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봉투 주고 받기 여전…교사들이 적극 나서야 근절 가능

사라지지 않는 학교촌지, 해법 없나
돈 봉투 주고 받기 여전…교사들이 적극 나서야 근절 가능

“근심거리가 생겼습니다. 스승의 날이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들리는 말에는 요즘 누구나 1년에 2번 정도 촌지를 한답니다. 참 걱정입니다. 돈이 아까워서 그런 게 아닙니다. 제 양심에 반하기 때문입니다. 아이한테는 정직하게 살라고 가르친 제가 아이의 눈을 피해 봉투를 건네야 할까요. 아니면 다들 한다는 돈봉투를 외면한 채 속으로 불안에 떨어야 할까요.”

학교 촌지 문제로 잠까지 설친다며 이 문제를 정리해 줄 것을 교육당국에 당부한 어느 학부모의 글이다. 스승의 날이 되려면 한 달도 더 남은 4월 초의 일이다. 매년 겪는 일이지만 학부모들의 머리 속에서는 일찌감치 스승의 날 행사가 시작된 셈이다.

15일 스승의 날을 앞두고 나라안이 또다시 촌지 문제로 떠들썩하다. 전체 교사 중 일부에 해당되는 일이라고 하지만 좀처럼 해결 방안을 찾기 어려운 난제 중의 난제다.

아이 맡기 죄?
서울 목동의 김경아(가명ㆍ41) 씨는 2년 터울의 아이 둘을 같은 학교에 보낸 지난 8년 동안 학교가 아이를 ‘인질’로 잡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한번은 소풍 때 담임선생 도시락을 가져간 적이 있는데, ‘에계계, 이것 밖에 없어요’라며 면전에서 대놓고 노골적인 얘기를 해 몸 둘 바를 몰랐다”고 털어놨다. 아이를 맡겨 놓고 아무런 인사도 안 드리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찾아간 차에 이렇게 봉변을 당했다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자녀를 맡긴 학부모는 선생님들 앞에선 약자일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그 뒤부턴 양주, 백화점 상품권, 주유권 등으로 성의를 보였다고 했다. “거절하는 선생님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감사하다’며 받았습니다.” 지난 2월에 막내까지 졸업을 해서, 그는 큰 짐 하나를 내려 놓은 것 같다며 후련해 했다.

대대적 단속, 부끄러운 교육계
대통령 직속의 부패방지위원회(부방위)는 해마다 스승의 날을 앞두고 성행하는 고질적인 촌지 불법수수를 근절하기 위해 5월 1일부터 18일간 관계당국과 합동으로 대대적인 단속 캠페인 및 수수행위 실태 조사를 병행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부방위는 전국 16개 시ㆍ도교육청과 9,100여개 초ㆍ중ㆍ고교에 ‘촌지 안주고 안받기 운동 추진 및 수수행위 합동 실태조사 지침’을 시달했다.

이는 9,100여명의 교사와 관계 공무원들을 ‘행동강령책임관’(학교비리 적발 및 단속)으로 지명해 촌지 수수에 대한 신고와 접수를 받고, 학부모회 단체 등에 협조공문을 발송하는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부방위가 최근 촌지 수수 사례 33건을 분석해 내 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한 해 교사에게 건네지는 학부모들의 촌지는 평균 35만원. 대부분이 교실, 음식점 등지에서 직접 전달되고 학생을 통한 전달은 없었다.

김경아 씨는 음지에서 이루어지던 촌지수수 관행이 이들의 활동으로 얼마나 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주지도 받지도 말자며 목소리를 높인 게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죠. 그래도 이런 단속 때문인지, 눈치 빠른 부모들은 보통 3월, 늦어도 4월 중순까지 학교나 담임을 따로 만나서 줄건 다 줍니다. 정작 스승의 날에는 아이들 편으로 ‘정말 조그만 선물’ 하나 정도 준비해서 구색을 맞추는 추세고요.”

이왕에 보일 성의라면 문제로 비화하기 쉬운 스승의 날을 피해서 미리미리 한다는 것이다. 그는 또 친한 어머니들이랑 얘기해보면 인사 갔을 때와 가지 않았을 때 아이에게 묻어 오는 선생님의 확연한 관심의 차이를 볼 수 있다고 했다. “대체로 칭찬을 더 많이 받고 오는 것 같다고들 해요.” 이것이 사실이라면 촌지의 효과는 분명 있는 셈이다.

촌지는 아이에게 오히려 독
촌지에 대한 학교 선생님들의 생각은 어떨까. 어렵게 통화에 응한 서울과 지방의 초중고 교사 10여명의 대답은 ‘부담스럽다’는 게 대세였다. “부담스러워 돌려주면 ‘적어서’, ‘성의가 부족해서’ 거절하는 것으로 오해하고는 더 큰 걸 가지고 다시 나타나시는 분들도 계세요. 그래서 마지못해 받습니다.” 대구 모 중학교에서 예체능 과목과 3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교사 경력 7년차의 문병철(가명ㆍ35) 선생의 말이다. “그 때문에 아이한테 문제가 생겨 상담이 정작 필요한 경우가 생기지만 촌지를 요구하는 것으로 비칠까 봐 간단한 메모 한 장, 전화 한 통 넣는 것도 힘든 게 사실입니다.”

그는 동료 선생에게 있었던 일화 하나를 소개했다. “작년 스승의 날에 학생을 통해서 부모님으로부터 케이크를 하나 받았답니다. 때마침 반에 생일을 앞둔 아이들이 있어서 그걸로 생일 파티를 교실에서 열어줬습니다. 그런데 그 속에 봉투가 하나 있어, 편지겠거니 하고 열어 봤는데 현금 5만원이 들어 있었다는 겁니다. 그 선생님이 신중했어야 했지만 요즘 아이들이 얼마나 똑똑한데요, 금세 알아챘죠. 그 뒤로 케이크를 가져 온 친구는 거의 얼굴을 들지 못하고 학교를 다녔죠.” 그는 이 같은 부모들의 ‘과잉 인사’가 부지기수라며 혀를 찼다.

뿌리깊은 촌지 문화
웅덩이를 흐리게 하는 것도 결국은 한 마리의 미꾸라지다. ‘선생님 비위를 맞추느라 힘들었다’는 학부모나 촌지를 ‘부담스럽게’ 느끼는 교사도 그렇게 서로에게 ‘미꾸라지’로 보일 법도 하다. 그렇다면 상충하는 서로의 입장을 잘만 정리하면 그 해결책도 나올 법 하지만, 쉽게 촌지 관행이 근절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인천의 한 초등학교에 2년째 재직중인 정은숙(가명ㆍ29) 씨의 고해에 고개가 끄덕여 진다.

“독야청청도 어느 정도지, 심하면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따돌림’을 당하는 분위깁니다.” 임용 초기 저마다 가슴에 큰 포부 하나씩을 품게 마련인데, 몇몇의 힘으로는 고질적인 촌지의 뿌리를 뽑는 데는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학부모께서 정성 들여 준비해 주시는 것을 차마 거절할 수 없어 받는 적이 꽤 있습니다. 그래도 학년이 올라가면 돌려줄 요량으로 현금은 물론이고 상품권 등은 현금으로 바꿔 학생의 이름으로 저축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결국엔 포기하고 말았죠.” 그 같은 행동이 ‘너만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되느냐’는 식의 반응을 불러와 교장ㆍ교감은 물론이고 다른 선생들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게 힘들었다는 것이다.

이 처럼 잘못된 의식과 부당한 집단 행위에 의해 촌지 현상이 고착화 된 것은 영남의 한 지역 교사들 사이에 널리 알려진 일화에서도 잘 드러난다. 1990년대 중반 한 고등학교 교장이 촌지를 받지도 요구하지도 말자며 교사들에게 강하게 압박하자, 학교 교사들 몇몇이 학부모들을 동원, ‘다른 학교에서는 다 시키는 야간자율학습도 안 시키는 무책임하고, 무능력한 교장’으로 몰아세워, 결국에는 중학교로 좌천되게끔 했다는 것이다.

학부모·교사 모두 과제
촌지 문화는 저학년일수록 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부 초등학교에선 촌지를 학교 운영자금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조직적인 움직임도 눈에 띈다고 울산 모 초등학교 김성덕(가명ㆍ30) 선생은 말한다. 가령 많은 학부모들이 큰 관심을 보이는 1학년 자녀의 담임이나, 졸업여행을 앞둔 5,6학년의 담임을 배정할 때 소위 ‘능력’ 있는 교사가 배정된다는 것. 이 때의 능력이란 갖은 방법으로 부모들을 학교로 불러 들일 수 있는 수완을 의미한다. 영화 ‘선생 김봉두’가 영화 속의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식물이 자랄 때 처음에 손이 많이 가듯, 공교육의 영역에 첫발을 내디딘 자식에게 보다 많은 교사의 손길이 닿길 바라는 건 모든 부모의 한결 같은 마음이다. 김 교사는 일부이긴 하지만 이를 촌지로 연결하는데 이용하는 선생님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 그는 “아예 별도 수입이 많은 자리에 앉기 위해서 인사권자에게 로비를 하는 교사들도 있다”고도 했다. 인사권자는 교장이지만, 실무자 격인 교감에게 잘 보이기 위해 이것저것 상납하는 사례도 있다는 것. ‘교장이 왕이면, 교감은 황제’라는 말도 그래서 나온다고 했다.

김 교사는 이 같은 부조리에 정면으로 맞서다 생긴 갈등을 끝내 풀지 못해 초등임용고사에 재응시하는 방법으로 최근 학교를 옮겼다. “초등학교의 경우 한 학교 선생님 대부분이 대학교 동문이요, 직속 선후배이기 때문에 무슨 일이 있어도 얘기를 꺼내는 게 껄끄러운 게 사실입니다. 중등학교보다 상하 관계가 분명하고 군대조직에 버금갈 정도입니다.” 이에 따라 어떤 문제가 생기더라도 이를 공식적으로 제기해 해결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지금沮痔?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결국 촌지 문제를 해결할 수 가장 확실한 방법은 교육 현장의 실질적 주도자인 교사들이 직접 나서는 것이다. 그것도 한 두 사람으로는 안 되고 이 땅의 모든 선생님들이 힘을 합쳐야만 제대로 효과를 발휘할 수가 있다.

“스승의 날은 학생과 학부모가 선생님의 노고와 은덕을 가슴에 새기고, 선생님들은 제자들에게 모든 사랑을 다 주었는가를 되돌아보는 날입니다. 이런 뜻 깊은 날이 일부라고는 하지만 어쩌다가 촌지 문제로 얼룩지게 됐는지 안타깝고 송구할 따름입니다.” 오는 가을 정년을 앞둔 한 초등학교 교장의 말이다. 그는 촌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고 교육을 바로 세워야만 선진국으로의 진입도 기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민승기자


입력시간 : 2005-05-12 18:00


정민승기자 msj@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