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기가 곧 일이고 생활인 실속파 베짱이족깨어있는 감각으로 홍대문화를 지키는 멀티플레이어

[감성 25시] 와 단가라 크루
놀기가 곧 일이고 생활인 실속파 베짱이족
깨어있는 감각으로 홍대문화를 지키는 멀티플레이어


장비호

놀기 좋은 계절이 돌아왔다. 아침부터 얼굴 위로 따갑게 내리쬐는 여름 햇살과 늦은 정오쯤 보이기 시작하는 늘씬한 썬탠족들의 노출 패션, 그리고 좀체로 지지 않아 퇴근하기 무안해지는 여름 해가 지난 겨울과 봄 동안 ‘열심히 일했던 당신, 이젠 놀아라!’ 라고 유혹하는 것 같다.

사무실로 피신을 하면 빵빵한 입김을 뿜어대는 성능 좋은 에어컨 바람도, 주 5일제의 도입도, 짧지만 유일하게 존재하는 여름휴가도 그리 큰 위안이 되지 못할 때가 있다.

설상가상 대학들의 방학이 또 다가와 길 거리엔 노는 사람들 투성이다.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사람만 존재하는 것 같다. 일하는 사람과 노는 사람. 일과 놀이와 생활이 일체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허황된 생각을 하던 찰라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홍대 앞 클럽 ‘club cargo’에 놀러오라는 초대장. 전화 속 남자 씨(31)야말로 일과 놀이와 생활이 하나인 삶을 사는 남자다. “홍대 앞 놀이터에 오셔서 노는 애들을 찾으세요.” 가뜩이나 놀고 싶은 기자는 ‘노는 애들을 추적’하러 홍대로 갔다.

노는 일로 돈을 벌지요
, 그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왕년에 제법 놀았고 그 덕에 놀면서 직업을 찾은 운 좋은 경우에 해당하는 남자다. 그가 안면도에 다녀왔다면 단순히 놀기 위해 다녀왔구나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에게 여행은 놀이이자 그대로 돈이니까. 그는 놀면서도 일을 구상하는 실속있는 사람이다.

노는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며 사업을 확장하고 추진시켜 나가는 그는 이젠 일과 놀이가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가 거친 직업을 나열하자면 노점상, 클럽 디제이, 파티 플래너, 프리랜서 기획자, at431 의류 브랜드 사장, 강남의 클럽과 홍대의 T-bar 등을 운영하며 지금은 온라인 쇼핑몰 오픈을 앞두고 있다. 그러니까 놀면서 할 수 있는 일은 혼자든 여럿이든 그의 손을 거친 셈이다.

노점상을 하다 오늘날 의류 브랜드 사장에 잘 나가는 클럽, 바를 운영한다면 성공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성공이요? 그거 스트레스예요. 놀이와 일을 따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성공을 생각하며 일 할 텐데 전 체질적으로 그렇게 일 못해요. 불안정한 일정에도 여유를 가지고 즐길 줄도 알아야 하고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개척 정신도 필요하죠. 성공할 생각이 없기 때문에 일이 순조롭게 풀리는 것 아닐까요?” 역설적이게도 성공을 거부하기에 성공 할 수 있다는 말처럼 들린다.

토요일 홍대 앞은 프리마켓 작가들의 놀이터나 다름없었다. 수공예 작품을 사고 파는 현장, 어느 한쪽에겐 분명 밥벌이인데도 자유분방한 패션 스타일에서 배어나오는 여유로움이 한가한 주말을 유유자적 즐기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홍대 앞은 온통 노는 아이들 천국 같았다. 얼룩말 무늬 옷을 입은 세 명의 아이들이 유독 눈에 띄어 따라가 보니 초대 받은 club cargo가 보였다. club cargo에선 DANGARA CREW의 데뷔 무대 파티가 열리고 있었다. 단가라는 유럽 중세 사회에서 바탕과 무늬의 구별이 없다는 이유로 악마의 무늬라 규정되었던 줄무늬를 말한다. 자신들이 파티의 주최이자 주인공이라며 소개하는 줄무늬 옷의 세 남자는 무슨 퍼포먼스를 하는 배우 같았다.

“단가라는 피카소와 같은 예술가에겐 영감을 주는 매력적인 기호예요. 수치의 상징이었던 줄무늬가 21세기엔 젊음과 건강의 상징으로 바뀌었어요. 평범함에서 일탈하기 위한 변장으로 쓰이기도 하구요. 우리 단가라는 즐거움과 재미 역동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어요.”

단가라 크루, 왼쪽부터 김기범, 윤기웅, 서우탁

젊은이들의 '기업적 형태의 크루'
결국 단가라 크루는 씨와 디제이 바람 등 OB 홍대 멤버들이 90년대 후반 홍대 클럽 문화를 그리워하는 마음에서 결성한 ‘깨어있는 젊은이들?기업적 형태의 크루’다.

“즐겁고 뜨거운 어제를 만들고 싶어요.”(김기범) 의상 디자이너이기도 한 단가라의 김기범 씨는 파티에 오는 사람이 제3자처럼 관람자가 되는 것을 많이 목격했다. 참가자가 파티를 주도해 나가고, 음악 장르나 연령에 상관없이 모두 하나가 되는 파티를 만드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정말 좋은 파티는 너무 재미있어서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 파티예요. 무아지경에 빠지는 거죠.”라며 참가자들로 하여금 자연스런 몰입을 하도록 돕는 것이 단가라 크루의 첫 번째 임무라고 말한다.

어릿광대 복장에 지팡이를 들고 있는 서우탁 씨는 파티에서 퍼포먼스를 할 예정이다. 마치 찰리 채플린 같은 이미지를 풍기는 그는 단가라의 아트 디렉터다. 평소에는 로고 디자이너와 포토그래퍼로 일한다. 할렘 클럽 벽화와 이대 의류샵 벽화 등 때때로 벽화를 그리며 살기도 한다. 연극 유리 동물원이나 뮤지컬, 단편 영화에 출연했던 배우 출신 윤기웅 씨 또한 단가라 크루가 결성되면서 배우와 단가라 일을 병행하고 있다.

단가라는 놀면서 만난 사이다. 파티장이나 클럽에 가면 자주 보는 얼굴들이 있었다. 사람들은 단가라가 결성되기 전부터 그들을 크루라고 불렀고 우연히 이 세 명이 똑같은 줄무늬 옷을 입고 자주 나타나자 세 명의 아티스트는 그대로 단가라 크루가 되었다. “우리 셋은 모두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요. 놀이와 일을 접목시켜 단가라만이 보여줄 수 있는 보다 나은 문화행사를 만든다면, 우리가 하나의 트렌드가 된다면, 더 이상 바랄게 없죠.”

이십대 초 중반의 젊은 남자 세 명이 모여 만들어진 단가라는 깨어있는 생각과 현 시대의 트렌드를 주도해 나갈 것이라고 사뭇 진지한 태도를 보인다. 단발성의 파티가 아닌 지속적인 문화 공연을 기획중인 그들의 행보는 앞으로 지켜볼 일이다.

, 디제이 바람, 단가라, 노는 아이들이 뭉쳤다. 그것이 단가라 크루다. 씨와 디제이 바람도 한때 단가라처럼 홍대에서 디제이로 활동하며 노는 아이에 속했다.

“제겐 우상과도 같은 바람 형이 단가라를 소개해줬어요. 단가라를 만나니 과거에 우리의 모습을 보는 것 같더라구요.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아이들이라는 생각에 단가라 크루에 합류하기로 한거죠.”

단가라 크루가 추진중인 프로젝트는 네오솔밴드, power flower, 싸이월드 24시간 파티 피플, 7heven, at431프로젝트와 협력하여 개성 없이 상업적으로 흘러가는, 혹은 이미 곪아버린 홍대 문화에 경종을 울리고 깨어있는 감각으로 홍대 문화를 되살려 나가는 것이다. 서두르지는 않겠다, 그저 지켜만 봐달라고만 말한다.

90년대 후반의 홍대가 그리운 사람들은 단가라 크루가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구경가도 좋을 듯하다. 또한 스스로 잘 논다고 생각하면서 돈까지 벌고 싶은 사람들도 단가라 크루를 찾아가서 자문을 구하는 것은 어떨까. 최소한 하루쯤 제대로 놀게 해 줄 테니 손해 볼 일은 없다. 와 바람, 단가라 크루는 이렇게 외친다.

“노는 아이들, 왕년에 제법 놀았던 아이들 다시 모여라!” (dangara.cyworld.com)


유혜성 객원기자


입력시간 : 2005-06-22 16:11


유혜성 객원기자 cometyou@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