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지체 예가원 난타팀 '레인보우 두들소리'수줍지만 자신감과 열기로 '똘똘'… 6월엔 시카고서 첫 해외 공연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딱딱~”

4월 11일 경기 분당의 정신지체 장애인 생활시설인 ‘무지개동산 예가원’의 지하 강당. 구령에 맞춰 대나무를 딱딱 두드리는 소리가 아침 공기를 가르며 경쾌하게 울려 퍼졌다.

예가원 소속 난타 연주팀인 ‘레인보우 두들소리’팀의 공연 연습이 한창이었다. 15일 서울시와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주최로 서울광장에서 열리는 ‘Hi Seoul 개성마당’의 공연을 앞두고 막바지 연습 중이었던 것이다.

"조금 늦을 뿐 여느 공연 팀과 다르지 않아요"

2003년부터 ‘환경콘서트 초청 공연’ 등 크고 작은 공연을 수십 여 차례나 거친 베테랑들이지만, 같은 공연이라도 반복 훈련을 통해 좀더 다듬어진 기량을 보여주기 위한 노력은 매번 새 작품을 준비하는 일만큼이나 힘들다.

“권택이는 앞으로 더 나가서 대나무를 쭉 뻗고…” 레인보우 두들소리팀 지도를 맡고 있는 정은희 재활교사가 팀원 임권택(25)씨를 채근한다. ‘대나무놀이’ 장면. 팀원들이 다 함께 호흡을 맞추다 한 명씩 앞으로 나가 개인 특기를 보여줘야 한다. 임씨는 쑥스러운 듯 얼굴에 수줍은 미소를 띠면서도 장단에 맞춰 힘차게 대나무를 두드려댄다.

“좋아요. 치는 거 재미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박수도 쳐주고 신나요.”
연습 종료 직후, 숨을 고르면서 임씨가 환하게 웃는다.

임씨를 비롯하여 두들소리 팀원 7명은 모두 정신지체 1~3급의 장애인들이다. 강약을 조절하며 장단을 맞추는 일이 쉽지 않다. 숫자를 외우기도 어렵다. 수십 번, 수백 번 같은 동작을 반복해야만 겨우 리듬을 맞출 수 있다.

그러나 레인보우 두들소리팀을 총괄하는 김윤례 실장은 “조금 더디게 익힐 뿐”이라고 잘라 말한다. 두들소리팀은 이것만 빼곤 여느 공연팀과 다를 게 없다.

아직 전문 공연팀 뺨치는 솜씨라고는 할 수 없지만, 이들의 자신감과 열기는 기성 공연팀 못지않았다. 김 실장은 “완성도 높은 공연을 통해 일반인들에게 장애인에 대한 인식 전환의 기회를 주고 싶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처음 예가원에서 이들에게 난타연주를 가르친 건 “악기를 두드리면 스트레스도 풀리고 정서 발달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2002년 53명의 장애인들 중에서 악기 연주가 가능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오디션을 봤다. 숫자를 모르거나 리듬을 맞추지 못하는 사람들은 1차적으로 탈락됐다. 반복 훈련에 대한 인내심이 부족한 이들도 제외됐다.

▲ 사진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남덕현, 임권택, 심진섭, 정은희 선생님, 변선재, 정향숙, 윤병례, 민원기

그렇게 1차로 뽑힌 팀원은 임권택, 남덕현(24), 심진섭(27), 변선재(26) 등 4명. 여기에 민원기(27), 윤병례(46ㆍ여), 정향숙(38ㆍ여) 씨 등 3명이 뒤이어 합류했다.

시작은 그야말로 고난의 연속이었다. 팀원들은 간단한 박자를 맞추는 데도 어려움을 겪었다. 김 실장은 “처음 1년 동안은 거의 진전을 보이지 않아 적잖게 애를 태웠다”고 말했다.

공연도 공연이지만, 팀원들간의 호흡을 맞추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팀원들의 기량 차이에 따라 알게 모르게 우열의식이 자리잡았고, 감정 기복이 심해 연습에 호응을 보이지 않을 때는 통제를 하기도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체력·집중력 저하 등 악조건 이겨내

장애로 인한 체력의 저하도 이들에게는 넘어서야 할 높은 장벽이었다. 공연 직후 쓰러지는 팀원이 발생했는가 하면, 다한증으로 악기를 두드리는 스틱을 놓쳐 공연 흐름을 깨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힘든 여건도 이들의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이들은 이런 문제들을 같이 고민하며 서로에 대한 소중함과 내면의 자신감을 동시에 얻을 수 있었다고 했다. 고된 훈련을 거듭하며 팀원들은 모두가 공동체의 일원임을 느껴간 것이다. 남덕현 씨는 “친구들, 파이팅”을 외치며 즐거워했다.

요즘 이들의 인기는 만만치 않다. 10대들에게 ‘슈퍼주니어’가 인기 있다면, 장애인 친구들 사이에서는 레인보우 두들소리팀이 단연 ‘스타’다. 동갑내기 여자친구를 7년째 만나고 있다는 민원기 씨는 “여자 친구가 앞으로 더 멋있는 스타가 되라고 했다”며 어깨를 으쓱했다.

능숙한 무대 공연으로 인해 일반인들 앞에서도 이들의 장애는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정은영 재활교사는 “팀에 대한 사전 소개 없이 무대에 올랐을 때 공연이 끝나고서야 사람들이 ‘어머, 저 팀이 장애인이었어?’ 하는 소리가 들려올 정도”라며 기뻐했다.

6월에는 미국 시카고에서 열리는 ‘밀알의 밤’에 초청되어 난생 처음 해외 무대에 오른다. “팀원들에게 꿈을 심어주기 위해 해외 공연을 추진했다”는 정권 원장은 “미국뿐 아니라 아시아 전역을 돌아다니며 장애인들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장애인들을 무능력하게 여기는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어 주고 싶다”고 말했다.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