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높지 않았던 70년대에는 거의 나타나지 않아

이중섭·박수근 위작 80년대 후 봇물
가격 높지 않았던 70년대에는 거의 나타나지 않아

이중섭(왼쪽), 박수근.

최근 한국 근ㆍ현대 미술의 양대 산맥인 이중섭(1916~1956)과 박수근(1914~1965) 화백의 작품에 대한 진위 논란이 증폭되면서 두 화가의 그림을 위작해 온 위작범들 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국내 미술계의 위조범 내지 위작품 제작은 고서화, 골동품, 동양화, 한국화, 서양화, 조각, 판화 등 미술계 전반에 걸쳐 있으나 이 중에서도 금전적 가치가 높은 서양화에 집중돼 왔다.

서양화에 대한 위조범은 서양화 붐이 일어나던 80년대 중반부터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고서화 위조범들이 출물하던 70년대에는 서양화 위조범들은 전무하다시피했다.

게다가 이중섭ㆍ박수근은 70년대 고가(高價)의 작가가 아니어서 그들의 위작 그림이 유통될 상황이 아니다. 박수근의 70년 유작전이 열렸을 때 그때 나온 스케치 작품은 한 장에 3,000원에서 1만5,000원까지, 유화는 호당 1만5,000원에서 2만원까지 받았다고 기록돼 있다. 당시 이중섭 작품도 A급일 경우 박수근의 것에 비해 10배 가량 비쌌지만 위작품이 유통될 정도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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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ㆍ박수근 위작범은 80년대 이후 두 화가의 작품이 고가로 거래되면서 등장했다. 한국화랑협회에 따르면 1982~2001년 사이 협회에 제출된 2,525 작품 중 이중섭과 박수근 작품은 각각 189점과 101점이었다. 이중섭의 189 작품에 대한 감정결과 진품은 43점(22.8%)에 불과했고 위작이 143점(75.7%), 감정불능이 3점(1.5%)으로 밝혀졌다. 박수근 작품 101 점 가운데 진품은 63점(62.4%), 위작 37점(36.6%), 감정불능 1점(1%)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섭 작품 위조범은 83년에 등장한 대구 출신의 김 아무개씨가 대표적이고 초보 차원의 베끼기 수준에 머문 차 아무개씨가 있다. 그러나 차씨는 청계천 리어카상 등지에서 5만원 내외로 판매되는 위작품을 제작해 전문 위작범과는 구별된다.

이중섭ㆍ박수근 작품의 최고 전문가로 꼽히는 부산 공간화랑 신옥진 대표를 비롯해 현대화랑 박명자 대표, 원화랑 정기용 전 대표, 정준모 덕수궁미술관장 등의 견해를 종합하면 위작범 김씨가 그린 위작은 이중섭 화백이 거의 사용하지 않은 캔버스나 하드보드 등에 제작한데다 이중섭 특유의 선이나 그리움과 갈망으로 일관한 애절한 작가혼이 나타나지 않고 매우 밋밋하면서도 퇴영적으로 그려져 있는 게 특징이다.

또한 이중섭 그림은 1950년 12월~56년 9월 부산, 제주, 대구, 통영, 거제, 진주, 서울 등지에서 장소마다 특징적인 물감을 사용하였는데 위작은 그러한 점이 고려돼 있지 않다. 위작은 80년대 이후에 제조됐기 때문에 이중섭 작품의 물감이 균열되는데 반해 위작은 만지면 부서지거나 따뜻한 물에 풀면 쉽게 풀려 버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고의적으로 혼돈을 시키기 위해 종이 등을 일부러 파손시키거나 때 등을 뭍였다.

현재 김씨는 얼마 전까지 서울 근교 대도시에서 활동을 하다 위작 사건이 발생한 뒤 잠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차씨는 청계천 복원 공사와 함께 생활 무대인 청계천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박수근 작품 위작범은 경주 출신의 이 아무개씨가 유일하다고 할 수 있다. 박수근 전문가들에 따르면 박수근은 캔버스나 하드보드에 1단계 바탕 만들기 때 흰색과 담황갈색을 배합해 칠한 후 마르면 다시 칠하는 방식으로 7~8회를 반복한 뒤 본 그림을 그리는 2단계 절차를 거치는데, 이 과정에서 충분히 산화를 시키기 때문에 바탕을 고르는 재질감 형성 단계에서는 맑고 고운 박수근 특유의 마티에르(작품 겉면에 나타난 질감적 특성)가 형성되는데, 위작은 1ㆍ2단계 과정에서 충분히 산화를 시키기 않기 때문에 침윤 부족성 등으로 박수근 고유 양식이 없다는 것이다. 마티에르에서 결정적인 차이가 나 위작을 구별하기가 쉽다는 설명이다.

박수근(위) 이중섭 작품의 진품과 위품.

위작범 이씨는 박수근 외에 김환기, 남관 등도 동시에 위조하다 90년대 초 발각돼 낱珦?받은 후 자제하고 있으며 현재는 중국 등지를 오가며 골동품 등을 취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러 상황을 종합할 때 최근 위작 논란 당사자 중의 한 사람인 김용수(68ㆍ한국고서연구회 명예회장) 씨가 70년대 초에 구입, 소장하고 있는 이중섭ㆍ박수근 작품은 필선의 어우러짐, 정제된 데상력의 개성적 특성과 위작범들과의 관련여부 등에 비추어 위작과 관계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김씨가 소장하고 있는 박수근 작품은 대부분 드로잉과 에스키스(습작화)로 당시에는 거의 값어치가 없어 위작의 대상이 아니었다. 이중섭 작품 역시 1954년 7월~55년 7월 사이 서울 누상동과 신촌, 대구와 칠곡 등지에서 값싼 페인트나 에나멜로 급성으로 그린 작품으로 70년 초에는 위작을 할만큼 고가품이 아니었다.

김씨와 이중섭ㆍ박수근 위작범이 무관하다는 점도 김씨가 소장한 작품을 위작으로 단정할 수 없는 근거가 된다. 오히려 김씨가 소장하고 있는 작품은 그 '출처'와 관련해 진품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주간한국 2078호 기사보기)

그동안 미술계는 꾸준한 정화 작업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발호하는 위조범들로 인해 상당히 황폐해졌다. 서양화 위조범들은 이중섭, 박수근, 김환기 등 최고 대가들 뿐만 아니라 장리석, 황유엽, 홍종영, 조병덕, 박영선 등 대가급 원로들의 작품, 김일해, 권준 등 중진들의 작품을 위조, 사기 판매해 결국 대가들의 진품과 위대한 예술가를 사장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실제 박수근 작품은 저명 평론가 박 아무개씨가 개입해 부정한 방법으로 유통된 적이 있다.

현재 서울 M화랑의 이 아무개씨는 한국 고서양화의 대가급(이인성, 나혜석, 김경, 황술조 등) 작가들의 위작을 구입한 뒤 대구에서 화랑을 운영하고 있는 박 아무개씨에게 위조 사인을 넣게 해 판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인사동에서 S화랑을 운영하고 있는 김 아무개씨는 황유엽 등 대가들의 작품과 김일해 등 중진급 작가들의 작품을 직ㆍ간접의 방법을 통해 수많은 위조품을 제작, 판매하는 온상으로 지목되고 있다. 현재 지명수배중인 임 아무개씨 역시 화랑 종업원으로 있으면서 위조품을 전문적으로 취급하고 있으며, 창원출신으로 인사동 지하에서 콜렉션을 운영하고 있는 모 인사 또한 위작품을 전문적으로 취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미술계에서는 이번 이중섭ㆍ박수근 위작논란을 계기로, 그간 국내 사설감정기관에 의뢰되어진 위작품의 출처를 추적하는 방법 등으로 국내 화단을 획기적으로 정화해 위작범들이 다시 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완전 봉쇄해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다. 그래야만 선진국가의 바로미터인 예술문화국가의 초석을 다질 수 있다는 한결같은 목소리다.


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5-06-30 16:49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