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 정보통, 막는다고 닫힐까?'아니면 말고 식' 악성 루머에 철퇴, 근절 어려운 사회구조도 문제

정부 '찌라시와의 전쟁' 선언
언더 정보통, 막는다고 닫힐까?
'아니면 말고 식' 악성 루머에 철퇴, 근절 어려운 사회구조도 문제


정부가 ‘찌라시(사설 정보지)’와의 전쟁을 선언했다.

그 동안 확인되지 않은 루머를 퍼뜨려 온 ‘찌라시’에 대해 검찰이 간헐적으로 칼을 겨누어 오긴 했지만, 이번처럼 법무부, 정보통신부, 경찰청 수뇌부가 공동 담화문까지 발표하며 철퇴를 가하겠다고 나선 것은 처음이다.

정부는 3월 15일 대국민 담화문을 통해 “ 개인의 명예와 사생활에 관한 터무니없는 얘기들이 ‘아니면 말고’ 식으로 사설 정보지를 통해 무차별적으로 전파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고 전제한 뒤, “개인의 피해를 넘어 우리 사회의 통합을 저해하고 국가 신인도를 떨어뜨리는 진원지”로 지목했다. 또 정부는 사설 정보지의 수요가 끊이지 않는 것은 고급 정보에 대한 환상에서 기인하지만, 남들이 모르는 정보를 이야기하는 것이 일종의 특권으로 여겨지는 그릇된 정보 문화에 원인이 있다고 진단한다.

도대체 어떤 내용들이 ‘찌라시’를 통해 유통되길래 정부가 국론 분열 조장범으로 까지 규정하며 나섰나?

지난 주초에 메신저 등을 통해 유포된 ‘찌라시’에는 ‘BH xxx 비서관 구설수’, ‘BH xxx 폭탄주 실력에 깜짝’ 등 BH(Blue Houseㆍ청와대의 영어 약자) 인사들에 관한 풍문부터 내세웠다. 그리고 ‘우리당 당의장 선출 전망’, ‘xxx 기업 간부 성 상납 의혹으로 곤혹’, ‘모 언론사 xxx 낙마 후문’ 등 유명 인사의 신변잡기 혹은 개인과 조직에 정치적 치명타가 될 수도 있는 악성 루머까지 다룬다.

특히 ‘찌라시’의 폐해가 극성인 때는 개각 등 주요 기관 인사를 앞 두고 있거나 검찰의 사정이 있을 때다. 이 때는 확인할 수 없는 마타도어 성질의 ‘xxx 리스트’ 등 살인적 루머가 쏟아져 당사자에게 회복할 수 없는 낭패는 물론, 정부나 관계 기관까지 곤혹스럽게 하기 일쑤다. 또 간간이 국회의원 중에는 면책 특권을 악용해, 정제되지 않은 첩보 수준의 ‘찌라시 설(說)’만 가지고 상대당를 공격해 말썽이 되기도 했다. 소위 ‘찌라시 정치’는 무책임한 폭로로 정치를 마비시켜온 정치권의 고질병처럼 지적돼 왔다.

정·재계 등 확인 안 된 소문 망라
‘찌라시’는 대개 권력의 핵심이라 할 청와대 관련 루머부터 시작해 정치권, 재계, 언론 등 우리 사회의 힘 있는 인사나 기관들의 확인 안 된 소문들을 망라해 주 단위로 A4용지 50~60쪽 분량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보지 기사는 보통 한 줄짜리 제목과 몇 개 문단의 형식으로 한 건을 이룬다. ‘찌라시’를 생산하는 곳도 상당수 되다 보니 비슷 비슷한 내용의 ‘찌라시’가 주당 3~4개씩 전달돼 다 읽어 내기가 벅찬 면도 있다. 그래서 상당한 분량의 내용을 읽어 내는 수고를 덜기 위해 군데 군데 성 스캔들이나 연예계 악성 루머를 끼워넣어 쉬어가는 재미를 주는 ‘서비스 정신(?)’을 발휘하기도 한다.

‘찌라시’는 사실 확인 과정을 거치지 않아 신뢰도가 높을 수 없다. 일명 ‘제호 없는 신문’으로 불리듯 책임지지 않는 상품이란 뜻이다. 그런데도 ‘쓰레기 정보’라는 함의를 지닌 ‘찌라시’의 수요가 줄지 않는 이유는 간혹 “혹시나가 역시나”로 밝혀진 사례가 있는 탓도 크다. ‘찌라시’ 세계에도 특종이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 ‘찌라시 특종’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 현철 씨의 국정 개입과 한보철강 등 대기업 자금 악화설. 이 사건이 터지기 훨씬 전부터 ‘찌라시’에 관련 루머가 등장했던 내용들이었다. 근래에는 SK 비자금 사건이다. SK측에서 한나라당에 100억원을 건넸다는 것은 대선 직후 정보지에 떠돌던 것.

수년 간 사설 정보지 생산에 관여했던 여의도 A씨는 “찌라시에도 등급이 있다”며 “등급을 따질 때 물론 정보의 질과 신뢰도도 고려하지만, 무엇보다 찌라시의 생명은 얼마나 빠르냐 즉, 속보성”이라고 밝힌다. 어차피 ‘찌라시’의 생리상 높은 정확성을 확보하기란 힘들고, 이것을 찾는 사람이 기대하는 바도 정확도보다는 이런 저런 루머를 바탕으로 해 흐름을 알고자 한다는 것이다.

또 ‘고급 정보지’와 구별되는 ‘찌라시’는 그 때 그 때 정보를 빠르게 전달하는 것이 주목적이라, 정확성은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분량도 일반 ‘찌라시’보다 훨씬 적다. 그릿摸?‘찌라시’는 누가 만들고, 누가 보나?

제호없는 신문, 간간히 굵직한 특종도
‘찌라시’를 생산하는 ‘꾼’들은 대개 국정원, 기업 정보맨 출신 등이 운영하는 사설 정보업체, 국회의원 보좌관 모임, 기업 구조본 정보팀, 언론 등 정보 관련 전ㆍ현직 인사들로 개인적 인연을 바탕으로 해서 정보를 교환, 취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찌라시’가 책자로 만들어져 유통되기 시작한 것은 검찰이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에 연루된 기업인을 줄소환하고 기업 빅딜이 추진되던 1990년 중반. 검찰은 현재 이름이 알려진 ‘찌라시’는 10~15개 정도로 추산한다.

‘찌라시’의 소비자는 정보맨들과 친분이 있는 권력 기관 인사나 기업체 임원들로, ‘정기 구독료’를 내거나 무료로 제공받기도 한다. 검찰, 국정원, 국세청, 청와대 민정팀, 언론사 등은 업무의 성격상 장안에 유통되는 ‘찌라시’를 모두 체크하고 있는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국회의원 보좌관 B씨는 “정보를 줘야 정보를 받을 수 있어,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는 정가 소문을 모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기업 정보맨 출신 C씨도 “CEO끼리 골프 모임 등에서 찌라시에서 떠도는 정보 하나 때문에 대화에서 소외돼 괜히 당황하는 경우도 있어, 그룹 고위층들이 찌라시를 챙기는 데 적극적인 편”이라고 밝힌다.

정보맨 여의도 D씨는 “매년 찌라시 단속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사상 유례없는 의지로 검ㆍ경ㆍ정통부가 합동으로 사설 정보지 유통을 단속하겠다고 나선 터라 상당기간 ‘잠수’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걱정스런 목소리를 전했다. 각계 정보맨들의 밥줄에 비상이 걸렸다는 것. D씨는 또 “찌라시의 수요가 있는 한 정부의 의지대로 완전히 틀어 막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제한 뒤 “당분간 정보지는 믿을 수 있는 극소수의 손에만 전달될 가능성이 높고, ‘정기 구독료’도 지금의 월 30~50만원에서 크게 뛰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D씨는 “찌라시가 악성 루머 유포 등 폐해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공식화하기 힘든 첩보를 정보 수준으로 가공할 단서를 제공하는 순기능도 있다”고 항변한다. ‘찌라시’의 존재는 명예 훼손, 보도의 품위, 사실 확인 등을 고려해 공식 언론이 취급하기 꺼려 하는 부분을 대리 만족 시키는 측면도 없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찌라시’ 정보에 기대다 보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현실을 사실에 근거해서 보지 않고, 음모론적으로 접근하는 하는 풍토를 확산될 수 있다는 데 있다. 특히 ‘찌라시’는 한국 내부 사정에 정통하지 않은 외국 바이어나 투자자에게도 전파돼 기업 신인도에 까지 심각한 타격을 입히는 사례가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아니면 말고’식의 정보에 단속의 칼을 빼 들 수밖에 없게 됐다는 것이 저간의 사정에 밝은 사람들의 이야기이긴 하다. 그러나 ‘찌라시의 사회학’은 건재하다. 공식적인 언론 통로만으로는 한국 사회를 제대로 읽을 수 없다는 세간의 인심이 ‘찌라시’의 자양분이 되는 현실을 부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조신 차장


입력시간 : 2005-03-23 16:24


조신 차장 shinch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