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KIST 지능로봇연구센터 유범재 박사

▲ 세계 최초 네트워크 기반 지능형 로봇 '마루'와 '아라'를 탄생시킨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유범재 박사가 연구생들과 차세대 로봇 개발 작업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다.
“통신망이 빨라지면 네트워크와 로봇 간의 데이터 이동 속도가 급격히 올라갑니다. 훨씬 더 뛰어난 지능의 로봇을 내놓을 수 있는 거죠”

세계 최초로 네트워크 기반 지능형 로봇 ‘마루’와 ‘아라’를 탄생시킨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유범재 박사는 ‘다음 작품’ 준비에 바쁜 표정이었다.

그가 요즘 몰두하고 있는 과제는 일명 협동형 로봇. 대용량 네트워크로 여러 대의 로봇을 동시 연결해 물건을 같이 드는 등의 작업을 시킬 수 있는 기술이다.

“여태까지 개별적으로 움직이는 로봇은 연구가 많이 됐지만 여러 대의 로봇이 함께 움직이는 협동형 기술은 외국에서도 전례가 없었습니다. 개발에 성공한다면 세계적으로 가장 앞선 네트워크 로봇 기술이 될 것입니다”

한국은 와이브로(무선인터넷) 등 각종 첨단 통신기술 연구가 활발해 세계에서도 네트워크 로봇 연구의 최적지로 손꼽힌다. 유 박사는 실제 로봇을 움직이는 각종 소프트웨어도 국내 연구진이 선진국 못지않은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로봇에 들어가는 모터와 기어 등 하드웨어 핵심 기술은 다소 미흡하지만 지금의 개발 환경과 기술을 볼 때 한국 네트워크 로봇의 세계시장 공략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얘기다.

-네트워크 로봇의 장점은 뭔가.

휴대전화처럼 하나의 로봇 ‘단말기’로 다양한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내려 받아 쓸 수 있다는 점이다. 청소나 교육용으로 사용자가 원하는 행동 프로그램을 택할 수 있다.

인공 지능을 일일이 로봇 본체에 넣다가는 내부의 컴퓨터 처리 속도가 용량을 못 견딘다. 로봇 안에 일반 개인용 컴퓨터 4~5 대를 넣어야 겨우 계산이 될 정도가 된다.

네트워크 로봇은 지능을 통신망에 의존해 이런 문제가 없다. PC 1대에서 0.5대 만 넣어도 똑같은 기능 구현이 가능하다. 이에 따라 본체 무게는 가벼워지고 전력 소모량이 적어진다. 가격도 그만큼 싸진다.

-마루와 아라 다음에 준비하는 연구주제는.

네트워크에 맞물려 있는 여러 로봇을 함께 움직여 협동 작업을 시킬 수 있는 기술을 연구 중이다. 두 대든 열 대든 같은 지능을 네트워크에서 공유해 하나의 물체를 함께 들 수 있도록 하는 식이다.

여태껏 개별적으로 움직이는 로봇은 연구가 많이 됐지만 여러 로봇이 함께 움직이는 협동형 방식은 외국에서도 전례가 없다. 개발에 성공하면 세계적으로 가장 앞선 네트워크 로봇 기술이 될 것이다.

-네트워크의 성능이 좋아져야 할 텐데.

네트워크의 스피드가 올라가고 또 외부의 서버 컴퓨터의 퍼포먼스(성능)가 좋아지면 고사양의 알고리즘을 넣어 복잡한 작업을 시킬 수 있다. 네트워크와 로봇 간의 데이터 이동 속도도 급격히 올라간다. 훨씬 더 뛰어난 지능의 로봇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국내 로봇계가 원천 기술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모터나 기어의 경우 일본, 미국과 5년에서 10년까지 격차가 난다. 이 말은 로봇 분야의 전체 경쟁력이 없다는 말이 아니라 핵심 부품 기술이 모자란다는 뜻이다.

예전에도 부품 국산화를 하려고 한 적이 있지만 국내 시장이 작아 부품을 만들어도 팔 곳이 마땅치 않다며 다들 포기했다. 수입하는 게 수익성이 낫다는 거다.

대신 로봇의 내부에 들어가는 운동 제어 소프트웨어나 인공지능 소프트웨어 등의 기술은 한국이 선진국 못지않게 뛰어나다. 네트워크 로봇에 들어가는 콘텐츠 기술에서는 뒤처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제 휴대전화에서 부품 국산화율을 따지는 사람은 없다. 핵심 통신 칩부터 미국의 퀄콤사 것이 아닌가. 그렇지만 휴대전화를 출시할 때 우리 기업이 만드는 부가가치는 엄청나다.

네트워크 로봇도 마찬가지다. 부품 원천 기술을 가볍게 볼 수는 없지만 우리가 현재 가진 기술을 얼마나 잘 이용하는 가도 중요하다.

-마루와 아라도 상용화 작업에 들어갔다던데.

어떤 기업과 계약을 맺고 실제 기업 환경에서 서비스를 할 수 있는 시제품으로 개발을 진행 중이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떤 용도로 개발이 된다는 얘기는 초기 단계라 말하기 힘들다.

-네트워크 로봇 상용화는 어떤 방향으로 이뤄 질 것 같나.

마루나 아라처럼 두 발로 걷는 인간형 로봇은 사실 굉장히 비싸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동일한 서비스를 받아도 자연스럽게 사람처럼 이족 보행을 하는 로봇에 더 호감을 갖는다.

우선 가격 상으로 보면 바퀴로 굴러가는 로봇이 보급형으로 나올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고급 제품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차츰 이족 보행 로봇도 시장에 등장할 것이다.

자동차도 저렴한 소형차가 있고 고급 스포츠카가 있지 않는가. 그처럼 네트워크 로봇도 다양한 가격대에 여러 형태가 나올 것으로 본다.

-본인이 가장 만들고 싶은 로봇은.

인간과 똑같이 움직이며 혼자서도 판단을 잘 할 수 있는 로봇이다. 현재 기술로는 아직 불가능하지만 그래서 더 도전해야 할 목표다.

-요즘 일하면서 가장 힘들 때와 기쁠 때는

우리가 만드는 제품은 사실 완제품이 아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우리 로봇을 완제품이라고 생각하며 각종 행사 때마다 로봇을 초청하려 한다. 그런 상황에서 충분한 시간을 내줄 수 없을 때 곤란하고 힘들다.

기쁠 때는 당연히 연구 성과가 하나씩 나타나는 경우다. 또 마루와 아라를 보고 아이들이 좋아하며 이런 로봇을 만드는 과학자가 되고 싶다고 말할 때도 일하는 보람을 느낀다.

-로봇 개발 환경이 좋아진다고 생각하나

처음 정부가 로봇 연구에 투자하겠다고 했을 때는 기업 쪽에서 반응이 시큰둥했다. 실제 산업 현장에서 로봇 개발이 활발하게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벤처 기업뿐만 아니라 대기업 쪽에서도 로봇에 대한 관심이 크다.

그런 점에서 로봇에 대한 열기가 고조되는 것은 맞다. 하지만 아직 산업이 완전히 이뤄진 것이 아니라 인력 수급 등이 불안정하다.

공대를 졸업하는 학생들은 일자리가 보장되는 반도체나 휴대전화, IT 쪽으로 가려고 하지 로봇 쪽으로 바로 오려고 하는 사람이 적다. 거기에다가 이공계 기피 현상도 겹쳐 인력난이 더 심해지는 상황이다. 로봇 산업이 제대로 뿌리를 내리면 점차 나아질 문제로 본다.


김태균 연합뉴스 기자 ta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