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는 땀과 열정으로 일군 정원"국내 뮤지컬 1세대 기획 제작자…배우·프로듀서 거친 공연계의 불도저

[감성 25시] 신시 뮤지컬 컴퍼니 대표 박명성
"무대는 땀과 열정으로 일군 정원"
국내 뮤지컬 1세대 기획 제작자…배우·프로듀서 거친 공연계의 불도저


뮤지컬 디자이너 박명성을 만났다. 공연기획자이자 대표인 그를 이렇게 부르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가 기획 제작한 뮤지컬을 보면 예술가의 미적 안목이 느껴진다. 맘마미아, 시카고, 렌트, 유린타운, 겜블러, 블러드 브라더스, 노틀담의 곱추 등 뮤지컬 대중화에 기여한 작품들이 그것 들이다.

한해에 세편이 넘는 굵직한 뮤지컬을 무대에 올리는 것으로도 유명한 그는 작품을 고르는 탁월한 안목을 가지고 있다. 그는 뮤지컬이란 장르를 대중에게 친숙하게 만든 장본인이다. 그가 기획 제작해서 흥행에 실패한 작품은 아직까지 없다. 뮤지컬 제작 과정부터 흥행에 성공하기까지의 시행착오를 꼼꼼하게 담은 제작일지를 만들어 프로듀서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교과서를 만들기도 했다.

그에게 무대는 정성 들여 가꾼 정원이다. 무대에서 비오듯 땀을 흘렸던 배우시절부터 강력한 카리스마로 무대를 이끌었던 연출가 프로듀서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는 불모지인 국내 뮤지컬계라는 정원을 가꾸는데 혼신의 힘을 다한 뮤지컬 1세대 기획 제작자다. 신시 뮤지컬 컴퍼니(이하 신시) 창단 멤버이기도 한 그는 배우, 연출가, 프로듀서를 거쳐 10년 넘게 연마한 노련한 정원사의 솜씨로 오늘날 신시의 듬직한 리더 역할을 하고 있다.

국내 유일의 뮤지컬 컴퍼니
사람들은 그를 공연계의 불도저라고 부른다. 그도 그럴 것이 그에겐 항시 ‘최초’ 또는 ‘유일’ 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닌다. 국내 유일의 뮤지컬 컴퍼니가 바로 신시다. 단원을 보유한 최초의 시어터 컴퍼니에 국내에서 유일하게 배우 트레이닝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신시 소속 배우들은 특혜를 받는 셈인데, 신인 뿐 아니라 기성 배우들도 외국 트레이너에게 집중 훈련을 받는다. 배우들에게 아침 시간은 한마디로 ‘쥐약’이다. 트레이닝을 받는 시간은 아침 9시부터로, 이는 부지런하기로 소문난 박명성 그의 제안 때문이다.

“잠을 많이 자면서 성공하는 사람 못 보았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전날 무리해도 아침 6시면 절로 눈이 떠진다. 아침 운동을 하면서 다음 작품을 구상하고 걷고 뛰면서 극단 운영에 대해 생각한다. 주로 아침 시간을 이용해 이미지 트레이닝에 들어간다. 젊은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유행하는 트렌드에도 민감하다. 좋은 공연의 아이템을 찾기 위해 해외 여행은 필수다. 배우와 스태프 챙기는 것은 기본이며, 연습실과 공연장을 오가며 격려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 대학로 연극계 지인들 찾기에도 무심한 적이 없다. 이런 것들은 그에겐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저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사는 게 몸에 밴 것 뿐”이다.

그는 재능 있는 배우를 보면 아직도 가슴이 설레는 욕심 많은 프로듀서다. 실력 있는 배우를 뽑기 위해 공개 오디션을 원칙으로 공정하고 객관적인 심사 절차를 밟는다. 뮤지컬 ‘아이다’의 주연배우로 전 핑클의 맴버 옥주현이 캐스팅 되었을 때도 그는 옥주현의 노래와 춤, 연기 실력이 탁월하다는 것을 인정해 그녀에게 한 표를 던졌을 뿐이다. 옥주현이 연예인이고 핑클의 멤버였음을 뒤늦게 알게 되었지만 아직도 옥주현을 캐스팅 한 것에 만족한다. 젊고 재능 있는 배우들이 신시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대학로 보릿고개 마지막 세대
그는 또한 배우 출신이다. 연극배우 김갑수씨와 서울 장충동의 한 소극장에서 함께 생활한 적이 있다. 가난했지만 배우로서 가장 열정적이고 순수했던 시절이기도 했다고 그는 회상한다. 관객이 없어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무대에 오르며 만족했다. 그저 연극이 좋았다. 독한 배우 근성을 그 시절 배웠다.

그는 자신이 대학로 보릿고개 마지막 세대라고 말한다. 그 후 대학로 소극장에서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조연출을 맡으며 연출가의 길을 밟게 된다. 하지만 연출보다 기획 제작 쪽에 매력을 느낀 그는 향후 10년 후엔 분명히 프로듀서라는 직종이 뜰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시의 프로듀서로 본격적인 활동을 하면서 그는 외국 작품들을 라이센스 계약 형식으로 국내에 들여왔다. 국내 뮤지컬계에서 라이센스 문화를 정착시킨 게 바로 박명성이다.

“남의 작품을 빌려왔으면 정당하게 대가?지불하고 떳떳하게 무대에 올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작권 문화를 정착시킴으로 우리도 선진국 문화 대열에 낄 수 있는 거죠. 그렇지 않으면 남의 정신을 도둑질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봅니다.”

올곧은 방식으로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고자 하는 그는 프로듀서 지망생들에게 세 가지를 당부한다. 작품을 고르는 예술가적 소양과 아티스트 정신, 시대의 트렌드를 읽을 수 있는 안목,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잘 이끌어갈 인간성과 넓은 사고 방식이다. 그가 언제나 자신을 다독이는 세 가지이기도 하다.

최근 그는 구 폴리미디어 씨어터를 인수해 신시 뮤지컬 극장으로 이름을 바꾸고 ‘뮤지컬 즐겨 찾기’ 시리즈를 준비했다. 뮤지컬 전용 소극장을 마련하겠다는 그의 오랜 계획이 실현된 셈이다. ‘뮤지컬 즐겨 찾기’는 4월 23일부터 ‘틱틱붐’을 필두로 ‘더 씽 어바웃 맨’ ‘뱃 보이’ ‘슈퍼비아’ 등의 신작과 ‘듀엣’ ‘더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 ‘유린타운’ ‘렌트’ 등의 화제작 들을 번갈아 공연한다. “뮤지컬 즐겨 찾기를 통해 고품질의 뮤지컬을 싼 가격으로 제공해 관객들이 부담 없이 접할 기회를 제공하고, 소극장의 생동감을 함께 전달하고자”하는 것이 우선 그의 바람이다.

비싼 가격으로 안락한 자리에서 공연을 보게 하는 것만이 관객을 위한 길이 아니라는 것이다. 소극장에서의 뮤지컬 공연은 배우, 연출, 스태프에게 기회를 제공하고 새로운 인재를 양성할 수 있는 대안이기도 하다. 뮤지컬 공연에 생명 바람을 넣는 인큐베이터인 셈이다. 일년 동안 진행될 ‘뮤지컬 즐겨 찾기’는 대중의 호응도에 따라 작품마다 공연 기간을 다르게 할 계획이다.

신시에서 처음으로 도전하는 국내 창작 뮤지컬 ‘산불(dancing with shadow)’과 8월부터 공연에 들어갈 초대형 뮤지컬 ‘아이다’를 말할 때 그의 눈은 더욱 살아난다.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비극적 러브스토리 뮤지컬 ‘아이다’는 8월부터 8개월 장기공연에 들어갈 예정이다. “브로드웨이 공연 때 사용했던 무대와 의상을 그대로 옮길 예정입니다. 오리지널 무대의 완벽함을 관객들에게 선보여 보다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무대를 선보일 겁니다.” ‘맘마미아’처럼 중장년층을 타겟으로 잡고 있는 ‘아이다’에 거는 기대는 자못 커 보인다. “8개월 장기공연을 계획함으로써 한국 뮤지컬이 한층 발전될 계기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불편함을 즐기는 진정한 자유인
임영웅씨의 ‘산불’을 기초로 제작되는 창작 뮤지컬 ‘산불’은 에릭 울프슨이 작곡, 작사를 맡았고 에어리언 돌프만이 대본을 써 런던과 브로드웨이에서 워크숍 공연을 먼저 가질 예정이다. “우리의 이야기를 선진 문화의 노하우를 갖고 있는 사람들을 통해 세계가 공감하는 보편적인 러브스토리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그는 “이런 맥락에서 ‘산불’은 전쟁이야기를 우화적으로 표현해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는 정서를 획득하겠다”고 말했다.

아이템을 위해서 여행을 밥 먹듯 하고 있는 그는 인도 여행을 최고로 뽑는다. 인도 여행은 1970~80년대 한국의 풍경을 볼 수가 있어 좋고, 눈에 보이는 것 하나하나가 영감을 주어서 매력적이다. 불편함을 즐기는 그는 ‘즐거운 불편’이 주는 행복을 아는 진정한 자유인이어서 인도는 더욱 가깝게 다가온다. 대학로의 보릿고개 경험 때문일까, 치열함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그에게서 언뜻 질주하는 치타의 모습이 보인다. 저 멀리 히말라야 산맥을 타고 오르는,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줄기차게 오르는 치타. 먼저 가면서 후배들이 길을 찾을 수 있도록 표시를 해두고 홀로 고독하게 정상에 앉아있는 진정한 리더의 모습이 슬쩍 스치고 지나간다.

유혜성 객원기자


입력시간 : 2005-04-21 15:48


유혜성 객원기자 cometyou@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