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적 선진경영 실천, 임금피크제 등 파격적 노사합의 눈길

해마다 국정감사 기간이 되면 도마 위에 오른 생선처럼 사정 없이 칼질 당하는 공기업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대부분의 경우 공기업 본연의 사명을 망각하고 방만한 경영과 제 식구 챙기기 등 복마전이라는 게 질타를 받는 주 원인이다. 공기업을 그대로 둬서 되느냐는 국민의 성난 목소리가 들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공기업이라고 해서 모두가 엉터리는 아니다. 그 중에는 민간 대기업 못지않은 효율성과 혁신으로 선진 경영을 실천하는 곳도 더러 눈에 띈다. 한국도로공사도 그런 대열에서 빠지지 않는 공기업 중 하나다.

도로공사는 최근 파격적인 노사 합의를 이뤄내 눈길을 끌었다. 퇴직 4년 전부터 임금의 10~40%를 줄여 지급하는 임금 피크제를 도입하고 기존 연봉제를 과장급까지 확대한다는 게 골자다.

영업소 관리 인원 감축과 주5일제에 따른 휴가 일수 축소 등에도 노사가 뜻을 같이 했다. 이 같은 새 노사 합의는 내년부터 시행에 들어가는데, 도로공사 안팎에서는 ‘공무원은 철밥통’이라는 세간의 비아냥을 불식시킬 만한 선택이라는 평가가 적지 않다.

제2창사 디딤돌은 건강한 노사관계

손학래 도로공사 사장은 “말 그대로 파격적인 합의를 이끌어낸 바탕에는 위기 및 혁신에 대한 노사의 공동 인식과 서로 신뢰하는 기업 문화가 있었다”며 “일반 국민들이 공기업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도로공사의 혁신과 변화에 대한 인식은 민간 대기업 못지않다”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손 사장은 또 발전하는 노사 관계를 디딤돌로 해서 조만간 ‘제2의 창사 선언’ 같은 굵직한 이벤트도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도로공사의 혁신 활동은 이미 일정한 성과를 내고 있다. 임직원의 사고와 조직 시스템 변화가 혁신의 가장 중요한 전제라는 인식 하에 취한 일련의 조치들은 2004년 공공기관 혁신 평가에서 최우수 성적으로 돌아왔다.

경영혁신단과 혁신 태스크포스 신설, 혁신 워크숍 개최 등으로 상시적인 혁신 마인드를 조직에 불어 넣음으로써 얻어낸 값진 결실이다.

손 사장은 혁신이 갑작스럽거나 거창한 변화라고 보지 않는다. “이를테면 요금소 직원들이 의자를 조금 돌려 운전자를 정면으로 맞이할 수 있도록 한 일도 혁신 활동”이라는 것이다. 아주 사소한 변화일지 모르지만 고객 만족을 향상시켰다는 이유에서다.

조직 혁신은 도로 시스템의 혁신으로 자연스레 이어진다. 교통 정체와 지체로 인한 운전자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고속도로 진입로와 분기점 등을 확장하고 개량하는 공사가 순차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요금 징수로 빚어지는 고속도로 톨게이트 정체를 없애기 위한 혁신적 전자지불 방식인 ‘하이패스’ 시스템도 시범 운영을 거쳐 2007년 말이면 전국의 모든 톨게이트에 설치될 예정이다.

이 시스템은 차로별 처리 능력을 크게 높여 통과 시간 단축, 연료비 절약, 배기가스 배출 저감 등 상당한 효과를 가져올 전망이다.

최근 행정중심도시 건설 등 국책 사업의 동시다발 진행으로 고속도로 건설 공사가 많아지면서 해당 지역 주민들과의 마찰 여지도 증가하고 있다.

도로공사는 이런 문제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주민, 시민단체, 지방자치단체, 학계, 언론계 등이 고루 자문위원으로 참여하는 ‘고속도로 건설협의체’를 지난 10월 발족시켰다.

자문위원들은 고속도로 건설과 관련한 각계 여론을 도로공사에 전달하고 사업 추진 과정에 적극 반영되도록 조언ㆍ감시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손 사장은 협의체 구성 배경에 대해 “고속도로 건설 과정에서 환경문제와 민원 등을 소홀히 다루게 되면 큰 문제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에 주민들과의 사전 협력을 통해 모두가 원하고 기술적으로도 완벽한 도로를 만들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사통팔달로 펼쳐지는 국가 기간 도로망처럼 확 트인 열린 경영을 실천하는 도로공사의 행보에 그래서 더욱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