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중심 복합도시 건설 예정지 충남 연기·공주의 이상한 풍속도

'보상금 효자' 속보이는 귀성···외지인은 농사꾼 깜짝 변신
행정중심 복합도시 건설 예정지 충남 연기·공주의 이상한 풍속도

행정중심 복합도시 건설 예정지인 충남 연기ㆍ공주지역은 지금 연말보상을 앞두고 토지 등 보상물건 조사가 한창이다. 일부 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떠나기 싫다는 이유로 조사를 거부하기도 하지만 상당수의 주민들은 행정수도 건설을 기정 사실화하며 과연 보상이 제대로 이뤄질 것인가에 관심을 쏟고 있다. 서울 등 수도권 주민들이 6월 15일 행정도시 특별법에 대한 위헌소송의 결과에 대해서 촉각을 곤두세우면서도‘충분한 보상’에 시선을 돌리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보상과 관련에 마을마다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영농보상금을 염두에 둔 외지인들이 직접 농사를 짓겠다고 나섰고 객지에 나가있던 자식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부모들을 찾아 일손을 돕는 등 ‘보상금 효자’도 늘고 있다.

영농보상 노린 외지인, 농사 시늉만

지난달 31일 행정중심복합도시 예정지에 포함된 충남 공주시 장기면 당암리 마을 앞 논. 녹색의 물결 속에 논 가운데 일부가 이빨 빠진 강냉이처럼 벼포기는 사라지고 시꺼먼 흙이 드러나 있다. 주변엔 잡풀이 무성하다. 바로 옆 다른 논에는 피를 비롯한 풀들이 벼보다 높이 솟아있다. 논두렁은 사람이 걸어 다니기 어려울 정도로 잡초로 뒤덮였다. 누가 보아도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을 금세 알아볼 수 있을 정도다.

행정도시 예정지인 충남 연기ㆍ공주 지역에는 이처럼 농사를 짓다 영농기술 부족으로 농사를 포기하다시피 한 논들이 여러 곳이다. 이들의 주인은 거의가 외지인들이다.

지난 3월 행정중심복합도시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한 후 이곳에 땅을 소유한 상당수의 도시인들이 현지 주민에게 빌려주었던 농지를 회수해 직접 영농에 나섰다. 토지보상금 때문이다. 공주시 장기면 당암리가 고향인 이모(46ㆍ대전 서구 탄방동) 씨도 그 중 한 명이다. 3,000여 평의 논을 갖고 있는 그는 동네 주민에게 소작을 주었던 논을 돌려 받아 주말에 내려가 직접 농사를 짓기로 하고 올 봄에 모내기를 했다. 이 씨는 “땅 주인이 직접 농사를 지으면 영농손실액도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직접 농사를 지어보기로 했다”고 실토했다.

하지만 농사일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매주 농사를 지으러 내려올 수 없는 노릇이어서 논은 하루가 다르게 잡풀이 무성하게 뻗으며 황폐해 갔다. 30% 가량의 벼가 말라죽자 그는 최근 농사를 포기했다. “모심기 등 중요한 일은 영농회사에 맡기면 된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으나 신경 써야 할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더라”며 “제초제를 뿌려도 효과가 없는 상황이 많아 그냥 지켜보고만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대전에 사는 임모(46) 씨도 지난 봄부터 주말마다 고향인 연기군 남면 종촌리에 내려와 벼농사를 짓다가 기술부족을 절감하고 농사를 포기했다.

직접 농사를 짓는 사람 외에도 농지를 회수해 위탁영농을 맡기는 사례도 많다. 이곳에서 위탁영농업을 하고 있는 이교완(41) 씨는“이전까지 위탁영농 규모가 300마지기(6만 평) 가량이었는데 올 들어서는 배가 넘는 650마지기(13만 평)에 달한다”며 “외지인은 물론 주민들도 소작을 회수해 맡기는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외지인들이 농사에 뛰어든 것은 영농보상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 충남도 행정도시추진지원단에 따르면 토지보상법상 수용되는 농지의 경우 ‘직접 농사를 짓는 사람에게 2년치의 농산물 소득을 보상한다’고 되어 있다. 행정도시 예정지인 연기ㆍ공주 지역의 경우 전체농지의 절반가량이 외지인 소유로 되어 있고, 이들 외지인 대부분이 영농보상금을 받기 위해 직접 농사를 짓고 있다고 현지 농민들은 전하고 있다.

외지인들의 농사포기나 농작물 관리소홀에 대해 현지 주민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특히 논을 빌려 농사를 지었던 사람들은 이중의 손해를 보고 있다. 농지가 줄어 영농소득이 감소한데다 실제 영농보상금을 받아야 할 자신들은 보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제대로 가꾸지 않은 논은 병충해가 심해 이웃 주민의 논에도 피해를 입히고 있다.

마을주민 유모(73) 씨는“지(자기)가 지(자기)땅에 농사를 짓겠다는데 뭐라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농사를 지으려면 제대로 해야지”라며 “올해 이 지역은 풍년을 기대하기는 글렀어”라고 말했다.

때 아닌 효도, 문중 땅에도 '군침'

연말부터 보상이 본격 시작될 것으로 알려지면서 연기ㆍ공주지역 시골 마을은 요즘 주말마다 객지에 나가 있는 자녀들의 나들이로 마을 전체가 활기를 띠고 있다. 명절때가 되어야 시골?찾던 자식들이 지금은 하루가 멀다 하고 부모들을 찾기 때문이다.

연기군 남면에서 4,000여 평의 논농사를 짓고 있는 임모(75) 씨의 집은 요즘 주말이면 온 가족이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지난해부터 두 아들내외가 번갈아가며 손자들과 내려와 집안일을 거들고 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 씁쓸함이 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는 “자식들이 자주 찾아오는 것은 보상을 받으면 조금 떼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라는 것을 잘 안다”며“속이 훤히 보이지만 자식들에게 오지 말라고 할 수도 없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집안에만 ‘보상금 효자’가 생긴 건 아니다. 수십년간 문중일에 신경을 쓰지 않던 사람들도 부쩍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 지역에서 600여 년동안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부안임 씨 문중에는 지난 한식때 기억도 가물가물한 집안 사람들 몇 명이 참석해 집안 어른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하지만 막상 이들은 “땅값이 크게 올랐다는데 문중 땅은 어떻게 되나”라는 속내를 드러내 집중해 문중 어른들의 마음을 뒤집어 놓기도 했다.

임모(61) 씨는 “마을 주변의 논밭과 임야가 문중 재산이라 보상금이 많을 것이라는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것 같다”며 “행정도시로 인해 삶의 터전도 잃고 보상금으로 인해 수 백년 내려온 집안간 화목이 깨어지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일부 문중의 경우에는 보상금을 둘러싼 갈등을 사전에 막기위해 “보상금을 분배하기보다 모두 대체용지를 구입하는데 사용하자”며 서둘러 사용처를 결정하기도 했다.

남면 사무소에서 만난 한 공무원은 “자식들이나 문중원들이 보상금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어찌 보면 인지상정 아니겠느냐”며 “일부 문중에서는 보상이 이뤄지기 앞서 재산 내역이 어떻게 되는지 파악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행정도시 건설이 추진되면서 지난해 면의 인구가 1,200여 명가량 늘었다”며“자식들이 주말 부모를 찾는 것은 물론 주소를 옮겨서 직접 모시겠다는 사람도 있는 실정”이라고 귀띔했다. 또 “개인 집안이든 문중이든 앞으로 보상금을 둘러싸고 크고 작은 일들이 많이 벌어질 것”이라며 걱정하기도 했다.

‘억지효도’를 받는 부모들은 자식들의 속셈(?)을 간파하고 대비책 마련에 갑론을박이다.보상금이 나오려면 4개월여가 남았지만 벌써부터 자식들과의 ‘수 싸움’에 들어간 것. 남면 종촌리 노인회관에서 심심풀이 놀이를 하던 노인들은 “땅값이 올라 목돈이 생긴다니까 집집마다 갑자기 효자들이 나타나고 있다”며 “하지만 나중을 생각해 보상금을 일찍 나눠줄 생각은 없다”고 이구동성이다.

사정이 이렇자 충남도는 자금관리나 재테크 등에 노하우가 없는 지역주민들이 보상금 수령 후 생길지 모른 갈등을 사전에 방지하기위해 전문가들로 컨설팅 그룹을 운영키로 했다. 법무,세무, 금융계 인사 등으로 구성되는 컨설팅 그룹은 보상금 지급이 시작되는 12월께부터 본격운영에 나설 계획이다.이들은 보상금 수령 후 분배과정에서의 법적인 문제와 세무 사항을 자문하고 재산분배를 둘러싼 가족간 분쟁이나 갈등이 생겼을 때 해결방안에 대한 상담도 해줄 방침이다.

충남도 행정도시추진지원단 김용교 단장은“개발지역에서는 보상금 수령 후 잘못해 돈을 모두 날리거나 사용처를 놓고 가족갈등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며“국책사업에 협력한 주민들이 보상금을 활용해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컨설팅 팀을 운영키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연기ㆍ공주=허택회기자


입력시간 : 2005-08-11 16:40


연기ㆍ공주=허택회기자 thhe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