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같은 춤과의 사랑에 빠지다섬세한 감정표현과 강력한 카리스마로 무대 압도하는 힙합댄스의 여걸

[감성 25시] 비걸 서혜미·리에 히키치
마법같은 춤과의 사랑에 빠지다
섬세한 감정표현과 강력한 카리스마로 무대 압도하는 힙합댄스의 여걸


젊은 춤꾼들이 모였다. 브레이크 댄스 최강자를 가리는 ‘비 보이 유닛(B - boy Unit)’엔 비 보이(B-boy)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파워플한 동작이 필요한 남성적인 브레이크 댄스 대회에 비걸(B-girl)은 유독 눈에 띄었다.

비(B)는 브레이크 댄스의 약자로 B보이란 브레이크 댄스를 전문적으로 추는 춤꾼을 일컫는 말이다. 한 팔로 바닥을 짚고 물구나무 서기를 한 채 순간 멈춤 동작 프리즈(Freeze). 이런 브레이크 댄스를 “비 보잉 한다”고 말한다. 이름 자체도 남자(boy)만을 한정하는 비 보잉에 정면 도전하는 댄서가 있다. “브레이크 댄스를 추는 여자 댄서는 비 걸링한다고 말해 주세요.”

힙합댄스의 지존을 꿈꾼다
목소리에서 힘이 느껴진다. 무대에선 여자 댄서의 카리스마를 보여준 당찬 비걸(B-girl) 서혜미 양은 올해 21살이다.

7번 째 대회를 맞는 ‘비보이 유닛’엔 올해로 다섯 번째 참가했다는 서 양은 힙합 댄스의 지존을 꿈꾸는 야심찬 비걸이다.

“열세살 때부터 춤을 췄어요. 음악이 나오자 몸치인 제가 몸을 움직이는 거예요.” 재즈 댄스를 배우려 했던 어린 소녀는 힙합 동아리 선배들의 춤을 보게 되었다. 가슴이 뛰었다. 영혼은 두 번째 문제였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노력하는 춤치예요. 몸이 뻣뻣한 편이라 춤을 춘다는 건 꿈 꾼 적도 없는데 간절히 하고 싶은 거예요. 이게 아니면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데 어떻게 하겠어요.”

브레이크 댄스는 여자가 감당하기 힘든 춤이다. 현란한 테크닉을 연습하다가 허리를 다치기 일쑤다. 팔에 힘이 들어가 팔뚝엔 이미 물이 차기도 했다. 무릎은 수도 없이 깨져서 걷기 힘들 때도 많다. 연습이 끝나면 온몸이 멍투성이고 비오는 날 특히 몸살 기운은 참을 수 없다. 그래도 좋단다. 길거리를 가면서도 음악만 나오면 힙합을 추며 간다. 수업 시간에도 춤이 눈에 어른거려 학교가 파하면 곧 바로 연습실로 달려간다. 춤은 혜미양에게 단짝 친구였다. “공부하고 춤추고 딱 두 가지죠. 춤추느라 공부를 소홀히 했던 건 사실이지만 원하는 미대에 가서 디자인을 전공하니 지금은 만족해요.”

처음엔 반대도 많았지만 이젠 시대가 많이 달라졌다. 부모님도 딸의 세계를 이해한다. 오히려 대회를 앞두고 춤 연습을 하지 않는다고 꾸중하실 정도다. 사춘기 시절 춤에 빠져 성적이 떨어지기도 했지만, 미대에 들어간 후 장학금을 받고 다닐 정도다. 좋아하는 일을 하니 무엇이든 열심히 하게 되기 때문이란다. “미술과 춤을 접목한 직업을 가지고 싶어요. 앞으로 비 보이 유닛처럼 규모가 큰 비보이 대회부터 힙합 춤 대회 포스터를 제작하는 광고 디자이너로 활동한다면 더 할 나위 없겠죠.”

서 양은 블랙 펜스라는 팀에 합류해 유일한 여자 비 걸로 배틀(힙합이나 브레이크 댄싱 대회에서 경연에 참가한 댄서들끼리 무대에서 춤을 겨루는 독특한 관행)했지만, 예선에선 떨어졌고 솔로 배틀에선 최종까지 오르기도 했다. “비 걸이 무대에 오르면 우선 시선을 한 몸에 받을 수가 있어요. 거기에 만족하는 비 걸은 싫어요. 기본기 없이 화려한 테크닉으로 멋 부리고 인기에 연연하는 그런 비 걸 때문에 비 걸의 위상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예요. 보는 사람들 재밌게 해 주는 것도 좋지만 기본기를 쌓아서 프로 의식을 가지고 도전했음 좋겠어요.”

비 걸이 비 보이에 비해 근력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감정을 표현하는 섬세한 무브에는 강한 편이다. 서혜미 양은 비 보이와 비 걸이 나란히 한 무대에 서도 실력면에서 큰 차이가 나지 않을 만큼의 수준이 되는 날이 곧 올 것이라고 자신감 있게 말한다. 아직까지 솔로로 활동하는 것이 좋다는 그녀는 춤과 사랑에 빠졌다. 아직까진 춤이 애인이다. 춤을 추지 않는 남자에겐 관심도 생기지 않는다는 그녀는 멋진 비 보이를 만나서 함께 춤 추었으면 좋겠다고 수줍게 말한다. 한 가지 일에 빠지면 무대포식으로 그것만 한다는 그녀의 마지막 말. “다시 태어나도 비 걸이 될래요. 비걸은 영원히 늙지 않으니까요.”였다.

춤은 내 인생, 한국댄서들 매력적
이 날 솔로 비 걸 배틀 최우승자는 리에 히키치(21)양이었다. 그녀의 춤에선 비 보이 못지 않은 강한 파워가 느껴졌다. 무대에선 단연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지녔다. 그녀는 비 보잇 유닛 대회서 3년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일본 OCAT댄스 챔피온 쉽 ‘Faith Exist’에서도 우승을 차지한 그녀는 비보이 비걸이 한 무대에 나란히 서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실력을 갖춘 타고난 춤꾼이다. “춤은 내 인생이예요.”

오사카 출신인 그녀는 16살 때 체육 대회 댄스 페스티발에 출전하기 위해 연습하다가 춤에 빠져 들었다. 다른 댄서에 비해 비교적 늦게 시작했지만 춤이 좋아 남들의 두 배로 연습을 했다. 부상도 많이 당했지만 그렇다고 춤을 쉬어 본적은 없다. 어느새 춤은 그녀의 일상이 되었다. “비 보이 유닛 대회는 제가 한국에 올 수 있는 기회가 되어서 기뻐요. 이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일본에서 연습할 땐 괜히 설레게 됩니다.”

리에의 관심사는 온통 한국 댄서들에게 있다. 한국에 오면 제일 먼저 비 보이, 비 걸들이 있는 곳을 찾아 다닌다. 한국의 댄서들이 어디서 어떻게 춤 추는지가 궁금할 따름이다. 일본에 비해 비 보이들이 많지 않고 대부분 지하 연습실 같은 곳에서 춤추기에 대회가 아니면 그들의 춤을 볼 수 없는 것이 가장 아쉽다. “배울 점이 많아요. 한 가지에 빠져 들면 열정적인 한국 댄서들이 매력적으로 보여요. 그 모습을 보면 정정당당히 배틀을 신청하고 싶어져요.”

한국은 그녀 어머니의 고향이다. 혼혈인 그녀는 한국에서 어학 공부를 더 하고 한국 댄서들과 나란히 춤추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한다. “어릴 적 어머니에게 한국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언니랑 셋이서 한국을 방문했는데 왠지 정겹더라구요.” 한국 남자 친구와 사귄 적이 있다는 리에는 한국 배우 중 장동건을 가장 좋아 하고 김치와 닭갈비를 한국 음식 중 최고로 뽑는다.

일본에선 건축 설계일을 하고 있지만 춤과 일을 구분하고 싶지는 않다. 춤이 일이 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러지 않아도 상관은 없다. 일하면서 남는 시간에 춤추면 되는 거 아니냐며 춤은 영원히 출 계획이라고 말한다. “비 보이 비 걸은 모두 댄서예요. 여자라고 봐주면 안 되고 당당히 실력으로 인정 받았으면 좋겠어요.”

리에가 한국에 도착했을 때 일본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들어갈 수 없는 식당이 있는 것에 적지 않게 충격을 받았다. 독도 문제였다. 하지만 그녀는 언젠가 어머니의 나라 한국에서 살고 싶다고 말한다. 그녀는 댄서의 순정으로 한국을 사랑한다. 혜미와 리에는 21살 동갑이다. 또한 영원히 늙고 싶지 않은 비 걸이다.

국적은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춤을 추는 이상 혜미와 리에는 댄서일 뿐이다. 순수해 지는 시간이 좋다. 춤은 감정을 녹여준다. 육체적인 고통은 순간 쾌감이 되기도 한다. 나른한 고통은 이제 즐길만하다.

쿵, 쿵! 쿵쿵! 심장이 울린다. 조용히 밀어 넣었던 열정이 고개를 드는 순간 눈앞에 헤드 스핀을 하는 리에가, 파워무브를 자랑하는 혜미가 있다.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하는 춤과 음악. 이것이 젊음일까. 춤은 일탈이 아니라 일상이다. 그런 시대가 왔다. 함께 춤, 추, 자, 고 그들이 권한다.

유혜성 객원기자


입력시간 : 2005-04-13 16:09


유혜성 객원기자 cometyou@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