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사 "외화와 똑같이 6:4로 배분" 요구에 극장측 거부…, 법정다툼으로 번질 듯

“대형 멀티플렉스와 극장들이 독과점 및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한국 영화제작사들의 손해를 강요하고 있다.”(영화제작사)

“그동안의 관례와 시장원리에 따라 극장과 제작사 간에 수익을 나눠 갖고 있을 뿐이다.”(영화상영관)

영화 ‘왕의 남자’가 1,0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최고 신기록을 경신, 잘 나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한국영화.

스크린 쿼터 축소 압력이란 ‘공통의 적’에 맞서서도 외형상으로 단합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내홍으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영화 관람 수입(부율)을 둘러싸고 영화인들 간에 벌어진 틈이 날로 커지고 있어서다.

한국영화제작가협회와 영화인회의 등이 주축이 돼 모인 한국영화산업합리화 추진위원회(상임대표 김형준 이춘연 등ㆍ이하 추진위)는 최근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 위반 행위로 CGV 메가박스 롯데시네마 등 국내 3대 복합상영관과 서울시극장협회(대표 이창우)를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했다.

부율(극장과 배급ㆍ제작사 간의 수익분배 비율) 차별 등 여러 가지 불평등한 관행을 조정하자는 의사표시인 셈이다.

언뜻 대수롭지 않게 보아 넘길 수도 있는 이 사건은 앞으로 양측간에 빚어질 수 있는 갖가지 파열음을 예고하고 있다.

아직 일반에게까지 알려진 이슈는 아니지만 그동안 속으로 앓고 곪아온 상처가 이제사 터진 것이다. 때문에 이번에 불거진 갈등은 양측 간에 심화된 감정 대립 차원을 넘어서 영화제작사와 극장 간의 파워게임으로 비화될 조짐도 보이고 있다.

갈등의 씨앗, 수익 배분율(부율)

“복합상영관 3사에 한국영화의 부율을 기존의 5대5에서 외화와 마찬가지로 6(배급사)대4(극장)로 조정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 비율을 고집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다만 현행과 달리 조정의 필요성을 지적한 데 의미가 있는 것이지요.”

추진위의 협상 실무대표격인 유창서 영화인회의 사무국장은 “같은 영화인 데도 한국 영화를 만들어내는 제작사가 외화 수입사보다 적은 수익을 거둬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이제는 잘못된 관행이 시정돼야 하는 시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추진위는 이와 함께 부율 차별을 비롯해 ▦일방적인 영화관람료 할인 및 그로 인한 손해 강요 ▦일방적, 차별적인 종영 결정 및 이를 통한 부율 하향 조정 강요 ▦극장내 광고의 일방적 비용 전가 행위 ▦상영영화 관객수 파악 방해 행위 ▦수익정산의 지연 등을 위반 사항으로 멀티플렉스 3사를 제소했다.

이 중 가장 큰 현안이랄 수 있는 부율 조정 문제는 새삼 새롭게 대두된 것은 아니다. 이 문제가 제기된 지 벌써 5년이나 됐다. 2001년 제작사들을 중심으로 부율 조정 논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었지만 스크린쿼터 축소 공동 대응과 맞물려 제작사들이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았다.

유창서 국장은 “당시에는 굳이 문제를 확대시킬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해 양보한 것”이라며 “5년이 지난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고 강조한다.

평행선을 달리는 협상

지난해 12월 추진위는 기자회견을 갖고 3대 멀티플렉스에 수익 분배 조정 문제를 협의할 것을 공식 요청했다. 이후 3차례 양측 간에 협의가 있었지만 이후 대화는 단절됐다.

멀티플렉스 측이 “개별 극장 차원에서 대답할 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극장들의 연합체인 극장협회와 논의해야 할 사항이다”는 입장을 취한 것.

하지만 서울시극장협회와의 대화도 원활치 않았다. 대화가 시작된 지 얼마되지 않아 서울시극장협이 외화배급사들에 “외화 부율도 종전 6대4에서 한국영화처럼 5대5로 조정하자”는 공문을 보낸 것.

이 사실을 뒤늦게 알게된 추진위는 ‘서울시극장협이 앞에서는 협상을 하면서 뒤통수를 친 격’이라며 즉각 공정위에 제소장을 접수했다.

“실제 블록버스트를 공급하는 외화 직배사가 부율 조정 요구를 받았더라도 응하지 않으면 그만입니다. 설사 응하더라도 대형 외화 직배사는 다른 강력한 협상카드를 가지고 있어 얼마든지 대응할 수 있는 것이지요.”

유창서 국장은 “그래서 서울시극장협의 이런 공문 보내기는 추진 의지를 갖고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들의 요구를 물타기 하려는 잔꾀에 불과하다”고 일축한다.

또 추진위는 서울시극장협의 대표성에도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멀티플렉스는 협회와 논의하라며 대화를 기피하고 있지만 막상 협회가 극장에 지시하거나 명령을 강제할 수 있는 처지가 전혀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

추진위는 협회에 “그러면 협의사항을 극장들이 따르는 것이냐”고 질문하면 협회가 확답을 못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현재 양측은 공정위의 결과를 기다리며 대응방안 마련에 부심 중이다. 추진위는 공정위에 추가로 자료를 제출하는 등 압박에 무게를 더하고 있다.

서울시극장협도 나름대로 맞제소를 고려하고 있다. 당장은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공정위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 하지만 공정위의 판단 결과에 따라 추진위는 법원 소송까지도 불사할 태세여서 갈등은 여전히 폭발성을 내재하고 있다.


박원식 차장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