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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컬 피플] 인요한 신촌 세브란스 병원 국제진료센터 소장
"건강보험, 반드시 뜯어고쳐야"
동북아 의료 허브 토대구축 필요…대학병원 시스템에도 일침






“어제 왔다 간 사람 고흥 분이더구먼. 우리 고향 사람여, 그 양반이. 을마나 반가웠던지. 내가 너무 티 내면 안 되는디….”

하늘이 훤히 올려다 보이는 천장에다가 첨단 장비가 꽉꽉 들어차고 내부가 반질반질한 서울 신촌의 세브란스병원 새 건물 3층 국제진료센터. 1991년부터 지금까지 이곳 소장을 맡고 있는 인요한(미국명 존 린튼) 교수는 7척 거구에 ‘파란눈’이지만 진한 전라도 사투리를 팍팍 써대는 ‘토종 한국인’이라고 자부한다.

1959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전남 순천에서 보냈다. 1895년 진외증조부(아버지의 외조부) 유진 벨 목사가 선교사로 한국 땅을 처음 밟은 이래 할아버지, 아버지와 여섯 살 난 아들에 이르기까지, 5대 째 한국에 살면서 ‘한국 사람보다 한국을 더 사랑해온’ 집안 내력을 갖고 있다.

“우리 부모님까지는 코리안을 위해 살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한국에게 빚 진 사람입니다. 의사로 만들어줬고, 최연소 센터장으로 앉혔으니 말입니다. 이제 제가 갚을 차례입니다.”

"한국은 동북아 의료 허브 돼야"
그는 1993년 한국형 앰뷸런스를 개발해 내놓는 등 국내 응급의학의 초석을 놓는 데 10여 년간 열정을 바쳤을 뿐만 아니라 1997년 무렵에는 형 인세반과 함께 350억원 가량을 모금하여 북한 내 결핵환자 25만명을 치료해주고 의료용 차량 70~80대와 엑스레이 장비 150대를 북한에 실어보낸 장본인이다. 대체 빚이 얼마나 무겁고, 어떻게 갚겠다는 말인가.

“한국은 중국 몽고 사할린 시베리아 등을 아우르는 동북아 의료 허브가 돼야 합니다. 노무현 정부 들어 신경을 많이 씁니다만, 의료분야는 지금 뭔가 잘못돼 있습니다. 감기에 들어가는 건강보험 예산이 암의 2~3배가 되고, 굴지의 대학병원이 순수입의 20%를 주차장에서 올린다는 게 대체 말이 됩니까.”

갚을 게 따로 있다더니, 그는 미국 유학에서 돌아온 후 15년간 이 병원 외국인진료센터 소장을 맡아오면서 의료개혁이라는 ‘뜨거운 감자’를 시종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개혁이란 게, 그것도 이해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의료개혁이 어디 의욕만으로 되는 일인가.

“시골 사람이 암에 걸리면, 500만원까지야 그럭저럭 버티겠지요. 하지만 1,000만~2,000만원이 되면 집안이 휘청거립니다. 500만원이 넘어가는 암 치료비는 정부가 대야 합니다. 감기나 설사에 쓰는 것을 돌리면 됩니다. 건강보험을 뜯어고쳐야 합니다.”

연세대의대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 인요한 소장. 전북 전주에서 나고 어린 시절을 전남 순천에서 보낸 그는 아버지의 외할아버지부터 5대째 110년간 한국에 살면서 '한국사람보다 한국을 더 사랑해온' 집안 내력을 갖고 있다.



“복지부 의료정책과 공무원들도 이런 점을 잘 알지만, 개업의 등 이해 집단들의 반발이 무서워 못 하고 있다”면서 “당사자들이 양식을 갖고 고민한다면 가능한 일”이라고 덧붙인다.

오랜 세월 가슴 속 깊숙히 쌓아뒀던 것들을 하나 둘씩 토해내듯, 이번에는 한국 국민 불특정 다수에게 화살을 돌린다. “한국 사람들은 약을 너무 좋아해요. 6ㆍ25 때 부자들은 페니실린이 보약이라고 매일 한 알씩 먹었다나요. 약은 독입니다. ‘약은 나쁘다’는 범 국민운동을 펼쳐야 해요. 그럼 항생제 남용 문제도 자연스레 없어질 것입니다.”

환자들이 꼬?3시간을 기다렸다가 고작 3분 진료를 받는 대학병원 시스템에도 화살을 돌린다. “미안하지만, 교수님들이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아시아 의료 허브가 되기 위한 세 번째 개혁 과제로 ‘양질의 의료 서비스 제공’을 꼽는 그는 “수련의들의 외래훈련을 확대하는 것이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면서 주섬주섬 풀어놓는 해법이 아주 구체적이다.

“수련의들이 수술도 잘 하고 입원환자도 잘 돌봅니다만, 외래훈련은 잘 안되고 있어요. 인턴ㆍ레지던트는 물론 의과대학생까지 외래진료에 더 활용해야 합니다.”

인턴·수련의 외래진료에 더 활용해야
환자들이 진찰 받기 위해 옷을 벗었다 입었다 하고, 의사들이 환자 병력을 살피면서 요점을 찾아내는 데 낭비하는 시간도 너무 많다는 게 인 교수의 판단이다. 따라서 “병력 체크나 처방전 기록 등은 수련의에게 맡기고, 교수들은 개인당 진료실 수를 5~6곳 정도로 늘린 뒤 빙 둘러보면서 맥만 딱딱 짚어주면 된다”고 해결책을 제시한다.

인 교수는 이 병원 국제진료센터를 진작에 이런 방식으로 바꿨다. 3개의 방에 인턴 1명과 수련의 2명을 각각 배치한 뒤 그는 방을 오가면서 환자들을 본다. 교수가 방에 앉아 있고, 환자가 들락날락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깬 것이다. 환자는 오랜 시간 기다리지 않고도 의사와 충분한 상담을 할 수 있고, 교수는 환자 당 진료시간이 확 줄어들어 더 많은 환자들을 볼 수 있고, 수련의는 교수의 직접 지도를 받을 수 있으니 ‘일석삼조’다.

“성형외과, 심장수술, 로보틱스 등 분야에서 일하는 한국 사람들의 손재주는 세계 최고”라며 국내 의료 수준을 한껏 치켜세운 그는 자신이 가정의학과를 택하게 된 것이 “손재주가 좋은 동료들과의 경쟁을 피하려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라고 너스레를 떤다. 그러나 죽 이어지는 말을 가만히 듣고 있자니 이건 ‘어르고 뺨 때리기’다.

“가정의학과 의사요? 도사가 되려고 산에 올라간다면 도가 뭔지부터 알아야 합니다. 한국 의료 수준이 높아져 전염병은 이제 문제가 안 됩니다. 그렇다면 암 아니면 동맥경화예요. 어떻게 하면 이것을 일찍 발견하고 막을 건가가 관건이죠. 국민들의 생활패턴를 바꾸는 계몽운동을 펼쳐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변칙으로 하고 있어요. 피부미용이나 비만관리는 가정의학과 의사가 할 일이 아니라구요. 뇌졸중, 뇌경색, 심근경색 환자가 오면, 바지를 걷어 올리고 회초리로 자기 종아리를 쳐야 해요.”

구구절절 막힘이 없고 가슴을 콕콕 찔러대는 통에 은근히 부아가 나, 아무리 좋은 생각이라도 다른 사람들의 자발적인 동참과 협력 없이는 쉽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살짝 딴지를 걸지만 척척 받아 넘긴다. “한국은 ‘근거 중심 의학(Evidence-based MedicineㆍEBM)’을 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그러나 한국 사람들의 고정관념의 뿌리가 워낙 깊기 때문에 잘 안 되고 있다고 예를 들어 설명한다.

인요한 소장이 국제진료센터를 찾은 한 외국인 환자에게 증상을 설명하면서 진료를 하고 있다. / 임재범 기자

“국제진료센터를 찾아와 ‘감기 몸살로 죽겠다’고 하는 50대 외국인한테 ‘당신 괜찮으니, 집에 가 해열제 사 먹고 물 많이 마시면 된다’고 하면 ‘아, 큰 병인줄 알았는데, 고맙습니다’ 하면서 갑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주사나 한 대 놔줄 것이지’ 라거나 ‘그럼 내가 뭣하러 진료비를 내’ 하면서 서운한 표정으로 톡 쏘아보면서 나간단 말씀예요. 그런 걸 깨뜨려야 해요.”

뿌리 깊은 인식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언론을 통한 대중 교육과 더불어 ‘로빈 후드 정신’이 절실하다는 게 인 교수의 판단이다. “있는 사람들을 특실에 넣어 돈을 많이 받아내고, 그 돈으로 없는 사람들을 도와야 합니다.”

물론 그 자신도 로빈 후드 같은 의사다. 가난한 사람들이 병원에 오면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머리를 엄청 굴린다. 매주 1~2명 정도씩 고향 순천에 살고 있는 친구들의 어르신이나 시골 사람들을 세브란스로 모시기 위해 애쓰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남을 돕는 일인 동시에 또한 즐거움이다. “외국인들은 까다롭게 굴기도 해요. 하지만 시골 분들은 조금만 도와줘도 그렇게 고마워할 수 없어요. 멀리서 곶감이나 매실을 들고 오기도 하고, 그런 게 참 좋아요.”

한국에 매료된 '토종 중의 토종'
그로 말할 것 같으면, “전라도가 내 입맛을 꽉 사로잡아 버렸다”며 보쌈을 가장 즐겨먹는다는 ‘토종 중의 토종’이다. 어릴 적 친구 집 대청마루에 옹기종기 둘러앉아 안방 아랫목에 쟁여뒀던 고구마로 점심을 때우던 때를 그리워할 정도다. ‘코리안’이 그렇게도 좋아, 할머니는 일제 압박 아래서도 개량 한복을 벗지 않았고, 아버지는 평생 검정 고무신만 고집하다 가셨다고 회고한다. 그러나 정겹던 풍경들이 요즘 들어 하나 둘씩 사라지고 있어 서운하단다. “한국이 많이 변했어요. 99%는 좋아졌습니다. 하지만 뭔가 소중한 것을 잃어가고 있는 느낌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역마다 독특한 전통과 문화가 살아 있었지만 텔레비전과 인터넷 문화가 최근 급속히 확산되면서 다 사라졌다고 못내 섭섭해 하는 그는 “어려웠지만 웃으면서 헤쳐나가는 한국인의 모습이 가장 아름다웠다”고 읊조린다. “살기 힘들어졌다고 툭 하면 한강으로 뛰어드는 게 한국인의 본디 모습이 아니예요.”

인 교수에 견해에 따르면 한국에서 없어진 것은 비단 옛 정취와 전통문화 뿐만이 아니다. 타협을 이끌어낼 줄 아는 성숙한 정치문화도 찾을 수 없다. “나는 좌(진보)도 아니고 우(보수)도 아니다”고 선을 그으면서 ‘쪼개지고 싸움만 일삼는’ 작금의 정치-사회상을 “쌍방과실 탓”이라고 그는 정리한다. “사촌이 땅을 사면 잔치를 해야 돼요. 유태인 같으면 ‘내 세력이 강해졌다’고 잔치를 합니다. 미국이란 나라도 특별할 게 없지만, 타협을 할 줄 안다구요. 국회의원을 주(州)당 몇 명 뽑을 거냐, 인구 비례로 할거냐 죽기살기로 싸우다가도 하원은 인구 비례로, 상원은 주비례로 하자고 타협을 합니다. 그런데 여기선 이기면 밟고, 지면 밟히는 풍토입니다.”

내친김에 미국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서도 한 마디 꺼낸다. “미국 정치와 미국 사람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미국의 죄는 하나예요. 미국 사람의 죄가 아니고 미국 정부의 잘못인데, 테러를 막는다면서 약자의 자존심을 짓밟는 게 그거에요. 그렇다고 미국이 다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일본에 원폭을 떨어뜨려 한국이 독립할 수 있도록 했고, 어려웠던 시절 많은 도움을 줬어요. 도움 받은 걸 고마워 할 줄 아는 성숙함도 지녀야 합니다.”

“통일을 앞둔 한국이 잘 사니까, 미국 사람들이 한국을 은근히 무서워 하는 것 같다”고 최근의 미국 움직임에 대해 속삭이듯 말하더니 돌연 가슴을 세차게 쿵쿵 친다. “사람들은 항상 멀리 있는 것만 얘기하는데, 우리부터 변해야 해요.”

그는 5ㆍ18민주화 운동 당시 외신기자들에게 통역을 해주다가 추방령이 떨어져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그 무렵 만난 의예과 후배 이지나 씨(43ㆍ치과 원장)가 부인이다. 얼마 전 결혼 25주년을 맞았다. 인 교수 부부는 두 딸 외에 5년 전 늦둥이 아들을 얻었다. 부인의 안부를 묻자 대뜸 하는 말이 가관이다. “조선(한국) 여자들은 문제가 있어요. 아들을 낳은 뒤로는, 눈에 뵈는 게 아들밖에 없나 봐요.”


송강섭 의학전문기자 special@hk.co.kr  
사진=임재범 기자


입력시간 : 2005-08-02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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