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 채무조정 효과 인식에 비용 부담 줄어 채무자들 신청 줄이어

1998년 350건, 1999년 503건, 2000년 329건, 2001년 672건, 2002년 1,135건, 2003년 3,856건, 2004년 1만2,317건, 2005년 3만8,773건.

법원에 개인파산을 신청하는 건수가 해마다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특히 지난달 부터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통합도산법)이 시행된 이후 개인파산 신청은 더욱 가파르게 늘고 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파산부의 경우 4월 3일부터 7일까지 접수된 개인파산 신청만 1,235건에 달했다. 이는 하루 평균 247건으로 통합도산법 시행 이전의 하루 평균 150건 가량에 비해 60% 이상 대폭 늘어난 수치다.

그렇다면 개인파산 신청이 갑작스럽게 급증한 까닭은 뭘까. 법원 관계자들에 따르면 신청 절차에 들어가는 비용 부담이 줄어든 게 첫 번째 이유로 꼽힌다.

그동안 개인이 파산 신청을 할 경우 대략 30만~40만원 정도가 소요됐으나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을 차지하던 공고료가 없어지면서 부담이 크게 경감됐다는 것이다. 실제 생계에 쪼들리는 과중 채무자들은 돈 수십만원을 마련하기도 벅차 선뜻 개인파산 신청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던 게 현실이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요인은 잠재적 파산자들이 법원을 주축으로 하는 공적 채무조정 제도의 효과를 상당 부분 인식, 적극적으로 파산 신청에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파산 선고와 함께 채무 변제 책임을 면제해주는 면책 허가율을 보면, 2000년 57.5%에 그쳤으나 2001년 67.8%, 2002년 77.3%, 2003년 89.5%로 서서히 늘어나 2004년에는 그 비율이 97.6%에 달했다. 즉 대부분의 파산 선고자들이 법원의 재량으로 빚의 수렁에서 구제되고 있다.

법원이 이처럼 관대한 처분을 내리는 것은 파산자들에게 재기의 기회를 주는 게 사회경제적으로 바람직하다는 인식 변화 때문이다.

개인 파산자들을 방치할 경우 인적 자본이 사장되는 것은 물론 가정파탄, 범죄 등 병리현상이 심해져 결국에는 사회적 비용의 증가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를 미연에 방지하는 쪽으로 사법 판단의 큰 줄기를 잡은 것이다.

얼마 전 한국은행이 발표한 ‘최근의 개인파산 급증현상과 정책과제’라는 자료에 따르면 국내의 잠재 파산자 규모는 대략 36만~120만 명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조사 대상과 조사 방법 상의 한계를 고려하면 이는 상당히 보수적 추정치라는 주장도 있다.

민주노동당 경제민주화운동본부 송태경 정책실장에 따르면, 현재 채무조정을 필요로 하는 과중 채무자의 숫자는 금융기관에 신용관리대상자(옛 신용불량자)로 등록된 개인 연체자 361만 명(2004년 말 기준)과 사금융 연체자 등을 합쳐 약 500만 명에 달한다고 추산한다.

양쪽 주장의 편차가 제법 크지만 국내 잠재 파산자 숫자가 상당 규모에 이른다는 점에는 대부분 전문가들이 공감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생계형 채무자의 급증, 카드 남발로 인한 신용불량자 양산 등으로 급증한 잠재 파산자가 아직 가시적으로 줄어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점을 감안하면 향후 개인파산 신청이 봇물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직까지 개인파산 제도에 대해 잘 모르는 채무자들도 상당수 있다. 민노당이 펼치고 있는 ‘가계부채 SOS’ 운동의 도움을 받아 개인파산을 신청 중인 295명을 조사한 결과는 이런 현실을 잘 나타낸다.

그동안 파산 신청을 주저한 이유에 대해 응답자의 28.2%가 ‘파산 제도를 잘 몰랐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또 ‘호적에 빨간 줄이 그어지거나, 본인 및 가족에게 불이익이 온다는 따위의 오해 때문이었다’는 답변도 24.1%다. 정부의 개인파산 제도 홍보 노력이 더욱 필요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눈길을 끄는 것은 ‘변호사 선임 비용 등이 비싸 주저했다’는 응답도 25.2%나 된다는 사실이다.

최근 개인파산 신청이 급증하면서 변호사, 법무사들이 대거 수임 경쟁에 나서고 있는데 이들은 대부분 150만~200만원 정도의 높은 수수료를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때문에 개인파산 제도의 정착을 위해서는 채무자들의 부담을 덜어줄 실질적 지원기구가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개인파산 제도 활성화와 함께 잠재 파산자를 대거 낳는 ‘불씨’부터 없애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이와 관련, 민노당은 상당수 생계형 채무자들이 높은 이자 부담의 덫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고금리 제한법 제정을 추진 중이다.

민노당 경제민주화운동본부 임동현 국장은 “카드 부양책 등으로 개인 신용위기를 부른 정부가 2001년에는 대부업법을 제정해 연 66%라는 살인적인 고금리마저 용인해줬다”며 “이에 따라 우후죽순 들어선 대부업체들이 서민 가계의 잠재적 파산 가능성을 부추기고 있는 실정”이라고 정부 정책을 꼬집었다.

개인파산, 개인회생, 개인워크아웃

개인파산: 개인이 빚이 너무 많아 갚기 어려운 것은 물론 채무 상태로부터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경우, 법원이 파산 및 면책 절차를 통해 개인의 모든 채무 또는 일부 채무를 탕감해주는 제도. 대상자는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개인회생: 현재의 수입과 재산으로 빚을 한꺼번에 상환하기 곤란한 개인이 일정 기간(보통 3~5년) 가용소득(생계비를 제외한 소득) 범위 내에서 성실하게 빚을 갚아 나가면, 나머지 채무에 대해서 법원이 탕감해주는 제도.

개인워크아웃: 워크아웃 협약에 가입한 2개 이상의 채권기관에 총 5억원 이하의 채무를 3개월 이상 연체한 과중 채무자가 연체 이자율의 전부 또는 일부를 탕감받은 뒤 이자율을 조정해 빚을 갚아 나가는 제도. 단, 최저생계비 이상의 소득 (4인 가족 기준 월 117만원)이 있어야 신청 자격이 된다. 개인파산, 개인회생과 큰 차이점은 제도 운영 주체가 채권 금융기관들이 모여 만든 단체인 신용회복위원회라는 점이다.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