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는 '깡통'에 불과, 조기 교육이 인성을 망친다

[한국 초대석] 컴퓨터 전문가 노중호씨
"컴퓨터는 '깡통'에 불과, 조기 교육이 인성을 망친다

우리나라 국민들만큼 ‘조기 교육’을 좋아하고, 중시하는 사람들은 세계적으로 드물 것이다. 이들은 뭐든지 빨리 시작하는 것이 성공에 이르는 지름길이라고 철칙같이 믿고 있다.

날로 치열해지는 경쟁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이에 걸 맞는 경쟁력을 갖추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조기 교육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한번 주변을 둘러보자.

일반 수업에서부터 예능, 체육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어린이들을 상대로 한 교육기관 들이 즐비하다. 특히 컴퓨터의 경우, 정보화 사회가 심화할수록 컴퓨터 교육은 더욱 조기화하고 있다.

물론 조기 교육이 필요한 분야가 있다. 반론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예술과 언어 분야가 그렇다. 빨리 시작할수록 좋은 결과를 가져올 확률이 높다는 주장으로, 상당한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렇다면 정보화 시대 생활 필수품이 되어버린 컴퓨터는 어떤가. 조기 교육이 필수적인가. 컴퓨터 전문가인 노중호(66)씨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잘라 말한다.

그는 열 일곱 살 전에는 절대로 컴퓨터를 가르치지 말라고 강조한다. 최근에는 이 제목으로 책을 내기도 했다. 조기 교육의 열풍 속에서 그의 말은 어찌 보면 시대착오적이라며 무시할 수도 있지만, 전문가가 그 같은 주장을 하니 그 이유가 궁금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기업 구조를 리모델링하는 기업병원인 노중호나노경영연구소에서 법인 전문의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오세아니아ㆍ태평양 정보산업연합회 국제 정보화 공로상, 한국 컴퓨터기자클럽 올해의 인물상 등을 수상한 컴퓨터 전문가다.

그는 왜 컴퓨터 조기 교육을 반대하느냐는 질문에 대뜸 “안타깝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컴퓨터는 인간의 약점을 보완하는 도구에 불과합니다. 인간이 동물보다 나은 것은 머리, 지능 정도입니다.

동물은 6감을 가지고 있는데, 인간은 5감입니다. 지난 서아시아 지진 때에도 동물은 살아 남지 않았습니까. 인간은 다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고, 컴퓨터는 그 한 도구일 뿐입니다.”

매일 컴퓨터와 같이 사는 그는 컴퓨터 부작용에 대해 종종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냥 지나쳐왔다. 그러다 한 일본 친구를 만나 충격을 받았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해 컴퓨터 조기 교육 반대를 외치고 나섰다. 일본 친구의 하소연은 이렇다. 40대의 그 일본인은 만나자마자 “살 맛이 안 난다”라며 한숨부터 내쉬었다.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퇴근 후면 일찍 집에 들어가 뒤늦게 본 외아들을 가운데 두고 아내와 함께 밖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나누고, 아이가 하루하루 커가는 모습을 보면서 이것이 가족이고 가정의 행복이구나 여겨 왔는데, 얼마 전부터 그 행복한 가정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하나 뿐인 자식이 다른 아이들과의 경쟁에서 뒤질세라 여섯 살 때부터 컴퓨터를 사주고 학원에 보냈는데, 당초 의도와는 달리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컴퓨터 앞에 앉아 혼자 시간을 보내고, 식사시간마저 잊은 채 게임에만 매달려 있어 건강을 해친다고 야단을 쳤더니 아예 우유와 빵을 챙겨 들고 들어가 방문까지 걸어 잠가버렸다는 것이다.

이제 아이는 누구와도 함께 있기를 싫어할 뿐 아니라 얼굴이라도 마주치면 재빨리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리고, 억지로 공원 같은 데 데리고 가도 말 한마디 않고 있다가 컴퓨터 게임기가 보이면 그곳으로 달려간다고 했다.

조기 컴퓨터 교육 강조는 위험한 일

노씨는 이를 컴퓨터 조기 교육이 인성(人性)을 망가뜨렸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컴퓨터를 가르치기 전에 인성 교육부터 시켜야 하는데 그 반대였다는 것이다.

교육의 중요성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이전에 교육의 목적의식과 시기, 방법 등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은 망각하고 있다고 그는 말한다.

대표적인 예가 컴퓨터 조기 교육인데, 교육당국이나 학부모들이 어린 자녀에간옭컸뼜?교육을 장려하는 것은 그들을 인간의 얼굴을 한 짐승인 ‘인면수’(人面獸)로 만들 수도 있다는 위험성을 전혀 모르기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인면수라니, 섬뜩하기까지 하다.

왜 그럴까. 그는 컴퓨터는 ‘깡통’이기 때문이라고 단언한다. 인간의 심보에 따라 엄청나게 다르게 사용된다는 것이다. 》?식칼은 음식을 만드는데 필요한 도구이지만, 살인이나 강도의 무기로 악용되기도 한다. 컴퓨터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먼저 사람됨이 중요한데, 인성은 배우는 것이 아니라 익숙해지는 것이라는 것이 그의 신념이다. 그렇다면 왜 ‘17세까지’ 인가. “태교부터 8세까지는 인성 체화시기 입니다.

그 이후 12세까지는 창조성이 중심인 예성 체화시기 입니다. 그 다음 17세까지는 세상 이치를 깨닫게 되는 시기, 지식이 뿌리를 내리는 때 입니다.”

그의 주장은 이어진다. “자녀 인생의 씨앗을 제대로 가꾸려면 봄철에 해야 합니다. 여기서 봄철이란 인생의 봄철로서 유ㆍ소년 시절인 열 일곱 살까지를 말합니다.

이 기간에 열매에만 지나치게 욕심을 부려 과다한 비료를 주거나 부담을 주면 열매를 맺기는커녕 도중에 시들어 자라지도 못하고 죽는 식물처럼 유ㆍ소년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의 봄철인 유ㆍ소년기에 컴퓨터를 가르치는 것은 식물을 키울 때와 같은 이치로 자녀를 인생 쭉정이로 만들어버리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컴퓨터가 인생 쭉정이를 만든다니, 이쯤 되면 단순한 설명이 아니라 무시무시한 경고다. 그의 목소리는 갈수록 높아진다.

“자동차는 미성년자들이 사용할 수 없도록 면허증을 발급해 주지 않으면서 폭력과 섹스, 전쟁 도박 등이 난무하는 컴퓨터는 유ㆍ소년들조차 사용하지 못하면 사회에서 낙오되는 것으로 교육시키고 있는 실정입니다. 자동차를 잘못 운전하면 사고로 사망하기도 하듯이, 컴퓨터도 잘못 사용하면 인생자체를 망쳐버릴 수 있습니다.”

그의 설명은 구체적으로 들어간다. 그는 인성이 마비된 사람이 컴퓨터 지식과 기술을 배우게 됨으로써 인터넷 자살사이트를 만들고, 사이버 섹스 호텔을 만들고, 노름판 사이트를 만들고, 채팅으로 불륜관계를 맺고, 해킹으로 남의 사업을 망치고, 공부하는 척 전쟁과 포르노게임을 한다고 지적한다.

때문에 나라 전체가 전 국민 컴퓨터 한 대 갖기 운동을 하든, 어린 학생에게 컴퓨터를 가르치고 잘하면 상장주며 칭찬하든 개의치 말고 우선 인성 체화 교육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예성 체화 시기인 3~12세에 컴퓨터를 배우는 것은 시간 낭비일 뿐 아니라 예성 체화를 방해한다. 컴퓨터를 배워 인터넷에 빠져들고 그 버릇을 갖게 되면 인터넷 중독증에 걸려 모두가 허사가 된다는 것이다.

그는 컴퓨터는 17세 이후에 배워도 충분하다고 주장한다. 컴퓨터를 인간 사고영역에까지 고도로 활용하는데 있어서도 인간의 뇌에 지식이 기억되고 있는 인지구조를 배우면 되는 것이지 컴퓨터를 배우는 것은 아니다.

뇌의 일부인 신피질에 인지되는 지식의 구조를 설계하는 이 같은 지식기술은 지식이 풍부해지는 장년기부터 배워도 된다. 컴퓨터를 천재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길은 인성 교육을 받은 후 중ㆍ고교에서 기초 지식을 마치고 대학에서 정보과학을 연구한 다음 대학원에서 시스템 과학을 공부하고 사회에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직장에서 일할 때 해당 분야의 전문지식을 습득하고 경험을 쌓더라도 컴퓨터 활용을 전제로 하면 된다. 이것이 그가 말하는 컴퓨터 천재의 엘리트 코스다.

12살까지 집에서 한학만을 배운 그는 20세가 넘어서야 처음으로 컴퓨터를 접하게 됐지만 ‘컴퓨터 기술 경진대회로 미국 대통령을 뽑는다면 틀림없이 당선될 것’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까지 됐다. 지금도 컴퓨터로 먹고 산다. 그런 경험이 있기에 이렇게 강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리라.

인터넷 중독증 등 사회문제 급증

그는 우리의 컴퓨터 교육에 있어 가장 큰 문제는 부화뇌동하는 것이라고 장담한다. 남이 하니까, 안 하면 큰 일이나 나는 것처럼 생각하고 그냥 따라 한다. 그리고 너무 조급하다.

컴퓨터를 못하면 사회에서 뒤떨어진다는 검증되지 않은 생각에 앞뒤를 가리지 않고 달려든다. 그러다 보니 인터넷 중독 등 부작용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결국 자신 뿐 아니라 가정에도 막대한 피해를 입힌다. 패가망신까지 이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정보통신(IT)과 IT운育?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우리나라가 IT 강국인 점은 사실이지만, IT운용 강국이라고는 말하기 어렵습니다. 컴퓨터를 첨단기술이라고 생각해 빨리 배워야 출세한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컴퓨터는 하나의 도구에 불과합니다. 깡통입니다. 인문ㆍ사회ㆍ자연과학의 기본 지식이 없으면 컴퓨터를 잘 다룰 수 없습니다. 항상 컴퓨터 뒤꽁무니나 따라다니게 됩니다.”

기술의 비약적 발전으로 앞으로 컴퓨터 사용은 급속도로 쉬어질 것이 분명하다. 자판만 누르면 원하는 것을 즉시 얻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그럴수록 어릴 때부터 컴퓨터에 의지하다 보면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리더의 기본 요건인 투시력과 창조력, 강인한 도전 의식인 실천력을 몸에 익히는 것과는 점점 더 거리가 멀어진다. 남이 만?것을 그대로 사용하다 보니 초래되는 당연한 현상이다.

그래서 그는 컴퓨터는 특히 어려서 가르쳐서는 결코 안 된다고 강조한다. 프랑스 등 선진국에서는 중ㆍ고교까지 컴퓨터를 안 가르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컴퓨터에 몰두하는 것은 품위 있는 대화나 언어 사용을 불가능하게 하고, 책을 멀리하게 할 뿐 아니라 무엇보다 문제 해결과정에서, 즉 일을 하는 데 있어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게 만든다고 그는 지적한다.

우리나라는 세계가 인정하는 IT강국이다. 전 국민의 72% 정도가 인터넷을 이용하고, 초고속 인터넷망 보급률은 78%에 이른다.

세계 50개국을 대상으로 한 국가정보화지수 조사에서 우리나라는 스웨덴 미국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7위에서 4단계를 뛰어올랐다. 반면 인테넷 없이는 잠시도 견디기 어려운 인터넷 중독자들도 급격히 늘고 있다.

한국정보문화진흥원은 410만여명이 인터넷 중독에 시달리고 있으며, 이중 208만여명이 중ㆍ고교생이라고 밝혔다. 게임 중독에 걸린 성인층도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사회문제가 될 정도다.

노씨의 주장은 과장된 측면도 있을 것이고, 어느 한 면만을 지나치게 부각시킨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컴퓨터 만능 세상에 대한 비판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이 요즈음 우리 실상이다. 결국 판단은 개인의 몫이지만.


이상호 편집위원


입력시간 : 2005-09-07 15:26


이상호 편집위원 sh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