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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짝퉁'의 세계
직접 찾아가 본 동대문 시장의 은밀한 거래현장



은밀하게, 그러나 공공연히 짝퉁거래가 이뤄지는 동대문·이태원 등지는 외국관광객들에게도 인기있는 쇼핑 관광 코스가 되고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음. 김주성 기자



7월 중순 아시아 국가에서 국내로 수입되는 의류, 신발, 가방, 시계, 운동용품 등 5개 품목에 대해 하루 동안 100% 전량 세관 검사가 행해졌다. 이에 대해 신문과 방송들은 ‘짝퉁과의 전면전’이 벌어졌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전량 세관 검사’는 말 그대로 수입되는 물건을 하나하나 뜯어서 검사하는 것을 일컫는다.

이 같은 전량 검사는 매우 드문 일이어서 관세청 직원들은 가물에 나는 콩이라고 비유하고, 업자들 사이에서도 ‘진짜 재수 없는 일’로 통할 정도다. 검사 결과는 예상 대로 였다. 하루동안 22건의 상표권 위반 상품, 이른바 ‘짝퉁’이 적발됐다. 평소보다 45% 늘어난 건수다. 물밀듯 들어오는 가짜 상품에 관세청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이다.

관세청이 2004년 한 해 동안 적발한 가짜 상품은 2,100억원(정상상품 판매가 기준). 그 중 1월에서 5월까지 5개월 동안 적발한 상품은 530여 억원에 달하고 올들어 같은 기간에 적발한 상품은 950억원에 이른다. 다섯 달만 놓고 본다면 전년 대비 80%가 증가한 셈이다. 하지만, 세관에서 적발된 것은 빙산의 일각이라는 데에 관계자들의 이론은 없다. 관세청에서도 이를 부인할 수 없는 상황이다. 물류 흐름을 저해할 수 있기 때문에 매번 모든 건에 대해 세관 검사를 할 수 없는 까닭이다.

그렇다면, 이 많은 가짜 상품들은 어디서, 어떻게 유통되는 것일까. 짝퉁의 메카로 불리는 서울 동대문시장에서 부업으로 ‘짝퉁’을 떼어다 파는 일을 3년째 하고 있다는 김지수(가명ㆍ여ㆍ33) 씨를 만나 그 속을 함께 들여다봤다. 취재 하는 동안은 기자 대신 ‘신출내기 짝퉁 소매상’으로 변신을 하기로 김 씨와 사전 약속을 했다.

평범한 장난감 가게의 명품시계들
동대문 시장을 찾은 날은 7월 26일.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중복 다음 날로 8시를 훌쩍 넘긴 밤시간이었다. 몹시 북적거리는 길을 통과해 다다른 곳은 동대문의 한 쇼핑몰. 그 안에서 김 씨의 발길이 향한 곳은 장난감 가게였다. 다른 볼 일이 있는 듯, 아무 말없이 혼자 가게로 들어갔다. ‘신출내기 소매상’인 기자는 하는 수 없이 옆집 가게들의 물건들을 구경했다.

가게 앞을 오가는 손님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고, 불경기 탓인지 앞집을 비롯해 주변의 몇 집은 철수 한 상태여서 전체적인 분위기는 썰렁했다. 팔이 떨어져 나간 마네킹 몇 개가 그 곳이 옷 가게 였음을 짐작하게 할 뿐, 흔적도 없이 정리하고 나간 가게 자리가 더러 눈에 띄었다. ‘이런 데서 장난감이 팔릴까’하는 생각이 들 무렵, 김 씨가 불렀다. “들어오세요. 여깁니다.”

3~4평 정도의 장난감 가게 한쪽에는 주인의 무료함을 달래주던 TV와 전화기 한 대가 빼곡히 들어찬 장난감들 사이에 자리를 틀고 있었고, 장시간의 쇼핑에 지친 손님들의 다리를 쉬게 할 의자 2개가 반대쪽으로 치워져 있었다. 동대문의 여느 상가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가게였다. 김 씨는 약속대로 “이제부터 소매 일을 할 사람”으로 주인한테 소개를 했다. “열심히 한번 해봅시다”며 악수를 청하는 주인의 손을 어색하게 맞잡으며 “많이 도와주십시오”라는 말로 화답했다.

“새로 들어온 물건 없나요?” 김 씨는 얼마 전 떼 간 물건들이 오래된 모델들이어서 그런지 잘 팔리지 않는다며 신제품을 요구하자, 주인은 구석에서 분홍색 클리어 화일 하나를 내 놓았다. “앞에 있는 물건들이 요 며칠 전에 들어온 것들이에요.” 카탈로그였다. 안에는 명품 시계 사진이 컬러 프린터로 인쇄돼 한 장 한 장 정성스럽게 정리돼 있었다.

널리 알려진 로렉스에서부터 샤넬, 에르메스, 구찌, 까르띠에 그리고 수공으로 만들어져 수천만원을 호가한다는 프랭크뮬러, 쇼메 등의 브랜드가 눈에 띄었다. 일본에서 만들어져 온 듯, 사진 아래에 적힌 가격은 일본 엔화였다. 그래서, 그 가격에 ‘0’만 하나 더 붙이면 도매가가 된다고 했다.

지난 6월16일 인천공항 세관직원이 압수한 가짜 명품시계를 폐기하고 있다. <연합>



“프랭크뮬러랑 쇼메는 요즘에도 영국 왕실에 납품된다죠.” 등받이가 없는 의자에 앉아 김 씨가 물건 하나 하나를 살피는 동안 주인이 혼잣말을 했다. 얼마 후 “이거랑, 이거 그리고 이거 한번 보여주세요”라고 김 씨가 말하자, 카탈로그를 원래 있던 자리에 넣은 주인은 가게 주변을 한번 둘러 본 뒤 가게 한쪽에 마련된 비밀 문을 열었다.

인형들이 걸려있던 한쪽 벽을 당기자 허리와 다리를 구부려야 들어갈 수 있는 문이 하나 생겼다. 장난감 가게와 거의 비슷한 넓이의 또 다른 가게, 시계 가계였다. 일반 시계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기 스탠드와, 돋보기, 드라이버 그리고 시계 배터리와 밴드 등이 작업대 위에 어지럽게 널려 있고 그 옆으로 여러 개의 서랍장들이 서 있었다.

“고장나면 언제든지 가지고 오세요. 웬만한 건 여기서 다 고쳐 드립니다.” 자체 AS를 위해 차린 작업대였다. 서랍 하나를 당겨 보이는 주인의 눈은 ‘이게 카탈로그에 나와 있는 물건이니 한번 보시오’하는 듯했다. 카탈로그에서 봤던 ‘명품’ 시계들이 ‘평범한’ 투명 비닐 종이에 하나씩 들어 있었고, 그것들은 다시 예닐곱 개씩 노란 고무밴드로 묶여 있었다.

그 서랍에 든 시계만도 100개는 족히 될 것 같았다. 김 씨는 그 중 6개를 골랐다. 즉석에서 10만원 짜리 수표 너댓장이 주인한테로 건너갔고 만원짜리 몇 장이 김 씨한테 다시 넘어왔다. 그리고 김 씨는 넘겨 받은 ‘명품’시계를 루이비통 토드백 안에 조심스럽게 넣었다. 이 일을 하면서 2만원에 구입한 가방으로, 자신의 고객에게는 20만~30만원에 판다고 했다. 정품은 80만원을 호가하는 상품이다.

“아, 깜빡할 뻔 했네요, (시계) 케이스도 좀 보여 주세요. 누가 선물할거라고 해서 케이스도 사야겠어요.” 가방에 든 시계를 꺼내 가리키며 거기에 맞는 케이스 두 개를 주문하자, 주인은 다른 서랍에서 나무로 만들어진, 고급스러움이 잔뜩 묻어나는 케이스를 내 놓았다. “요즘은 케이스 찾는 사람들이 많아서 이것도 귀해요.” 김 씨는 케이스 두 개 값으로 8만원을 지불하고, 함께 그 비밀의 방을 나왔다. 우리는 가게 주인이 내온 커피까지 한 잔씩 얻어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 분은 우선 가방으로 사업을 하시겠다고 해서요. 빨리 일어서야겠습니다.” 시계는 9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김 씨와 발을 돌려 찾아 간 곳은 동대문의 또 다른 쇼핑센터. 명품 가방을 보러 가는 길이었다. 짝퉁 명품 시계 가게가 장난감 가게로 둔갑한 것을 경험한 까닭에 이번에는 무슨 가게일까, 기대에 부풀었다. “가방 가게라고는 하지만, 여기 가면 지갑, 벨트, 신발들도 있어요. 맘에 드는 것 있으면 얘기하세요. 싸게 하나 ‘댕겨’ 드릴 테니까.”

주변사람들 통한 판매
다른 가게를 찾아 가는 길에 구입한 짝퉁 물건들을 어느 정도의 가격에, 또 어떤 경로로 거래하는지 궁금해 김 씨에게 물어봤다. “가격은 인터넷 명품 사이트 보다 20%정도 낮춰서 잡습니다. 인터넷 명품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물건들을 저도 구입을 해봤는데, 대부분이 짝퉁이고 제가 거래하는 곳 물건보다 짝퉁 티가 더 나더라고요. 저는 구입가의 2~3배 정도 선에서 팔고 있습니다.” 판매는 큰 홍보 활동이 필요 없는 주변 사람들, 그리고 그들과 이어지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고 했다.

인천공항 유치물품창고에 쌓인 패션 명품들을 세관직원이 정리하고 있다. <연합>

또 자신이 거주하는 서울 양재동 인근의 오피스텔과 아파트에 광고를 하기도 한단다. ‘명품 파격세일 80~90%’ , ‘명품 중고 매매’ 등의 명함 사이즈 전단을 만들어 문틈에 끼워 놓는 방법이다.

이 일을 통해서 그가 한 달에 챙기는 순수익은 150만~300만원 선. 운이 따라주고 열심히 움직인 달에는 600만원을 넘긴 적도 있다고 한다. “인터넷에서 이미테이션 명품들을 구할 수 있어 수익이 예전 같지 않지만, 부업 치고는 꽤 짭짤합니다.” 여담으로 그는 주말에 백화점에 갈 일이 있으면 명품관에 들러 진짜 명품을 보는 안목을 기른다고도 했다.

그래야 물건을 떼 올 때 ‘진품 보다 더 진품’ 같은 물건들을 가져올 수 있고, 조금 다른 부분이 있을 때에는 손님들에게 ‘이 부분만 약간 다르고 다른 데는 정말 똑같아요’라고 설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로 그것은 자신의 신뢰로 이어질 법 했다. 이렇게 해서 그가 지금까지 확보한 단골 고객은 100여명. 그 중 한 여대생 고객은 한 달에도 2~3번씩 들러 친구들 것까지 구입해간단다. 이미테이션을 하고 다니는 것도 대학생들 사이에서 하나의 문화라는 것이다. 김 씨는 “명품 가방, 시계, 신발들 많이 쓰는데, 길가는 사람들이 하고 다니는 것들 중 태반은 짝퉁으로 보면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미테이션 제품에 대한 나름대로의 예찬론을 폈다. “품질면에서는 진품과 하등 차이가 없어요. 원단은 정말 똑같고, 박음질과 금속제에서 미미한 차이가 있을 뿐, 똑같다고 보시면 되요.” 실제로 제작 공장에서는 진짜 명품을 완전분해해서 똑같이 따라서 만든다고 했다.

얼마를 지나 김 씨와 함께 도착한 곳은 평범한 가방 가게. 잡다한 가방들을 어지럽게 걸어놓고 파는 여느 가방 가게와 다를 바 전혀 없었다. 이 가게의 단골인 김 씨를 맞는 주인의 표정은 밝았다. “1주일도 안 됐는데 또 오셨네”라는 주인의 말에 김 씨는 “새로 주문을 받은 것도 있고, 이번에 새로 일하실 분 소개도 시켜드릴 겸 해서요”라고 너스레를 떤다.

전화로 미리 주문을 해 두었다는 김 씨는 이번에는 카탈로그를 보지 않고 곧장 가게 주인을 따라 나섰다. 복잡한 상가 사잇길을 따라 걷기를 5분 여. 이번에는 계단을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기를 반복하더니, 단추, 지퍼 등 의류 자재들을 파는 듯한 가게들 사이의 허름한 문 앞에 섰다. 휴대폰으로 어디론가 전화를 하자, 문이 열렸다.

에어컨의 찬바람에 섞여 오는 가죽제품 특유의 냄새가 코를 엄습하면서 눈에 들어온 것은 도서관 장서실을 연상시키는 창고 내부. 5평 정도 되는 공간에 들어선 5개의 책장에는 책 대신 ‘특 A급’이라고 불리는 명품들이 들어차 있었다. 특 A급은 ‘진품보다 진품 같은 짝퉁’을 의미한다.

“단속이 심해서 물량이 달려. 일단 골라 보슈.” 창고를 지키고 있던, 40대 후반의 아줌마는 퉁명스러웠다. 동대문 짝퉁 시장의 대모로 불린다고 김 씨가 뒤에 귀띔했다. 가방 가게 주인은 국내에서 짝퉁 제품을 만들던 많은 업체들이 단속으로 부도가 난 상태고, 중국산 수입도 까다로워져 그렇다고 했다.

비닐 봉지에 담겨 있는 물건들은 스스로 샤넬, 펜디, 불가리, 에르메스, 샤넬, 페라가모, 구찌라고 우기고 있는 것 같았다. 김 씨가 미리 주문을 해두었다는 크고 까만 비닐 백에 든 가방들을 받아 들고 가방 가게로 돌아왔다.

다시 빙빙 둘러 오는 동안 주인은 많은 얘기들을 했다. “요즘 들리는 얘기는 온통 어디 부도났다, 어디 부도났다 하는 것 밖에 없어요.”, “(루이비통의) ‘스피디(일명 일수 가방)’, ‘바빈’은 진짜랑 똑같이 나왔으니까 최소 3배는 받으셔야 되요.” “나머지 가방들도 공장에서 2~3파스(출판사의 ‘쇄’에 해당하는 이 업계 속어라고 함) 정도 돌린 뒤에 나온 것들이기 때문에 거의 진품과 똑같아요.”

미리 김 씨한테서 받아뒀던 물품 대금 봉투를 가방 가게에서 커피 값을 지불하듯 내고는 가게를 나섰다. “이 가게가 진짜로 뭐 하는 가게인지 모르고, 여기에 걸린 가방을 사가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네요. 하하하. 조심해서 다루세요. 다 팔리면 300만원이 넘는 것들이니까.” 짝퉁 시장 체험에 도움을 받는 대신 짐꾼 역할을 톡톡히 해준 기자에게 김 씨가 재미있었다는 표정으로 내뱉었다.


정민승 기자 msj@hk.co.kr


입력시간 : 2005-08-03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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