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므파탈을 꿈꾸며 세상을 유혹하는 발칙女첫 솔로앨범 으로 매력적인 반란

[감성 25시] 락 밴드 '스웨터' 보컬 이아립
팜므파탈을 꿈꾸며 세상을 유혹하는 발칙女
첫 솔로앨범 <반도의 끝>으로 매력적인 반란


초록의 순수를 닮은 이아립, 그녀가 2005년 도발한다. 더 이상 소극적인 자세로 살지 않겠다는 듯 몸매가 훤히 드러나는 핏빛 원피스를 차려 입고 그보다 도발적인 립스틱으로 범벅을 한채 돌아왔다. 관능의 화신 팜므파탈(Femme Fatale)로. “나도 외로울 때가 있고 때로는 열등감을 느끼며” 그래서 “사랑받기 위해 노력했으나 이제 반듯하게 살지 않겠다”는 모 CF의 카피와 이미지가 연작으로 떠오르게 하는 사진이다.

“저 자신을 한번 변화시키고 싶었어요. 팜므파탈은 남자를 유혹해 파멸로 몰고 가는 위험한 여인을 뜻하지만 사실 여자들 맘속에 감춰진 또 다른 매력 아닌가 싶어요.”

모던 락 밴드 스웨터의 보컬 이아립(我立). ‘나를 세우다’, ‘세상을 향해 날을 세우다.’ 두 가지 의미로 읽히는 그녀의 이름처럼 그녀에겐 소녀와 숙녀, 천사와 악마라는 대립적인 이미지가 공존한다. 초록과 빨강의 보색 대비처럼 안 어울리는 듯하면서도 매력적인 빛을 내뿜는 두 가지는 묘한 일치를 꿈꾼다. 그래선지 이아립에게 팜므파탈의 의미는 커 보인다.

“팜므파탈이야 말로 멋진 여자들이 꿈꾸는 이미지죠. 남자들은 치명적인 줄 알면서도 유혹에 빠져들잖아요. 매력적인 여자들에겐 악마의 유혹 같은 게 숨어있어요. 자기애가 지독한 여자일수록 더욱 그렇죠. 자기를 사랑하는 여자들의 세상을 향한 반란이라고 생각해요.”

이번 팜므파탈 또한 이아립이 세상으로 나오기 위한 몸부림이다.

그녀는 영화 ‘버스정류장’의 ost '누구도 일러주지 않았네'를 불러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악센트 없는 가벼운 목소리는 공중에 붕 뜬 것처럼 발랄했지만 가슴속에 텅텅 울리는 공명음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누구도 일러주지 않았네' 한 곡만으로 팬을 확보한 그녀는 99년 스웨터의 여성 보컬로 활동하며 소년 소녀의 상큼한 감성으로 빚어진 1집 앨범 “스타카토 그린”과 어쿠스틱한 이미지가 강한 “허밍 스트리트”로 변신을 모색하기도 했다.

장필순과 자우림의 김윤아, 김완선의 목소리를 조금씩 섞어 놓았다는 평이 있을 만큼 그녀는 함부로 규정하기 힘든 난해한 음색을 지녔다. 평상시 말할 때처럼 조용히 툭툭 내던지는 그녀의 말투와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이미 세상을 다 아는 성장을 거부하는 소녀의 나레이션으로 들리기도 한다. 이것이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이아립만의 개성이다.

병풍 시리즈는 세상을 향한 프로젝트
이아립의 첫 번째 솔로 앨범 “반도의 끝”은 무언가를 상실한 여자의 자아 찾기와 정체성이라는 성장의 의미가 짙은 주제를 담고 있다. 개인에겐 거대한 프로젝트지만 남들에겐 평온한 일상과 사랑 같은 이야기다.

“이번 솔로 앨범은 저의 첫 번째 싱글 앨범이자 동시에 제가 추진 중인 12폭 병풍 시리즈의 첫 번째 이야기예요. 12명의 사람들이 이 시리즈에 참가할 예정인데 첫 번째 주인공이 저인거죠.”

마치 자서전 같은 이미지의 앨범이다. 흑과 백을 가장 좋아한다는 그녀의 취향답게 바둑판 무늬의 앨범 자켓에 한반도의 끝을 보여주는 지도, 이국의 해변가에서 유유자적 노는 사람들의 사진이 담겨 있는 이번 앨범은 말 그대로 12폭 병풍 모양이다.

“저에게 병풍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죠. 제 음악을 듣는 청중일수도 있고, 세상의 거친 풍파를 막아주는 바람막이 일수도 있고, 가장 아름다운 배경을 그릴 수 있는 도화지일수도 있구요.” 그러니까 병풍은 그녀에게 소통을 원하는 사회이자 동시에 그녀가 꿈속에 그리던 세상이기도 하다. 12폭 병풍 시리즈의 주인공은 그녀처럼 뮤지션이어야 한다는 원칙은 없다. 글을 쓰는 작가일수도 있고, 그림을 그리는 아티스트일수도 있다. 이 시리즈에선 인물의 글과 이미지 작품 세 가지를 동시에 보여줄 예정이다.

앨범 자켓 디자인은 물론이고, 스웨터 시절부터 보컬缺?베이스 기타리스트로 활동했던 그녀는 작사, 작곡, 편곡을 모두 도맡아 했다. 그녀야말로 재주꾼인데 12폭 병풍 시리즈는 그녀가 세상에 나와서 처음으로 하고 싶었던 일을 야심차게 도전하는 첫 번째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이아립은 자신을 드러내는 일을 원체 부끄러워했다. 욕심도 부리지 않는 스타일이었다. 스웨터의 보컬로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르고 청중을 기쁘게 해줘야 한다는 것이 데뷔 때는 곤혹스러울 정도였다. 하지만 그녀는 무엇을 하든 프로처럼 곧잘 해냈다. 홍대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스웨터는 인디 밴드 중에 유독 눈에 띄었고 보컬 이아립이란 존재는 절대적으로 각인되었다. 그런 그녀가 스웨터의 보컬 뿐만 아니라 그래픽 디자이너로 99년 창간한 격월간지 ‘싱클레어’의 발행인이자 아트 디렉터로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은 많이 알려지지 않은 얘기다.

“종이 기타처럼 살고 싶었어요. 있는 듯 없는 듯 가볍고. 빈 여백처럼 쓸 무언가가 있는 여유로움처럼요.”

가식이 싫었다. 기타를 연주하면 연주 소리보다 기타 메이커를 따지는 사람들이 속물처럼 보였다. 종이기타가 보여주는 이미지처럼 하얀 순백으로 살고 싶었다. 명품을 따지는 친구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예쁜 옷이 필요하면 직접 만들어 입었던 그녀다.

어릴 땐 실어증에 걸린 것 마냥 말을 하지 않았다.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불렀다. 굳이 말 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 친구하자며 다가오는 아이들을 의아하게 바라보며 자기 세계 속에 푹 빠져 살았다. 소통하는 대상은 그녀보다 더 예민했던, 지금은 소설가인 친오빠 뿐이었다.

스웨터의 정식 맴버로 활동하며 세상에 나온 그녀는 자신 안에 꿈틀대는 열정과 잠재력을 보았다. 스웨터의 보컬과 그래픽 디자이너, 잡지를 만들면서도 해결되지 않는 갈증이 있었다. 지금까지의 삶은 누군가에게 이끌려서 살았다는 생각이 그녀를 변화시킨 것이다.

“나이트에 가기 싫은데 친구 손에 억지로 끌려가면 제일 신나게 노는 애가 저였어요. 무얼 시키면 계속 그것만 하고 나중엔 제일 잘하는데, 모두 누군가에 의해서 하게 된 것들이었죠.”

한마디로 꿈이 없었던 그녀에겐 12폭 병풍 시리즈는 실험정신이자 동시에 자아를 완성해 가는 과정이다.

나른하고 달콤한 유혹
“반도의 끝은 휴양지의 천국 같은 분위기를 상상하면서 만들었어요. 나른하면서도 달콤한 유혹 같은 느낌으로 다가갈 거예요.”

사랑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면 그녀가 원하는 사랑은 미풍처럼 부드러운 사랑이다. 서서히 다가와 잔잔하게 나누는 일상적인 사랑을 원한다는 그녀. 연애를 하면서 세상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그녀는 이제 연애지상주의자로 거듭났다. 그것도 팜므파탈로.

“여성의 미가 경배의 대상이지만 동시에 죄악이었던 시대가 있었죠. 저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그런 말은 남성 중심의 사고에서 나온 이야기 같아요. 똑똑하고 자기애가 강한 여자들의 표현이라고 읽어주세요.” 초콜릿 빛 피부, 서른이 넘은 나이가 실감이 나지 않을 만큼 건강하고 매력적으로 보이는 그녀는 이름 아립처럼 ‘나를 세우고, 바짝 날을 세우며’ 자기를 완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현명한 팜므파탈이다.


유혜성 객원기자


입력시간 : 2005-05-26 14:53


유혜성 객원기자 cometyou@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