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줌 순수의 바람을 던진 우리시대의 '꿈꾸는 괴짜'

만남 자체가 밀린 숙제 같은 사람이 있는데 소설가 이외수의 경우가 그렇다.

기인, 괴짜 등 세인의 입에 오르내리는 그에 대한 소문은 그를 호기심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고통 받고, 절망하고, 방황하는 주인공과 동일시하며 한편으로 위안을 받은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말에 동의할 것이다.

세상이 만들어 놓은 보편적인 기준의 반대편에 서서 그 견고함과 싸우며 버티고 살았던 무모한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렇겠다.

그는 한번쯤 만나야 하는 사람이었다. 출세작 ‘꿈꾸는 식물’, ‘장수 하늘소’, ‘들개’, ‘칼’, ‘벽오금학도’, ‘괴물’, 그리고 올해 발표한 신작 ‘장외인간’ 까지 작품 속 늙지 않는 ‘청년’ 은 일관된 모습으로 아직도 자신을 끌어안지 못하는 세상을 원망하기는 커녕 그가 세상을 통째로 끌어안을 힘을 키우며 구원을 모색하고 있었다.

감성발전소로 거듭나는 화천

미루던 숙제 같은 일은 ‘이외수와 함께 떠난 상상문학캠프’ (상상마당 주최)에서 이루어졌다. 장외인간의 배경이 되었던 춘천 고슴도치 섬은 그에게 정신적으로 빚진 젊은 문학청년들로 어느새 ‘푸르른 젊음 문학의 숲’으로 바뀌었다.

자기 삶을 철저히 사랑하고, 그렇기에 그만큼 학대했던 소설가 이외수는 건강한 육체와 나태한 정신이 부끄러워질 만큼 하얀 종잇장 같이 얇고 가녀린 모습으로 나타났다. 순수! 그를 보자마자 떠올린 단어다.

출간하자마자 이틀 만에 1억원이 넘는 빚을 갚고, 한달 만에 30만부가 넘게 팔렸다는 ‘장외인간’은 전작의 분위기와 사뭇 다르다. 주인공들은 2005년도 판 젊은이의 표본이다.

리니지 게임을 즐기고 인터넷으로 채팅하며 초딩(초등학생)이나, 누리꾼(네티즌)등의 인터넷 용어를 사용한다.

달이 사라진 세상에서 유일하게 달을 기억하는 주인공 이헌수는 결국 정신병원에 갇히지만 그에겐 퇴원해서 달이 없는 세상으로 나오는 것이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것이다.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이 없다. 그것을 나눌 잣대조차. 이헌수가 장외인간 같지만 이헌수 입장에선 오히려 정신병원 밖의 사람들이 장외인간이다.

그는 물질만능주의 세상을 한껏 비웃으며 인간답게 살려고 노력할수록 인간이하가 된다는 냉소어린 말도 서슴치 않는다.

그리고 어느 날 남소요라는 달빛 중독자인 여인을 만나 사랑에 눈 뜬다. 치열하게 살았고 고통 받으며 극단적인 행동, 자살을 선택했던 이외수의 작중인물들이 변한 것이다.

“젊은 시절 제 관심사는 정의로움이었습니다. 세상이 양심적이어야 하고 노력한 만큼 보상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죠.

현실은 그렇지 않더군요. 작중인물들은 현실적 부조리에 의해 좌절하고, 절망하고, 결국 자살했죠. 소설 속에서 주인공을 죽이는 것이 현실에서 죽이는 것보다 더 힘듭니다.

그들이 죽을 때 저도 함께 죽었습니다. 이젠 그들이 주검이 되게 하기 싫습니다. 옛 독자에게 욕을 먹어도 내 분신 같은 그들을 구원하고 싶었습니다.”

장외인간은 구원의 문학을 추구하는 이외수 작품의 새로운 전환점이다. 실제로 30년 넘게 문학의 모태가 되었던 춘천을 미련 없이 떠날 계획을 세운 것도 구원을 받은 후 자연 속에서 진정한 행복을 제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화천의 새로운 주거지는 감성다목(感性 多木) 마을이죠. 화천군의 홍보대사로 일해 줬는데 감성마을을 제안해오더군요. 감성마을의 주민은 자연이고, 인간은 그들의 친구일 뿐입니다. 인간이 여기 들어오기 위해선 여권을 받아야 들어올 수 있죠. 마을에서 집까지 1.7㎞는 맨발코스로 만들 겁니다. 노약자나 장애인은 달구지를 이용하도록 할거구요.”

수력발전소로 유명했던 화천은 문학 연수원, 문학 전시관등 문학이 중심이 되어 여러 예술 장르가 소통되는 감성발전소로 거듭난다.

감성발전소는 2007년 완공되고 이사는 내년 봄쯤 갈 계획이다. 그는 이제 화천군 감성 마을의 촌장이 되는 셈이다.

글 쓰는 작가에겐 감성이 중요한데 어느 날 하늘을 올려다 본 그는 빼곡히 들어찬 건물 때문에 숨이 막힐 것 같더란다.

하늘조차 마음대로 볼 수 없는 곳에서 좋은 글을 쓸 수 없겠기에 이사를 결정한 그다. “작가에겐 글 쓰는 곳이 고향이죠. 좋은 작품을 쓰기 위해 이사 가는 겁니다.”

이외수에게 좋은 문학은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문학이고 나쁜 문학은 ‘나뿐인 문학’이다. "글을 쓰는 이유는 나뿐이 되지 않기 위해서죠. 문학은 예술이고, 예술은 함께 나누는 거잖아요. 일기나 낙서 등 혼자만의 구원을 위해서 쓰는 글은 예술이 될 수가 없습니다.”

이외수에게도 ‘나쁜 문학’을 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의 20대부터 40대까지는 열등과의 싸움이었다.

세상이 원하는 보편적 기준인 가문, 학벌, 외모, 경제력 등 그는 어느 조건도 갖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무수한 열등과 싸웠다. 가장 힘들었던 열등은 가난이었다.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았지만 제대로 된 생활을 하지 못했던 그는, 어느 날 처갓집에 아내와 자식을 맡기고 “일년 동안 돌아오지 않으면 글을 쓰지 못해 자살한 줄 아십시요.”라는 말을 남긴채 강원도 정선 산골로 들어간다.

치열한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일년 후 ‘꿈꾸는 식물’을 발표했지만 그는 여전히 셋방살이를 벗어나지 못했다.

밖에 나가면 남편의 술 외상값 때문에 바깥 출입 조차 자유롭지 못했던 아내는 깊은 우울증에 빠졌고, 아이들은 주인집 아이들에게 기를 못 피고 살았다. 그는 가족조차 구원하지 못하는 자신이 부끄러웠다. “이제 가족을 구하기 위해, 가난과 싸우기 위해 글을 쓰자.” 투사 정신으로 글을 쓴 것이 바로 ‘칼’이다.

집을 사기 위해 글을 썼다는 작가의 자의식은 그를 8년 동안 절필하게 만들었다. 스스로에게 혹독해질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 그는 스스로 감옥 속으로 들어갔다, 교도소의 철문을 직접 주문 제작해 그의 집필실에 설치하고 감옥 속에서 글을 썼다. 그것이 ‘벽오금학도’다.

“예술을 위해서라면 일부러라도 상처를 줘야 합니다. 나를 열고, 나를 기꺼이 내주고, 나만을 위한 글에서 벗어나 우리를 구원하는 글을 써야합니다. 대신 나 자신에겐 혹독해야 하구요.”

삶의 최고가치는 '사랑'

세상이 끌어안지 못하는 영혼들의 쉼터가 될 화천 감성발전소에서 그는 인생의 세 번째 데뷔를 꿈꾼다.

하루 담배를 7-8갑을 피우는 흡연가에, 오래도록 엎드려 글을 쓴 탓에 허리가 고장 났고, 책을 가까이서 보는 습관 때문에 왼쪽 눈 수정체가 파괴됐다.

불규칙한 식사와 음주로 하루 한 끼 식사 밖에 하지 못하고, 알콜릭이라고 진단받은 후 그토록 좋아하던 술을 하루 아침 끊고 녹차를 마시는 사람이다.

땅위엔 세상과 정신병원, 모월동(募月洞) 세 부류의 장소가 있고, 최근 들어 달의 지성체와 채널링을 통해 교신한다고 말하는 그는 영원히 변치 않는 우리의 괴짜임에 틀림없다.

단 이젠 그를 끌어안지 못하는 세상을 비웃기보다 자신이 통째로 안아 버리려 하는 그는 이미 ‘장외인간’의 ‘사부님’이 되었다.

연신 줄 담배를 피우며 “악착같이 오래 살아 건강의 비결은 담배라고 할 겁니다.” 농담을 건내기도 하고 “건강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의해 좋아지기도 하고 나빠지기도 하죠. 가슴에 사랑이 가득하다면 건강이 나빠질 리가 없습니다.” 라고 삶에서 사랑을 최고의 가치로 뽑는 그는 이제 행복해지고 싶단다.

소설가 이외수에게 가장 큰 행복은 바로 마음의 눈을 뜬 독자를 만나는 것. “진실한 자는 아직도 눈물이 남아있고, 눈물이 남아있는 자에게는 고통을 굳게 껴안을 순수가 남아있다. 가을.”

그의 말이 가슴에 남는 가을 밤이다. 헌데, 거짓말처럼 이외수를 만나고 난 후 평소 보이지 않던 휘엉청 보름달이 자주 눈에 보인다.

혼자 있는 고요한 밤, 마음의 문을 열고 하늘을 보라. 달의 지성체와 채널링하기 딱 좋은 시간일테니. 소설가 이외수가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유혜성 cometyou@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