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와 정신을 담아 '전쟁과 평화'를 노래하다지구촌 분쟁지역의 참상 고발한 3집 앨범 발표

[감성 25시] 민중가수 손병휘
시대와 정신을 담아 '전쟁과 평화'를 노래하다
지구촌 분쟁지역의 참상 고발한 3집 앨범 발표


포크 가수 또는 민중 가수라 불리는 손병휘. 사람들은 그를 괴짜라 말한다. 고려대 86학번인 그는 가수 중 드물게 공대 출신이며, 과 수석을 할 만큼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했지만‘우스운’ 성적으로 가까스로 졸업했다. 자신의 이력을 말할 때 다소 자조 섞인 목소리로 스스로를 ‘우스운 위인’이라고 하는 그는 19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대학연합 노래서클 소리모아 창단 멤버로 활동하다 서총련 노래단 ‘조국과 청춘’에서 학창시절과 청춘을 보냈다.

대학 캠퍼스의 열정과 낭만은 그에게 사치일 뿐이었다. 사랑타령 같은 유행가보다는 삶의 애환이 녹아있는 민중가요를 부르는 그는 포크 그룹 ‘노래 마을’ 출신이기도 하다. 그를 괴짜라 부르는 것은 단지 이것 때문만은 아니다.

그를 따라다니는 또 하나의 수식어는 ‘촛불 지킴이’다. 2002년 월드컵과 대통령 선거, 이라크 파병 반대, 대통령 탄핵 등 촛불 집회 때마다 빠짐없이 출석 도장을 찍은 그는 촛불대회 모범 참가자라는 의미에서 촛불 지킴이가 되었다. 집회의 중심에서 통기타 하나 들고 노래를 부른다.

물론 혼자는 아니다. 함께 라디오 방송 ‘라이브 이즈 닷컴’을 진행했던 가수 이정렬, 개그맨 노정렬과 공동 출연했을 때는 집회에 새로운 문화의 옷을 입힌 인물로 매스컴에 오르기도 했다. 집회라고 하면 떠오르는 시위와 폭력이란 선입견에서 벗어나 춤과 노래 그리고 정치가 어우러진, 한마디로 정치와 문화가 만난 새로운 장을 만들었다. 시민들 의식 수준이 높아져 시민들 스스로 평화 집회를 만들어 나가는 요즈음, 집회가 점차 새로운 형태로 발전해 나가면서 노래가 시민들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도구가 되기를 그는 바랄 뿐이다.

평화집회의 촛불 지킴이
그런 그가 최근 일을 저질렀다. 3집 앨범 ‘촛불의 바다’ 중 6번 곡이 ‘청소년 정서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방송 불가 판정을 받았다. 앨범이 공식 발매되기 전에 벌어진 일이다. 6번 곡은 ‘여자 아이들은 지나가는 사람에게 집을 묻는다’라는 허수경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것으로, 내전이 끝난 보스니아에서 생존을 위해 몸을 팔아야 하는 소녀의 이야기다. 그는 “연민을 자아내는 내용이지만 냉정을 유지하면서 불렀다”며 몹시 씁쓸한 기분을 감추지 않는다. 실제로 들어보면 서정적인 느낌이 강한 노래다.

3집 앨범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주제는 ‘전쟁과 평화’다. “한국 전쟁 55주년을 맞는 우리나라에서 아직 전쟁을 주제로 한 앨범이 없다는 것은 상당히 유감스러운 일이 아니냐”고 반문하는 그는 이번 앨범은 1년 전 김선일 씨의 죽음이 계기가 되었다고 밝혔다. “과연 전쟁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는 누구일까를 생각하니 우리에게 멀게만 느껴졌던 이라크 전쟁이 피부에 와 닿았습니다. 무고한 생명의 스러짐을 목격하며 작년 김선일 씨 추모 촛불 시위 때 처음 발표한 노래입니다.” 7번 곡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은 그렇게 탄생했다. 노래 제목은 그가 대학시절 읽었던 나치에 저항하다 사형당한 교수와 학생들의 실화를 다룬 소설에서 따왔고, 곡과 가사는 그가 직접 만들었다.

이번 3집 앨범이 신선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대중가요에서 처음으로 전쟁과 평화라는 주제를 다루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박노해, 신동호, 허수경과 같은 시인들이 그의 가사 작업에 동참했다는 것이 눈길을 끈다.

타이틀 곡 ‘샤이를 마시며’는 2003년 박노해 시인이 전운이 감도는 이라크에 체류하면서 지은 시다. 시인이 바그다드의 찻집에서 샤이(이라크인 들이 즐겨 마시는 홍차)를 마시며 주인과 나눈 교감을 표현했다. 황폐한 도시는 석양이 질 무렵 처참하도록 아름답고 그 색이 마치 샤이의 빛깔 같다. 샤이를 리필해 주면서 카페 주인은 언젠가 좋은 날이 오겠지요, 그날이 오면 양고기를 구워먹으면서 만찬을 즐기자고, 이 먼 사막 나라까지 달려와 주어 고맙다고, 언제가 평화로운 날 다시 만나자고 말한다. 어쿠스틱 기타와 아코디언의 반주가 애잔해 전쟁의 야만성을 역설적으로 고발하는 듯 하다.

전쟁과 평화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었지만 수록 곡은 문학적인 냄새가 물씬 풍겨 들을수록 영혼이 정화되는 느낌을 받는다. 한 곡 한 곡 넘어갈 때마다 서사시적인 느낌이 강한 뮤지컬을 감상하는 기분이다. 유행가와는 거리가 멀고, 그렇다고 민중가요의 냄새가 짙지도 않다. 분명한 것은 상업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대중가요의 새로운 대안 혹은 재발견이라면 너무 튀는 것일까. 하지만 모처럼 경건해지면서 그 느낌이 싫지가 않다. 그가 앨범 발매에 앞서 “아직도 멈추지 않는 지구촌 분쟁 지역의 참상을 노래를 통해 고발했다“는 말이 새삼 귓전에 울린다.

3집, 깨어있는 의식 선물
그는 왜 아무도 이야기 하지 않는, 혹은 꺼리는 주제를 노래하고 있는 것일까. “누군가 먼저 했어야만 하는 것을 제가 뒤늦게 한 겁니다. 노래패 시절부터 지금까지 제 의식을 관통하고 있는 주제가 바로 전쟁과 평화죠. 만약 3집에서 하지 않았다면 다음 4집에서, 혹은 그 후에 했을 겁니다.”

류시화, 도종환, 안도현, 이정하 등 시인들의 시에 노래를 입힌 1집 ‘속눈썹’이 서정적으로 다가온다면, 2집 ‘나란히 가지 않아도’는 민중가요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조차 아름다운 선율과 노랫말에 끌려 부를 수 있는, 그래서 촛불 집회 때 합창하는 애창곡이 되었고, 3집 앨범은 서사시적인 뮤지컬, 즉 ‘깨어있는 의식’을 선물한다.

촛불 지킴이인 그가 앨범 중 가장 애착을 가지고 있는 곡은 ‘촛불의 바다’다. 효순이, 미선이의 죽음을 계기로 이루어진 촛불집회에서, 한데 모인 민중의 힘이 전쟁을 일으키는 거대한 세력을 이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지고 만든 곡이다. 작은 촛불을 연상시키는 ‘이 여린 반딧불’ 은 곡의 테마를 이끄는 열쇠인 셈이다. 핑크플로이드 풍의 아트록을 연상하게 한다.

그에게 3집 앨범은 자전적인 앨범으로 다가온다. “내년엔 정말 자전적인 내용의 4집 앨범이 나와요. 제 유년시절부터 첫사랑까지를 노래할 겁니다. 밀린 숙제가 끝나니 제 삶을 노래하고 싶더라구요.” 4집 앨범에는 ‘또 제비꽃’과 ‘새벽 세시’ 등이 수록된다. 첫사랑에 관한 노래다. 동물원과 김광석의 계보를 잇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벌써부터 4집이 기대된다.

그는 요즘 바쁘다. 3집 앨범 홍보 할 시간도 없을 정도다. 포크 록 가수 김현성과 타악 그룹 ‘야단법석’, 록밴드 ‘프리다’, 노래패 ‘우리나라’ 등과 함께 하는 타락 콘서트 때문이다. 타악기와 록이 만났다 하여 붙혀진 크로스 오버 공연이다. 이름부터가 신선한 이번 콘서트에서 그는 2부 되살아오는 소리, 고구려와 을지문덕 오언시를 노래한다.

그는 대학에서 실용음악을 가르치기도 하는데 학생들에게 괴짜라는 소리를 듣는다. 여느 실용음악과 교수와 달리 테크닉 보다 정신을 가르치기 때문이다. 처음엔 학생들에게서 이상한 선생이란 소리를 들었다. 민중가요를 가르치며 한 학기 동안 ‘음악은 에로스만 있는 것이 아니다’를 강조했다. 또 현대사에 무관심한 대학생들에게 4ㆍ19와 이영도 시인의 진달래를 조사하게 했다. 지성인이라 할 수 있는 대학생이 현대사에 대한 이해와 지식이 없다는 것이 못내 안타까웠다. 그가 늘 긴장하며 지켜온 ‘훌륭한 동시대인’으로 거듭나기를 대학생에게 전수하고 싶었다. 이미 지나간 혹은 무관심 했던 시대에 대해 알고 싶어 하고, 그때 그 시절의 노래를 배우러 오는 학생이 있다 하니 그의 수업은 어느 정도 성과를 얻은 셈이다.

그가 바라는 세상은 우리나라가 김구 선생이 강조한 문화 강국이 되는 것이다. 요즘 대학생들이 들으면 생뚱맞다고 할지도 모른다. 멋을 알고 풍류를 아는 우리 민족의 잃어버린 문화를 되찾는 것, 그것이 가수 손병휘의 꿈이다. 꿈꾸는 세상이 언젠가는 이루어질 것이라는 믿음으로 그는 ‘이 여린 반딧불’ 과 함께 강직하게 버티고 있다. 그렇기에 그는 괴짜다.


유혜성 객원기자


입력시간 : 2005-06-15 19:32


유혜성 객원기자 cometyou@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