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운증후군 장애 갖고 17년째 직장생활 하는 손태욱씨남다른 책임감에 동료들 감동… 서울시 장애인의 날 시장 표창 영예

“고오집 부리지 않고 자아알 하겠습니다.”

요즘 손태욱(39)씨는 직장에 나가면 이 말을 입버릇처럼 되뇌인다. 그의 일터는 서울 신대방2동 서울시립정신지체인복지관. 1989년 이 복지관에서 직업훈련과정을 마친 뒤 바로 환경미화 담당 직원으로 뽑혀 지금까지 일하고 있다. 무려 17년째.

다운증후군을 갖고 있으면서 이토록 꾸준하게 직장생활을 해낸 경우는 극히 이례적. 게다가 단 하루의 결근도 없었다. 이 때문에 그는 15일 서울시 장애인의 날 기념식에서 영예로운 시장 표창을 받는다.

그의 공적 조서에는 이렇게 써있다. “복지관 이용자들의 쾌적한 환경 조성과 직업을 통한 자립을 실천한 장애인으로 타의 모범이 됨.”

직장 동료인 총무기획팀 김은영 팀장이 곁에서 말한다.

“다운증후군을 갖고 있는 사람이 17년을 변함없이 일해왔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에요. 대부분 체력이 많이 약하거든요. 감기를 달고 살거나 심장 수술을 받게 되는 등 많이 아파요. 아무리 복지관에서 배려를 했다 해도 태욱씨처럼 근속하기는 어렵지요. 게다가 파트타임으로 일하기도 쉽지 않은데, 온종일 근무를 거뜬히 해냅니다. 환경 미화를 하면서 단련이 돼서인지 몸도 탄탄하구요. 복지관을 이용하는 장애인 부모들의 선망의 대상이죠. ‘우리 아이도 저렇게만 직장생활을 했으면’하고 부러워하세요.”

오전 9시에 출근하면 그는 먼저 계단과 복도, 화장실 청소를 한 다음 유리창과 현관을 닦는다. 복지관 구석구석의 쓰레기를 분리수거 하는 것도 그의 몫. 휴지통 비우기와 계단 청소는 하루에 두 차례씩 한다.

이 중 태욱씨가 가장 자신 있어 하는 일은 계단 닦기. “반짝반짝 윤이 나면 기분이 좋다”며 웃는다.

그러고 보니 태욱씨는 이 복지관에 웃음을 퍼뜨리는 주인공이다. 복지관 직원들은 쌓여 있는 업무로 스트레스를 잔뜩 받다가도 순박하면서도 장난끼 많은 태욱씨의 돌출 행동에 웃음보를 터트릴 때가 많다.

어떤 날은 직원의 휴지통에 쓰레기가 가득 쌓이도록 모른 척하면서 또 다른 직원의 휴지통은 시간마다 비워주는 불공정(?) 행위를 벌이기도 한다. 미워서, 혹은 이뻐서. 기분따라, 직원들에게 커피도 자주 ‘쏜다’.

하루 용돈 1,000원을 동전으로 교환해 한 잔에 300원씩 하는 커피를 곧잘 돌린다. 말도 어눌하고, 글씨도 모르던 그가 언제부터인가 제법 정확하게 의사를 전달하고, 직원들의 이름을 줄줄 외우며 변화를 보이는 걸 보고 동료들이 감동한 적도 있다.

책임감도 1등감이다. 복지관 주변에서 행사가 있는 날에는 오지 말라고 해도 굳이 쓰레기봉투를 들고 나타나고, 이따금 자원 봉사자들이 업무를 도와주겠다고 나서면 “손 대지 말라”며 정색을 한다.

소문난 효자, 동네서도 인기 만점

가정적으로도 그는 소문난 효자다. 고령의 부친(70)를 모시고 사는 것은 물론 열 살짜리 쌍둥이 조카들도 보살피며 가장의 역할을 훌륭하게 해낸다.

‘귀찮을 정도’로 집에 전화를 자주하는 다정다감한 아들이기도 하다. “아버지, 약 잡수셨어요?” “애들은 잘 놀아요? 다치지 않았어요?” 월급도 한 푼을 안 쓰고, 고스란히 아버지께 갖다 드린다.

슬하에 3남 1녀를 둔 아버지는 “태욱이가 가장 으뜸가는 효자”라고 추켜세운다. “술도 담배도 하지 않지, 자기 일은 다 알아서 하지, 걱정할 게 하나도 없어요. 동네에서도 인기 만점이에요. 남의 것 우리 것 가리지 않고 분리수거도 도맡아 합니다.”

물론 태욱씨가 태어날 때부터 주위에 기쁨을 줬던 것은 아니었다. 어머니가 임신인 줄 모르고 약을 복용해서 고민하다 낳은 아이.

아버지는 그때를 떠올리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때는 우리가 너무 못살아 크든지 말든지 그냥 내버려 뒀더랍니다.” 그러나 두세 살이 되어 걷기 시작하면서 태욱씨가 어느날 동네에서 사라졌을 땐 속이 까맣게 타도록 찾아 다닌 사람도 그다. 직장에 나간 뒤로는 “고집 부리지 말고, 열심히 일하라”고 다독여주기도 했다.

“엄마랑 같이 사는 게 꿈”이라고 말해 아버지의 가슴을 메이게도 한다. 어머니는 2003년 세상을 떠났다.

“한번은 장가를 가고 싶다고 하더라구요. 장가를 가면 아버지가 편할 텐데 하면서요.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론 아버지가 힘들까 저녁 식사도 복지관에서 먹고 와요. 우리 태욱이가 그런 아이에요. 착하고, 주변 사람들을 아껴주며, 사랑을 나눠주는 사람이요.”

아버지의 말처럼 그는 장애보다 강점이 훨씬 커다랗게 느껴지는 따뜻한 사람인 것 같았다.

서울 정신지체인 사생대회… 27일 보라매 공원서 열려

서울시립정신지체인복지관은 4월 27일 보라매공원에서 '제 20회 서울정신지체인 사생대회'를 연다.

올해로 20년째를 맞게 되는 이 그림 축제는 정신지체인들의 정서 순화와 예술적 소양을 키우고, 지역사회에 장애인에 인식 개선을 도모하기 위한 행사다. 이번 대회는 특히 일반인들과 더불어 일본 정신지체인들이 참가하는 국제적 행사로 의미를 더한다. 수상작은 일본 오사카 이쿠노센터에서 전시될 예정이다.

이날 행사에는 마술쇼와 캐리커쳐, 페이스 페인팅, 풍선 아트, 미니 농구 체험관 등 부대행사도 다양하게 이어진다. 200여 명의 자원봉사자가 참가하고, 100% 후원으로 진행되는 이 행사는 ㈜IBM이 주 후원한다. (02) 846-1569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