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여성 김효진씨의 '당당한 엄마로 살기'마흔 넘은 결혼, 그리고 출산·육아… '여자'로 사는 기쁨과 슬픔 책으로 펴내

장애인 부부가 아이를 키우는 모습은 그대로 눈물과 감동의 드라마다.

소아마비로 지체 장애를 갖고 있는 김효진(44ㆍ여)씨가 마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 아이를 낳아 키우는 과정 역시 그랬다. “우리 아이가 두 돌이 될 때까지, 지난 40여 년 동안 흘린 것보다 훨씬 많은 눈물을 흘렸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김씨의 결혼 이야기는 들여다 볼수록 흥미진진하다. 한국DPI(한국장애인연맹) 여성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그녀는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앞두고 에세이집 ‘오늘도 난, 외출한다’(웅진 지식하우스 刊)를 펴냈다.

장애아로서의 어린 시절부터, 세 살배기 아들을 둔 어머니로 살고 있는 현재의 일상을 통해 ‘장애 여성은 불쌍하거나, 특별할 것’이라는 사회 통념을 신랄하게 깨부순다.

작가는 어렸을 적 “여성성을 부정하거나 최소한 숨기는 쪽이 옳다”고 생각했다. 딸만 넷에 막내로 아들을 둔 딸 부잣집의 셋째 딸이라, 새 옷은 언제나 언니들이나 동생에게 돌아갔다. “어머니에게 나는 예쁘게 꾸며주고 싶은 다른 딸과는 다른 존재였다”고 떠올렸다.

조금이라도 예쁘고 덜 낡은 팬티를 입으려는 딸들끼리의 속옷 전쟁에서도 그녀는 늘 밀렸다. 그저 맨 마지막에 남아있는 ‘아무 거’라도 차지하는 것에 만족해야 하는 입장이었으니까.

그런 소녀 시절의 결핍감 때문일까. 작가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꼬박꼬박 월급을 받을 때 새 팬티를 사 입으며 참으로 흐뭇했었다”고 털어놓는다.

여성성에의 부정은 결혼 적령기를 지나며 정점에 달했다. 한때는 싱글맘을 꿈꿨다. 결혼은 먼 남의 이야기이고, 아이는 너무도 간절히 원했기 때문이다.

“누구도 사람을 소개 시켜준다거나 사귀는 사람 있냐고 묻는 사람이 없었어요.” 사실은 결혼이 하고 싶었는데, 비자발적으로 독신주의자가 됐다고 했다. 사십이 넘도록 혼자 사는데 길들여졌고, 계속 그럴 작정이었다.

싱글맘 꿈꾸다 만난 운명과도 같은 남편

그러던 2002년 9월, 마흔이 훌쩍 넘은 나이에 결혼식을 올렸다. 한 동료 장애여성이 소개팅을 제안했고, 같은 장애를 가진 남자와 결혼을 결심하기까지 두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서로가 기다릴 만큼 기다렸기에 망설일 이유도, 명분도 없었던 것. 그러나 작가의 결혼 발표는 주변에 커다란 충격을 줬다.

“지금도 멋있는데, 왜 결혼하려고 그래?”, “(장애) 운동은 어떻게 하구?”

축하는커녕 우려 일색이었다. 가장 큰 장벽은 어머니였다. “나는 네가 결혼하지 않길 바랐다”는 한 마디를 끝으로 어머니는 결혼할 상대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섭섭한 감정 때문에 펑펑 울었다. “여성이며, 결혼해서 아이 낳을 몸이라는 걸 40년 넘게 부정 당하면서 살아온 장애여성의 설움이 눈물로 쏟아졌다”고 했다.

당초에는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합의하고, 결혼했다. 그러나 어려울 줄 알았던 임신이 되는 바람에 계획은 바뀌었다. 각오했지만, 아이를 낳고 보니 어려움은 예상 외로 컸다. 가장 큰 문제는 아기를 안고 제대로 어를 수 없는 것.

목욕을 시키거나 청소를 위해서 아기를 옮겨야 할 때도 난감했다. 하지만 곧 묘안이 생겼다. 앉은 채로 아기를 안고서 엉덩이를 밀며 움직이는 방법을 찾아낸 것.

남편이 이런 자세로 아이를 옮기면, 베개와 이불 등 아기용품과 목발을 양손에 들고 역시 같은 자세로 엉덩이를 밀면서 뒤를 따라간다.

“남들이 그 장면을 보면 아마 영락없이 불쌍한 장애인 가족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 가트은 죄인 사알리신…’이라는 찬송가만 부르면 완벽한 앵벌이 가족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장애로 인한 이러한 수고는 그녀에겐 한낱 재미있는 놀이로 치부되고 만다.

장난끼가 발동한 작가는 가끔 남편이 질색을 하며 눈을 흘겨도 ‘나 가트은 죄인 사알리신…’이라며 구성지게 찬송가를 부르곤 한다.

아이에게도 엄마의 장애는 재미있는 모방의 대상이다. 집안에서 일을 할 때 보조기를 착용한 채로 뻣쩡하게 뻗치고 걷는데, 그 모습을 아이는 곧잘 따라 한다. 가끔 엄마 흉내를 내며 기어 다니기도 한다.

남들은 그런 모습에 질색할 법 하지만, 그녀는 “아이가 엄마를 따라 하는 건 당연한 현상”이라고 태연하게 받아넘긴다.

"장애는 부정해야 할 대상 아니다"

“채플린의 엄마 역시 장애가 있었다. 채플린은 그 엄마의 걸음걸이를 모방해 특유의 우스꽝스런 걸음걸이를 창조해냈다. 만일 그가 엄마를 싫어했다면 그것이 가능했을까?” 그녀는 되묻는다. “장애는 외면하거나 부정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고 강변한다.

이제 결혼 4년차. 요즘 김씨는 장애 여성들 앞에서 강연할 때마다 주제와는 별개로 “결혼하니 좋으냐”는 사적 질문을 많이 받는다. 그럴 때면 늘 주저 없이 “좋다”고 답한다.

인생을 하루 아침에 바꿔줄 백마 탄 왕자님을 만나 행복에 겨운 게 아니라, 금기시되었던 결혼을 스스로 선택하였고, 그런 선택에 책임을 지기 위한 삶에 만족하고 있으므로.

얼마 전에는 아이와 함께 어린이집으로 향하던 중 아이가 넘어져 신발이 벗겨지는 난처한 경험을 했다. 쩔쩔매며 간신히 신발을 신기고 나니 진땀이 다 날 지경이었다.

그래도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몸가짐과 표정을 수습하며 작가는 피식 웃음이 났다고 고백한다. 그 순간 그녀는 잘 돌봐주지도 못할 거면서 대책 없이 아이를 낳은 여자이고, 또 아이는 장애 엄마를 둔 불쌍한 아이로 보였겠구나 싶었던 것.

“불편한 몸으로 아기를 키울 수 있겠느냐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우리 가족은 알콩달콩 잘 살아가고 있답니다. 좀 덜 힘들었으면 좋겠지만…, 그래도 아주 많이 행복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외출을 나서는 김씨의 발걸음은, 신이 난다.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