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말 보이지 않는 안개 속 위작 논란

이중섭 유족 "영구귀국 계획 접겠다"
결말 보이지 않는 안개 속 위작 논란

“어머님과 우리 가족의 마지막 소망인 따듯한 남쪽나라(제주도)로 돌아가 여생을 보내는 것이 이렇게 힘이 들고, 아버지의 조국이 이 정도로 문화적 수준차이가 날 것이라는 것은 정말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한국 근ㆍ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이중섭(1916~56) 화백의 아들인 이태성(56ㆍ일본명 야마모토 야스나리)씨는 15일 전화 통화에서 매우 격앙돼 있었다. 가까스로 울분을 억제하는 숨소리가 귓가에 울릴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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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작 논란 충격으로 쓰러진 어머님이 정신을 좀 차리시면 의논을 해 보겠지만 상황은 절망적(회복가능성이 희박한 상태라고 함)입니다. 사건조사에 있어서는 반드시 명예회복을 받겠지만 그 외는 아버지 조국 대한민국을 쳐다보지도 않을 생각입니다.”

그는 내년 묘지 이장시기가 오면 서울 망우리 공동묘지에 있는 이중섭의 유골을 일본으로 옮겨 한국과는 완전히 단절을 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그러면서 자신과 가족을 절망감속에 빠뜨린 한국적 문화풍토를 한없이 원망했다.

그런 이태성 씨 모습은 3월 말 서울에서 만났을 때와는 180도 바뀌었다. 봄볕이 완연하던 당시 태성 씨는 이중섭 사후 50주기가 되는 내년을 기점으로 어머니(이중섭 미망인) 야마모토 마사코(84ㆍ한국명 이남덕) 여사와 자신의 부인과 함께 일본 생활을 청산하고 아버지의 조국에서 여생을 보내겠다는 뜻을 간절하게 밝힌 바 있다.

일찍이 마사코 여사는 이중섭의 조카 이영진(이중섭 형인 이중석의 아들) 씨가 큰 아들 태현(58ㆍ야마모토 야스가다) 씨 몫의 이중섭 그림 200여 점을 도록을 만든 후 돌려주겠다고 해 이 것이 정리되면 한국에 정착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영진 씨가 1979년 서울 미도파, 부산, 대구에서 전시회를 개최해 일부 작품을 팔고 모 인사를 통해 180여 점을 삼성측에 판매했지만 마사코측에는 돈을 거의 전달하지 않아 귀국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1986년 호암갤러리에서 사상 최대 규모의 이중섭 30주기 특별전이 열려 ‘이중섭 신화’가 본격 개막되면서 일본의 이중섭 가족에겐 고초가 가중됐다. 장남 태현 씨는 아버지가 조선인이라는 사실을 숨기며 살았고, 태성 씨는 ‘조센진 표구상’이라는 멸시 속에서도 아버지 이중섭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마사코 여사를 부양했다.

그리고 “남은 여생을 한국에서 살고 싶다”는 어머니의 뜻을 받들어 지난 2월 이중섭예술문화진흥회(회장 야마모토 마사코)를 개설하고 필요 경비 등을 마련하기 위해 50년 가까이 소장하고 있던 이중섭 작품 4점을 경매에 내놨다.

작품은 3월 중순 고액으로 낙찰됐으나 한국미술품감정협회(이하 감정협회)가 ‘위작’시비를 제기하자 태성 씨는 3월 22일 국내로 들어와 진품임을 설명했다. 그럼에도 파문이 가라앉지 않자 4월 7일 마사코 여사까지 나서 “위작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강력히 주장했다.

그러나 감정협회측이 위품임을 거듭 주장하자 태성 씨는 4월 22일 한국으로 건너와 간담회를 개최하고 50년 간 간직한 진품임을 설명하려 했으나 감정협회측이 “범죄조직과 연루되어 있는 것 같다”고 한 말을 듣고 “예술테러범들을 대한민국 정부가 응징해 달라”는 특별성명서를 발표한 후 4월 25일 고소장을 제출했다.

그러자 감정협회측과 친분이 있는 박수근 화백의 아들 박성남 씨가 호주에서 날아와 이중섭 그림 600여 점과, 박수근 그림 400여 점을 소장하고 있는 김용수(68ㆍ한국고서연구회 명예회장) 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5월 4일 고소를 했고, 김용수 씨도 13일 박성남 씨와 감정협회 인사를 상대로 무고ㆍ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맞고소를 했다.

검찰(서울 중앙지검 형사 7부)의 3개월 가까운 수사는 김용수 씨의 위작 및 이태성 씨와의 연계 여부에 초점이 맞춰졌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모두 근거가 없다는 사실을 밝힌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오히려 검찰이 감정을 의뢰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와 서울대 연구소, 국립현대미술관 등에서는 1ㆍ2차 감정에서 김용수 씨가 소장하고 있는 이중섭ㆍ박수근 작품을 ‘진품’으로 인정했다는 후문이다.

국과수에선 서체, 낙관 등을, 서울대 연구소에서는 안료, 종이 등을 중점적으로 조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국립현대미술관측은 최근 최종 통보를 앞두고 입장 정리에 고심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가운데 감정이 장기화하는 과정에 국과수가 자료 공유 목적으로 국립현대미술관에 문의하는 등 여러가지 풍문이 들리고 있다.

검찰은 감정보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실체적 진실규명(위작, 진품출처)이라고 판단, 약 80여일 간의 수사에서 위작범 연계 여부에 아무런 징후를 포착하지 못한 점을 고려, 진품이라는 추정속에 역사적 고증을 한다는 차원에서 이중섭ㆍ박수근 시대 동인들을 찾아 이 사건의 결말을 보겠다는 각오로 수사기한을 두지 않고 새로운 수사 의지를 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중섭에 정통한 한 인사는 “김용수씨가 소장하고 있는 이중섭 그림은 대구의 서정희 시인(67년 사망)이 보관하고 있던 것을 대구 지역 유지였던 서 모씨를 통해 서울로 옮겨진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그 부분을 추적하면 머지않아 작품의 출처가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감정의 풍문 등과 관련하여 본지가 입수한 자료에는 국립현대미술관측의 입장이 뚜렷하게 나타나 있다.

올해 초 이태성 씨와 국립현대미술관 김윤수 관장 간에 일본어로 이루어진 대화에서는 김 관장이 태성 씨에게 “이중섭 그림은 아들인 당신이 가장 잘 보는 것 아니냐. 당신이 진품이라면 진품으로 봐야 한다”고 하는 부분이 나온다.

또 태성 씨와 이중섭 사후 50주기 행사를 공동 기획했던 SBS 유자효 이사와의 대화에서 유 이사가 김용수 씨가 소장하고 있는 그림에 대해 묻자 태성 씨는 “아버지 그림이 틀림없다”고 말한다. 결국 검찰이 감정을 의뢰한 세 기관 모두 김 씨가 소장하고 있는 작품을 진품으로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그동안 검찰의 수사 과정과 화랑가와 미술협회, 평론가 등의 커넥션 관계를 취재해온 MBC 관계자에 따르면 검찰 수사의 중립성 문제와 관련, 감정협회 C씨 등의 동선을 추적해 상당한 성과를 올린 것으로 전해진다. 또 박수근 화백의 아들 박성남 씨와 감정협회 핵심 인사인 S씨와의 특별한 관계에도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MBC측은 취재 과정에서 위작품을 진품으로 둔갑시켜 거액을 챙긴 사례들을 확보했다면서 모두 두 차례에 걸쳐 나눠 방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태성 씨는 한국에서의 수사 진행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면서 본인의 증언이 필요하면 언제든 한국으로 건너오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마사코 여사도 죽기 전에 남편의 조국을 마지막으로 방문하고 싶다는 뜻을 전해왔다.

6000만원에 팔린 이중섭 작품, 또 시비
모 일간지 ‘위작’ 보도 사실 무근 드러나
정정보도에도 불구 피소, 검찰 수사 새국면

화가 이중섭(1916~56)의 유작을 둘러싼 진위 논란이 3개월 가까운 검찰(서울 중앙지검 형사 7부) 수사로 가닥이 잡힌 가운데 또 다른 '위작' 시비가 불거져 파문이 일고 있다.

서울의 한 중앙 일간지가 12일 '이중섭 50주기 기념 미발표작 전시준비위원회'(대표 김용수)의 안병태 위원이 6,000만원에 판 이중섭의 '아이와 복숭아와 게' 그림을 '위작'이라고 보도했으나 사실 무근으로 밝혀진데 따른 것이다.

게다가 안 위원이 문제의 일간지가 본래 약속과 다르게 정정보도를 했다며 14일 해당 기자와 언론사를 상대로 명예훼손혐의 소송을 제기하면서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해당 일간지는 13일 '안 위원이 판 '아이와 복숭아와 게'는 김용수 씨가 소장하고 있다는 이중섭 그림 650 점 중의 1점으로 제작한 지 2~3년 밖에 안되는 위작으로 드러났으며 검찰은 이중섭이 쓴 그림엽서와 똑 같은 엽서를 100장 팔았다는 그림재료상의 증언도 채택했다'고 보도했었다.

이에 대해 안 위원은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고 하니 기사를 쓴 기자와 문화부장까지 나서 잘못을 인정하고 충분히 정정보도를 하겠다고 약속해 놓고 이를 지키지 않아 소송을 제기했다"면서 위작 보도의 오류를 구체적으로 지적했다.

그는 검찰이 문제의 그림을 위작이라고 발표한 적이 없고 현재 수사중인 이중섭 작품에 대해 진품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아무런 확인도 없이 기사를 작성했다고 주장했다.

또 진품을 위품이라고 주장하는 감정협회측의 일방적인 주장에 근거했으며 고발당한 일이 없는 학계 저명 교수를 위작을 판매하는 파렴치범으로 묘사했다며 분개했다. 안 위원에 따르면 해당 기자는 감정협회측 최 모씨의 주장에 근거해 기사화했음을 밝혔다고 한다.

최 씨는 지난 4월 본지 기자가 이중섭ㆍ박수근 작품 진위 논란을 취재하면서 만난 인물이다. 당시 최 씨는 '위작' 보도에서와 같은 말을 언급했다.

그러나 최 씨는 미술품 감정 전문가가 아닌 복원가이고 이중섭 작품에 대한 그의 주장은 대부분 진실과 달랐다. 위작 보도에 나타난 그림재료상의 증언 역시 당시 최 씨가 기자에게 언급한 것인데 기자가 만난 K상사의 김 모 그림재료상은 "엉터리 주장을 한 최 씨를 고소하겠다"며 격분하기도 했다.

'아이와 복숭아와 게'는 김용수 씨가 이중섭 50주기 전시준비위원회(김용수씨 포함 5인) 위원에게 감사 표시로 1~2점씩 건넨 것 중의 하나다.


박수근 생계 위해 초상화, 원색 그림

화방에서 박수근 화백(오른쪽 사진 맨 오른쪽), 고 이상우씨.

무릇 작가에게 지우고 싶은 시대가 있듯 위대한 화가 박수근에게도 그런 때가 있었다.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부득이 미군 부대에서 초상화를 그리고 미군들의 취향에 맞는 민예품적 원색 그림을 그리던 시기다.

대략 1953~57년의 시기로 박수근은 그런 흔적들을 없애고 싶어했지만 그의 작픔세계를 이해하는데는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자료들이다.

최근 위작 논란에 휩싸인 박수근 작품 400여 점은 바로 그러한 시대의 그림들이다. 소장자인 김용수 씨는 1963년 박수근 화백이 서울 창신동에서 전농동의 좁은 집으로 이사할 때 나온 것을 70년 초 중개상을 통해 구입했다고 한다.

김 씨가 소장하고 있는 박수근 작품은 1953년 이상우 화방의 소개로 미군CID(범죄수사대)와 미8군 PX에서 일하면서 그린 수채화, 목탄 크로키, 관광상품용으로 그린 탈, 호동왕자 시리즈 등 '원색'그림으로 56년대 말까지의 것이 대부분이다.

당시의 박수근 화백을 묘사한 소설 '나목(裸木)'의 작가 박완서 씨는 미군 PX에 근무하며 초상화 거리를 물어와 박수근에게 연결시켜줬다. 박수근의 생계를 위한 그림들은 대부분 이상우 화방을 통해 팔렸다. 이 화방의 미망인 이금득(84) 여사는 "박 화백은 말이 적고 예절 바른 사람이었다"면서 "생활이 어렵다는 말을 (남편에게서)듣곤 했다"고 기억했다.

1955년부터 60년까지 이상우 화방에서 일한 조카 이영숙(70) 씨는 "아저씨(이상우)는 박 선생님(박수근)과 친하게 지내면서도 인격적으로 존경하는 것 같았다"면서 "그래서 미군부대에까지 취직시켜 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씨는 박수근 화백이 처음 화방에 팔려고 내온 그림들은 하드보드에 흰색과 검정색, 고동색 등 원색을 쓴 것이었는데 어쩌다 1, 2 점씩 팔리곤 했다고 전한다. 박수근 특유의 대형 유화 그림들은 이상우 화방이 결성한 '신기회'회원들과 자주 만나는 곳에서 거래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김용수 씨가 소장하고 있는 박수근 작품은 거의 공개된 적이 없는, 박수근의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관광상품용 작품이 대다수다. 또한 유화 1점에 반드시 1~3점 내외의 드로잉을 한 흔적이 많고 좀 더 나아간 에스키스(습작화)도 상당하다.


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5-07-22 12:16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