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체·낙관·안료 등 정밀분석 불구 자문단 재검증 논란 예상

이중섭·박수근 작품, 감정완료…화랑가선 '진품'소문
서체·낙관·안료 등 정밀분석 불구 자문단 재검증 논란 예상

박수근이 관광상품용으로 그린 '탈', 지문이 여러개 찍혀있다.

한국 근ㆍ현대 미술의 양대 산맥인 이중섭(1916~1956)과 박수근(1914~1965) 화백의 작품에 대한 진위논란이 조만간 매듭지어질 전망이다.

두 화백 작품의 위작여부를 둘러싼 고소사건을 수사중인 서울중앙지검 형사7부가 6월9일 전문 감정기관에 감정을 의뢰한 결과가 이미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인사동과 강남의 대형 화랑 등 화랑가에서는 ‘진품’ 으로 결론났다는 소문이 상당히 퍼져 있다. 이들 작품이 진품으로 최종 확인되면 한국 미술 100년 사는 다시 쓰여질 수밖에 없다.

이번 사건은 3월 16일 이중섭 화백의 아들인 이태성(56ㆍ일본명 야마모토 야스나리) 씨가 이중섭 50주기 기념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소장하고 있던 아버지의 작품 몇 점을 경매에 내놓아 낙찰됐으나, 한국미술품감정협회(이하 감정협회)에서 이 그림이 위작이라고 발표하면서 불거졌다.

이에 대해 이태성 씨는 4월 감정협회 관계자들을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5월에는 박수근 화백의 장남 성남(58) 씨가 “박수근 작품 200여 점을 소유하고 있다”고 밝힌 김용수(68ㆍ한국고서연구회 명예회장) 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고, 김 씨도 위작의혹을 제기한 박씨와 감정협회 관계자들을 명예훼손 및 업무방해 혐의 등으로 맞고소 했다.

검찰 수사는 처음에 김용수 씨의 ‘위작’여부에 집중됐다. 그러나 감정협회나 박성남 씨가 제시한 위작 논거들은 대부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주간한국 2074호 참조) 대표적으로 이태성 씨가 소장하고 있는 작품 중 일부가 김용수 씨에게서 건네진 것이라는 의혹은 김 씨가 보관증(검찰에 제출)을 받고 이 씨에게 은지화 5점을 표구 의뢰한 것 외에 전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김용수 씨가 골동품상으로부터 다량의 옛 엽서를 구입해 이중섭 특유의 엽서 그림을 위조했다는 주장 역시 골동품상이 구체적인 증거로 반박함으로써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특히 김 씨가 1970년 초에 구입한 이중섭ㆍ박수근 작품을 30년 넘게 소장만한 점은 ‘위작’과 무관하다는 것을 방증한다. 가짜 그림을 그렸다면 돈이 목적으로 미?시장에 김 씨가 소장한 작품이 나와야 하는데 그러한 경우가 전혀 없다.

또 70년 초에는 이중섭ㆍ박수근 위작 그림이 대량으로 유통되던 때가 아니다. 김 씨가 소장하고 있는 박수근 작품은 대부분 드로잉과 에스키스(밑그림)로 박수근의 70년 유작전이 열렸을 때 그때 나온 스케치 작품은 한 장에 3,000원에서 1만5,000원까지, 유화는 호당 1만5,000원에서 2만원까지 받았다는 기록으로 보아 드로잉과 에스키스를 위조할 필요성이 거의 없는 셈이다. 당시 이중섭 작품도 A급일 경우 박수근의 것보다 10배 가량 비쌌지만 이중섭 위작범이 등장한 것은 그의 작품이 고가로 평가받던 80년대 이후다. 김용수 씨가 70년 초에 구입한 이중섭ㆍ박수근 작품이 위작일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할 수 있다.

중개상 통해 무더기 구입
작품의 진위르옰풔洑求쨉?중요푀엽鳴키?되는 ‘출처’는 김 씨가 소장하고 있는 작품의 신빙성을 높여 준다. 김 씨는 이중섭 작품을 70년 초 인사동에서 중개상(일명 나까마)을 통해 무더기로 구입했다고 한다. 당시 중개상은 “경상도쪽의 한 여인이 소장하고 있던 것인데 서울로 올라온 것”이라고 입수경위를 설명했다고 한다.

이중섭은 1950년 6ㆍ25 전쟁 중 원산에서 월남, 1950년12월~56년9월 부산, 제주, 대구, 통영, 거제, 진주, 서울을 몇 차례 전전하면서 수많은 그림을 남겼다. 특히 1953년10월~54년3월 통영, 1954년7월~55년1월 서울 누상동과 신촌, 1955년2월~55년7월 대구와 칠곡 에서 생활할 시기에 많은 작품을 제작했다.

이중섭은 통영 생활에서 유강렬 및 지역 유지 등의 도움으로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누리면서 풍경화, 황소 등 주로 대작을 남겼지만 이후 서울 누상동, 신촌과 대구 경복여관, 칠곡 등지에서는 값싼 페인트나 에나멜로 급성으로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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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 이전의 박수근 작품세계 담긴 작품
김용수 씨가 소장하고 있는 이중섭 작품은 그러한 급성 그림으로 1954년7월~11월 4개월간 서울 누상동의 고향 선배 정치열 집에서 하루 3~4시간만 자며 그린 것과 대구, 칠곡의 최태응의 거처에서 그린 작품이라는 게 미술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이중섭은 1955년 서울 미도파 전시회에서 제대로 수금이 안돼 일본의 가족에게 갈 수 없게 되자 친구인 구상 시인의 권유로 대구에서 전시회를 열었지만 실패, 충격을 받고 병원에 입원한다.

이중섭은 대구시절 주로 소설가 최태응, 시인 서정희 등과 가깝게 지냈고, 그가 서울서 가져온 그림과 대구, 칠곡에서 그린 그림은 대부분 최 씨가 보관했다. 최 씨 부인 사망 후 서정희 시인이 최 씨를 도와주면서 이중섭 그림은 두 사람이 보관하게 됐고, 이중섭이 병이 악화돼 서울로 옮겨가고 최 씨마저 몇 년 뒤 서울로 가면서 이중섭 작품은 자연스럽게 서 씨에게 남게 됐다.

이중섭의 대구시절을 기억하고 있는 윤장근(74ㆍ대구, 죽산문학회 회장) 씨는 “이중섭 화백은 최태응 선생, 서정희 시인과 어울렸는데 돈에는 관심이 없고 아무에게나 그림을 그려 주었다”면서 “너무 쉽게 그리는 자신의 그림을 ‘가짜’라면서 자책하곤 했다”고 말했다.

1968~9년 부산 일본영사관의 마쓰다 씨는 대구에서 이중섭 그림을 소장하고 있다는 자로부터 일본에 있는 이중섭 가족에게 그림을 전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는다. 마쓰다씨는 일본으로 건너가 이중섭의 부인 야마모토 마사코 여사에게 그 같은 사실을 전했지만 마사코 여사는 한국에 오지 못했다.

지난 15일 통화를 한 마쓰다(서울 용산 거주) 씨는 “당시 마사코 여사가 한국에 올 수 없다고 해 그 분의 주소만 대구 소장자에게 알려주었다”고 말했다. 결국 서 시인이 보관하고 있던 이중섭 작품은 일본 가족에게 전달되지 못하고 어디론가 사라진 것이다.

서정희 시인이 1967년 페병으로 사망한 것을 고려할 때 이듬해 마쓰다 씨에게 연락을 취한 사람은 서 시인과 잘 알고 지낸 인사로 추정된다. 1968년을 전후 해 대구, 부산에서 활동하다 70년 무렵 서울로 올라 온 C씨가 유력한 인사로 거론되고 있다. C씨와 연락이 안돼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으나, 김용수 씨가 70년 초 구입한 이중섭 작품은 C씨가 서울로 올라오면서 가져왔거나, 대구에서 어떤 경로를 거쳐 서울 인사동까지 흘러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김용수 씨가 소장하고 있는 박수근 작품은 ‘출처’가 상대적으?祈피求? 김 씨는 박수근 화백이 1963년 서울 창신동에서 전농동의 좁은 집으로 이사할 때 창신동 집에서 나온 것을 70년 초 중개상을 통해 구입했다고 한다.

김용수 씨가 소장하고 있는 박수근 작품은 1953년 이상우 화방의 소개로 미군 CID(범죄수사대)와 미8군 PX에서 일하면서 그린 수채화, 목탄 크로키, 관광상품용으로 그린 탈, 호동왕자 시리즈, ‘원색’그림으로 56년 말까지의 것이 대부분이다. 그림 재료가 미군부대에서 쓰던 용지, 식량포대, 목판 등에 그려?것도 그 때문이다.

박수근이 ‘한국적 정서’라는 그만의 회화 양식을 확립한 것은 1958년 이후부터다. 김용수 씨가 소장하고 있는 작품은 ‘박수근 양식’을 완성하는 과정의 습작, 또는 작가 입장에선 사장하고 싶은(관광상품용 작품) 것들이다.

박수근은 창신동 집을 사기꾼에게 속아 내놓게 되고 돈이 없어 백내장을 앓으면서 제 때에 수술하지 못해 한쪽 눈을 실명한다. 이런 상황에서 전농동으로 이사할 때는 드로잉, 에스키스, 습작화 등 상당량의 작품을 처분하고 대작 위주로 작품을 옮긴 것으로 전해진다.

박수근과 함께 단골로 명동의 ‘동방살롱’을 출입했던 한 인사는 “박 화백이 본격적인 유화를 그리면서 초기 관광상품으로 그린 작품이나 초상화 등을 부끄럽게 여겼다”고 말했다.

김용수 씨가 소장하고 있는 작품?박수근의 유화시절 이전인 1953~57년의 것들로 현재 공백으로 남아 있는 박수근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데 없어서는 안될 자료들이다.

결국 김용수 씨는 이중섭의 마지막 불꽃으로 남은 작품과 박수근이 고유 양식의 유화 시대로 진입하는 단계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셈이다.

검찰은 SBS측에서 제공한 이중섭 작품 400점 자료와 김씨가 소장한 박수근 작품 200점을 토대로 30점과 20점을 선별해 전문 감정기관에 감정을 의뢰했다.

취재결과 이중섭 작품은 서체와 종이, 물감 등을 감정할 수 있는 작품들로, 박수근 작품은 서체, 낙관, 지문, 안료 등을 파악하는데 중점을 둔 것으로 확인됐다. 감정은 서울 소재 모 대학의 전문기관과 국가 수사관련 전문기관 등에서 행해졌고 결과도 이미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화랑가에서는 ‘진품’으로 결론이 났다는 소문과 함께 감정협회측이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는 말이 함께 떠돌고 있다.

김용수 씨가 박수근의 목탄 크로키 '명태'를 들고있다.

국내 미술계를 충격으로 몰아넣고 있는 이중섭ㆍ박수근 위작논란은 사실 조기에 차단될 수 있었다. 감정협회가 3월 초 경매에 나온 이태성씨 소장의 이중섭 작품을 시비하기에 앞서 협회의 한 핵심관계자는 은밀히 이중섭 작품을 한 전문가에게 감정을 의뢰했다. 그 전문가가 “위작으로 볼 수 없다”고 하자 핵심관계자는 작품의 출처가 이태성 씨임을 밝히며‘진품’이라는데 동조했다. 그럼에도 감정협회가 위작시비를 불러일으킨 것에 대해 앞의 전문가는 “협회내 강경파들에 의해 핵심관계자가 끌려간 것 같다”며 안타까워 했다.

최근 검찰이 전문 감정기관의 감정 결과 외에 전문가들로 자문단을 구성해 재검증을 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파문이 일고 있다. 더욱이 15명 가량으로 구성될 자문단에 자타가 인정하는 이중섭ㆍ박수근 최고 감정가들이 배제된 채 학계, 평론가 등 전문성이 떨어지는 인사가 참여할 것으로 전해져 위작논란이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현재 이중섭ㆍ박수근에 관한한 국내서는 공간화랑 신옥진 대표를 비롯해 현대화랑 박명자 대표, 원화랑 정기용 전 대표, 정준모 덕수궁미술관장 등이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 그런데 이들 대부분이 자문단에서 빠질 것이라는 소문이다.

이와 함께 화랑가 일각에서는 검찰이 이중섭ㆍ박수근 위작시비가 얼마나 중대한 사안인가를 간과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문화유산의 가치를 알고 이를 발굴하고 보존하기보다는 범법자를 찾아내는데 비중을 두고 있다는 지적이다. 또한 수사 진행 과정을 일부 화랑 관계자들이 알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사사로운 이해관계에 따른 예술테러"
인사동에서 30년 가까이 화랑을 운영하는 한 원로는 “주관적인 눈은 사람(전문가)마다 다를 수 있는 만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와 같은 객관적인 기관에서 지문, 필체, 인장 등을 감정하면 누구나 승복할 수 있고, 그 동안 등장했던 이중섭ㆍ박수근 위조범들을 조사하면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지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직접 이해 당사자인 瓦堉?씨는 “감정협회와 박성남 씨 쪽에서 진실과 너무나 동떨어진 사항들을 제시해 검찰이 혼돈을 일으키는 것 같다”며 “박성남 씨가 당당하게 나와 대질신문을 하자고 해도 왜 피하는 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 씨는 “현재 소장하고 있는 이중섭ㆍ박수근 그림은 모두 진짜”라면서 “국가나 사회에 기증해 일반 국민들이 위대한 문화유산을 접하고 후손들이 폭넓은 연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김 씨는 “감정협회가 사사로운 이해관계 때문에 진품을 가짜라고 한다면 명백한 에술테러”라며 최근 정체불명의 협박ㆍ테러 운운하는 전화를 접하면서 기득권층의 외압을 실감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과연 역사의 진실은 밝혀질 것인지, 말없는 이중섭과 박수근은 물론이고 많은 미술 애호가들이 검찰과 당자사들을 지켜보고 있다.


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5-06-22 19:28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