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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25시] 시나리오 작가 고윤희
"영원히 취하지 않는 사랑 없나요?"
연애는 술…발칙하고 도발적인 연애보고서 '연애의 목적'으로 주목받는 작가




“5초만 넣고 있을게요.” 여자 한번 꼬셔 보려고 되지도 않는 수작을 걸며 껄덕대는 양아치가 눈앞에 그려진다. 리얼하고 발칙한 성적 농담 같은 ‘연애의 목적’을 써낸 이 여자가 그저 궁금할 따름이다. 첫 만남에서, 그것도 교정에서 “지금 젖었어요?” 라는 기막힌 질문을 하는 학교 선생 캐릭터를 만든 것도 그렇고, “사랑하는 거 보다 좋아하는 게 더 커요”(유림의 대사)라는 그럴듯한 연애론을 펼치는 작가가 예사롭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있었다. 둘 중 하나겠지. 너무 평범해서 실망하든지 예상대로 ‘장난 아니든지.’

후자이길 은근히 바라며 시나리오 작가 고윤희를 만났다. 담배를 피우는 자태나, 마른 듯한 체형에 보헤미안 스타일을 즐겨 입는 패션감각이나, 클럽에서 춤추고 놀며 친구들과 모여 수다 떠는 대화라든지, 구두가게 쇼 윈도우 앞에선 좀체 눈길을 떼지 못하고 금세 유혹에 넘어갈 듯한 위태위태함이, 무엇보다 관계에 대해서 성찰적인 결론을 내려 이야기하는 폼이 독신 여성이 동경하고 동일시하는 섹스 앤 더 시티의 칼럼니스트 캐리와 흡사했다.

심리학 전공한 '날라리 대학생'
알면 알수록 미궁 속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이 여자는 심리학을 전공했다. 사람의 심리와 관계에 대해 관심이 많아 고민 없이 심리학과에 지원했고, 그렇지만 4년 동안 학교보다는 나이트 클럽 다니며 춤추고 놀면서 알게 된 게 심리학 공부의 절반을 차지했다. 일명 ‘나이트 클럽 죽순이’로 남자들과 미팅이나 하며 대학 생활을 보냈고 스스로 자신은 ‘대학생 날라리’였고, 교내에서 ‘그녀를 모르면 간첩’이었다고 자랑까지 한다. 어찌 됐든 그런 과거의 경험들과 심리학 전공이 ‘연애의 목적’이라는 연애 심리학 보고서를 써내는데 일등공신 역할을 해냈다.

‘연애의 목적’ 이야말로 그녀에게 일종의 복권 같은 것이다. 시나리오 작가 협회 졸업 작품으로 써낸 시나리오가 영화 진흥 위윈회 주최 시나리오 공모전의 우수작으로 당선되었다. 게다가 싸이더스픽쳐스의 차승재 대표에게 연락받고 곧바로 계약까지 하는 등 행운이 넝쿨째 들어왔다. 시나리오를 읽은 차승재 대표는 ‘시나리오 쓴 신인작가가 누군지, 이 발칙한 여자 얼굴 한번 보고 싶어서’ 계약하고 제작에 돌입했다는 후문이 우스개 소리로 떠돈다. 예사롭지 않은 신인작가를 발굴해 낸 그의 안목은 탁월했다. ‘연애의 목적’은 유하 감독이 지적했듯이 ‘결혼은 미친 짓이다’ 보다 더 발칙했고, 도발적인, 한층 성숙한 연애 보고서였다.

당선되기 전 그녀는 창작의 고통과 희열을 오가는 마음은 풍족하지만 경제적으로 궁핍한 작가였다. 무비월드 4년차 작가 생활을 과감히 접고 시나리오에 몰두했다. 시나리오가 잘 되지 않아 머리를 깎았다. 쇼커트 한 모습이 영락없이 남자였다. 머리칼에 대한 애착이 없어서 삭발해 버렸다. 절박한 심정이었다. 글은 더 잘 써졌다. 제인마치를 떠올리며 팜므파탈 캐릭터를 만들었다. 주변에서 봐왔던 순진한 양아치로 유림을 만들었고, 검사와 결혼한 내숭의 여왕이었던 얼굴 예쁜 친구를 모델로 삼아 홍을 키워 나갔다.

골방에서 탄생된 홍은 그녀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겨주었다. 한재림 감독이 뒤늦게 각색에 참여해 수정됐지만 처음 그녀가 만들어낸 홍은 앙큼한 여자 캐릭터, 현실에서 아직 그녀가 할 수 없었던 것들을 만족 시켜주는, 여자가 꿈꾸는 멋지고 쿨한 캐릭터였다. 그렇기에 노트북을 두들기며 밤을 새도 피곤하지 않았다. 생활비가 떨어져 친구에게 전화해 몇 만원을 꾸기도 했다. 자존심 강한 그녀가 그렇게까지 할 수 있었던 건 창작에 대한 열정 때문이었다. 당선 소식을 전하는 전화 한 통화는 그녀 인생에 극적 반전을 안겨 주었다.

“기분 전환으로 차를 샀어요. 한번쯤 다른 인생으로 살고 싶었으니까요.” 당선금은 지금 그녀의 애마인 SM3 사는데 투자했다. 근 10년 동안 장롱 면허였지만 용기를 내 도로를 질주했다. 달콤한 인생을 만끽하고 싶었다. 처음엔 신나기만 했다. 사람들 만나고 축하 받으며 펑펑 놀았다. 다음 작품인 ‘어깨 너머의 연인’이란 작품이 각색에 들어가기 전 까지는 말이다. 싸이더스와 후지 TV의 합작 영화인 ‘어깨 너머의 연인’은 컨트라 섹슈얼을 지향하는 여자와 사랑에 의존적인 여자의 사랑과 성공에 대한 이야기다.

“각색 작업을 하며 하루에도 몇 번이고 자살하고 싶었어요. 연애의 목적은 순수 창작물이어서 저를 던져서 쓰느라 창작의 희열을 느꼈는데, 각색은 힘에 부치더라구요.”

‘연애의 목적’ 시사회 날, 세상과의 연락을 끊은 채 노트북을 안고 수원의 모텔에 들어갔다. 첫 영화 시사회에 가지 못하는 작가의 심정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헤아려진다. 글 쓰는 게 마냥 좋았던 습작기 시절이 그립기도 했다. 작가로서의 책임감과 의무감은 글 쓰는데 부담으로 다가왔다. 인내심과 끈기를 요하는 직업이 작가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시나리오 작업에서 작가 근성 키워
“과연 작가 체질인지 의심하게 되었어요. 작가 근성은 타고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책상머리에 앉아 고민하는 것만이 작가가 아니다. 하지만 글 쓸 단계에서는 끈기와 인내심, 몰입은 중요하다. 운 좋게 재능을 일찍 인정받아 오만 떠는 작가의 부류에, 다행히 그녀는 속하지 않았다. 시나리오 각색 작업을 하며 내공을 쌓고 작가 근성을 키우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하는 그녀, 인생을 조금 더 배웠다.

요즘은 전화를 받을 수 있어 행복하고 세상으로부터 호출을 받으면 서슴없이 “술 마셔요”라고 천진하게 말한다. “역시 세다”라는 반응이 나온다. ‘연애의 목적’ 이후 그녀를 센 여자라고 판단하고 영화 속 이야기가 작가의 경험이라 여기고 다가오는 사람들이 참 많단다.

“서른이 넘었는데 물론 연애 안 해 봤다면 거짓말이죠. 연애의 목적은 성인 사이트 서핑하며 자료 조사하고 주변에서 보고 듣고 경험한 이야기들, 또 제가 못한 것들의 대리만족 등 모든 것이 재구성 된 종합물이죠.” 그녀는 오히려 연애에 있어서 상처를 준 쪽에 더 가깝다고 한다. 그녀가 좋다고 자살 소동 벌인 남자도 있다. 그녀 주변의 남자들은 평범치 않았던 것만은 확실하다.

비슷한 점이라면 발칙한 대사들이다. 무비월드 시절 방송 심의에 걸리는 대사를 써서 애먹은 적이 있었다. “남들도 다 알지만 쓰지 않는 말들을 왜 까발리려 노력하냐”는 지적도 많이 받았지만 그녀에겐 일상적인 말일 뿐이었다. 그녀만이 할 수 있는 생생한 대사는 연애의 목적이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고윤희, 그녀에게 “연애는 술” 이다. 마실수록 취하게 되고 이성을 잃을 만큼 주체할 수 없게 만드는 게 연애와 닮지 않았냐고 묻는다. 하지만 이젠 “마셔도 마셔도 영원히 취하지 않는 술 어디 없나요?” 그러면서 상처받지 않고 다치지 않는 연애를 하고 싶단다.

남녀간의 소통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애초에 소통을 포기해야 연애가 잘 된다고 말하는 그녀. 사랑에 있어 열등한 자가 결국 이기는 자라고 말하는 그녀. 다쳐도 심하게 한번 다쳐봐야 성숙한 연애를 할 수 있다는 그녀. 연애학 석사 학위 논문을 마친 대학원생 같다. 이젠 박사학위 논문이 나올 차례다. “환타지 멜로를 쓰고 싶어요. 호러와 액션, SF까지 가미된 그런 작품, 도덕적 잣대가 사라지고 경계가 없는, 제도와 편견이 허물어진 미래의 어느 날, 운명적인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쓸 거예요.”

나이트 죽순이었다지만 막춤을 추어대고, 일본 가요 사치코를 불러대는 그녀는 음치에 가깝다. 도도해 보이는 인상과는 달리 의외로 바보스러워 보이는 순진한 면도 함께 갖고 있다. ‘연애의 목적’은 사랑에 호된 상처를 입은 자가 희열을 느끼며 쓴 보고서 같다.

누군가의 아픈 상처를 옆에서 훔쳐보는 듯한 기분마저 드는데 유쾌하고 발칙한 로맨틱 코미디가 슬프게 다가오는 건 성찰의 결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단 한번도 연애에 목적을 두지 않았던 사람에게 ‘연애의 목적’은 목적 좀 두고 연애하라는 교훈을 던져준다. “목적 가지고 하는 연애는 연애가 아니에요. 겹겹이 쌓여가는 사랑이 연애예요.” 연애학 강사의 말을 믿고 엉뚱한 생각은 접어야겠지 싶다.


유혜성 객원기자 cometyou@naver.com


입력시간 : 2005-07-14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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