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환호성', 케이블 '아우성'

방송위원회(위원장ㆍ노성대)가 최근 KBS, MBC, SBS 등 지상파 방송 3사의 낮 시간대 TV 방송을 허용키로 결정한 이후 언론 산업계 전반에 논란이 그치지 않고 있다.

수혜자 격인 방송 3사는 짐짓 표정 관리에 신경 쓰는 반면 케이블TV, 신문 등은 방송위 결정의 편파성을 집중 성토하고 나섰다. 특히 지상파 방송과 직접적인 경쟁 관계를 이루는 케이블TV 업계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분기탱천’ 그 자체다.

방송위는 지난 9일 전체회의를 열고 지상파 방송사의 평일 낮 시간(정오부터 오후 4시까지) 방송을 12월1일부터 허용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방송위는 ▲TV 시청으로 인한 노동력 저하 ▲전력 사정을 고려한 에너지 절약 ▲케이블방송ㆍ위성방송 등 뉴미디어 배려 등의 이유로 그 동안 지상파 방송 시간을 제한해 왔으나, 현재는 이런 명분과 논리가 해소돼 방송 시간 운용을 방송사 자율에 맡기도록 했다고 밝혔다.

방송위는 또 케이블방송 등 유료 매체가 종일 방송을 하고 있는 데다 주요 선진국에서도 지상파 방송 시간에 제한을 두지 않고 있다는 점도 이번 정책 결정의 배경으로 들었다. 언론학계에서는 원론적으로 방송 환경의 변화에 맞지 않는 낡은 제도와 규제가 정비돼야 한다는 점에 동의한다.

9월 중순 방송협회가 ‘지상파 방송 운용시간 자율화’를 주제로 개최한 세미나에서 발제를 맡았던 최충웅 경희대 교수는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발달에 따른 방송 규제 완화가 세계적 추세이며 에너지 절약이라는 낮 방송 규제의 명분도 퇴색했다”며 방송 시간 자율화를 주장했다. 그는 또 케이블TV의 경쟁력이 강화된 데다 시청자의 다양한 욕구가 증대하고 있다는 점도 근거로 제시했다.

수 년 전부터 방송 시간 연장을 주장해 온 지상파 방송사들의 입장도 다르지 않다. 이들은 방송 시간 규제가 권위주의 정부 시절의 언론 통제 수단이었기 때문에 더 이상 명분이 없으며, 낮 방송을 하더라도 이에 따른 전력 소비량 증가가 여름 성수기 최대 소비량의 0.12%에 불과해 에너지 절약이라는 취지도 효력을 잃었다고 강조한다.

다매체, 다채널 등 급변하는 방송 환경과 함께 방송의 자율성 제고, 방송영상 산업 진흥을 위한 기반 마련, 시청자의 다양한 욕구 충족 등도 지상파 방송사들이 내세우는 방송 시간 운용 자율화의 이유들이다.

"케이블 TV 죽이기" 반발

그러나 이 같은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방송위 결정을 바라보는 경쟁 업계의 시선은 사뭇 날이 서 있다. 그 중에서도 케이블TV 업계의 반응이 가장 격하게 나타나고 있다.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산하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협의회는 16일 긴급 기자회견에서 이번 방송위 결정을 ‘지상파 방송 봐주기 및 케이블방송 죽이기’로 규정하면서 “매체간 균형 발전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이번 결정은 철회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케이블TV 업계에서는 방송위가 최근 내놓는 일련의 정책 방안들이 자신들의 숨통을 죄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한 관계자는 “낮 방송 결정에 이어 중간광고 허용, 간접광고 규제 완화 등의 정책도 추진되고 있는데 이는 명백히 지상파 방송사의 편만 드는 것”이라며 “이 같은 편파적 정책이 그대로 실시된다면 케이블TV는 전체 광고시장의 35% 이상을 지상파에 잠식당하는 등 생존 기반이 흔들리게 된다”고 주장했다.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 항변이다. 케이블TV의 주 시청 시간대는 낮 시간이다. 여기에 지상파 방송이 뛰어들게 되면 양측의 경쟁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문제는 유료로 송출되는 케이블TV가 무료 서비스를 하는 지상파 방송을 감당해낼 수 있느냐 하는 점인데, 바로 그 때문에 광고 역시 지상파 쪽으로 쏠릴 것이라는 게 업계 전망이다.

이렇게 되면 방송 광고 시장을 독과점하고 있는 지상파 3사의 지배력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지상파 방송사들이 전체 방송 광고 수익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82.8%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케이블TV 업계 내부에서도 지상파 방송사 계열 PP들의 돈벌이가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방송위의 ‘2004년 방송사업자 재산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케이블TV 업계(5개 홈쇼핑 채널을 제외한 122개 PP)의 전체 순이익 가운데 MBC드라마넷, SBS드라마플러스 등 지상파 3사 계열의 PP들이 가져간 몫은 무려 81.9%에 이르렀다. 결국 지상파 방송사와 그 계열 케이블TV가 사실상 방송 광고 시장을 거의 다 장악하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지상파 방송의 낮 방송이 시청자의 욕구와 선택권을 충족시킨다는 설명과 달리 기존 프로그램의 재방송에 집중될 공산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지금도 방송 3사는 방송 시간이 평일보다 많은 주말에는 상당 부분 재방송 프로그램을 편성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제작 역량이 받쳐주지 않는 마당에 방송 시간을 늘리는 것은 방송의 질적 하락만 불러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신문업계, 방송위에 철회 촉구

신문업계에서는 지상파 방송사들이 최근의 경영 압박 상황을 자구 노력 없이 방송 시간 연장에 따른 광고 수입 증대로 손쉽게 헤쳐나가려 한다는 비판도 제기한다.

낮 방송에 앞서 방만한 경영에 대한 구조조정과 아울러 시청자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제작 역량을 먼저 갖추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이른바 메이저 언론과 마이너 언론의 목소리가 일치하고 있다. 한국신문협회(회장ㆍ장대환)는 10일 방송위원회의 결정에 깊은 우려와 유감을 나타내면서 지상파 방송사 낮 방송 허용 방침을 즉각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협회는 “지상파 TV의 낮 방송이 실시되면 재탕 삼탕으로 시청자를 우롱하는 작태가 벌어질 것”이라며 “프로그램의 질적 저하 등을 우려하는 여론을 외면한 채 방송 시간을 연장한 것은 시청자를 무시하는 처사”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방송위의 결정이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방송위는 예정대로 지상파 방송사의 낮 방송을 실시하고, 향후 그 결과를 검토한 뒤 심야 방송도 추가로 허용한다는 계획이다.

방송위의 한 관계자는 “방송 시간 자율화는 2001년부터 공론에 부쳐졌던 사안인 데다 이미 여러 차례의 공청회를 통해 여론 수렴을 거쳤다”며 “방송위원 전원이 만장일치로 의결한 이번 결정을 철회하거나 변경하는 것은 어렵다”고 밝혔다.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