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포경위 회원국 돈으로 매수 '포경 금지' 뒤집기 온힘

일본이 난폭함을 일삼는 곳이 동해 말고 또 있다. 국제포경위원회(IWC)는 상업적 고래잡이를 금지하는데 일본이 이를 뒤집으려 하고 있다. 외교적 쿠데타라고 국제사회는 비난하고 있다.

1986년 IWC에서 상업포경을 금지시킨 것은 환경운동 사상 드문 쾌거로 남아 있다. 이 덕분에 밍크고래는 100만 마리까지 늘어났다.

하지만 20년 만에 이런 노력이 물거품이 될 우려에 처했다. 상업포경을 찬성하는 회원국이 IWC에서 다수를 점해버린 것이다. IWC의 상황을 역전시킨 장본인이 바로 일본이다.

문제는 일본이 회원국을 돈으로 간접 매수했다는 점이다. 무려 십여 년 간 가난한 회원국에 수백만 달러를 원조해주고, 이들을 상업포경 찬성국으로 끌어들였다.

수법은 교묘하고 또 장기간에 걸쳐 행해졌다. 우선 포경의 전통이 전혀 없는 빈국, 소국 등에게 IWC 가입을 독려하고, 회원국이 되면 수백만 달러의 원조를 제공했다.

내륙국가인 몽골이나 말리도 이런 경우다. 특히 일본은 아프리카 서부와 북부, 카리브해와 태평양의 섬나라들에 주력했다. 포경 반대 회원국들은 일본이 이런 일을 벌이는 동안 가만히 손을 놓고 있었다.

일본은 98년 이후부터는 IWC 주도권을 장악하려는 계획을 보다 노골적으로 진행했다. 그 결과 2000년 40개국이던 회원국은 66개국으로 늘어났다. 98년 이후 일본의 전폭 지원으로 IWC에 진출한 국가만 19개국이다.

이런 회원국의 투표성향은 일본과 거의 일치하는데, 그 배경에는 막대한 일본의 보상(원조)이 있다.

일례로 2000년 신규 가입한 기니는 2002년 수도 코나크리의 수산시장 건설에 일본으로부터 655만 달러를 지원받았다. 가난한 나라에서 이런 자금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액수다.

국제동물복지기금(IFAW) 측은 “IWC에서 일본의 과반수 점유는 환경적 재앙”이라며 “세계는 미처 이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이 당장 올해 현실로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

6월에 카리브해 연안 세인트 키츠와 네비스에서 제 58차 IWC 총회가 열린다. 총회에서 일본과 함께 상업포경 허용을 주도하는 노르웨이, 아이슬란드는 반대국들과 결전을 벼르고 있다. 이들의 자신감은 달라진 IWC의 지형에서 나온다.

10년 전 35개 회원국 시절 일본 주장에 찬성하는 국가는 11,12개국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난해 한국 울산에서 열린 제 57차 IWC 총회에서 일본 안에 찬성하는 국가는 33~30개국으로 늘었다.

이 수치는 66개 회원국 가운데 포경에 반대하는 페루, 케냐, 코스타리카가 아직 준회원국에 머문 상태를 감안할 때 과반수에 달하는 것이다.

▲ 녹색연합의 한 여성회원이 상업적 포경 반대를 주장하며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울산 총회에서도 상업포경 찬성 회원국이 많았다. 당시 총회는 상업포경 재개시 이에 대한 감시 감독 제도인 개정관리제도(RMS)의 완성과 일본이 제안한 과학조사 포경확대가 주요 쟁점으로 논의됐다.

그러나 일본의 노력은 벨리즈, 말리, 토고, 감비아가 불참하는 바람에 수포로 돌아갔다.

당시 일본 대표 나카마에 아키라는 아쉬워하며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우리 지지자들은 조만간 과반수에 달하게 된다. 일부 회원국들은 몇몇 가난한 회원국들이 회의에 불참한 것을 기뻐할 것이다. 그러나 내년에 그들이 참석하면 역사의 반전이 이뤄질 것이다.”

포경금지 조항을 폐기하려면 회원국 51% 찬성이 아닌 75%의 찬성이 필요해 6월 IWC 총회에서 상업포경이 바로 허용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적어도 고래 상품 교역 등 친(親)포경정책 분위기는 조성될 것이란 예상이다. 사실상 상업포경을 위장한 일본의 과학적 포경(조사포경) 확대 안도 통과될 것으로 예상된다.

6월 IWC 회의에서 보다 중요한 것은 투표 방법을 현재 공개투표에서 향후 비밀투표로 수정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럴 경우 일본의 회원국 표 매수를 추적할 수 없게 된다. 궁극적인 포경금지 안의 폐지에 더 많은 회원국이 찬성할 길이 확보되는 셈이다.

그러면 왜 일본은 이토록 포경에 집착하는 것일까. 세계의 반대여론과 비난을 개의치 않고 고래를 잡으려 하는 걸까.

재미난 것은 일본인들은 실은 고래고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일본 노인층에게 고래고기는 향수를 떠올리게 하는 먹을거리다. 고래고기는 2차 대전 이후 가난한 시절 단백질의 주 공급원 노릇을 했다.

하지만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에 따르면 일본 국민 가운데 고래고기를 정기적으로 먹는 사람은 1% 미만에 불과하다. 더구나 고래고기의 인기는 86년 IWC가 포경을 금지시키기 이전부터 시들해졌다.

최근에는 일부 업자들이 소비권장을 위해 학교 급식으로 고래고기를 보급하려다 값이 계속 떨어지는 바람에 개 먹이로까지 유통시키고 있을 정도다. 그래서 대다수 일본인은 고래와 관련해 서방이 일본을 비난하는 것에 매우 당혹스러워 하고 있다.

더구나 일본은 IWC 허락 아래 자국 내 소비를 대고도 남을 정도의 고래를 잡고 있다. 현재 IWC는 상업적 포경을 금지하는 대신 과학적 목적의 연구용 포경은 허용하고 있다.

일본은 올해 이 ‘조사포경’ 명목을 내세워 1,070마리의 밍크고래를 포획할 계획이다. 이는 전년보다 400마리, 10년 전보다는 두 배가 많은 것인데 이렇게 86년부터 포획한 고래는 5,000여 마리나 된다.

일본의 조사포경이 거짓이란 것은 이들이 잡은 고래고기를 상업적으로 매매하는 데서도 알 수 있다.

일본처럼 포경 찬성국인 노르웨이는 93년 상업적 포경을 선언했고 2003년에는 아이슬란드가 이 대열에 합류했다. 3개국이 연간 잡아들이는 고래는 2,000마리를 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왜 일본이 20년째 포경을 금지한 IWC를 무력화시키려 했는지가 더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는 흔히 우익으로 표현되는 일본의 민족주의자들의 계산이 깔려 있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2차 대전 패전 이후 미국의 외교와 군사적 그늘에 가려져 있던 일본 우익들은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는데 포경 분야도 이런 흐름을 타고 있다는 분석이다. 상처 받은 자존심의 치유가 일본의 혼내(本音)일 수 있는 셈이다.

일본 수산청 관계자의 말에도 이런 맥락은 숨어 있다. “일본은 땅이 넓지 않지만 바다를 가지고 있다. 일본의 많은 고유문화가 이미 사라졌다. 2차 대전 이후 미국의 강제 속에 빵 소비가 늘면서 쌀 소비가 줄어든 것도 마찬가지다.” 일본의 우익의 정치적 계산에는 경제와 문화 문제까지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 일본의 조사포경은 자민당 우익 인사들의 지원을 받고 있다. 이 지원이 없다면 포경은 경제적으로 불가능하다. 현재 고래고기 판매로는 간신히 포경선 8척의 파견비용을 맞출 뿐이다. 부차적인 이유이지만 일본은 포경금지에 찬성할 경우 국제사회의 제한조치가 다른 해양산물로 파급될 것을 경계하고 있다.


이태규 기자 tg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