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로봇·청소 로봇 이어 로봇 격투기 대회도 곧 등장, 도우미 로봇 20여 대 연내 공항·관청 등에 배치하기로

로봇이 우리 곁으로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정보통신부는 9월쯤 국책 과제로 개발 중인 네트워크 기반 지능형 로봇 20여 대를 공항과 시청 등 공공기관에서 실제 손님을 맞는 '도우미'로 투입한다.

지난해 가정 60곳과 우체국 2곳에서 최초 시범 운행을 하며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서비스 로봇의 성능을 본격적으로 보여주겠다는 계획이다.

실제 산업에서도 로봇의 주가는 상승세다. 소비자들에게 이미 친숙한 청소로봇은 올해 30만~50만원 보급형 제품이 인기를 끌면서 시장 규모가 지난해의 갑절인 300억 원 대로 성장할 전망이다. 중저가 '아이클레보'로 유명한 유진로보틱스 등 3개 토종 벤처 업체들이 이미 제품을 생산하고 있고 대기업도 본격적인 시장 진출을 준비 중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삼성전자가 연내 청소로봇 '크루보'를, 대우 일렉트로닉스가 올 상반기에 2종의 경쟁 모델을 출시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작년 대기업 중 처음으로 청소로봇 시장에 발을 디딘 LG전자는 지난 3월 150만원에 육박하던 기존 '로보킹' 모델의 가격을 50만원 가량으로 낮춘 새 보급형 제품을 내놨다.

스포츠, 국가적 스타로 '우뚝'

로봇은 스포츠에서도 자리를 잡았다. 50cm 가량 크기의 수제 인간형(휴머노이드) 로봇을 조종해 상대방 로봇을 쓰러뜨리는 '로봇 격투기'가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정규 로봇 격투기 경기인 '로보원'(Robo-one) 대회가 일본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발족된 곳이다. 2003년 5월 부산에서 첫 경기를 시작한 국내 로보원은 일본 로보원과 어깨를 함께 하며 아시아 지역의 로봇 격투기 경기를 주도할 정도로 커졌다.

아시아로보원위원회(위원장 장성조)는 이제 격투기 이외에도 다양한 종목을 추가해 4년에 한 번씩 세계 로봇올림픽을 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스타크래프트 리그 등의 e-스포츠에 뒤이은 '로봇 스포츠' 시대가 한국을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로봇은 이제 국가적 '스타'다. 지난해 11월에 열린 부산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와 올 2월 토리노 동계 올림픽 등 대형 국제 행사에서 로봇은 휴대전화 등 IT(정보기술) 제품과 함께 한국의 기술 수준을 과시하는 핵심 전시물로 선을 보인다.

진대제 전 정통부 장관은 경기도지사에 출마하기 위해 열린우리당에 입당할 당시 자신이 장관 시절 개발을 지휘한 인간형 로봇을 시켜 입당 원서를 제출해 화제가 됐다.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4월 초 한 기사에서 국내의 로봇산업 발달상을 전하며 '공상과학물(SF) 같은 일이 한국에서 현실로 일어나고 있다'며 놀라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압축 성장으로 기술 발전 이뤄

전문가들은 국내 로봇 산업이 기술 수준면에서 세계 5위권에 진입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과 미국 등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짧은 로봇 개발 역사를 볼 때 엄청난 '압축 성장'을 한 셈이다.

가장 기술 경쟁이 치열한 분야인 인간형 로봇의 경우, 국내서는 1997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만든 로봇 '센토'가 연구의 분수령 역할을 했다. 로봇 팔에 음성인식 기능을 갖췄지만 사람 몸통에 네 다리를 가진 반인반마(半人半馬)형 구조였다.

KIST는 이어 2003년 두 발로 걷는 한국 최초의 로봇 '베이비 봇'을 내놨다. 앞뒤로 걸을 수 있고 간단한 춤도 출 수 있는 모델이었지만 이름처럼 아이 걸음마 수준의 보행 능력에 만족해야만 했다.

▲ 용인 에버랜드 특별전시실에 마련된 지능형 로봇 체험전에 유치원생들이 로봇들이 음악에 맞춰 춤추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 왕태석 기자
▲ 용인 에버랜드 특별전시실에 마련된 지능형 로봇 체험전에 유치원생들이 로봇들이 음악에 맞춰 춤추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 왕태석 기자

본격적인 보행 로봇은 이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오준호 교수팀이 2002년부터 산업자원부의 지원을 받아 3년의 연구 끝에 내놓은 '휴보'가 물꼬를 텄다. 휴보는 시속 1.2km의 속도로 걸었고 후속 업그레이드를 거듭해 계단을 걷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KIST의 유범재 박사팀이 지난해 개발한 로봇'마루'와 '아라'는 세계 최초의 네트워크 기반 지능형 로봇으로 주목받았다. 무선인터넷 등에 실시간으로 연결돼 지능을 부여받는 구조로 실제 두뇌가 본체가 아닌 통신망에 있다.

시속0.9km로 걷는 마루와 아라는 휴보에 비해 운동 기능은 떨어지는 편. 그러나 온라인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가져 올 수 있어 본체의 전자두뇌에만 의존해야 하는 다른 로봇에 비해 지능이 훨씬 뛰어나다.

마루와 아라는 25명의 얼굴과 20개의 물건을 스스로 분별하며 사용자가 손짓을 하면 '이리와'란 뜻으로 알고 그 방향으로 이동한다. 온라인에서 내려 받는 콘텐츠에 따라 노래를 불러주거나 영어를 가르치는 등 다채로운 작업을 할 수 있는 것도 큰 특징이다.

아직 갈 길 멀어

정부는 2003년 지능형 로봇을 10대 차세대 성장동력 산업으로 선정한 이래 연구 투자를 계속 늘리고 있다. 2013년경이면 지능형 로봇의 국내 생산규모가 30조원으로 늘어나며 수출액은 200억 달러, 고용효과 10만 명에 이를 것이란 예측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국내 로봇업계가 풀어야 할 과제도 만만치 않다.

일단 로봇을 구성하는 핵심 기술면에서 일본 등 경쟁국에 뒤떨어진 분야가 많다. 지능형로봇사업단이 지난해 펴낸 '지능형로봇산업 비전과 발전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37개 로봇 관련 기술 분야에서 한국이 선진국과 대등하거나 앞선 영역은 14개에 불과했다.

▲ LG전자 로봇 청소기 로보킹

로봇의 상용화에서도 어려움은 많다. SF영화 등으로 로봇에 대한 대중들의 기대감이 너무 큰 상태라 현재 기술 수준으로는 고객들의 실망감을 부추길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상용화가 가장 활발한 청소 로봇의 경우도 소비자의 불만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제품의 인공지능이 생각보다 낮고 청소 능력이 기존의 수동 청소기에 비해 나을 것이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많은 업계 전문가들은 현재의 기술로 고객들의 만족도를 극대화할 수 있는 상품화가 초기 로봇 시장의 승패를 좌우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인력난도 고민거리다. 로봇 개발에는 기계, 전자, 전산, 통신 등 여러 전문 지식을 고루 갖춘 연구자가 필요하나 개별 전공 별로 쪼개져 있는 현재의 대학 교육으로는 이런 인재 공급이 어렵다는 것이다.

정부가 기존 대학에 학문간 통합 교육이 핵심인'로봇 특성화 과정'을 설립하도록 유도하고 있으나 구체적 시행 단계까지 가는 데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김태균 연합뉴스 기자 ta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