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된 시민의식, 술병 포장지 배설물 등 처리비용 해바다 수배씩 "눈덩이"

쓰레기에 할퀸 피서지
실종된 시민의식, 술병 포장지 배설물 등
처리비용 해바다 수배씩 "눈덩이"


부산 해운대 해수욕장 곳곳이 이곳에서 밤을 세운 피서객들이 버린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이성덕 기자

해마다 여름이면 몸살을 앓는 곳이 있다. 강릉의 경포대, 부산의 해운대, 대천 해수욕장 등 전국 각지의 주요 해수욕장들이 그렇다. 올해도 어김없이 전국의 해수욕장들은 피서객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로 홍역을 앓고 있다.

환경부에 따르면 해수욕장을 중심으로 한 피서지에서 2004년 한해동안 발생한 쓰레기 양은 4만9,000톤으로 2003년 3만7,000톤에 비해 47% 증가했다. 올 휴가철의 쓰레기량은 아직 파악되지 않고 있지만, ‘전년보다 많아졌다’는 해수욕장 청소 실무자들의 공통된 증언을 종합하면, 5만 톤은 거뜬히 넘을 전망이다.

쓰레기 1톤을 전문 업체에서 처리하는 데 드는 비용은 20만원 정도. 5만 톤 발생한다면, 처리비로 100억원이 드는 셈이다. 하지만 쓰레기 문제해결을 위한 시민운동협의회(이하 쓰레기협회)에 따르면 비용에는 쓰레기를 수집, 운송, 분류하는 데 드는 비용이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이것들까지 감안하면 150억원 이상이 든다. 이 까닭에 강원도는 휴가철에 오히려 적자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강원도는 여름 휴가 한 철에만 2,000만 명의 피서객들을 맞고 있다.

막바지 휴가를 즐기려던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던 8월 15일의 강릉 경포대 해수욕장. 다음 날 새벽의 해수욕장은 차라리 ‘경포대 쓰레기장’이었다. 맥주병과 소주병, 음료수병, 컵라면 용기, 과자 봉지 등에서부터 깔고 앉았던 돗자리 등 온갖 쓰레기들이 널려 있었다. 백사장 한쪽 끝에서는 갈퀴를 단 비치 클리너(트랙터) 두 대와 10여명으로 구성된 청소부들이 쓰레기와의 한판 전쟁을 시작했지만, 처음부터 역부족이다. 25명의 청소 아주머니들이 주간에 수시로 비워내는 쓰레기통의 쓰레기와 비치 클리너가 새벽에 수거하는 쓰레기의 양을 합하면 무려 30톤에 이른다.

빈 술병과 쓰레기들이 버려지니 양심처럼 대천 해수욕장 백사장을 뒤덮고 있다. 최흥수 기자

변형동 해수욕장 청소반장은 “해수욕장 관리실에서 가져온 쓰레기는 자신이 되가져 가기, 쓰레기 줄이기 등 클린타임방송을 시간마다 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이에 동참하는 피서객은 거의 없는 것 같다”며 낮은 시민의식 수준을 아쉬워했다. 8월 초에는 이틀 밤 사이에 소주병만 5,000개가 넘게 수집된 적이 있었다는 그는 거대한 술상을 정리하면서 그 자신이 취하는 것 같았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7월 말~8월 중순의 휴가 절정기에는 밤 12시부터 아침 8시까지 쉬지 않고 치워도 힘들 정도라고 했다.

서해의 해수욕장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충남 태안지역 30여 개 해수욕장에서 나오는 쓰레기량은 하루 평균 100톤. 휴가철 이전과 비교하면 3배 이상 늘어난 양이다. 만리포 해수욕장에서는 동해 여느 대형 해수욕장과 비슷한 20여 톤의 쓰레기가 배출됐다. 동해에 비해 잔잔한 수면의 이들 해수욕장에서는 먹다 버린 라면이 퉁퉁 불어 떠다니고, 식당에서 내놓은 음식쓰레기가 제때 수거되지 않아 악취가 진동하고 있다는 글이 인터넷에 줄을 잇고 있다. 대천 해수욕장을 가족들과 찾았다는 한 네티즌은 “그 넓은 백사장에 앉을 곳이 없을 정도로 쓰레기 천지였다”며 “너무 지저분해 돌아오고 싶었지만, 새벽부터 부지런을 떨며 찾아 간 걸음이 아까워 있을 수 밖에 없었다”며 대책 마련을 요구하기도 했다.

도시가 해수욕장을 안고 있는 부산의 사정은 더 이상 말할 것이 없다. 해수욕도 해수욕이지만, 상당 수의 문화 행사들이 해양 도시답게 해변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까닭이다. 청소년댄스 경연대회, 가요제, 비치 게임 페스티발 등의 행사가 있는 날이면 야간에도 낮 시간 못지않은 사람들이 모인다. 길이 1.4km의 광안리 해수욕장서만 하루에 수거되는 쓰레기 양이 평균 20톤에 이른다. 이 쓰레기를 수거하는 데 동원되?환경미화원만 70여 명이다. 수거 작업은 일렬로 늘어서서 해변을 훑고 지나가는 방식으로 새벽 5시부터 2시간동안 이뤄진다.

피서 절정기 때의 강원도 강릉 경포해수욕장. 밤 사이 피서객들이 먹고 버린 소주병이 무려 5,000개 이상 쏟아져나오고 있다. <연합>

해운대를 비롯한 부산의 해수욕장 쓰레기도 여느 해수욕장과 다를 바 없지만 폭죽, 풍선, 형광막대기 등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은 게 특징이다. 부산 수영구청 청소행정과 서창덕 씨는 “피서와는 무관한 문화 행사 관람객들의 의식 수준도 피서객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결국은 우리 국민 전체의 의식수준을 보여주는 부끄러운 현실”이라고 개탄했다.

광안리 해수욕장 관리반장 김명수 씨는 “해수욕장 곳곳에 드럼통으로 만든 쓰레기통과 분리 수거함을 두고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앉았던 자리에 그대로 두고 간다”며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사람들이 더 이상하게 보일 정도”라고 말했다. 또 “실종된 시민의식은 버려진 쓰레기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며 “식수대에서 발을 씻는 젊은이, 백사장에서 고기를 구워 먹는 피서객, 애완동물을 데리고 들어와 백사장에 배설하게 하는 사람 등등 보는 이로 하여금 혀를 내두르게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지적했다.

연례행사처럼 반복되는 쓰레기 무단투기는 도대체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월드컵 등에서 보여줬던 성숙된 시민의식은 다 어디에 갔는가. 이제는 한탄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그것이 의식 계몽운동이든, 물리적 처벌 강화 등 확실한 대책을 마련해야 할 때다.

“행락문화 바로 세우기 시급하다”
쓰레기시민협회 김미화 사무처장

쓰레기 문제에 관한 한 첫 손에 꼽히는 쓰레기시민협회를 찾았다. 이 단체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2001년 결성된 조직으로, 경기장내 쓰레기를 줄여 역대 월드컵 경기 중 가장 깨끗한 경기로 이끈 주역이다. 전국 200여 개의 시민단체와 연대해 현장을 모니터링하고 정부가 보다 선진적인 쓰레기 관련 정책을 수립하도록 돕고 있다.

“우선 정부 정책이 좀더 세련되어질 필요가 있습니다. 쓰레기통을 적절히 비치하고, 정기적으로 수거ㆍ관리하는 기본적인 것에서부터 공공 장소에서 특정 물품의 반입을 제한하는 등의 제도적인 장치들이 좀 더 꼼꼼해져야 합니다.” 이 협회 사무처장 김미화 씨는 이 같은 주장의 근거로 미국의 한 국립공원 예를 들었다.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그 관광지를 찾는 사람들이 무척 많음에도 불구하고 관광지 입구에 우리나라처럼 식당이나 매점 같은 게 전혀 없어서 관리인한테 물었습니다. 되돌아 온 답이 ‘우리 미국 사람들의 의식 수준도 그렇게 높지 않기 때문에 쓰레기를 발생시킬 소지가 있는 식당, 매점은 아예 허가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시민들의 의식 수준도 문제지만, 그보다 앞서가는 당국의 정책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2001년부터 전국의 주요 해수욕장을 모니터링하고 각종 캠페인을 벌이고 있지만 해마다 쓰레기량은 늘어나고 있습니다.” 결국 협회는 올해부터 모니터링하는 것을 포기하고 다른 일을 도모 중이다. “지난 4년간 해수욕장에서 배출되는 쓰레기 종류를 보면 과거에는 수박껍질 등의 음식물 쓰레기가 많았지만 최근에서 1회 용품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또 돗자리, 불꽃, PET병 외에서도 관공서나 업체에서 나눠주는 플라스틱 부채 등의 홍보물들이 쓰레기 양을 늘리는데 한 몫을 하고 있다. “홍보물을 나눠주더라도 같은 값이면 좀서 치밀하게 제작해서 계속 간직할 수 있도록 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김 처장은 또 피서지에서 수거된 빈병, 비닐 봉지, 플라스틱 등은 대부분 재활용이 가능한 것들이지만, 당국이 재분류해서 처리하는 데는 한계가 있어 그냥 소각하거나 매립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 결과 자원낭비와 함께 환경오염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들 쓰레기 대부분이 PVC로 제작된 것들인데, 소각하게 되면 다량의 다이옥신 등 유해물질을 배출합니다. ??중국이나 베트남 등지에?들어오는 검증되지 않은 원자재를 쓴 물건일 경우 그 심각성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당국은 당국대로 제도를 선진국형으로 개선하고, 시민들은 시민들 나름대로 행락문화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깨끗한 공기와 물을 찾아 휴가를 가는 것인데 무분별한 소비행태를 계속하는 것은 ‘내년에 여기에 오지 않겠다’고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두 손 가득히 들고 가서 빈 손으로 되돌아 오는 우리의 휴가 문화는 이제 바뀌어야 합니다. 궁극적으로 흥청망청 먹고 마시는 휴가보다는 휴식을 취하면서 삶을 재충전할 수 있는 휴가가 되어야 합니다.”


정민승 기자


입력시간 : 2005-08-23 16:45


정민승 기자 msj@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