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기운 막아주는 동물로 통해…'개 보다 못한 사람'에 귀감되기도

2006년 새해 병술(丙戌)년은 개(犬)의 해다. 이에 따라 우리에게 친근한 개가 다시 한번 주목을 받고 있다.

국립민속박물관에서는 ‘우리의 오랜 친구, 개’라는 주제로 개 그림 특별전이 열리고 있고 캐주얼 의류 브랜드 업체들은 개의 이미지를 활용한 상품을 내놓고 있다.

또 백화점들은 애견전시회, 애견용품기획전은 물론 개나 강아지의 토정비결을 봐주는 코너까지 운영하고 나섰다. 토종견 전문가들은 ‘개와 한국민속’이라는 주제의 학술대회도 계획중이다.

한국에 살고 있는 개들의 팔자가 진정한 ‘상팔자’로 거듭나는 것일까.

개는 사람이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동물이다. 유난히 개와 관련된 속담이 많은 우리 말이 이를 증명한다. 주인과 충복으로 관계를 밀접하게 맺어 왔지만, 그 관계가 썩 우호적이었던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 ,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쓴다’, ‘개를 따라가면 칙간(측간(변소)의 사투리)으로 간다’ 등 개와 관련된 속담치고 멸시와 구박의 흔적이 없는 속담은 드문 까닭이다.

또 욕은 어떤가. 우리 말에서 ‘개’를 빼놓고 ‘욕’을 논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진돗개, 세계적 독립품종으로 인정

이 와중에도 2005년 5월에는 한국 애견사에 길이 기록될 사건이 있었다. 130년 전통의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영국의 애견단체 케널클럽(Kennel Club)이 한국의 진돗개를 독립 품종으로 인정하고 나선 것이다.

진돗개도 영국의 콜리, 독일의 셰퍼드, 프랑스의 푸들처럼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고유의 이름으로 불릴 수 있게 됐다.

개에 관한 한 돈 아끼지 않기로 소문난 영국. 그 중에서도 유명 ‘애견단체’로부터 인정을 받았으니 한국은 동물 학대국이라는 비난에서는 어느 정도 벗어났음을 의미한다.

개와 관련된 속담과 욕들은 여전히 널리(?) 쓰이고 있지만, 한국의 애견시장 규모가 1조원으로, 애견인구가 400만명 수준으로 는 것을 감안하면 한국 개들의 ‘팔자’는 차츰 개선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견공(犬公)들의 지위 상승과 신분의 변화는 그들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의 변화가 한몫 했지만 인간 세계에서 종횡무진, 그렇지만 요란하지 않게 활약하고 있는 견공들의 공을 빼놓을 수 없다.

일반인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개는 단연 시각장애인 안내견이다. 보이지 않는 세상으로 내딛는 주인에게 빛이 되어주는 존재다.

국내에서는 삼성 안내견 학교(mydog.samsung.com)와 최근에 설치된 장애인 보조견 양성기관 3곳에서 안내견을 양성, 분양하고 있다.

91년에 설립된 삼성 안내견 학교는 이 분야 국내 대표주자로 해마다 15여 마리의 안내견을 양성해 무료 분양하고 있다

시계방향으로 인천공항 세관 마약탐지견

친숙한 느낌의 시각장애인 안내견과 달리 비교적 덜 알려진 도우미 견공들도 적지 않다. 청각장애인들의 귀가 되어주는 ‘청각도우미견’, 마음을 닫고 사는 외로운 사람들의 벗이 되어 치료 효과를 높이는 ‘치료도우미견’ 등이다.

삼성 안내견 학교 장재원(38) 차장은 “정신분열로 범죄자가 된 사람들을 수용한 감호소 재소자들의 치료에 참가했는가 하면, 중학생 시절 ‘왕따’를 당해 대인 기피증세가 심했던 한 남자 대학생(21)을 8년간의 치료 끝에 정상적인 생활로 복귀시켰다”며 치료견들의 혁혁한 공을 자랑했다.

95년부터 10년동안 치료견의 손(?)을 거쳐간 환자만도 4,000여명에 이른다고.

육군 최정방 비룡부대의 삽살개

병영내 자살, 총기 사고가 끊이질 않자 새롭게 등장한 군견도 있다. 사납게 생긴 셰퍼드 대신 12월 초 경기도 양주의 육군 제3군견 훈련소에 입소한 삽살개 열 마리가 그 주인공들이다.

이들은 적군의 침입 탐지 등의 임무가 아닌, 군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관심 사병’의 정서 함양을 위해 도입된 견공들이다.

군은 이들이 제2, 제3의 ‘GP총기난사사건’ 예방에 적지 않은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밖에 최근 선진국에서는 환자의 몸에서 분비되는 특정 호르몬을 이용해서 암을 찾아내는 ‘암 진단견’, 뇌 활동의 변화에 기인하거나 발작을 일으키는 사람들한테서 나오는 체취에 반응해 경고하는 ‘발작 경고견’의 수요도 늘고 있는 추세다.

장재원 과장은 “인간과 개의 관계는 앞으로 비약적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안내견에서 탐지견까지 쓰임새 다양

119 인명구조견

견공들의 활약은 인간의 복지 증진, 도우미 역할에 그치지 않는다. 사람의 실질적인 안위는 물론, 국가 전체의 안전에 결정적인 역할도 하고 있다.

산악지대, 건물 붕괴 현장 등에서 활약하는 인명 구조견, 공항과 항만에서 폭발물을 색출하는 폭발물 탐지견, 책 청심환 슬리퍼 말린고추 굴비 등에 은닉해 들어오는 마약을 찾아내는 마약 탐지견이 대표적인 경우다.

특히 최근에는 국제 공항이나 항만 등에서 마약 탐색견들의 활동이 두드러진다.

연간 200만톤의 물류를 처리하고 하루 3만명 이상의 여행객들이 이용하고 있는 인천국제공항의 경우 이들 물건에서 마약을 색출해 내는 일은 종종 덤불 속에서 바늘 하나를 찾는 것에 비유된다.

이 일에 사람의 후각보다 수만 배 발달했다는 래브라도 리트리버 종의 마약 탐색견이 동원된다.

현재 관세청이 보유한 40여 마리의 마약 탐색견 중 인청공항세관에서 활약중인 14마리의 탐색견이 색출해낸 올해 마약 건수는 28건. 금액으로 환산하면 7억원에 이른다.

경제발전과 함께 향락 계층의 증가로 마약 수요와 복용자가 증가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했을 때 이 마약 청정국 지킴이들의 역할은 어느 견공들보다 무겁다고 할 수 있다.

육십갑자 운행에서 개를 의미하는 ‘술(戌)’이 주술적으로 나쁜 기운을 막아주는 동물신으로 통하고 있는 것도 이 대목과 맞물려 흥미를 끈다.

오늘날 견공들의 활약상은 차치하더라도, 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충복(忠僕)의 상징이자 의리의 표상으로 통해 왔다.

배신을 일삼는 인간사회를 향해 짖어대는 듯한 개의 해인 2006년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궁금하다.


정민승 기자 msj@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