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색지대 르포] 나이트클럽 '생존 이벤트' 란제리쇼


‘나이트클럽과 패션쇼’, 그리 적절한 조합으로 보이는 단어들의 묶음은 아니다. 그렇다면 ‘나이트클럽과 란제리’, 어떤 연관관계는 엿보이나 나이트클럽 본연의 의미를 되짚어볼 때 그리 적절한 조합은 아니다. 나이트클럽에서 ‘란제리 패션쇼’가 열린다는 소식을 처음 접한 뒤 이런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의 조합을 음미해봤다.

나이트클럽은 춤을 추며 술을 마시는 ‘음주가무’를 즐길 수 있는 젊은이들의 유흥 공간이다. ‘부킹’을 통해 ‘원 나이트 스탠드’가 연결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 까닭에 음성적인 느낌을 전부 지워버리기는 힘들지만 비교적 건강한 유흥 공간이라는 게 나이트클럽에 대한 일반적인 느낌이다.

다만 문제점은 불황으로 인해 발길이 뜸해진 손님들을 잡기 위한 나이트클럽의 지나친 마케팅이 문제다. 이미 <이색지대>를 통해 여러 차례 기사화됐듯이 몇몇 웨이터가 나가요 걸을 고용해 부킹을 통한 2차에 실패한 단골손님에게 붙여주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술에 취한 여성 손님을 룸에 있는 특정 손님에게 부킹시켜주는 방식으로 골뱅이 족 도우미 역할을 하는 웨이터들이 취재 안테나에 걸려든 경우도 있었다.

최근 발발한 최악의 방송사고인 인디밴드 카우치 멤버 두 명이 벌인 ‘알몸 노출 파문’의 근원지가 홍대 부근의 인디 클럽이 아닌 나이트클럽이라는 지적의 소리도 높다. 나이트클럽은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자정을 넘긴 시간에 각종 섹시 댄스 선발대회를 개최하곤 한다. 손님들이 자발적으로 나서는 섹시 댄스 선발대회의 경우 엄청난 고가의 상품 내지는 현금이 걸려 있어 경쟁률이 높은 데 대부분 ‘누가 많이 벗나’를 겨루는 무대가 되는 게 일반적이다. 이런 까닭에 나이트클럽의 섹시 댄스 선발대회에서는 여성 손님들의 상반신 노출이 빈번하게 벌어지고 심지어 알몸 쇼까지 선보이는 ‘지나친 손님’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란제리 패션쇼’를 개최한다니, 걱정부터 앞서는 게 당연한 일이다. 과연 이번에는 어떤 현장이 펼쳐질 것인지. 기자는 5일 0시 신사동 리버사이드호텔 지하의 ‘물나이트’에서 열린 란제리패션쇼 현장을 찾았다.

물나이트 내부는 꽉 차 있었다. 빈 테이블이 안 보일 정도로 손님도 많이 몰려든 데다 30여 명의 취재진이 몰려들어 걷기조차 힘들 정도였다. 춤추는 공간이었던 플로어는 패션쇼의 메인 무대로 쓰이기 위해 비어있었고 입구에서부터 플로어까지 이어진 통로 역시 패션쇼의 무대로 쓰기 위해 환한 조명이 내리쬐는 가운데 통제되어 있었다.

나이트클럽 내부의 흥을 띄우기 위해 애를 쓰던 DJ는 이제 장내 아나운서로 변신해 안내 멘트를 날리느라 바빴다. “이제 곧 란제리 패션쇼가 열릴 예정이오니 자리에 착석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안내 멘트에 내부 분위기는 더욱 웅성거렸고 일부 손님들은 플로어를 둘러싼 취재진 부근까지 나와 커다란 관심을 보였다.

예정된 자정을 넘겨 10분 여의 시간이 흐른 뒤 드디어 패션쇼가 시작됐다. 이날 패션쇼는 말 그대로 란제리 패션쇼였다. 그것도 가장 파격적인 란제리로 알려진 세계적인 란제리 브랜드 ‘허슬러’가 협찬해 노출 수위가 상당했다.

하지만 초반 분위기는 쉽게 달궈지지 않았다. 수많은 패션쇼 무대에 서 본 경험이 있는 베테랑 모델들의 워킹은 당당했고 이들이 선보이는 란제리와 뛰어난 몸매의 조화도 좋았다. 이에 취재진의 카메라 플래시가 연신 터졌지만 손님들의 반응은 예상외로 냉담했다.

이런 분위기를 일순 뒤바꾼 이는 바로 남성모델이었다. 탄탄한 몸매의 남성 모델이 타이트한 삼각팬티 하나만을 걸치고 무대 위에 나타나자 여성 손님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박수갈채가 터져 나오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때부터였다. 분위기는 이내 달라졌다. 이후 무대에 오르는 모델들에게 손님들의 박수갈채가 계속 이어졌고 다소 어색했던 분위기도 크게 달라졌다.

패션쇼는 무난하게 치러졌다. 란제리 패션쇼인 만큼 일정 부분의 노출은 피할 수 없는 대목이었지만 결코 ‘문란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속이 훤히 비치는 란제리도 여럿 선보였지만 모델들이 란제리 안에 다른 속옷을 덧입어 신체 특정 부위가 드러난 경우는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일반적인 패션쇼의 경우 속옷을 덧입는 것은 施逾프?않는다. 이런 이유로 패션쇼에서는 은근한 노출이 이뤄지는 게 일반적이다. 게다가 란제리 패션쇼의 경우 더욱 파격적인 노출도 서슴지 않는다. 물론 ‘선정성’을 감안해서가 아닌 패션쇼의 핵심인 ‘의상’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모델들이 노출을 감수하는 것이다. 이런 정황을 살펴볼 때 이날 란제리 패션쇼는 일반 패션쇼보다 훨씬 노출 수위를 낮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손님을 끌기위해 벌이는 단순한 마케팅 정도를 생각했던, 그래서 색안경부터 껴야만 했던 기자의 예상은 정확하게 빗나가 버리는 순간이었다. 모든 모델이 무대인 플로어에 모여 손님들에게 인사하는 것으로 모든 행사는 마무리됐다. 손님들은 박수갈채와 환호성으로 이들의 인사에 화답했고 그렇게 30여 분 가량 진행된 란제리 패션쇼는 마무리됐다. 다시금 플로어에는 손님들의 몫이 됐고 나이트클럽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댄스와 부킹으로 숨 가쁜 분위기가 계속됐다.

“이제 더 이상 섹시 댄스 선발대회와 같은 식상한 발상으로는 나날이 변화하는 손님들의 기호를 맞출 수 없다. 때문에 오픈 2주년을 앞두고 차별화된 아이템이 필요해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생각해낸 게 ‘란제리 패션쇼’다. 더 이상 선정적인 이벤트로 손님들의 발길을 붙잡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이런 좋은 기획의 이벤트를 자주 선보일 예정이다. 나이트클럽이 문화공간이 될 수도 있음을 보여주고 싶다.”

이번 행사를 총괄 기획한 탁선호 전무의 설명이다. 행사가 시작되기 직전 탁 전무는 다소 불안한 표정이었다. 워낙 취재진이 많이 몰려든 데다 준비된 란제리가 너무 파격적이었기 때문.

그렇지만 행사가 끝난 뒤 만난 탁 전무의 표정은 환하게 바뀐 뒤였다. 우선 취재진의 반응도 좋았고 내부 관계자들도 비슷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정작 그의 표정을 밝게 만든 것은 손님들의 반응이었다.

“손님들의 반응이 너무 좋다. 어느 정도 기대를 했던 게 사실인데 지금 분위기는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 말 그대로 기대이상의 분위기다”고 설명한 탁 전무는 “이와 같은 행사를 고정 이벤트로 만드는 것을 적극 검토해야겠다”는 차후 계획까지 밝혔다.

과연 실제 손님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탁 전무의 설명처럼 손님들은 상당히 고무된 상태였다. “패션쇼를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라며 신기한 반응을 보이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20대 후반의 직장인인 한 여성 손님은 “란제리 패션쇼를 한다는 게 처음에는 탐탁지 않았다”면서 “벗고 설치는 쇼 정도를 예상했는데 실제로 패션쇼를 보니 너무 좋았다. 사실 일반인들은 패션쇼라는 것을 볼 수 있는 기회는 TV 정도가 전부 아니냐”고 얘기했다.

이제 단 한번 치러졌을 뿐인 이색 행玲?대해 너무 칭찬 일변도의 얘기만 거듭한 듯 한 인상이 짙다. 그만큼 기대감이 큰 게 사실이다. 고액의 선물이나 현금을 내걸고 손님들이 스스로 섹시해지길 바라는 선정적인 이벤트가 아닌 문화행사와 접목된 이벤트를 도입하려 했다는 발상의 전환을 높이 산다. 물론 이 역시 손님을 모으기 위한 마케팅의 일환이라는 璣兀?분명하지만.

이제부터는 더욱 두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 한다. 지금의 좋은 의도가 고정적인 이벤트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초심을 지켜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 남는다. 허나 분명한 것은 어차피 마케팅이란 손님의 반응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라는 점이다. 이제는 손님들이 제대로 된 반응을 보이며 그들의 이벤??먼저 이끌어야 하는 시기가 된 것이다.


조재진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 2005-08-17 19:11


조재진 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