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류값 고공행진·경기불황 여파로 난방용 연탄소비량 급증

요즘 연탄에 대한 시선이 예사롭지 않다. 올해 연탄 소비량이 전년대비 25%나 급증한 170만 톤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연탄을 구하지 못해 추위에 떨고 있다는 달동네 사람들의 이야기가 신문과 방송에 심심찮게 등장한다. 또 서민들만 쓰는 줄 알았던 연탄이 일반 식당에서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래서 이제 서민층을 위해 지원하는 연탄가격안정지원금을 줄이는 것도 고려 중이라고 한다. 판매소에서 장당 300원 정도로 거래되는 연탄 값은 정부의 보조금 229원 75전이 반영된 것이다.

지금은 서민들이 연탄의 주 소비층이지만, 1980년대만 하더라도 대다수의 국민들이 연탄의 온기에 의지해 겨울을 나던 시절이었다.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온 연탄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며 어려웠지만 지금보다 온기가 가득했던 시절을 되새겨 본다.

골목길의 연탄재를 보고 겨울이 왔음을 알아차렸다는 어떤 소설가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한동안 구경하기 어렵던 연탄재가 골목길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소설가의 말마따나 연탄재가 보이는 요즘 서울의 수은주도 영하로 곤두박질 친다.

TV에서도 예전에는 찾아 볼 수 없던 연탄관련 뉴스들이 등장했다. 불경기 속 연일 기름값이 치솟는 바람에 연탄 때는 가정이 부쩍 늘었다는 얘기며, 연탄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 만큼이나 힘들어져 검은 연탄이 ‘금탄’이 됐다는 소식, 리어카도 간신히 들어가는 동네나 지게에 연탄을 짊어지고 달동네에 배달 자원 봉사를 했다는 정치인의 모습까지 나온다.

남김없이 주는 연탄의 삶

실제 연탄으로 난방을 하게 되면 훨씬 경제적이다. 기름 보일러 대신 연탄 보일러를 들여놓았다는 한 원예농부는 한 달에 경유 4,700ℓ 씩 석 달 동안 땔 때 1,140만원이 들던 것이 연탄보일러로 바꾸고 나서는 8,000장의 연탄이면 충분하다고 했다.

연탄 공장에 직접 가서 받아오면 출고 가격이 장당 184원이므로, 8,000장이라도 150만원이 채 안 된다. 또 가까운 연탄직매소에서 사더라도 일반적인 직매소 가격이 230원이므로 180만원 정도에 그친다.

기름보일러에 비하면 6분의1에 불과한 비용. 가뜩이나 어려운 경기에 하루가 멀다 하고 치솟는 기름값을 생각하면 지긋이 눈 감고 연탄보일러로 바꿔봄직하다.

스위치만 까닥하면 마음대로 움직이는 기름보일러를 쓰다 한밤중에 일어나 연탄을 갈아야 할 일을 생각하면 불편한 것도 사실이다.

대부분 연탄 보일러를 사용하던 시절을 보낸 40대 이후의 세대라면 자다가 일어나 불씨 관리를 했던 기억이 이제 추억이 됐다.

형제 자매들끼리 순번을 정해 부모님을 대신해서 새벽에 일어나 연탄을 갈던 ‘효자ㆍ효녀놀이’ 는 힘겨웠지만 따뜻한 기억들이다.

사실 연탄 가는 일이 쉬울 것 같지만, 나름대로 내공이 필요했다. 하탄과 상탄의 구멍 맞추는 일은 기본이고 그 전에 위에 놓인 불씨 탄을 아래의 연소를 마친 탄과 분리하는 것도 다소 높은 수준의 기술을 요구한 탓이다.

연탄끼리 눌러 붙는 일도 다반사인데 집게를 꼭 쥐었다간 연탄이 두 조각나기 십상이고, 또 하탄의 허리가 잘려나가 곤란한 상황에 난감해 하곤 했다.

그렇다고 연탄 때는 예전의 삶이 ‘고생의 추억’들만 떠올리게 하지는 않는다. 눈 내린 아침 눈사람을 만들라치면 꼭 제 소임을 다하고 골목 한쪽 구석에 쭈그리고 앉은 연탄재를 눈밭에 굴리기도 했다.

눈사람의 뼈대 뿐만 아니라 눈과 입 코가 된 것도 검은 연탄이었다. 방과 후 집에 도착한 뒤에 만나는 연탄재는 그 자리가 그 눈사람의 묘지임을 알리는 비목과 같은 역할을 했고, 그 자리에서 동심은 눈물 참는 법을 터득하기도 했다.

연탄의 삶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눈 내린 뒤 빙판길이 된 달동네 골목길에 연탄재는 어김없이 널브러졌다. 가시는 걸음 걸음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하던 진달래꽃잎에 비할 수야 없겠지만, 컴컴해진 달동네 식구들의 안전한 귀가에 둘도 없는 동반자이기도 했다.

번개탄의 질긴 생명력

시인 안도현은 그의 시 ‘너에게 묻는다’에서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 너는 /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라고 나무랐지만, 연탄은 질풍노도 같은 사춘기 청소년들의 일탈을 막는 소품이기도 했다.

감당하기 힘든 외부의 충격과 내부의 혼란을 연탄재 한번 뻥 차는 것으로 마무리 지을 수 있게 한 화풀이 도구이기도 했다.

이 밖에도 연탄불에 국자를 올려 놓고 설탕을 녹여서 ‘뽑기(달고네)’를 만들어 먹다 국자를 태워먹기도 했다. 연탄불에 라면 끓여 먹다 면발이 익기도 전에 불어터진 라면에 속상해 하던 기억 등 연탄이 남긴 추억들은 무궁무진하다.

검은 연탄이 타서 하얗게 변하듯 연탄은 양면적이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하늘로 데려가기도 한 것이다. 겨울이면 연탄가스에 질식사 했다는 기사가 어김없이 신문지면의 한쪽 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가스를 마신 사람을 해독하는 데에는 장독에서 금방 꺼내 온 시큼한 동치미 국물과 설탕 없이 진하게 탄 커피가 특효라는 민방요법은 만인의 상식이기도 했다.

연탄 이야기를 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번개탄’이다. 연탄 가는 시점을 놓쳐 불이 죽기라도 하면 번개탄은 필수였다.

번개탄이란 원래 상품 이름인데 그 기능과 성능을 어찌나 잘 대변했던지 일반 명사가 됐다. 또 착화탄(着火炭)이란 이름으로 같은 상품을 출시하던 경쟁업체들은 번개탄의 위력에 쩔쩔매던 기억도 있다.

연탄 사용이 줄어들면서 번개탄의 생산량이 줄어든 것은 당연지사. 한때 전국에 20여 개 달했다는 번개탄 공장은 지금 너댓 개 정도만 남아 그 명맥을 잇고 있다.

서울에서 연탄공장이 지금은 이문동과 시흥동에 각 1개씩의 공장만 남아 한때 19개에 달했던 전성기의 10분의 1로 줄어든 것에 비하면 5분의 1로 줄어든 번개탄 공장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연탄의 수요 감소와 함께 생사의 기로에 섰던 번개탄이 때마침 늘기 시작한 레저 인구 덕에 그 감소 폭을 줄일 수 있었다. 야외 바비큐 파티 등 고기 밑에는 석쇠, 석쇠 밑에는 번개탄이 약방의 감초격으로 등장했다는 이야기다.

조개구이를 좋아하는 어떤 이는 조개구이가 한창 유행하면서 번개탄이 살아 남을 수 있었다고도 주장한다. 조개의 참 맛은 번개탄 불 위에서 만들어진다면서. 하긴 가스 불에 석쇠 걸치고 조개 굽는 곳은 보지 못한 것 같다.

비싼 숯불을 넣어주는 데도 그다지 많지 않았던 것 같고. 번개탄 바닥의 톱밥에 성냥불 하나 갖다 대면 활활 타올랐으니 화덕을 갖추고 불씨를 보관해야 했던 숯불에 비하면 번개탄의 신속성과 편리함을 따르기 힘들었다.

예전엔 번개탄을 톱밥으로 만들었는데 요즘엔 톱밥이 워낙 귀해서 폐목재를 분쇄해 만들고 있다고 한다. 폐목재 숯을 다시 밀가루 풀과 초석(질산나트륨:목탄 위에서 튀면서 타는 물질)을 범벅해서 건조시킨 것이 번개탄이 되는 것이다.

여하간 예전에는 잠을 자다가 방바닥이 차갑다 싶으면 연탄불이 꺼진 것이었다. 이럴 땐 어쩔 수 없이 부시시한 눈과 옷 차림으로 수고를 해야 했다.

한 손엔 연탄집게로 번개탄을 들고 다른 손으로 성냥불을 당겼다. 여기서도 하탄-번개탄-상탄을 관통하는 22개의 구멍을 맞추는 건 기본이고, 구멍이 잘 맞지 않아 연탄을 뺐다 넣었다,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다 보면 잠을 어느새 달아나버리곤 했다.

그런데 요즘 이 번개탄이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우선은 연탄이 두 장씩 들어가는 2탄 화덕대신 연탄을 자주 갈아주지 않아도 되는 고효율 3탄식 화덕을 많이 써서 불을 꺼뜨리는 일도 그만큼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결국 요즘 연탄 때는 집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가정에서의 번개탄 수요는 그만큼 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3~4년 전부터 널리 알려진 ‘아래로탄’의 출현이다.

번개탄의 두 배의 두께에 초석 함량을 늘려 화력을 높인 신형 번개탄이다. 신형이라고는 하지만 그 기능은 완전히 다르다. 아래로탄은 불이 잘 붙지 않는데다 연탄끼리 눌러 붙게 만드는 게 흠이다.

이쯤이면 ‘생활 필수품’이던 번개탄은 이제 ‘레저 필수품’으로 거듭났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야유회에서도 요긴하게 쓰이지만, 음식점에서도 참숯대신 아예 이 신형 번개탄을 쓰고 있고, 그 수요도 크게 늘고 있다.

번개탄도 연탄의 부활에 그 궤를 같이 하고 있는 셈이다. 옷깃 여미며 집으로 가는 길에 연탄불 삼겹살 혹은 번개탄 조개구이에 소주 한 잔이 생각나는 요즘이다.




정민승기자 msj@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