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의 실과 바늘을 꿰는 무대 뒤의 연금술사

그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인터뷰 후, 그의 뒷조사를 했다. 한 번의 만남으로 감 잡을 수 없는 사람이 있을 때는 종종 이런 방법을 쓴다.

김종헌 프로듀서(현 PMC 프로덕션 상무이사, 대학로 자유극장 극장장, 한국공연 프로듀서협회 이사)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함께 일했던 스태프에게 “그 사람 어때요?” 라는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누구도 망설이지 않고 시원, 시원한 대답을 해줬다. 그 중 몇 가지를 뽑았다.

집념과 자기확신의 로맨티스트

“그 사람 은근히 로맨티스트예요.”

대학로에서 한창 공연 중인 창작 뮤지컬 ‘뮤직 인 마이 하트’ 개관 첫날, 김종헌은 막이 내리자마자 무대 뒤 스태프 전원에게 빨간 장미꽃을 선사했다.

“배우들은 꽃을 받기 쉬워도, 스태프가 꽃 받을 일은 거의 없잖아요.” 그의 깜짝 선물은 스태프 전원을 감동시켰다.

소극장에서 소규모 예산을 들여 만든 뮤지컬 ‘달고나’가 성공적으로 막을 내린데 이어 ‘뮤직 인 마이 하트’도 반응이 좋아 12월까지 연장 공연을 할 계획이다.

프로듀서의 세심한 마음 씀씀이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활약하는 스태프에게 알게 모르게 힘이 되어 주었다. 그가 기획 제작한 두 번째 창작 뮤지컬이 호평을 받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신인배우, 신인 연출가로 구성된 ‘뮤직 인 마이 하트’는 처음 공연되는 창작 뮤지컬이다. 신인 작가 겸 연출가와 작곡가는 환상의 팀 워크를 이룬 소문난 ‘재미 콤비’인데다가, 신인 배우들은 신인이라고 하기에 의심이 갈 만큼 무대에서 끼와 재능을 맘껏 뽐내고 있었다. 이 뮤지컬의 비결은 바로 신선함이다.

팔팔 끓는 ‘젊은 피’의 열정을 세련되게 다듬고 안정되게 빛내도록 독려한 힘이 연출가의 몫이라면, 창작 뮤지컬 한 편을 끝까지 믿고서 밀고 나갈 수 있도록 도와준 버팀목은 공연 프로듀서의 몫이다.

뮤지컬 ‘달고나’ 시절부터 유명 배우보다는 알려지지 않은 신인을 뽑아 뮤지컬을 흥행으로 이끄는 것으로도 그는 유명하다. 비결은 의외로 간단하다. 배우를 발굴하는 안목.

“추진력이 있어요. 일할 때는 무서울 만큼.”

2000년 3년 동안의 런던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온 그가 첫 번째 한 일은 국내 최초로 뮤지컬 전용관인 난타관을 만든 일이다.

그가 송 대표(송승환)의 오른팔로 전용관 만드는데 일등공신 역할을 한 것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얘기다.

그 해 난타 게임 브랜드 라인센싱 체결 등 “일에 미친 사람처럼” 난타와 관련된 모든 일에 그는 아끼지 않고 자신을 던졌다. 송 대표가 무섭도록 일만 하는 그에게 “살살 하라”고 말릴 정도였다.

“모험을 즐기는 것 같아요. 가끔 무모하다 싶을 만큼 새로운 것에 도전을 하는 사람?”

김종헌, 그는 20대에 기획실장 자리에 올라 한참 잘 나가던 PMC 프로덕션을 그만두고, 바람의 아들처럼 훌쩍 런던으로 떠난 사람이기도 하다. 보장된 미래도 없이, 순간의 안락함을 던지고 말이다.

단지 세계적인 공연 프로듀서 카메론 매킨토시를 만나기 위해서였다고 하기엔 너무도 용감한 선택이었다.

런던 행 비행기 값을 벌기 위해 그는 택시운전사가 되었다. 자신이 제작실장으로 있을 때 배우였던 선배가 탑승하기도 하고, 술 먹은 승객에게 “잘 먹고 잘 살아라”라는 욕을 먹기도 했다.

승객이 남기고 간 백원 하나. “백원을 두고 승객과 실랑이를 벌였죠. 저에겐 그 백원 조차 절실했던 시절이었어요. 정당하게 받아낸 백원을 보고 결심했죠. 카메론 매킨토시 극단의 아시아 지사장이 되어 돌아오리라.”

무대 밖에서의 치열한 삶

비록 그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치열함이 오늘의 김종헌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스스로 시련과 난관을 만들고,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는 사람이다. 사서 고생한다는 말처럼.

“달타냥처럼 부딪치고 싶었어요. 카메론 매킨토시를 만나기 위해 가난과 배고픔, 온갖 어려움을 참고 견뎠죠. 5일 동안 어학연수를 받고 이틀 동안 샌드위치 장사를 하며 이를 악물었죠.”

카메론 매킨토시를 만나고자 한 꿈은 6개월 뒤 가까스로 이루어 질 뻔했다. 영어로 편지를 보내고, 답장을 기다렸지만, 오지 않았다. 오기가 생겨 직접 극단을 방문했지만 아쉽게도 카메론 매킨토시는 자리에 없었다.

“피터 로버츠라는 행정관리 부장과 면담을 주고 받았죠. 그가 난감한 표정으로 다른 프로덕션 리스트와 관계자 명단을 쥐어 주더군요. 받지 않았어요. 일년 후 다시 기회를 달라고 말하니 그가 흔쾌히 승낙하더군요.”

그 사이 그는 영어 실력을 키우며 1년 동안 자신을 잊지 말라는 의미에서 극단에 끊임없이 편지를 보냈다. 일년 뒤, 하지만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다. 카메론 매킨토시가 아니라 그에게 모태와도 같은 PMC 프로덕션이었다.

난타 에딘버러 페스티벌에 참가하기 위해 런던에 왔던 송 대표는 먼저 김종헌을 찾았다. 페스티벌 기간 내내 현지 코디네이터 역할을 담당한 그에게 행사가 끝날 때 쯤 송 대표는 넌지시 제안했다.

PMC 런던지사에서 일해 달라고. “포기한 건 아니었어요. 난타가 해외공연을 하며 알려지게 되면 카메론 매킨토시를 만날 기회가 생길 거 같더라구요. 공연 프로듀서로 당당하게 만나고 싶었어요.” 난타는 달타냥 같은 김종헌을 그렇게 붙잡았다.

“창작을 하는 사람의 고충을 안다고 해야 할까. 작품을 기다릴 줄도 알고, 작품을 가지고 대화하는 걸 좋아해요.”

김종헌을 독점해서 만나는 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쉴 새 없이 울려대는 핸드폰 벨소리. 실무자인 그를 찾는 곳이 너무 많았다.

공연 프로듀서는 세세한 일부터 큰 일까지 할 일이 많은 직업이긴 했다. 그런 와중에도 그는 다음 작품 아이디어 회의를 위해 연출가 작가 음악 감독과 1박2일 코스로 양평으로 떠날 수 있는 사람이다.

“좋은 작품을 구상하는 단계에선 함께 아이디어도 공유하고 회의를 거쳐 최상의 아이디어를 뽑아내야 하니까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메모를 하는 사람이다. “영화, 연극, 시간 날 때마다 공연을 보면서 쉴 새 없이 아이디어를 내지만, 결국 아이디어는 적절한 타이밍이 가장 중요한 거 같아요.”

뮤지컬 ‘달고나’를 함께 작업했던 음악 감독 구소영씨는 “술 마시면서 한 말도 다 기억하고 나중에 전화해요. 그때 그거, 괜찮은 아이디어 같은데, 한 번 해볼까, 하면서요”라며, 김종헌 프로듀서는 지나가다 흘린 농담도 적절한 시기에 필요하면 적용할 줄 아는 재능을 타고 났다고 말한다.

그의 첫인상은 분명 차갑다. 뚫어지듯 사물을 직시할 때는 목표물을 제압하는 카리스마까지 지녔다.

확신에 찬 눈빛은 차갑고 냉철한 사람으로 보이지만, 왼쪽에 살짝 패인 보조개는 그가 아티스트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 준다.

공대생이면서 배우를 꿈꾸었던 그다. 연극 동우회 ‘세모’에서 활동하며 대학생활의 전반은 무대에서 보냈다.

공연 프로듀서이기 전에 그는 배우와 연출가였다. 그렇기에 늘 배우를 존중하고 동경한다. 생김새처럼 하는 일도 이성과 감성의 절묘한 하모니다.

“정확한 발음을 구사하는 배우가 되기 위해 3년 동안 보기 흉한 보철기도 끼고 다녔죠.”

그래서 더욱 반듯하고 가지런한 하얀 이를 자랑한다.

내년 1월 공연기획사 쇼틱' 창업

배우를 꿈꾸었던 김종헌은 내년 1월 PMC 프로덕션에서 독립하는 것으로 또 한번 자기 한계를 시험하고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려 한다.

“쇼틱(Show Tic)이란 개인 사업체를 운영하게 됩니다. 국내에 있는 수많은 제작사가 쇼틱의 고객이 되는 셈이죠. PMC 프로덕션과는 프렌드십을 유지하며 1년 동안은 PMC 작품을 도맡아 할 예정이구요.”

쇼틱은 공연시장에서 일종의 틈새 시장 역할을 할 계획이다. 제작 진행 뿐만 아니라 마케팅까지 해야 하는 현재의 공연 프로듀서는 다음 작품을 기획하고 변하는 트렌드에 맞추기 위해 시간이 현저히 부족하다는 단점이 있지만 쇼틱은 그런 한계를 극복하고, 보다 전문화되고 분업화된 역할을 하게 된다.

국내의 공연 제작사에서 주문하는 대로 맞춤형 공연을 만들고 제작사들이 호감을 가질 만한 공연을 기획해 상품화 시킬 계획이다.

“보다 전문화, 분업화된 쇼틱은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한 목적이 강합니다. 창작자와 공연 제작사 사이를 연결시켜주는 다리 역할이라고 볼 수 있죠.”

늘 한계에 도전하는 김종헌, 그는 변화를 리드할 줄 아는 남자다. 그렇기에 10년 뒤 그의 행보가 더욱 궁금해진다. 앞으로 10년 동안만 만들어질 쇼틱의 공연보다 말이다.


객원기자 cometyou@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