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작" "진품" 엎치락 뒤치락…과학 감정으로 진실 가려질듯

종착점 다다른 '이중섭 위작시비'
"위작" "진품" 엎치락 뒤치락…과학 감정으로 진실 가려질듯

"더 이상 위작범에 대한 수사는 어려울 전망이다."

지난 8월 말 이중섭 작품 위작 시비와 관련, 참고인 조사를 받은 김모씨가 최근 몇 달째 계속돼 온 이중섭ㆍ박수근 작품 진위 논란과 무관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검찰 주변에서 흘러나오는 얘기다.

이로써 지난 4월 말 이중섭 화백의 유족이 한국미술품감정협회(이하 감정협회) 관련자를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이후 불거진 이중섭ㆍ박수근 위작 시비 논란은 머지않아 매듭지어질 것으로 보인다.

또 검찰이 과학적 감정을 의뢰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와 서울대 화학연구소, KAIST가 최종 감정결과를 최근 검찰에 통보한 상태여서 10월 초나 중순 쯤이면 사건의 전모가 밝혀질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6월 말 국과수와 서울대가 1차 구두 통보 할 때 '진품'쪽으로 결론이 났다는 얘기가 인사동 화랑계에 유포된 터라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이처럼 이중섭ㆍ박수근 위작시비가 5개월이나 지속된 데는 사건의 중대성에 비춰 검찰이 신중에 신중을 기한 데도 있다. 하지만 수사 초기 객관성과 공정성 면에서 의혹을 살만한 행동도 적잖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검찰은 5월2일 일본에 있는 이중섭의 아들 이태성씨를 불러 고소인 진술을 받은 데 이어 감정협회 관계자들의 출석을 요청했지만 이들의 요구로 1주일간 연기했다.

그 사이 호주에 거주하는 박수근 화백의 아들 박성남씨가 한국에 들어와 김용수(68ㆍ 한국고서연구회 명예회장)씨를 사도화 위조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김씨 또한 감정협회 관계자와 박성남씨를 명예훼손 및 업무방해 혐의 등으로 5월16일 고소하면서 이중섭ㆍ박수근 위작시비는 이태성-감정협회-김용수 3자간의 법정 다툼으로 확전됐다.

검찰 수사에 처음 문제점이 드러난 것은 6월3일 김용수씨가 소장하고 있는 이중섭ㆍ박수근 작품 600여 점을 검찰에 제출하는 과정에서였다. 감정을 위한 작품 분류 작업을 담당할 사람으로 객관성과 공정성이 의심되는 피고소인 감정협회 최모씨와 박수근 화백의 유족을 선발했다가 김용수씨의 격렬한 항의를 받고 교체한 것이다.

6월 말 해외 유학을 앞둔 담당 검사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안목감정위원 14명을 모아놓고 감정을 한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14명의 안목감정위원을 선정한 기준이 불분명하고 자유로운 의사표시를 할 수 있는 비밀주의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7월 초 검사 교체를 앞 둔 시점에서 신임 검사에게 위임하지 않고 안목감정을 실시한 한 점 등이다.






















14명의 안목감정위원 선정과 관련, 검찰의 비전문성에 비춰 실질적으로 선정에 관여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김윤수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은 전화 통화에서 "안목감정위원 선정은 검찰이 했고 당사자들이 검찰에 나가는 것을 꺼려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검찰 입회 하에 안목감정을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수개월째 이번 사건을 추적하고 있는 MBC 관계자에 따르면 14명의 안목감정위원 가운데 O씨는 작품의 진위를 잘못 판정해 구설수에 오른 바 있고, C교수는 출판을 위해 화랑가에 손을 내밀고 있는 데다, K씨는 감정협회측 최모씨와 막역한 관계에 있고, H화랑 P씨의 경우 제2 옥션을 준비하고 있어 감정단 구성의 공정성에 상당한 문제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한다.

검찰 수사는 7월11일 김철 검사로 교체되면서 공정성과 객관성에 더 신경을 쓰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8월 중순 중간 수사 보고 때는 상부에 의해 '보완'지시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검찰이 현대 미술사 100년을 다시 쓸 대사건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반면 수사 과정에 일부 미진한 부분이 지적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출처'조사 부분.특히 김용수씨 소장 작품의 경우 검찰은 초기 수사에서 김씨가 이중섭 작품을 구입했다는 인사동을 둘러보는 수준에 머물렀다.

김철 검사 체제에서는 1960년대 말 이중섭 유품(그림)을 일본의 유족에게 돌려주려고 노력했던 마찌다 당시 일본 총영사를 참고인 조사를 하고 부산일보 편집국장이던 추연근 화백과 전화통화를 하였다.

그러나 본지(2005년 8월16일, 2085호)가 수개월에 걸친 추적 끝에 마찌다, 추 화백 이외에 이중섭 작품이 대구에서 서울 인사동까지 올라온 과정과 이에 관련된 인사들을 상세히 밝혔음에도 이 부분에 대한 검찰 수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또한 초기부터 이중섭 유족과 김용수씨 소장 작품을 '위작'에 무게를 두고 수사, '진품'이라고 주장하는 전문가나 이중섭과 동문수학, 그의 작품에 정통한 지인 등에 대한 수사는 소홀한 게 아니냐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중섭ㆍ박수근 작품 진위논란은 사건의 중대성에 따라 국회까지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국회 관련 상임위에서는 9월 중순부터 시작되는 국정감사에서 수사를 맡고 있는 검찰과 과학감정 기관,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대해 강도 높은 감사를 벌일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국회 행자위 소속 열린우리당 심재덕 의원은 국과수에 자료요청을 해 놓은데 이어 같은 당 교육위의 백원우 의원은 서울대에 감정결과보고서 제출을 요구해놓은 상태다. 또 법사위는 검찰 수사과정에 불공정성, 편파 수사 여부를 따질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주로 감정 쪽을 추적해 온 MBC 관계자는 "안목감정이 공정성에 문제가 있고 위작범을 찾지 못한 상황에서 과학감정 결과가 주목된다"면서 "그러나 최근 과학감정에 대한 여러 소문이 나돌고 있어 과학마저 진실을 외면한다면 이번 사건은 미궁에 빠지든지, 외국 감정기관까지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중섭ㆍ박수근 작품이 위대한 문화유산으로 남을 지, 아니면 한갓 휴지조각으로 처분 될 지 앞으로 한 달이 고비가 될 전망이다.

김용수 한국고서연구회 명예회장

김용수 회장은 600여점이 넘는 이중섭 작품과, 450 점에 이르는 박수근 작품을 소장, 이번 진위논란의 중심에 서있다. 김 회장은 9월6일 이태성씨와 동시에 새벽 2시까지 검찰의 마무리 조사를 받았다. 7일 김 회장을 만나봤다.

-어제 조사를 받은 사항은.

내가 소장하고 있는 그림과 관련해 착오가 있는듯해 사실을 확인해주었다.

-진위논란이 5개월째 계속되고 있는데.

바로 그 점이다. 만일 내가 소장하고 있는 작품이 위작이라면 보름도 안돼 구속됐을 것이다. 5개월 이상 수사를 하고도 위작범을 찾지 못했다면 진품이 아닌가. 그리고 위작품을 1,000점 이상을 만드는 위작범이 어디 있나.

-왜 진위 결론이 쉽지 않다고 보나.

나도 배울만큼 배웠고(서울대 영문과 졸업), 국내 내로라 하는 지인들도 있지만 우리 사회 기득권층이 고가의 귀한 그림이 많이 나오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품을 위대한 문화유산으로 보지 않고 돈으로 보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진품으로 판명 날 경우 계획이 있나.

수 차례 얘기했지만 이중섭ㆍ박수근 화백의 작품은 민족의 문화유산이고 국민의 재산이다. 국가나 사회에 기증해 기념관을 지어 국민 모두가 감상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가짜로 판명 날 경우는.

이미 가짜가 아니라는 사실은 5개월의 시간이 말해준다. 과학적인 감정은 국내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세계적으로 유명 감정기관도 알고 있지만 검찰의 수사와 국내 감정기관의 수준을 신뢰한다.


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5-09-14 12:48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