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를 혼란의 소용돌이로 몰고 간 최초고용계약 "고용불안 가중" VS "청년실업 해소" 첨예한 시각차

▲ 최초고용법안에 반대하는 학생과 노동자들이 노동자의 일방적 희생을 풍자한 피켓을 들고 파리 시내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 로이터
프랑스의 최초고용계약(CPE) 논란이 ‘정부 대(對) 학생ㆍ노동자’의 팽팽한 대립과 물리적 충돌 속에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의회에서 통과돼 4월 1일 발효되는 CPE법은 만 26세 미만의 젊은이를 채용하고 2년 이내에 자유롭게 해고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청년실업 해소를 위해 노동유연성이 필요하다는 것이 정부의 생각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청년들이 이 법안에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프랑스 청년들은 “CPE는 신규 고용 창출은커녕 고용 불안만 가중시킨다”며 “우리는 ‘크리넥스’(일회용 티슈)가 아니다”고 주장하고 있다.

청년들의 시위가 연일 계속되고 있다. 18일에는 프랑스 전역에서 150만명이나 시위에 참여했다. 이에 따라 전국 84개 대학 중 56개 대학이 부분 또는 전면 휴업(21일 현재) 중이며 4,370여 개의 고등학교 가운데 25%가 정상수업을 하지 못하고 있다.

학생들과 노동자들은 28일 전국적인 규모의 시위를 다시 벌일 것이라고 공언해 프랑스는 백척간두의 형국이다.

시위 양상도 갈수록 거칠어지고 있다. AFP통신에 따르면 지난 21일과 22일에 걸쳐 이민자들이 집단 거주하는 파리 교외 지역에서 10대들이 몰려 다니며 기물을 부수고 돌을 던지는 등 불안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우파 신문인 르 피가로는 최근 시위대 속 폭력 행위자 중 3분의 1이 교외 지역 불량 청소년이라는 경찰의 정보를 언급하면서 21일 파리 교외 클라시-수-부아와 사비니-르-탕플에서 있었던 경찰과 청소년들의 충돌을 전했다.

하지만 도미니크 드 빌팽 프랑스 총리가 청년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CPE를 밀어붙이고 있다.

빌팽 총리는 집권 대중운동연합(UMP) 의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CPE 철회, 시행, 핵심 내용 변경 등은 불가하다며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그는 다만 조정안을 모색하자는 입장을 거듭 천명했다.

26세 미만 직원을 자유롭게 해고할 수 있는 기간인 2년을 노사 합의를 통해 1년으로 줄이는 방안 등이 타협안으로 언급되고 있다.

유럽에서 가장 경직된 프랑스 노동시장

이는 경직된 노동시장이 프랑스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사실 프랑스의 노동시장은 유럽에서도 가장 경직돼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프랑스 노동자들은 정년 보장을 당연하게 여기고 그 결과 청년층의 일자리는 큰 폭으로 창출되지 못했다.

지난 1월 기준 프랑스 실업률은 9.6%였지만 청년 실업률은 2배가 넘는 22.8%에 달했다.

지난해 말 차량을 닥치는 대로 불질렀던 이민자 거주지역의 청년 실업률은 40%가 넘는다. 빌팽 총리가 지지도 하락을 감수하고 ‘68혁명’ 이후 40여 년 만에 소르본대학에 경찰을 투입한 것도 이 때문이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는 빌팽의 접근법이 현 상황에서 가장 현실적인 실업 해결책이며 작은 파이를 가능한 한 많은 이들에게 나눠주는 방법이라고 호평했다.

▲ 프랑스 파리 판테온신전 앞 광장에 모인 대학생들과 노동자들이 최초고용법안에 반대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 AP

또한 2007년 대권을 꿈꾸고 있는 빌팽 총리는 학생들의 요구에 타협할 경우 자신의 정치적 입지가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어 강경책을 고수하고 있다.

빌팽 총리는 “에두아르 발라뒤르 전 총리와 같은 전임자들처럼 양보하지 않을 것”이라고 천명했다. 발라뒤르 전 총리가 1994년 직업교육 중인 청년의 급료를 깎는 법을 추진하다 1개월 시위에 부딪혀 법 제정을 포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리실은 ‘6개월 CPE 시행 뒤 노동계와 재논의’등 다양한 옵션을 검토하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옵션의 아이디어로는 ▦단기 계약시 불이익 주기 ▦실업자보다 학생에게 인턴십 우선 부여 ▦의회에서 통과된 CPE법에는 26세 미만 직원을 첫 2년간은 자유롭게 해고할 수 있도록 허용했으나 이 기간을 12개월로 단축하는 방안 등이 포함돼 있다.

12개월로 줄이는 마지막 방안이 성사되려면 의회에서 수정안 통과가 필요하다. 이럴 경우 정치적으로 더욱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

이런 가운데 빌팽 총리의 당내 대권 경쟁자인 니콜라 사르코지 내무장관은 주간지인 파리마치와의 인터뷰에서 “법안에 2년으로 돼 있는 수습기간을 6개월로 단축하는 것이 현명한 해결책”이라고 주장하며 차별화에 나섰다.

68년은 이념형, 2006년은 생활형 시위

CPE를 반대하는 프랑스 대학생들의 시위는 1968년 학생혁명의 복사판인가?

일부에서는 최근 시위의 양상이 '68사태' 때와 비슷하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68사태는 권위주의와 엘리트 체제를 개혁하려는 이데올로기적 성격이 강했던 반면, 이번 시위사태는 현실과 밀접한 정부의 노동정책 항의에 국한돼 있다.

학생들의 시위 구호는 고용안정이라는 현실적인 목표만 있을 뿐, 체제 개혁을 비롯한 이데올로기적 성격의 내용이 전혀 없다.

38년 전 시위를 주도했던 다니엘 콩방디는 파이낸셜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당시에는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비전을 갖고 공격적인 시위를 벌였지만 지금은 변화와 생활의 불안정에 두려워하며 방어적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고 차이점을 설명했다. 40년 가까이 지나면서 '이데올로기형 시위'가 '생활형 시위'로 바뀐 것이다.

68사태 때에는 시위대가 한때 1,000만명에 이르렀으며 그 여파로 당시 샤를 드골 대통령이 사임했다. 시위 성격은 이처럼 다르지만 현재 빌팽 총리의 입지도 위태로운 지경이다.

현재 시위는 소르본대학 학생들이 중심으로 불붙고 있는데 68사태 때에도 소르본대학이 '사령부'역할을 했다.

68사태 당시 소르본대학은 이후 급속히 몰락했다. 프랑스 정부는 71년 모든 대학을 국립화하고 평준화시켰다. 대학 이름도 총장들의 제비뽑기로 번호가 정해졌다.

소르본대학은 4대학, 낭테르대학은 10대학이 됐다. 소르본대학은 이제 고교 졸업시험(바칼로레아)만 통과하면 150㎞ 이내에 거주하는 누구나 공짜로 들어갈 수 있는 평범한 대학으로 변했다.




권대익 기자 dkw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