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기·스기가 성적 좌우… 토익은 영국·호주식 발음도 채택

영어능력 시험의 대명사 토플(TOEFL), 토익(TOEIC)의 대변신이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5월부터 토플과 토익은 실용 영어 능력 테스트를 한층 강화한 새로운 유형의 시험을 한국에 선보이게 된다.

유학 준비생들의 필수 관문인 토플과 취업, 승진 시험 등에 널리 활용되는 토익 시험의 대변화가 예고됨에 따라 수많은 응시자들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대비책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지난 겨울 방학 동안에는 시험 변경 전에 고득점을 따내려는 대학생들과 직장인들이 대거 몰려 영어 학원가와 시험장이 북새통을 이뤘다. 인터넷에서는 5월 전 실시되는 시험의 응시권을 급구한다는 하소연이 심심찮게 나돌 정도였다.

이처럼 토플, 토익 시험 응시자들에게 초비상이 걸린 것은 그 동안의 점수따기 식 공부 방법이 앞으로는 먹혀들지 않을 공산이 아주 커졌기 때문이다.

특히 토플은 말하기(speaking)가 처음으로 도입되면서 회화 능력이 크게 떨어지는 국내 응시자들을 잔뜩 긴장하게 만들고 있다. 토익 역시 사정은 비슷해서 성적을 상당 부분 좌우하는 듣기(listening) 영역에 영국, 호주식 등 다소 생소한 발음이 처음 채택될 예정이다.

아시아 응시자 '성적 거품'제거가 타깃

토플 성적 600점 이상의 영어 고수들이 미국에 유학해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고민거리는 역설적이지만 바로 영어 문제다.

“영어가 안 되니 수업 시간에 자꾸 위축되고 교수와의 대화도 원활하지 못했다. 동료 학생들이 놀고 쉴 때 이 악물고 영어 공부를 하면서 어렵사리 5년 만에 박사 논문까지 통과했지만 아직도 네이티브 수준으로 대화하는 것은 솔직히 말해 넘지 못할 벽처럼 느껴진다.”

한국에서 석사 과정을 마칠 때까지 영어에 매달려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갖고 유학을 떠났던 S모(38)씨의 사례는 아마도 대부분 한국인 유학생들이 겪는 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러다 보니 한국인 유학생들을 받아들인 대학교 측도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다.

미국 유학을 다녀온 한 영어학원 원장은 “나도 영어라면 한 가락 한다고 자신했는데 막상 교수로부터 토플 650점을 얻은 학생이 맞냐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얼굴이 화끈거려 혼났다”며 애먹었던 유학 시절을 회고했다.

1990년대 이후 국내서 가장 보편적인 영어 시험으로 떠오른 토익도 문제는 마찬가지다. 영어로 의사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중점 테스트하기 위해 듣기에 절반의 비중을 뒀음에도 응시자의 점수와 회화 능력이 비례하지 않는 경우가 너무나 허다했다.

대부분 응시자들이 입사, 승진이라는 목적 달성만을 위해 단기 족집게 강의를 통해 점수를 올린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토익 시험에 대해서는 지금껏 ‘인플레’와 ‘변별력’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토플과 토익의 주무 기관인 미국 교육평가위원회(ETS)가 두 시험에 대해 대대적인 손질을 하기로 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YBM어학원 관계자는 “미국 ETS는 국제 업무에 필요한 응시자들의 실용영어 능력을 ‘정확하게’ 평가하기 위해 토익의 일부 유형을 5월 시험부터 변경했다”고 설명했다.

ETS는 일찌감치 ‘뉴 토익’ 도입을 계획하고 토익을 치르는 11개 국가들을 대상으로 2004년께 이미 글로벌 실태 조사까지 실시했다. 또한 토플에 대해서도 공신력과 변별력 제고를 위해 말하기 능력 테스트를 계속 다듬어 온 것으로 전해졌다.

실용 영어 능력 평가에 초점

새로운 토플은 기존의 CBT(Computer Based Test) 방식이 IBT(Internet Based Test) 방식으로 바뀐 것이다. IBT 토플은 말 그대로 인터넷을 활용한 시험이다.

그렇다고 집이나 사무실에서 시험을 치르는 것은 아니고 기존 CBT 시험장에 가서 말하기 등을 녹음하는 방식이다. 컴퓨터에 기반한 기존의 CBT보다 훨씬 더 종합적이고 정교한 영어 능력 평가가 가능하게 된 셈이다.

또한 현재 앞 문제의 풀이 결과에 따라 다음 문제의 난이도가 자동으로 결정되는 이른바 CAT 방식이 폐지되고 대신 문제마다 배점을 달리하는 방식이 도입된다. 미국, 캐나다, 프랑스 등에선 이미 지난해 9월부터 이 방식으로 토플 시험이 시행되고 있다.

무엇보다 문법(structure) 파트가 사라지는 반면 말하기(speaking) 파트가 도입된다는 점이 가장 주목할 변화다. 말하기는 어떤 주제의 글을 읽고 난 뒤, 이어 그 글의 주제에 대한 설명을 듣고, 다시 이에 대한 답변을 마이크에 대고 하는 방식이다.

모니터를 보고 대답한 내용은 그대로 녹음이 되어 미국의 평가기관으로 보내진다. 평가기관은 녹음된 답을 듣고 점수를 매긴다. 듣기 능력과 사고력, 어휘력, 말하기 능력 등을 종합적으로 검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토플의 변화가 시험 형식과 내용 양쪽에 걸쳐 있다면 토익은 내용의 강화라는 측면이 짙다. 우선 독해 평가에서는 긴 지문을 많이 넣었을 뿐 아니라 연관성을 가진 두 개의 지문을 제시하는 등의 변화로 응시자 능력 평가에 대한 변별력을 상당히 보강했다.

또 듣기 평가에서는 실제 영어 사용 환경에서 요구되는 대화나 담화 능력의 평가 요소를 늘렸다.

미국 영어 뿐만 아니라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다양한 영어권 국가의 영어 발음과 액센트를 반영한 것도 눈여겨 봐야 할 변화다. 국제 공용어로써 영어를 얼마나 활용할 수 있는지를 테스트하기 위한 의도다.

전체적으로 보면 토익 시험의 특성을 살리면서 부분적인 수정을 가해 시험의 변별력과 타당성을 높였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하지만 한 해 200만 명에 달하는 국내 토익 응시자들에게는 적지 않은 부담이 될 전망이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토플, 토익 발 태풍. 학교든 학원이든 국내 영어 교육 방식에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