단체 인원이 찾는다는 에 마라톤이 열리던 날은 전국 각지에서 180여명의 사람들이 찾아올 정도. 별 관측에 관심이 많은 이들에게는 축제의 한마당이었다.

도착하자 마자 볼 수 있는 풍경은 자기 몸보다 더 큰 망원경을 설치하느라 혈안이 돼 있는 사람들. 시가 2,000만원대의 망원경을 소지한 김도현(33) 씨가 망원경의 종류에 대해서 설명했다. “망원경은 크게는 굴절, 반사 망원경으로 나뉘고 렌즈 지름은 1.2m에 길이 20m까지 다양하다.”

사람들이 망원경을 설치를 끝낼 즈음이 된 6시 20분께 정병호(36) 천문대장은 개회식에서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 ‘메시아 마라톤’에 참여하는 이들에게 엄한 명령을 내린 것. “110개의 별을 찾지 못하는 분이 한 명이라도 계시다면, 마라톤 참가자라고 하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의 자존심에 금이 가겠지요.”정 대장의 허풍에 여기저기서 웃음 참는 소리가 들렸다. “난로의 열도 방안의 불빛도 자동차의 히터도 안 됩니다. 오직 어두컴컴한 곳에서만 마라톤이 가능합니다.”천문대장의 경고를 신호로 마라톤이 시작된 7시 께부터 식당을 제외한 모든 곳의 불빛이 금지되었다.

불이 꺼진 의 돔형 건물 안팎에서는 마라톤 참가자들이 가끔 “와~ 목성이다!”라고 외치는 소리만이 암흑을 깨뜨렸다. 다닥다닥 붙은 참관인들의 감탄사 역시. “이 쏟아질 것 같은 별들을 보는 게 무척 재밌거든요. 유년기 어느 순간으로 다시 되돌아간 느낌이에요. 제가 이 곳에 오는 이유입니다.” 어릴 적부터 별을 가슴에 보諛?살아 왔다는 회원의 말을 좀 더 다듬으면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될까. “일상을 잊을 수 있어서 좋아요. 누구나 별을 보는 계기는 그렇지 않나요? 어느날 문득 보던 하늘의 별이 너무 낭만적이어서, 별을 잊을 수 없어서, 그 별을 찾고 싶어서….”10년 전부터 별을 보러 다녔다는 이건호(39, 한국전력)씨는 별에 흠뻑 취했다.

씨걸성운

마크홀츠혜성

구상성단

아령성운

강추위 견디며 유년기로 돌아가는 별바라기
9시가 넘자 별빛이 가득한 밤하늘에 구름이 가려졌다. 입김을 호호 불며 별을 바라던 참가자들은 구름이 어서 이 을 비켜가길 바라며 따뜻한 집안으로 향했다. 이번 마라톤에는 건국대, 경희대, 경상대, 중앙대, 홍대 등의 천문회 동아리를 비롯 ‘별 만세’‘나다’‘야간 비행’등 국내의 대표적인 아마추어 별관측 모임 회원들이 참여했다.

특히 3분의 1이 과학 교사로 이루어진 ‘별 만세’커뮤니티 회원들은 숙소에 모여 앉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천문 관측 대회의 시기와 장소’에 대한 의견을 조율하느라 팽팽한 줄다리기를 했다. 천문대장 정 씨는 “별을 보기 위해 주기적으로 천문대를 찾는 분이 100명이 못 된다는 사실이 씁쓸하다”며 국내 별 관측 문화의 발전을 염원했다. 장소를 식당으로 옮긴 회원들은 모처럼의 재회로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1980년대 대학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별 관측에 관심을 가졌다는 황형태 교수(49, 단국대학교)는 “우리나라에 별관측 동아리가 생긴 것은 무려 2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아 일반인들의 저변 확대가 필요하다”며 “우리는 외국인들이 30년 만에 할 것을 불과 10년 만에 따라잡은 걸 보면, 국내 아마추어들의 실력에 물이 올랐다”고 즐거워 했다.

그 때였다. 사람들이 우루루 몰려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누군가 외쳤다. “구름 걷혔다!”

자정이 가까워지자 추위에 지친 몇몇 참관인들은 숙소에서 잠을 청했다. 영하 12도의 강추위 속에서 밤을 지새우기로 작심한 대학 동아리 회원들은 강추위에 아랑곳 하지 않았다. 새벽 5시경 M7, M6의 별을 찾아 열심히 기록하고 있던 중앙대 천문동아리 학생들은 “다음엔 이보다 힘들어도 별이 더 잘 보이는 곳을 찾을 것”이라며 “별을 모두 보기 위해서라면 이 정도의 추위는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되묻기도 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오전 7시께, 마라톤 종료되자 식당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지금부터 시상식이 있겠습니다. 선물은 NADA회원들이 기증한 사진입니다.” 100개 관측 기록을 세운 조강욱(28, 삼성전자)씨, 94개 관측의 함인수(27ㆍ 중앙대학교), 신선아(23ㆍ중앙대학교), 전권수(33ㆍ건국대학교 대학원)등이 영광의 주인공으로 올랐다. 100개 이상의 별을 찾아 낸 것은 5년만의 일이라며 모두 탄성을 터뜨렸다. 영하 12도의 추위를 견딘 참가자들에게는 차창 안의 온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 곳에서 별의 순수를 길어 올리고, ‘별빛 보호 지구’선포문을 뒤로 한 채 각자 길을 재촉했다. ‘별빛이 흐르는 곳에 청정한 삶이 있습니다. 별빛의 낭만과 별을 사랑하는 마음을 모두어 달도 별도 쉬어가는 아름다운 산하 강림면 월현리.’

홍세정 인턴기자


입력시간 : 2005-03-23 16:19


홍세정 인턴기자 magicwelt@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