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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장남자 신드롬, 性域을 넘다
문화·예술계의 '크로버 섹슈얼' 바람 사회 전반으로 확산



영화 왕의 남자

“연산이 광대 중의 한 명인 공길과 남색(동성애) 관계였다.”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영화 ‘왕의 남자(연출 이준익)’의 원작인 연극 ‘이(爾ㆍ작,연출 김태웅)’는 이 같은 기발한 설정에서 출발한다.

얼마 전만 해도 동성애를 다룬 작품은 대중에게 외면 당했다. 예술적 표현의 자유는 열려 있어도,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은 닫혀 있었던 것이다.

2002년 국내 최초로 동성애를 본격적으로 다룬 작품이었던 김인식 감독의 ‘로드무비’는 청룡영화제의 신인감독상과 신인 남우주연상(황정민)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 받았다.

그러나 이 영화가 동원한 관객은 고작 1만 6,000명(서울 기준). 아쉬움 속에 서둘러 극장 간판을 내려야 했다.

그러나 최근 이러한 ‘동성애=흥행 실패’라는 공식은 무너지고 있다. 제목부터 묘한 이미지를 풍기는 ‘왕의 남자’는 개봉 15일째인 1월 11일 현, 이미 관객 350만 명을 돌파했다.

영화의 원작인 연극 ‘이’또한 뮤지컬 ‘아이다’나 ‘노트르담 파리’ 같은 쟁쟁한 대형 뮤지컬 공연들을 제치고 공연부문 예매율 1위를 차지하며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

영화 속 왕 연산과 동성애를 나누는 여장광대로 분한 배우 이준기의 인기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여자보다 예쁜 외모가 돋보인 ‘공길’ 역 이후 이준기는 일약 ‘인터넷 검색 1위’에 올라섰다. 가히 신드롬이다.

이렇게 동성애 코드가 깔린 작품의 이례적인 성공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영화관에서 보면 연산이 공길에게 키스하는 장면에서 ‘왜 저렇게 변태야’하는 느낌이 안들어요. 연산이 공길에게 끌리는 게 충분히 이해되고 공감이 가니까요. 반면 대감이 공길에게 키스하려는 대목에선 여기 저기서 ‘저 변태’ 하는 소리가 들리죠.”

한국성적소수자 문화인권센터 한채윤 대표는 “동성애를 흥미거리의 쇼킹한 소재로 다룬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감정이 이입되도록 작품 속에 녹였다.

때문에 관객이 동성애에 대한 편견을 갖지 않고 바라볼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는 대중들의 동성애에 대한 시선이 근본적으로 변화한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기도 하다.

대중문화평론가 김동식 씨의 분석도 이와 맥을 같이한다.

“영화 ‘왕의 남자’는 과거 동성애를 주제로 했던 영화들처럼 ‘당신도 동성애를 아느냐’ 하는 질문을 전면에 던지지 않아요. 다만 작품의 플롯(plot)을 이끌어가는 모티브(motiveㆍ동인)로 보여주죠. 지금까지 연산에 대한 해석이 역사적ㆍ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주로 이루어졌다면, 이 작품은 동성애를 코드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여 어필한 것입니다.”

미에 대한 동경이 동성애 거부감보다 강하다?

‘여장남자’ 배우 이준기에 대한 뜨거운 관심도 대중의 내면적 정서를 보여준다. 영화 개봉 전 불과 1만 명에 그쳤던 이준기의 다음 팬 까페 ‘하늘아래 준기 세상’ (http://cafe.daum.net/myloverjunki)은 한 달 만에 회원 수가 20만 명으로 급증했다.

이준기는 10대와 20대 초반의 ‘오빠’ 부대는 물론 남학생 팬들에게도 만만찮은 인기를 얻고 있다. 극중 남자이면서도, 다분히 여성성을 지닌 인물로 그려지는 까닭이다.

“남자들이 ‘진짜 이쁘다’고 환호할 때 민망해요.” 신세대의 문화 아이콘으로 떠오른 이준기의 말이다. 찢어진 눈매에 긴 머리, 갸름한 얼굴을 지닌 그는 같은 동성에게조차 보호의 대상으로 인식되는 듯 하다.

이준기의 소속사인 멘토 엔터테인먼트 황정현 실장은 “실제 피부도 곱고 이목구비도 뚜렷해서, 같은 동성의 남성들에게조차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면이 있다”고 말한다.



서울 시내 한 대학교에서 남학생을 위한 공개 피부관리 강좌를 열자 취업면접을 앞둔 학생들이 방문해 피부관리를 받고 있다.

영화평론가 김영진 씨는 이러한 배우의 미모가 동성애에 대한 거부감을 잊게 한 주 요인이라고 분석한다.

“여장 남자 역을 맡은 이준기에 대한 관객의 호감이 대단합니다. 쉽게 말해 예쁘게 생겼다는 것인데, 동성애에 대한 편견의 중심에 있는 기괴한 것, 혐오스러운 것이라는 거부감이 이준기의 미모로 자연스레 희석됐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어 “이준기라는 배우는 다른 꽃미남 배우들과 달리 일종의 요기를 품고 있는 듯 보인다. 상쾌하고 매끈한 꽃미남이라기보다는 뭔가 발칙한 면을 숨기는 있는 옴므 파탈 같은 매력으로 다가와 호소력이 강하다”고 덧붙였다.

한채윤 씨도 “남성적 이미지의 다른 배우가 왕의 남자가 되는 공길 역으로 동성애를 연기했다면, 반응은 지금과 달랐을 것”이라고 말한다.

남성 속 양성 추구 ‘크로스 섹슈얼’

이처럼 남성 속 여성성에 환호하는 양성화 경향은 최근 패션 트렌드로도 이어지고 있다. 이른바 ‘크로스 섹슈얼’. 남성으로서 자신을 아름답게 가꾸는 ‘메트로 섹슈얼’을 한 차원 넘어서 아예 여성적인 코드로 치장하는 남성들의 스타일을 일컫는다.

이에 대해 김정일 신경정신과 원장은 “자웅(雌雄)일치는 인간의 무의식이 추구하는 가장 완벽한 아름다움의 지향점”이라고 지적한다.

김동식 씨는 이러한 남성의 양성 이미지 추구는 “다양한 남성성을 인정하는 변화에 기인하는 것”이라고 분석을 덧붙였다. 김씨는 “과거 남자들에게 예쁘다는 말은 수치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아름다움을 반드시 여성에게만 적용하지는 않는다.

남성을 바라보는 시선이 유연해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씨의 말처럼 성에 대해 한층 유연해진 시각에도 불구하고, 동성애에 대한 편견은 여전히 두터운 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한채윤 대표는 “동성애를 다룬 작품이 사람들에게 큰 관심을 얻는다고 해도 그것이 바로 동성애자의 인권 향상과 직결되기는 어려운 현실”이라면서 “그러나 사람이 살아가면서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충만한 감정을 느끼는 것은 이성이나 동성 같은 성의 분류를 넘어선 것이라는 점에 대해 이해를 높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배현정 기자 hjbae@hk.co.kr


입력시간 : 2006-01-19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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