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 인프라 이미 세계 최고수준, 황우석 파문 딛고 '주도권 유지' 지혜 모아야

황우석 교수의 모든 줄기세포 연구가 허위인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서울대 조사위는 구랍29일 황 교수팀이 2005년 사이언스 논문에서 만들었다고 한 줄기세포는 모두 환자 맞춤형 체세포 복제 배아줄기세포가 아닌 것으로 최종 확인됐다고 발표했다.

또 황 교수가 냉동 보관한 뒤 해동했다는 5개 세포 역시 미즈메디 병원의 수정란 배아줄기세포로 판명났다고 밝혔다. 서울대 조사위원회는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는 현재 찾을 수 없고 만들어졌다는 증거도 찾지 못했다”고 결론지었다.

서울대 조사위는 현재 진행 중인 2004년 논문에 보고된 줄기세포의 DNA 분석결과와 테라토마(기형암 형성) 검증, 복제개 스너피에 대한 검증 결과는 아직 통보 받지 못해 1월 초 최종 보고서를 통해 밝힐 예정이다.

황 교수팀이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를 만들었다고 할 만한 과학적 데이터를 전혀 찾을 수 없었다는 조사위의 결론은 황 교수가 ‘바꿔치기 당했다’는 맞춤형 줄기세포의 대상조차 없다는 추론을 가능하게 한다. 이와 관련 황 교수의 자작극이란 의혹이 불거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황 교수팀의 핵심 인물인 윤현수 한양대 교수는 “황 교수팀에서 의도적으로 미즈메디 병원의 수정란 줄기세포를 가지고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로 둔갑시켜 배양했을 수 있다”고 주장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여기서 황 교수가 ‘자작극’을 벌였다면 왜 MBC PD수첩에 가짜 줄기세포를 내주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이와 관련 PD수첩 관계자는 “처음 줄기세포 검증을 요구했을 때 황 교수가 난색을 표하며 줄기세포를 주지 않으려 했다”며 “그때 줄기세포를 주지 않으면 서울대, 고려대, 미국 뉴욕의 메모리얼 슬론-케터링 암센터의 로렌츠 스투더 연구팀에 분양된 줄기세포를 직접 검사하겠다고 압박하자 어쩔 수 없이 내준 것”이라는 뒷얘기를 털어놓았다.

왜 황 교수가 마지못해 줄기세포를 내줬는가 하는 의문을 나름대로 설명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 문제의 최종 결론은 검찰 수사를 통해 밝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국가적 투자 계속돼야"
문제는 황우석 사태가 ‘희망의 재생의학’으로 주목받고 있는 줄기세포 연구 전반에 미칠 파장이다. 세계 주요 언론들은 황 교수의 사기극 탓에 가뜩이나 윤리 논쟁에 휘말려 있는 줄기세포 연구자들을 더욱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국내에서는 황 교수팀의 연구 성과가 대부분 허위로 드러남에 따라 세계적으로 앞서 간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한국 줄기세포 연구 자체가 불신을 받으며 함께 침몰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일고 있다. 그러나 줄기세포 분야 연구자들은 황 교수의 연구는 줄기세포 분야의 한 갈래일 뿐 너무 비관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는 지적이다.

설대우 미국 피츠버그대 의대 교수는 “한국의 줄기세포 기술과 인프라, 정책은 이미 세계적으로 앞서가고 있기 때문에 이번 일을 잘 추스르면 한국이 주도권을 유지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과학은 과학적으로 입증하면 될 일이기 때문에 분명한 성과만 있다면 한때의 여론으로 매장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줄기세포 연구가 생명의학계에서 크게 주목을 받는 이유는 전통 의학이나 약학의 기존 개념을 뛰어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출현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세포 대체 치료를 통한 ‘재생 의학’ 가능성은 이전의 의학과는 차원을 달리한다는 것이다.

더욱이 윤리적인 논란만 정리 된다면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정보기술 산업 이후 미래를 먹여 살릴 바이오 산업의 핵심 기술로 평가된다. 우리가 황우석 파문에도 불구하고 이 분야에 국가적 투자를 계속해야 할 이유들이다.

인간 배아줄기세포는 1998년 미국 위스콘신대학의 제임스 톰슨 교수가 처음 수립했다. 이때 학계는 인간의 발생학과 분화연구, 신약개발 연구에 활용될 가능성에 환호했다. 이후 세계 생명과학계와 각국 정부, 제약회사들은 줄기세포가 새로운 치료의 길을 열 것이라고 기대하며 지원을 시작했다.

줄기세포 연구 분야는 배아줄기세포와 성체줄기세포로 크게 나뉜다. 또 배아줄기세포의 배양 방법은 △신선 배아를 사용하는 방법 △폐기 처분될 냉동 잔여 배아를 녹여 이용하는 방법 △동물 난자의 핵을 제거하고 인간 체세포 핵을 이식하는 이종(異種) 핵 이식 △인간 난자에 인간의 체세포 핵을 이식하는 동종(同種) 핵 이식 등 모두 4가지다.

박세필 박사가 주도하는 마리아생명공학연구소는 2000년 불임시술 때 쓰고 남은 냉동 배아를 이용해 줄기세포 수립에 성공했고, 2005년 8월에는 미국에서 특허를 획득할 정도로 이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앞서 나가고 있다.

노성일 이사장이 이끄는 미즈메디병원 역시 냉동 배아에서 줄기세포를 만들어내는 기술력을 세계적으로 인정 받고 있다. 또 차병원도 배아줄기세포 분야에 나름의 기술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상업적 성공보다 기초 다지는 작업 중요
한국은 성체줄기세포 연구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몸 속에 들어있는 골수와 제대혈(탯줄 혈액)에서 채취하는 성체 줄기세포 분야는 이미 임상실험 단계에 들어가 배아줄기세포 분야에 비해 눈에 보이는 성과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성체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료 연구는 배아줄기세포와 달리 윤리문제로부터 자유롭다는 장점이 있다.

성체줄기세포 치료 중 가장 잘 알려진 분야는 백혈병 환자들의 마지막 희망인 골수 이식이다. 이는 엉치뼈 안에 있는 골수에서 성체줄기세포를 채취해 치료에 이용하는 방법이다. 최근엔 피부, 지방, 눈, 유방, 장기 등에도 줄기세포가 있다는 연구보고가 있어 향후 성체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료 범위가 크게 확대될 전망이다.

국내 성체줄기세포 연구의 중심은 오일환 가톨릭대 교수가 이끌고 있는 ‘가톨릭 기능성세포치료센터’로 알려져 있다. 보건복지부가 지원하는 이곳은 과학기술부가 지원하는 ‘서울대 세포응용연구사업단’과 함께 국내 양대 줄기세포 치료 연구센터다.

현재 가톨릭의대는 신경외과 전신수 교수팀이 척수손상으로 하체가 마비된 환자를 치료하는 임상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한양대 배상철 교수팀도 지난해 10월 자가면역질환인 루푸스 환자 4명에게 조혈모 세포를 이식해 3명이 정상수준으로 회복됐다고 발표한 바 있다.

또 서울대 심혈관센터 김효수 교수팀과 아주대병원 신경외과 방오영 교수팀도 성체줄기세포로 환자 임상실험을 진행 중이다. 서울아산병원, 세브란스병원도 성체줄기세포 연구 분야에 가능성을 확인하고 투자를 늘려가고 있다.

줄기세포를 분화ㆍ증식시키는 기술을 보유한 국내 바이오 벤처기업만도 7, 8곳이 되고, 식품의약품안전청의 공식 허가된 성체 줄기세포 임상실험만도 모두 152건에 이른다. 세포 치료제 분야는 미국과 함께 한국이 가장 앞서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2005년 12월 29일 서울대 본관에서 열린 줄기세포 서울대조사위 기자간담회에서 노정혜 연구처장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또한 이번 황우석 파동을 계기로 전문가들은 너무 상업적 성공에 급급하지 않고 이 분야 기초를 튼튼히 다지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이를 위해 줄기세포 연구팀에 분자생물학과 유전학, 면역한 등 기초 분야 전문가를 광범위하게 참여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줄기세포 연구는 대량 배양과 분화, 환부 정착, 거부반응 제어, 암세포 전이 검토 등은 필수적인 과정이고 이는 생명과학뿐 아니라 바이오기술과 정보기술, 나노기술 등 첨단 과학이 뒷받침돼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황우석 사태로 줄기세포 연구에서 한국과 경쟁관계에 있는 나라들이 우리의 기술력을 깎아 내리고 있는 상황이지만, 이 분야 연구진들은 우리의 줄기세포 연구, 특히 배아줄기세포 분야에서의 능력은 여전히 독보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여전히 한국이 줄기세포 연구의 선진국인 점은 분명하다.


조신 차장 shinch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