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조사위 '과학사기' 결론, 황교수는 반박…특별수사팀 본격 가동

“나도 속았고 피해자다.” “인간 복제배아로 배반포 형성단계까지 성공한 것만 해도 독보적 기술로 인정 받아야 한다.” “2004년 줄기세포가 처녀(단성)생식이라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논문조작의 기준이 뭔지 모르겠다.” “6개월 시간을 주면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를 만들 수 있다.”

황우석 교수가 12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논문조작 사과의 형식을 빌려 서울대 조사위원회의 최종 조사결과를 반박하며 쏟아낸 발언들이다.

이날 회견은 자신의 실험실 연구원들을 줄지어 세워놓고 진행돼 황 교수의 줄기찬 언론플레이에 대한 비난도 거세게 일었다.

황우석 사태 이후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해 온 미국 피츠버그 의대 이형기 교수는 “이번 기자회견에서도 예외 없이 황 교수는 무균돼지이니 특수동물 복제이니 하면서 논문으로 검증되지 않은 연구 성과를 언론에 먼저 발표하는 기민함을 과시했다”며 “황 교수의 진정한 원천기술을 변명기술”이라고 비판했다.

"줄기세포 가짜, 원천기술도 없다"

앞서 서울대 조사위는 10일 최종 조사보고서에서 황 교수의 줄기세포는 애초에 존재한 적이 없는 완전한 ‘가짜’로 결론지었다.

2005년 논문뿐 아니라 2004년 논문도 철저히 ‘조작’됐다는 것이다. 또 그 동안 황 교수가 줄기차게 주장해 온 ‘원천기술’도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특히 논란이 된 배반포 형성 성공과 관련된 기술 수준에 대해서는, 서울대 조사위는 황 교수팀이 성공한 사실은 인정하지만 “이미 보유하고 있는 연구실(영국의 뉴캐슬 대학)이 있어 더 이상 독보적이라는 평가를 내리기 어렵다”고 의견을 냈다.

그러나 황 교수는 기자회견에서 “인간 복제배아 배반포 형성단계까지 성공한 것은 세계에서 우리 연구팀이 최초”라며 “이 분야에서 기술을 보유한 영국의 뉴캐슬 대학은 우리 연구팀의 자문을 받았으며 우리팀과 실력을 비교할 만한 곳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황 교수는 이어 줄기세포 3단계 기술 중 2단계 기술인 배반포를 100여 개 수립, 배양과 DNA 검사를 위해 미즈메디 병원측에 제공했는데도 줄기세포가 하나도 없다는 것은 문제라며 이 과정을 책임진 박종혁, 김선종 연구원 등 미즈메디 병원측에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1월 12일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황우석 박사의 대국민 사과성명발표회에서 황박사가 갖가지 표정을 지으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최홍수 기자










황 교수는 또 “인간의 난자로부터 형성된 제1극체를 다시 난자에 주입한 처녀생식으로 2004년 논문의 배아복제 줄기세포가 생긴 것이 아니다”라며 서울대 조사위의 결론을 반박했다.

하지만 황 교수는 “2004년 논문의 줄기세포 수립 당시 줄기세포팀장을 맡았던 류영준 전 연구원과 이유진 전 연구원이 허위로 보고했다면 자신은 알 수 없을 수도 있다”며 책임 소재를 흐리며 검찰 수사에 대비하는 자세를 취했다.

결국 2004년 처녀(단성)생식에 의한 줄기세포가 체세포 복제 줄기세포로 둔갑한 과정은 검찰 조사에서 황 교수와 류 전 연구원의 대질 조사를 통해 밝혀지게 됐다.

황 교수는 그 동안의 몇 차례 해명성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이 확보한 기술이 처음에는 줄기세포 수립 전체에 걸쳐 있다는 것으로 주장했다가 다음엔 줄기세포 수립의 원천기술, 이번엔 배반포 형성까지로 뒷걸음치면서도 계속 자신이 어떤 식이든 독보적 기술을 확보했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반면 검찰 소환을 앞두고 법률적 책임 추궁이 예상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미즈메디 병원측에 의한 바꿔치기를 주장한 데 이어 이번에는 “모든 사안에 대해 꼼꼼히 챙기지 못했으며, 대개 어떤 파트에서 일을 하면 그 내용을 받아보기만 했고 총체적으로 파악한 바가 없었다”고 논문조작 지시 혐의까지 발뺌했다.

한편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은 수사에 착수한 지 만 하루도 지나지 않은 12일 새벽 1시30분에 영장전담 판사를 깨워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황 교수의 집과 연구실, 미즈메디 병원 등 26곳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증거인멸의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검찰은 지난달 중순 황 교수팀 연구원이 컴퓨터 하드디스크 내용을 삭제한 뒤 서울대 조사위에 낸 사실을 주목하고 있다.

이와 관련 최근 일각에서는 2004년 논문을 쓸 당시 1번 줄기세포가 체세포 복제가 아닐 수 있고, 논문 데이터가 조작됐다는 사실을 연구팀 내부의 다수가 알았고, 또 조작 관여자가 한 사람이 아닌 여러명일 정황도 드러나고 있다.

1월 12일 황우석 교수와 관련된 17곳의 압수수색을 실시한 검찰이 서울대 수의대에서 압수수색을 마치고 압수물을 운반하고 있다. 조영호 기자

특히 논문 작성 당시 류영준 박종혁 김선종 연구원은 테라토마 사진이 조작된 것에 대해 함께 모여 의견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조작·연구비 횡령의혹 등에 수사 초점

결국 실험실에서 벌어진 거짓과 조작에 대한 진실이 검찰의 손에 맡겨졌다. 검찰은 내주부터 황 교수 등 고소ㆍ고발인에 대한 소환조사를 할 것으로 보인다.

수사의 초점은 황 교수팀의 논문 조작을 주도하고 지시한 사람이 누구인가 하는 문제와 막대한 연구비 횡령 의혹에 맞춰질 전망이다.

논문 조작 지시와 관련, 서울대 조사위는 최종 조사결과 발표에서 황 교수와 서울대 수의대 강성근 교수, 미국 피츠버그대 제럴드 섀튼 교수 등 3인이 주도적으로 개입했다고 밝혔다.

조사위는 특히 강 교수가 2005년 사이언스 논문 작성 과정에서 데이터 정리와 조작을 실무적으로 주도한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그러나 조사위는 “관련자들의 진술이 서로 엇갈려 확인하지 못한 부분이 많았다”며 구체적 사항에 대해선 검찰의 수사를 통해 밝혀질 것으로 기대했다.

황우석 박사를 지지하는 네티즌 연대 회원들이 1월 11일 저녁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서 촛불 집회를 열고 있다. 박서강 기자

황 교수가 피츠버그대에 파견된 김선종 연구원 등에게 병원비와 여비 명목으로 전달한 5만 달러의 출처 등 의혹이 일고 있는 연구비 사용내역은 서울대 조사위 보고서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 역시 검찰이 밝힐 몫으로 넘겨졌다.

현재까지 밝혀진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황 교수팀에 지원한 돈은 모두 658억원으로 집계됐다. 여기에 기업들의 지원금을 합하면 쉽게 총액은 700억원을 넘을 것으로 보인다.

세부 지원 내역을 살펴보면, 과학기술부가 337억원이고 정보통신부가 43억원, 보건복지부와 서울대병원의 줄기세포허브 지원금 63억원, 경기도의 황우석바이오장기센터 건립비용 215억원 등이다. 이중 순수 연구비는 113억5,600만원이다.

이밖에 황우석후원회가 모금한 33억원 중 19억원이 황 교수에게 전달됐다.

포스코는 지난해 황 교수를 생명과학 분야 석좌교수로 임명하고 향후 5년 간 15억원의 기금을 약속하고 이미 3억원을 지원했다. 농협중앙회는 10억원을 축산발전 연구 기금으로 전달했다.

과기부는 최근 국회에 제출한 황 교수 연구비 관련자료에서 “집행된 순수 연구비 84억원 중 여비와 기술정보활동비 등 용처의 파악이 어려운 금액이 8억2,000만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최고과학자 연구지원비는 예우 차원에서 집행 내역을 사후 보고하도록 되어 있어 비교적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돈으로 알려졌다.

그렇더라도 그 많은 연구비가 어디에 어떻게 쓰였는지 드러난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황 교수가 윤현수 교수와 안규리 교수를 통해 박종혁, 김선종 연구원에 전달한 5만 달러의 출처도 불명확하다.

심지어 여야 정치인 여러 명에게 수백만원씩 정치후원금을 전달한 의혹도 있다. 만약 황 교수의 연구비 유용이 드러날 경우 업무상 횡령죄 적용은 불가피하다.

또 난자 확보와 관련 황 교수가 연구원의 난자를 강압적으로 취득하면서 교수직 등 ‘반대급부’를 제공한 것으로 확인될 경우 생명윤리법 위반으로 사법처리가 가능하다.

여론, 충격 불구 "기회 다시 줘야"

한편 황 교수의 논문은 조작으로 점철된 과학적 사기라는 서울대 조사위의 최종 결론에도 불구하고 논란의 마침표가 쉽게 찍어지지 않고 있다.

‘아이러브황우석’ 카페 등 황 교수 지지자들은 “믿을 수 없다. 황 교수를 죽이려는 음모다” “우리는 황 박사의 광신도가 아니라 대한민국 국익을 가로채는 매국세력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몸부림치는 대한민국 광신도들이다” 등 드러난 진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반발하고 있다.

일반 여론 또한 비난보다는 69%가 “황 교수에게 기회를 다시 줘야 한다”는 의견인 것으로 알려졌다.

고려대 최장집 교수(정치학)는 “황우석 사태는 민주주의가 퇴행할 때 어떤 사태가 벌어지는가를 잘 드러내는 징후적 사건”으로 분석했다.

최 교수는 “생명공학의 업적을 매개로 한 민족주의ㆍ애국주의의 동원은 민주정부의 정책지원과 운동의 열정이 결합하면서 진실과 비판이 억압되는 일종의 ‘총화단결’을 실현하는 듯한 유사 파시즘적 분위기를 연출했다”면서 “황우석 사태에서 과거 민주화 운동 세력의 일부와 극우적 세력 간의 연대를 목도할 수 있었다”고 비판했다.

황우석 사태는 학계-정부-대중언론의 합작품이란 얘기다.


조신 차장 shinch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