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폐해진 선후배 관계, 동아리는 스터디 그룹으로 변모

취업에 짓눌린 대학문화, 누가 감히 낭만을 얘기하는가
황폐해진 선후배 관계, 동아리는 스터디 그룹으로 변모

무작위로 7명의 대학생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요즘 대학생들은 뭘 하면서 지냅니까.” 그 중 5명으로부터 답신이 왔다. 경기대 법학과 97학번 강승헌, 경희대 국제경영학과 02학번 윤승희, 고려대 화공학과 97학번 강성현, 고려대 경영학과 99학번 최준우, 이화여대 문헌정보학과 02학번 강지현 씨 등이다. 그들은 입학 이후 지금까지 자신과 주변에 생긴 변화들을 세세히 그려냈다. 그 속에서 요즘 대학생들의 소소한 생활까지 충분히 읽을 수 있었다. 그들의 얘기를 정리해 소개한다. 요즘 대학생활의 한 단면 정도로 보면 좋을 것이다.

실속과 합리를 좇는 그들
“학교 끝나면 학원가는 대학생, 술 안 마시는 대학생이라고 하는데, 그건 정말 옛날 얘깁니다. 선후배라는 개념도 옅어져 후배가 선배 우습게 보고, 실력 없는 교수는 선생으로 봐주지도 않는 일은 예삿일입니다.” 강승헌 씨의 얘기다. “자신들 잇속 챙기느라 바빴지 사회적 동물임을 철저히 거부하고 있는 게 캠퍼스의 현주소입니다.” 원인은 이렇다. “학부제 도입 탓도 있겠지만, 온라인 관계의 확산이 영향을 끼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오프라인은 형식을 갖춰야 하고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요하니까요.” 인간적인 것들이 결핍되고 실속과 합리만 좇아 앞만 보고 내달리는 있다는 진단이다.

강성현 씨도 같은 의견이다. “복학하면 1학년이 베이스(base)를 깔아줘 예비역 선배들이 학점을 올리곤 하던 미풍양속(?)이 사라진 지도 오래 됐습니다. 1학년이 예비역 선배들보다 더 열심히 하죠.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도 좋지만, 공부 이전에 대학생이 아니고선 누리기 힘든 더 가치 있는 무엇이 있지 않겠습니까.” 입학과 동시에 취업문제가 학생들을 지나치게 짓누르고, 이는 고스란히 인간관계의 사막화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취업준비의 상아탑’으로 변모한 오늘날 대학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다. 선후배 관계는 갈수록 소원해지고 취업 준비 학원으로 둔갑하는 대학의 현실은 강지현 씨의 글에서도 발견된다. “동아리에 가입하는 새내기들이 적어서 수십 년간 이어져 온 맥이 끊길 위험에 직면한 동아리도 있습니다. 회원은 있다 하더라도 조직을 끌고 가야 할 회장자리에 나서는 사람이 없습니다.”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스터디 그룹’이다.

“흔하기도 흔해 한 두개씩은 기본적으로 가입해 놓고 있습니다. 그 주제도 토플이나 토익은 기본이고, 공사, 언론사, 공무원 준비 그룹, 심지어 삼성, SK 준비반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도 무척 다양합니다. 그때그때 필요에 의해서 결성됐다가 흩어지고 다시 모이는 식입니다.” 한 가지 목적으로 모였다가 해산하는, 기업의 테스크 포스(TF) 팀을 닮은 이들 그룹은 학번과 연령, 대학을 상관하지 않는다. 이들 대부분은 외환위기 이후 좁아진 취업문 때문에 생긴 삭막한 변화들이다.

그러나 이와 대치되는 장면도 목격된다. 최준우 씨의 말이다. “봉사활동도 요즘 대학생들과 떼 놓을 수 없는 관계에 있습니다. 우리가 내신제도에 봉사활동이 포함된 수행평가 세대이어서 그런지 고등학교 때 점수를 채우기 위해 봉사 활동을 했다면, 지금은 그야말로 자발적인, 진정한 의미의 봉사 활동을 하고 있죠. 양로원, 고아원, 독거노인 치료봉사, 장애우 문화체험 등 손 꼽기 힘들 정돕니다.” 80년, 90년대 학내 곳곳에 나붙었던 정부 비판의 대자보와 현수막 문구가 이런 봉사요원 모집으로 바뀌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도서관 앞에서 밝은 표정으로 얘기를 하는 대학생들. 이들도 취업 앞에선 서로가 경쟁자들이다. 사진은 특정기사내용과 관련없음. 박철중 기자

각 기업과 공공기관이 주최하는 각종 공모전도 그 어느 때보다 대학생들에게 바짝 다가서고 있다. 윤승희 씨의 이야기다. “학점과 스펙이 취직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시점에서 공모전에 참가해 犢瓚繭捉?構?되면 큰 이득이 되기 때문에 삼삼오오 조를 이뤄 공모전에 응합니다. 여기서 기획서 작성 법을 배우죠. 고배를 마시더라도 자신의 위치를 한번쯤 점검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주기도 합니다.” 거금의 상금에 현혹돼 응모하는 경우가 많지만, 꼭 그렇게만 볼 이유는 없다는 설명이다.

“지금 같은 취업난의 시대에 도토리 키재기 식의 경쟁에서 ‘00공모전 입상’이란 한 줄이 들어간 지원서가 돋보이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선배들을 좇지 않는 후배들, 후배들을 챙길 겨를이 없는 선배들이 상존하는 대학에서 각종 공모전은 대학생활의 확실한 나침반과 도전정신을 길러준다는 데에는 이론이 없을 듯하다.

학기보다 더 바쁜 방학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요즘의 대학생들답게 방학을 그냥 도서관에서 책이나 보는 식으로 흘려버리는 경우는 매우 드물어졌다. “경력을 쌓는다는 측면도 있지만, 인턴 생활을 통해서 회사 생활을 미리 경험하고 진로 결정하는 데 하나의 좌표로 삼는 것이 대학가에서는 대세입니다. 저도 모 기업에 인턴과정을 지원해 놓고 있는 상탭니다. 3~4학년의 방학은 학기보다 더 바쁘죠. 이 방학을 어떻게 보냈느냐 하는 것이 개인 경쟁력의 변별력으로 작용하니까요.” 강지현 씨는 이렇게 강조했다.

대학교 5학년(여대생), 8학년 생들이 느는 것도 휴학을 단순한 학업을 중단하는 휴학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계발의 심화 과정, 자신의 숙성 과정으로 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나름대로 분석한다.

그러나 97학번 강승헌 씨가 보는 신입생들은 어쩐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그래서 05학번 새내기들에게 매섭게 충고를 한다. “무거운 것은 일단 피하고 보는, 어렵고 자신의 관심 분야가 아닌 것은 회피하고 보는, 이익이 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마우스 클릭 한번도 인색한 후배들아, 너희들은 알아야 한다. 대학생은 고등학생과 다르다는 것을.”


정민승 기자


입력시간 : 2005-06-23 13:47


정민승 기자 msj@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