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들의 또다른 희망 '재활공학'최신공학기술과 IT접목으로 신체기능 보완, 재활 보조기구산업 활성화 해야

2005년 12월17일 오후 서울 올림픽공원 역도경기장에서 열린 댄스그룹 클론의 콘서트 ‘더 미라클‘(The Miracle)’. 공연장을 가득 메운 2,500여 관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기적이 일어났다. 강원래가 일어선 것이다.

기립형 휠체어를 이용, 자신의 두 발로 일어서 박수 갈채를 받았다. 강원래가 대중 앞에서 두 발로 일어선 것은 지난 2000년 11월 오토바이 사고로 하반신 장애를 갖게 된 뒤 꼭 5년 만의 일이다.

강원래는 이날 기립형 휠체어를 타고 직접 일어선 장면에 대해 “재활 보조기구가 앞으로 가져올 수 있는 또 다른 기적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공학기술과 IT가 접목되면서 장애인의 삶을 향상시켜주는 눈부신 제품들이 선보이고 있다. 이런 재활 보조기구의 이용은 손상된 신체적 기능을 보완하고 장애인의 일상생활과 사회활동을 원활하게 도와줄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문제는 이 같은 재활 보조기구에 대한 정보 부족과 보급의 미비에 있다. 현재 미국의 경우 각 장애 유형별로 재활 보조기구가 약 2만 여 가지나 상용화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재활 보조기구 하면 여전히 의수ㆍ 의족, 보청기 정도를 떠올릴 정도로 열악한 수준이다.

국내 재활 보조 공학 현황
국내 재활 보조공학은 이제 막 태동기에 있다. 2004년 4월 경기도의 지원으로 국내 최초로 수원에 설립된 재활공학서비스 연구지원센터는 재활 보조기구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장애유형 및 개인별 특성에 따라 적절한 기구를 추천해주며 무료 대여 서비스를 펼치고 있다.

일상생활 보조기구, 의사 소통 보완 및 대체기구, 이동 보조기구, 장애인 레저 및 스포츠 보조기구 등 250여 점의 재활보조기구를 갖추고 다양한 장애 상태에 적합한 기구를 지원한다.

요즘 장애인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는 재활 보조기구는 기립보조 장치다. 혼자 일어 설 수 없는 장애인의 몸을 고정시켜 세워 준다. 엎드린 자세에서 세워주는 프론형 스탠더, 누운 상태에서 세워주는 서파인형 스탠더, 똑바로 선 자세로 고정시키는 패라포디움 스탠더 등 자세별로 다양한 스탠더가 있다.

혼자 설수 없는 뇌병변 장애 아동의 자세 교정과 신체 발달을 돕는다. 단시간이나마 일어설 수 있다는 심리적 자신감 외에 혈액 순환과 뼈ㆍ근육의 강화라는 효과가 있다. 비용은 국내 제품은 100만원선, 기능과 디자인이 다소 뛰어난 외국 제품은 500만~ 700만원대까지 있다.

강원래가 이용한 기립형 휠체어는 서서 일하는 장애인을 위한 이동 기구다. 휠체어에 탄 상태에서 일어설 수 있고 이동도 가능하다. 휠체어에 부착된 의자의 높이나 각도가 조절되고, 무릎을 받쳐 주는 기능이 있어 하반신 장애인들이 일어설 때 다리가 꺾이거나 구부러지는 것을 방지하도록 디자인 돼 있다. 스웨덴이나 독일 등지에서 생산하는 이들 제품은 1,000만원대를 호가한다.

컴퓨터 보조기구의 발전은 가장 눈부시다. 손과 발의 장애가 있는 경우 안경이나 머리끈에 레이저포인트를 부착하여 원하는 글자판을 비추면 자판에 입력된다.

마우스 역시 화상 카메라나 센서를 이용하여 얼굴이 움직이는 방향으로 이동하도록 돼 있다. 킹 키보드는 손 떨림이 있어도 오타를 내지 않고 칠 수 있도록 자판이 큼직하게 배열돼 있고, 한 손만을 사용하는 장애인을 위해 고안된 키가 7개 밖에 안 되는 배트 키보드도 눈길을 끈다.

이밖에 의사 소통에 장애가 있는 언어 장애인을 위해 그림이나 음성을 통해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디지콤이나 슈퍼토커, 조이스틱이나 스위치 등을 이용하여 손이나 발의 장애가 있어도 자동차를 운전할 수 있도록 하는 운전 보조 장치 등도 나와 있다.

국내 재활공학의 낙후 원인 및 발전방안
첨단 제품을 비롯하여 재활 보조기구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국내 재활공학의 낙후 원인은 쉽게 말해 이용자는 어떤 제품이 있는지 몰라 사용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기업은 이용자가 없으니 생산할 계획조차 세우지 않는 시장 부재에 문제가 있다.

이 센터의 오길승 소장은 “우리나라는 재활 보조기구 생산 기술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의 삶에 대한 인식이 낮은 것이 문제”라며 “우선 수입을 해서라도 장애인들이 선진 재활 보조기구의 효과를 경험하게 하고 이를 통해 수요를 창출하는 것이 시장을 형성하는 방안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장애인 지원에 인색한 정부 정책도 재활공학의 발전을 가로 막고 있다.

1998년 보조공학법(Assistive Technology Act of 1998)을 제정(2004년 개정)한 미국은 재활공학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각 주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장애인과 가족이 보조공학 장비와 서비스를 구매할 수 있도록 저금리 장기 융자와 같은 재정 지원기구를 운영하고 있다.

보조공학 프로그램과 기술적 지원에 소요되는 연방정부의 기금은 한 해 2,000만 달러(한화 약 200억원)가 넘는다.(2004년 21,523,534달러)

남세현 책임 연구원은 “취업이나 교육에 필요한 기본적인 재활 보조기구가 없어 평생 시설이나 가정에 틀어박혀 살아가는 장애인들이 많은데도 우리 사회는 이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며 “장애인의 사회활동을 돕는 재활 보조기구의 보급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재활공학서비스 연구지원센터 오길승 소장

"장애인 삶 획기적으로 바꿀 도구"

"재활보조 기구하면 의수ㆍ의족 외에 생각나는 게 있나요? 장애인의 일상생활에 도움을 줄 재활보조 기구가 선진국에는 이미 수 만 여 가지나 나와 있는데도 우리나라 장애인들은 무엇이 있는지조차 몰라 쓰지 못했던 불합리한 상황이 그 동안 많았습니다."

경기도 재활공학서비스 연구지원센터의 오길승 소장은 "우리 나라 장애인들이 향후 선진국 수준의 발전된 재활공학서비스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 소장은 또한 "첨단 재활보조기구 뿐 아니라 높이 조절이 가능한 의자, 소변 주머니 등 단순한 재활 보조기구의 보급도 장애인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오 소장은 이어 이러한 재활보조기구의 보급 미비 및 정보 부족에 따른 심각함을 절감했던 경험담을 들려줬다. "예전에 배변 처리 문제로 학교에 다니지 못한 한 무학(無學)의 척수장애인 청년을 만난 적이 있어요. 1만원 짜리 소변 주머니만 구입하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였는데 안타까웠죠.

그 청년은 그 얘길 뒤늦게 듣고 바로 다음날 소변 주머니를 사서 검정고시 학원으로 달려갔어요. 소변백만 알았으면 여태껏 이렇게 살지 않았을 수 있었을 텐데 하면서요. 정보 부족이 그만큼 심각했던 것입니다."

오 소장은 이렇게 "장애인에 대한 재활보조기구의 보급은 소모적인 시혜적 정책이 아니라, 장기적인 측면에서 장애인의 노동력을 적극 활용하고 의료비 지출을 대폭 줄일 수 있는 생산적 정책"이라고 강조하며 이에 대한 국가적 정책 제고를 촉구했다.

생후 8개월 때 소아마비에 걸려 하반신이 자유롭지 못한 오 소장은 미국 서던일리노이대학교 재활학 박사학위를 받고, 1995년부터 한신대 강단에 서고 있다.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