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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박수근 작품 '위작'논란,
한국미술사 다시 쓸 진실게임

유족·감정협회 다작·진위 여부 등 놓고 첨예한 대립, 법정 공방 번져



4월 22일 이중섭 화가의 작품 진위여부를 해명하기 위해 평창동 한백문화재단에서 기자회견을 연 이태성(이중섭의 아들)씨가 이중섭 화가의 진품을 보여주며 설명하고 있다. 조영호 기자



한국 근ㆍ현대 미술 100년사는 다시 쓰여질 것인가. 최근 국내 근ㆍ현대 미술의 양대 산맥으로 평가 받고 있는 화가 이중섭(1916~56)과 박수근(1914~65)의 작품을 둘러싼 진위 논란이 미술계에 파장을 드리우고 있다.

단초는 지난 3월 초, 이중섭의 ‘물고기와 아이’작품에 대한 위작 판정이었다. 이중섭 50주기 기념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유족이 경매에 내놓은 ‘물고기와 아이’가 진품이 아니라고 한국미술품감정협회(이하 감정협회) 가 판정을 내린 것.

이에 이중섭 아들 이태성(56ㆍ일본명 야마모토 야스나리)씨가 3월22일 기자회견을 갖고 해당 작품에 대해 ‘유족이 50여 년 간 보관해 온 것’임을 재차 확인했다. 그러자 감정협회가 1주일 뒤인 30일 ‘물고기와 아이’를 포함한 그 밖의 유족 소장 작품까지 위작으로 간주한다고 발표하면서 양측의 대립은 격화됐다.

이어 이중섭 미망인 마사코(84ㆍ한국명 이덕남) 여사의 일본 기자회견(4월7일), 감정협회의 공개 세미나(4월12일)에서 재충돌한 양측은 4월22일 이태성씨가 주최한 간담회에서 마침내 폭발, 법정 공방으로까지 옮겨 갔다. 감정협회가 24일 검찰수사를 촉구한 다음날 이태성씨는 감정협회를 상대로 명예훼손 혐의로 법적 소송을 제기한 것.

게다가 22일 간담회에 함께 참석했던 박수근 유족측이 5월4일 감정협회가 이중섭ㆍ박수근 위작의 배후인물로 지목한 김용수(68ㆍ 한국고서연구회 명예회장) 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면서 한국 현대 미술사가 법정 판단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직접 논란이 된 이태성씨 소장의 이중섭 작품 150여 점 외에 김용수씨가 소장하고 있다는 이중섭과 박수근의 작품이 각각 600여 점과 200여으로 모두 1,000여 점 가까이 돼 만일 위작 시비에 오른 작품 중 상당수가 진품으로 판명될 경우 이중섭ㆍ박수근의 미술사적 위상에 비춰 한국 현대 미술사는 다시 쓰여질 수밖에 없다. 반면 대규모 미술품 위조사건으로 드러나면 미술계에 파장만 남긴 채 씁쓸한 해프닝으로 막을 내릴 전망이다.

박수근 미술관의 전시를 통해 일반에 처음공개되는 박수근의 '수하' '절구질 하는 여인'과 위작 논란에 휩싸인 이중섭의 '물고기와 아이'.



두 거장, 몇 점의 작품을 남겼나
두 거장의 위작 시비와 관련, 핵심 관건은 최근 공개된 이중섭ㆍ박수근의 다수 작품이 실제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인가와 가능하다고 할 경우 작품의 진위 여부다.

먼저 최근에 공개된 다수의 작품이 존재할 수 있는 지에 대해 감정협회측과 일부 전문가들은 ‘회의적’이다. 감정협회의 최명윤 감정위원은 “이중섭 작품은 250~300 점 정도, 박수근 작품은 300점 정도 될 것”이라고 가늠했다. 이중섭의 경우 마사코와의 연애시절(1941~42년) 90여 점, 일본으로 건너간 1953년 8월 100여 점, 같은 해 국내로 돌아와 사망 직전인 55년까지 우편 엽서 등 50~60 점 외에 1990년부터 지난해까지 일본 업자를 통해 건너 온 30여 점, 북한 등에 남이 있을 그림 등 대개 300점 안팎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중섭의 삶의 모습이나 지인들의 증언, 편지 내용 등에 근거할 때 이중섭의 작품이 300여 점을 훨씬 상회할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찮다. 이중섭을 세상에 알리고 가깝게 지낸 시인 구상은 “이중섭이 방에 틀어박혀서 그림을 그릴 때가 많았고 방이 비좁을 정도로 그림이 가득한 것을 봤다”고 회고한 바 있다. 시인 고은은 '이중섭 평전'을 통해 "어떤 사람은 무려 200점도 넘게 무더기로 훔쳐간 사람도 있다. 대구의 한 신문기자는 신문 문화면 삽화로 쓴다고 몇십 장씩 가지고 가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중섭은 1954년 연초에 그의 아내에게 보낸 글에서 짧은 기간에 무려 113점의 작품을 완성했고 새해에는 하루에 꼭 두 점씩 그리겠다는 다짐을 남기면서 36점 째를 손대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중섭이 1953~55년까지 통영, 진주, 대구, 서울 등 6곳에서 전시한 유화, 연필화, 은지화만도 200점이 넘는다.

이러한 상황은 김용수 씨가 소장하고 있는 600여 점의 이중섭 작품과 200여 점의 박수근 작품이 종래 기준에서 벗어난 엄청난 양이라는 이유만으로 ‘위작’이라고 단정하기에 앞서 철저한 검증이 요구되는 배경이기도 하다.

다음은 또 다른 핵심 관건인 이중섭ㆍ박수근 작품의 진위 문제다. 감정협회와 일부 전문가들은 이중섭 유족이 제시한 작품과 김용수 씨 소장 작품들에 여러 의혹이 있고 과학적인 분석에 근거할 때 ‘위작’이라고 주장한다.

‘의혹’과 관련, 감정협회측은 4월 22일 이중섭 유족측이 50년 전부터 소장하고 있다고 주장한 작품이 김용수 씨에게서 건네진 정황이 뚜렷하고 김 씨의 대규모 작품은 위조단에 의해 조작된 의심이 있다고 강조했다.

감정협회에 따르면 김용수 씨가 모 방송사와 ‘이중섭 50주기 기념 미발표작 전시’계획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이중섭 작품 20~30점을 유족에게 기증했고 이 가운데 일부가 한국 경매에 제출됐다는 것이다. 한 관계자는 “유족이 50년 전부터 소장하고 있다는 작품이 몇 해전 한국에서 발견되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김 씨와 이중섭 유족, 방송관계자 등은 기증 사실을 부인한다. 김 씨는 “상태가 좋지 않은 은지화 다섯 점을 표구를 하는 이태성씨에게 맡기고 그림보관증을 받았다”며 “기증을 했다면 보관증을 받았겠느냐”고 반박했다. 김 씨와 동행한 모 방송사의 박모 팀장도 “김 씨가 태성 씨에게 작품을 기증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태성 씨는 “아버지는 우리 형제에게 같은 그림을 보내주시고 유사한 작품도 많은데 감정협회가 한국과 일본에 있는 유사한 그림을 보고 착각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용수 한국고서연구회 명예회장이 공개한 이중섭 미공개작품 50여점. <연합>



"과학적 분석, 위작" "예술 테러" 팽팽
‘과학적인 분석’과 관련, 감정협회는 3월30일 공개한 자료집(A4 용지 50여 쪽)에서 이중섭의 유족이 내놓은 작품들이 필법, 서체, 자획구성(자음과 모음의 조합형식), 표현기법 등에서 진품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위작’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반면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중섭의 다양한 사인(중섭, 대향, 둥섭) 형태를 볼 때 필법, 자획구성 등이 일치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는 주장도 있다.

이희영 미술평론가는 ‘물고기와 아이’가 1977년에 발간된 ‘100인 선집 44편’의 이미지를 복제한 것이라는 감정협회의 주장에 대해 “원본이 오히려 중복과 얼룩이 드러나고 드로잉 속력이 지루하다”며 물고기 모양과 관련해서도 감정협회와 다른 견해를 나타냈다. 특히 감정협회의 주요 논거인 도상분석에 대해 이 평론가는 “(감정협회가 시도한)개별 형태들의 비교만으로는 ‘차이(위작 시비)’만 나타날 뿐”이라며 “도상분석은 개별형태가 전체에 대해 혹은 이웃한 형태들에 대해 갖는 관련성의 맥락을 밝히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위작 시비의 배후로 지목된 김용수 씨는 “작년에 이중섭 작품의 재료가 된 우편엽서, 책갈피, 종이 등을 갖고 일본을 방문해 그곳 우정국, 출판사, 문화재관리국 등 관련 기관을 통해 이중섭 작품의 재료가 당시 실재했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감정협회가 기존의 300점 외의 작품은 모두 위작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독선과 무지에서 비롯된 예술 테러”라고 반발했다.

김 씨는 박수근 유족의 위작 소송에 대해서도 “박수근 화백의 지문이 찍힌 그림과 박 화백 활동 당시 사용하던 도구들도 소장하고 있는데 유족이 작품의 진위를 제대하지 않고 소송부터 한 것은 유감이다”고 말했다.

최병식 경희대 교수(미술대, 미술평론가)는 최근의 위작 시비 논란과 관련, “감정협회나 유족 모두 진위 주장의 도출 과정에 문제를 드러냈다”며 “유족과 객관적인 국내 전문가, 감정협회 등 다양한 성향의 감정위원으로 구성된 전담위원회에서 전체 이중섭ㆍ박수근 작품에 대한 검증을 거쳐 진위를 가리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법정으로 넘어간 위작 시비로 한국 근ㆍ현대 미술사가 새롭게 쓰여질지는 두고 볼 일이다. 하지만 이중섭과 박수근이라는 국내 미술계 양대 산맥의 업적이 사심(私心)과 물욕으로 훼손되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박수근 화백 장남 박성남씨 인터뷰
“아버지 예술혼 훼손말라”



화가 박수근의 장남 박성남(58) 씨는 5월4일 한국미술품감정협회가 이중섭 가짜그림 논란의 배후인물로 지목한 김용수(68ㆍ 한국고서연구회 명예회장) 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아버지의 명예를 지키고 우리의 차세대가 살아갈 젖줄인 문화를 지키기 위해서라는 이유에서다.

박 씨는 이중섭 그림 위작(僞作) 시비와 관련, 지난달 22일 유족들이 마련한 설명회 자리에 참석하기 위해 호주에서 날아와 이중섭의 아들인 이태성(56) 씨를 만났고 부친 작품의 위작 문제로 소송까지 하게 됐다.

지난 11일 서울 인사동에서 박 씨를 만나 최근의 심경과 아버지에 대한 추억, 그리고 소송을 제기한 배경 등을 들어봤다. 박 씨는 이달 14일부터 강원도 양구군 박수근미술관에서 열리는 박수근 40주기전 ‘다시, 봄이 오다’의 오픈 행사를 보고 호주로 돌아갔다. 그는 1986년 11월 호주로 이민, 현재 시드니 근교에서 거주하며 활동하고 있다.

-이중섭 위작 문제로 호주에서 왔다가 부친 ‘위작’소송을 냈는데.

한국 근대 미술의 양대 산맥인 이중섭 화백의 위작 시비가 진행중인데다 아버지의 그림 200여 점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호주에서)단숨에 달려왔다. 같은 유족 입장에서 파문의 전말을 알고 싶었고 아들로서 아버지의 예술혼을 이어간다는 박수근 40주년 전에 대해 기대가 컸다. 그러나 전시 작품이 위작이라는 사실을 알고 충격과 함께 안타까움, 분노를 느꼈다. 위작으로 전시회를 여는 것은 이중섭ㆍ박수근 두 분의 예술혼을 죽이는 일이고 근대 한국 미술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일이다. 근대 미술사가 무너지면 근대 이전의 역사도 의구심을 받게 되고 현대는 뿌리가 없는 형태가 된다. 문화가 없는 민족은 세계의 노숙자나 다름없다. 아버지의 명예를 지키고 우리의 얼굴이자 차세대가 살아갈 젖줄인 문화를 지키기 위해 고소를 하게 됐다.

-‘위작’이라는 것은 어떻게 알았나.

그림을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아버지 작품일 가능성이 99.9% 없다고 확신한다. 소장자(김용수 씨)라는 사람은 아버지가 창신동에서 이사할 때 200여 점을 구입했다고 하는데 아버지는 내가 그린 수채화 그림도 빨아서 다시 그림을 그릴 정도로 종이 한 장도 아끼시던 분이다. 또 예술혼이 담긴 작품을 대량으로 잃어버렸다면 아버지나 유족이 찾으려고 했을 것이다.

1953년부터 61년까지 창신동 시절에 작품을 200점 그리는 것은 수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누님(박인숙ㆍ인천여중 교장)도 그림을 보고 ‘위작’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봤다고 한다.

-이중섭ㆍ박수근 위작 파문을 어떻게 보나

60~70년대만 해도 아버지는 서민 작가, 향토색 짙은 작가라는 평을 받았는데 언제부터인가 '호당 얼마’의 작가로 불렸다. 시대를 껴안은 아버지의 생애, 예술혼을 밀어내고 물질 만능주의가 팽배한데다 미술 문화계에 서로를 인정하는 신뢰 문화, 공동체 의식이 결여되면서 위작 문제가 발생했다고 생각한다.

-유족으로서 이번 사태에 대한 입장과 미술계에 바라는 게 있다면.

이중섭 화백의 아들인 태성 씨를 만났을 때 같은 유족 입장에서 "이태성 씨 사랑합니다”며 껴안았다. 유족은 설령 잘못이 있더라도 공동체 의식 차원에서 보호를 받아야 하고 아들 또한 주어진 역할을 다해야 한다. 미술계는 이번 사태를 자성의 계기로 삼고 객관성과 전문성을 지닌 경쟁적인 건강한 감정기구가 자라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용수 한국고연구회 명예회장 인터뷰
“예술 테러가 위대한 문화유산 사장시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이중섭ㆍ박수근 작품 ‘위작(僞作)’ 논란의 중심에 김용수(68) 한국고?П맬?명예회장이 있다. 김 씨가 소장하고 있는 이중섭 작품 600여 점이 위작 시비에 휘말린데다 박수근 작품 200여 점에 대해서도 그의 아들로부터 위작으로 부친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내용의 고소를 당했다.

그러나 김 씨는“이중섭ㆍ박수근 화백의 작품은 진품이며, 위작 시비와 고소는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무지와 독선의 예술 테러”라고 주장한다.

김 씨는 서울대 문리대 화학과를 나와 중동건설 붐 때 큰 돈을 벌어 70년대 초부터 고서화를 모으면서 이중섭ㆍ박수근 그림을 구하게 됐다고 한다. 지난 10일 서울 신당동 자택에서 김 씨를 만나 위작 논란의 한 축을 들어봤다.

-최근 박수근 화가의 아들이 위작으로 부친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는데.

아들이라면 먼저 진지하게 부친의 작품에 접근하는 게 도리다. 어떤 작품이며 어떤 가치를 지녔는가 등등. 직접 작품을 보지도 않고 일부에서 ‘위작’이라고 주장하는 말만 듣고 소송부터 제기하는 것은 경우에 어긋나는 일이다. 과연 누가 부친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인지 묻고 싶다.

-박수근 미공개 작품이 200여 점이나 되는 것과 입수 경위 등에 대해 미술계나 유족측에서 믿을 수 없다는 입장인데.

현재 소장하고 있는 박수근 화백 작품은 200여 점 정도 되는데 유화는 린넨(아마섬유)에 그린 4점과 나무판에 그린 것이 여러 점 있고, 종이에 그린 스케치와 에스키스(밑그림)가 대부분이다. 작품은 박수근 화백이 창신동에서 이사를 한 뒤 나와 같은 고서 수집가와 연결되는 중개상을 통해 구입했다.

70년대 초 중동건설 현장에서 꽤 많은 돈을 번 뒤 귀국해 고서화를 구입하기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인사동 사람들과 중개상들을 알게 됐다. 박수근 화백이나 이중섭 화백 작품도 그런 인연을 통해 적지 않은 돈으로 구입했다. 박 화백은 이사할 때 유화는 대부분 가져가고 기초 단계인 스케치와 에스키스는 처분했던 것 같다. 당시 박 화백이 사용했던 미술 도구들도 소장하고 있다. 70년대 인사동이나 고서 수집가와 중개상과의 관계 등을 모르는 사람들이 ‘본질’외적인 것을 가지고 문제를 삼는 인상이다.

-이중섭의 미공개 작품이 600여 점이라는데 대해서도 납득 못하는 사람들이 많고 ‘가짜’가 아니냐는 의혹도 큰데.

지금까지 이중섭 화백의 작품은 300여 점이 전부라는 게 정설처럼 돼있는데 이 화백과 가까운 구상 시인을 비롯해 지인들에 따르면 이 화백은 밤낮으로 그림을 그려 방구석에 그림이 가득했다고 한다. 심지어 병원 의사에게 치료비 대신 그림을 그려주기도 했고 일본에 있던 자식과 여러 지인들에게 숱한 그림을 그려주었다. 최근까지 이중섭 그림이 한국, 일본, 미국 등에서 나오는 것은 그러한 이유에서다. 감정협회가 자신들이 보았다는 300여 점 외에는 모두 가짜라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현재 소장하고 있는 이 화백 작품은 70년대 초 알고 지내던 중개상을 통해 구입했다. 지난해 소장하고 있던 그림을 들고 이 화백이 소재로 사용했던 종이, 엽서, 책자 등을 발행한 일본 관련기관을 찾아가 진품임을 확인했다.

-이중섭 위작 시비와 관련해 ‘위작’을 주장하는 측에서는 이중섭 유족이 50년 간 소장했다는 작품 중 일부는 김 명예회장이 기증한 것이라는 주장을 하는데.

근거가 있나. 추정과 비약으로 여론을 호도하는 것은 정직한 태도가 아니다. 단언컨대 이중섭 유족측에 기증한 작품은 한 점도 없다. 다만 상태가 좋지 않은 은지화 다섯 점은 유족인 이태성 씨의 액자가게에 맡기고 그림보관증을 받았다. 이러한 사실은 동행한 방송국 관계자와 지인들도 알고 있다.

-소장하고 있는 이중섭ㆍ박수근의 작품은 어떻게 할 계획인가.

이중섭 기념관, 박수근 기념관이 지어지면 기증할 생각이다. 후세들이 소중한 문화유산을 가깝게 접하고 연구하고 발전시켜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위작 논란 속 미술품 거래시장서 주목받는 ‘3金’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
이중섭ㆍ박수근 위작 시비가 미술계를 강타하면서 인사동 주변에서 ‘3김’ 씨에 대한 얘기가 심심찮게 흘러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3김 중에 그 동안 시장을 교란시켰던 미술품 위조 사건에 관련된 인사가 있다는 소문도 퍼져 있다.

3김 중 현재 표면에 드러난 이는 최근 논란이 된 위작 시비의 중심에 선 김용수(68ㆍ한국고서연구회 명예회장) 씨 뿐이다. 김 씨는 한국미술품감정협회가 위작 시비의 배후로 지목한 인물이고 박수근 유족이 위작으로 匡@?명예를 훼손시켰다는 이유로 제소를 한 상태다.

김 씨는 70년대 초부터 고서화를 사 모으기 시작해 근ㆍ현대 미술품까지 영역을 넓힌 것으로 알려졌다. 30년 넘게 인사동에서 고서화를 취급해 온 전문가 C씨는 “당시 김 씨는 고서화를 닥치는대로 사들였고, 나까마(중개상)들 사이에서는 돈 많은 痴珝》?알려져 인기가 좋았다”고 말했다. 김 씨가 “중개상을 통해 이중섭과 박수근의 작품을 대량으로 구입할 수 있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러나 김 씨는 물건을 사들이기만 했지 내놓지 않아 그 동안 인사동에서는 베일에 쌓여 있었다. 이번에 위작 시비로 모습이 공개돼 “처음 얼굴을 봤다”는 인사동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에 반해 다른 두 김 씨는 인사동과 동대문 장안평에 가끔씩 모습을 드러내 이쪽 사정에 정통한 이들에게는 웬만큼 알려진 인물이다. 이 중 한 명인 김OO 씨(52)는 우표, 엽서, 동전, 만화 등을 주로 취급하는 골동품 전문가로 특히 만화에 조예가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20년 간 인사동과 장안평을 오가며 골동품을 위급하고 있는데 이중섭의 아들인 이태성 씨가 감정협회 관계자를 대상으로 고소한 사건에 등장하는 점이 주목된다. 감정협회측에 따르면 김용수 씨가 김OO 씨로부터 다량의 옛 엽서를 구입했다는 것이다.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김 씨가 이중섭 작품을 위작했을 수도 있다는 인상을 주게 돼 김 씨가 실제 옛 엽서를 구입했는지 여부와 활용 용도가 밝혀져야 할 사항이다.

3명 중 마지막인 김xx 씨(48)는 경남 진주를 주무대로 활동하는 중국 교포로 10년 전부터 진주-서울-중국을 오가며 고미술품을 취급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부 인사동 중개상들 사이에서는 몇몇 위작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 소문이 있다. 한 중개상은 “과거 이중섭 작품 중에 가짜 문제로 인사동이 시끄러운 적이 있었는데 김xx 씨가 개입됐다는 소문도 있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앞서 김OO 씨에게 다량의 옛 엽서를 구입한 장본인이 김xx 씨라는 얘기가 흘러나오면서 또다시 미술 시장을 흐리는 위작품이 등장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삼성 리움미술관 ‘이중섭 드로잉전’

이중섭 작품의 위작 논란이 법정으로까지 비화한 가운데 삼성미술관 리움(관장 홍라희)이 5월19일부터 8월 28일까지 ‘이중섭 드로잉전(그리움의 편린들)’을 연다. 지난해 리움 개관 이후 첫 기획전이다.

'이중섭 드로잉전'에서는 유화를 제외한 이중섭의 엽서화, 은지화, 채색 드로잉 등 120~130여점이 선보인다. 이번 전시에는 이중섭 유족이 소장한 작품들은 포함되지 않았다. 리움의 이 준 학예실장은 "위작 논란의 소지가 있다고 판단되는 작품은 사전에 제거했다"며 "이중섭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 리움은 국내에 공개된 300여 점의 이중섭 작품 가운데 250여 점을 소장, 사실상 이중섭 작품을 독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삼성 리움이 이렇게 많이 이중섭 작품을 확보하게 된 이면에는 이중섭 유족과 조카 이영진 씨(이중섭 형인 이중석의 아들) 사이의 갈등이 내재돼 있다.

이영진 씨가 1978년 이중섭 유족이 소장하고 있던 250여 점의 작품으로 서울 미도파에서 ‘이중섭 전시회’를 연 뒤 돌려주지 않고 삼성측에 판매한 게 발단이 된 것. 이후 양측은 작품 판매 대가와 이중섭의 망우리 묘 보존 등의 문제로 갈등을 지속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태성 씨는 최근 공개한 30점의 이중섭 작품이 위작 시비에 휘말린 것과 관련, (종래 이중섭 작품을 거의 소장하지 않았다는 발언을 뒤집는) 말 바꾸기를 했다는 논란에 대해 “1978년 사건 때문에 소장품을 숨겨왔다”고 말했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50년간 소장해 왔다는 이중섭 작품이 이영진씨와의 악연으로 불신을 받게 된 셈이다.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


입력시간 : 2005-05-19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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