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하듯, 삶을 조율하는 철학이 있는 음식母女

“사는 건 먹는 거죠.”

잘 먹기 위해 사는 것이 그녀의 요리 철학이다. 살기 위해 먹는가, 먹기 위해 사는가 라는 질문에 조금도 망설임 없이 당당히 말하는 요리사 김미란씨(35)에게 요리는 드라마다.

불란서 대사관 요리사인 어머니(윤건섭ㆍ67) 덕에 3살 때부터 외국 대사관 집 싱크대에서 물장구치며 놀았던 그녀는 유년 시절 대부분을 주방에서 보냈다.

냄새만 맡아도 어떤 요리인지 눈 앞에 선하게 그려질 때 쯤이 13살. 그때부터 카페나 레스토랑 서빙, 주방 보조로 일했다. 남다른 성장과정이었다.

“누가 시켜서 한 건 아니지만 그 시절 외식 사업에 눈 뜬 것 같아요.”

김미란씨는 요리하는 어머니 어깨 너머로 배운 불란서식 음식을 기초로 자신만의 독특한 음식을 발명했다. 치킨 카레 라이스인 ‘토닉 커리’와 토마토 스파게티 소스에 소시지를 얹은 ‘토닉 재즈’가 그것이다.

20대 초반에 그녀는 이미 작은 레스토랑을 운영했다. 지금의 남편 장성욱씨(35 전 국가대표팀 사격 선수)도 그녀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에서 인연을 맺었다.

“처음엔 눈 인사 하고 그러는 단골 손님이었죠. 매일 같은 자리에 앉아 한 가지 음식만 시키는 거예요. 다른 음식도 맛있는데 한 가지만 먹으니 관심이 가더라구요.”

남편이 시키는 메뉴는 김미란씨가 애정을 가지고 만든 ‘토닉 재즈’. 그녀의 이루지 못한 꿈이 만들어낸 음식이기도 하다. 레스토랑 한 켠에 놓여 있던 피아노. 저녁 시간이 지나면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부르던 그녀는 사실 가수였다.

“유명한 탤런트와 음반 작업을 했었죠. 한때는 가수로 성공하고 싶었고 연예인이 되고 싶기도 했는데 이젠 그것보다 요리하고 노래하며 그렇게 살고 싶어요.”

아직도 가수의 꿈을 버린 건 아니다. 언제든지 노래하는 삶을 꿈꾼다. 하지만 요리를 뺀다면 노래 인생도 성립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여자 김미란씨는 요리로 생을 조율하는 타고난 요리사다. 그녀의 삶 속에는 이미 요리에 대한 아이디어들이 곳곳에서 빛나고 있었다.

“맛있는 음식을 평생 먹고 싶었어요.”

남편 장성욱씨는 매일 ‘토닉 재즈’를 시키며 김미란씨와 미래를 꿈꾸기도 했다. 하지만 둘이 결합한 결정적인 계기는 다른 곳에 있었다.

암으로 투병중인 장성욱씨의 어머니에게 암 치료에 좋다는 건강식을 매일 만들어 병원으로 나르던 김미란씨의 정성에 그는 감동했다.

음식 하나로 사람의 몸이 건강해지기도 하고 나빠지기도 한다는 걸 그는 그때 처음 알았다. 암 말기인 어머니의 몸이 호전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요리는 사랑이고 사랑은 기적이기도 한가 봐요.”

그는 김미란씨가 자랑스러운 듯 껄껄 웃는다.

사랑이 있는 요리의 창조자

하루 종일 주방에서 음식을 해도 피곤한 기색 없이 집에 가면 가족들 음식을 새로 차리는 김미란씨. “치킨과 매운 것을 싫어하는 남편은 이제 제가 만든 토닉 커리가 없으면 밥도 안 먹어요.” 라고 말한다.

사랑은 많은 걸 변하게 하는 법. 음식 이야기를 빼면 그녀의 인생을 설명할 수가 없다. 그렇게 메뉴 하나 하나에 그녀의 인생이 숨어 있었다.

김미란씨는 최근 새로운 외식 사업을 시작했다. 어머니 윤건섭씨(67)와 함께 ‘토닉’(tontic since 1951)을 오픈 한 것이다.

주방장은 딸 김미란씨고 어머니는 자문 역할을 한다. 불란서식 레스토랑인 토닉은 어머니가 여러 나라 외교관을 상대로 50년에 걸쳐 요리한 경험을 살려 다시 한국인의 입맛과 영양을 고려해 만들어진 건강식 요리 전문점이기도 하다. 이름도 강장제라는 뜻의 ‘토닉’이다.

“1951년 어머니가 불란서 대사관에 요리사로 들어간 것을 기념으로 1951이라 붙였죠. 제 인생에서 요리사인 어머니를 빼면 오늘의 제가 없으니까요.”

요리는 어머니인 윤건섭씨에게 ‘운명’과도 같다.

윤건섭씨는 어린 나이부터 미제 물건을 팔고 다녔던 전쟁고아였다. 17세 때 불란서 영사관에 요리사 보조로 취직한 것이 연이 되어 50년 동안 외국 대사관을 상대로 요리사로 살았다.

“캔 유 스피크 잉글리쉬?”라는 대답에 “예스”라고 말하자 인터뷰에 통과했다. 간단한 회화 외에 다른 말은 들리지도 또한 하지도 못했다.

요리사가 영어 사전 하나 건네주며 공부하라고 했다. 그 당시 수련생으로서 혹독하게 영어회화 공부를 하고 요리 수업을 받았다. 불란서 대사관에서 일하면서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다. 우연히 하게 된 요리사지만 윤건섭씨에게 요리사는 천직이었다.

“난 아직도 행복해. 내가 요리사여서 행복하고, 평생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을 하며 살수 있어서 행복하지. 음식을 만들면서 먹는 사람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번지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어.”

윤건섭씨는 아직도 유창한 영어 회화실력을 자랑한다. 오랜 세월동안 외국 사람들만을 상대했기 때문이다. 외국 대사관 사이에서 윤건섭씨는 금세 유명해졌다.

요리사로 부와 명성을 빠르게 얻을 수 있었다. 아직도 그 시절 혹독한 교육법으로 요리를 가르칠 때만은 수련생 다루듯 엄해진다.

요리사 특유의 고집이 있어 윤건섭씨가 만드는 요리는 정석을 지킨다. 하지만 딸 김미란씨는 다르다. 어머니 어깨 너머로 배운 음식을 가지고 그녀는 조금씩 변형시킨다. 이른바 퓨전 음식이다.

윤건섭씨를 업그레이드 한 모습이 바로 김미란씨인 셈이다. ‘토닉 라비올리(tonic ravioli)’ 같은 메뉴는 김미란씨가 그렇게 발명한 요리다. 안에 밥과 야채가 들어간 찐 만두인 토닉 라비올리는 카레 맛을 한국 전통 만두로 표현한 특선 요리다

“남는 시간엔 주방에서 실험을 해요. 직원들에게 먹이기도 하고 반응을 살피죠. 아직도 누군가가 제가 한 요리를 먹는 모습을 보면 설레요.”

그녀가 만든 요리 중 제일 인기 있는 메뉴는 역시 매운 치킨 카레 라이스인 ‘토닉 커리’다.

비법 전수받는 딸 자랑스러워

윤건섭씨는 딸이 만든 음식을 먹을 때마다 감회가 새롭다. 50년 동안 요리사로 일했던 자신의 비법을 전수 받기에 바쁜 딸이 마냥 자랑스럽다.

“건강하기만 해라. 하고 싶은 거 하면서 행복하고 건강하고 잘 먹고 잘 살면 되는 거지. 그렇게 키우면서 음식 하나만은 몸에 좋은 걸로 해서 먹였죠.”

5년 전 요리사 일을 그만 둔 윤건섭씨는 아직도 이틀에 한번 꼴로 김치를 담그고 대사관 시절의 요리를 한다. 독거노인들에게 김치를 나르고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여주기 위해서다.

“엄마를 보면 너무 신기해요. 그렇게 평생 요리를 했으면서 아직도 요리 하는 게 즐거운가 봐요. 노래 부르면서 요리하는데 꼭 소녀 같아요.”

요즘은 김미란씨도 쉬는 날엔 어머니를 따라 독거노인의 집으로 향한다.

“음식은 나눠 먹어야 맛있는 거예요. 행복은 나누는 거잖아요.”

모녀에게 음식은 정을 돈독히 하는 매개체다. 노래를 하면서 요리를 하는 어머니 윤건섭씨와 아직도 가수의 꿈을 버리지 않은 딸 김미란씨 요리사 모녀는 이렇게 말한다.

“남자한테 ‘이쁘다’, ‘사랑한다’ 이런 말 듣는 것 보다 ‘음식 맛있다’ 란 말 듣는 게 더 좋아요.” 둘이서 운영하는 토닉(tonic)은 압구정동에 있다


객원기자 cometyou@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