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자동차·핸드폰에서 학용품·운동화 등 '뜯어 고치기' 폭넓게 확산

PC 개조 커뮤니티 사이트인 코리아모드(www.koreamod.com).

이곳에는 세상의 그 어떤 PC 판매점에서도 볼 수 없는 희한한 PC들이 가득 있다. 모두 시중에 출시된 PC를 개인의 취향대로 뚝딱뚝딱 뜯어고치고 정교하게 어루만져, 말 그대로 세상에 하나뿐인 ‘개인용 컴퓨터’로 재탄생한 것들이다.

‘쿨’한 작품들만을 전시해 놓은 갤러리에는 보는 사람의 입을 딱 벌어지게 만드는 걸작들이 수두룩하다.

멋진 목조 주택, 잘 빠진 경주용 자동차, 근육질의 오토바이, 세련된 색감의 오디오 세트, 바다 위를 항해 중인 항공모함, 거북선 모양 등등. 눈을 씻고 봐도 결코 PC라는 사실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매만진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그중에서도 단연 동호인들의 눈길을 끄는 것은 항공모함. 제작 과정을 살펴 보니 컴퓨터 본체를 뜯어 각종 부품과 장치, 회로 등을 해체한 뒤 비교적 부피가 큰 것들은 항공모함이 떠있는 ‘바다’ 속에 감추고 작은 것들은 항공모함 안에 집어 넣었다.

항공모함 함상에 탑재된 전투기며, 활주로며, 관제탑 등 구체적인 외관까지도 세세한 손길로 마감해 실감을 주었다. 제작 기간은 무려 7개월.

제작자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이런 희한한 PC를 만들었을까. 주인공 홍성진 씨는 제작 후기에 이렇게 밝히고 있다.

“만들면서 손에 구멍도 내고, 때로는 밤을 지새기도 하고, 영하 10도의 악조건에서 붓질도 해보고…. 장장 7개월이란 시간 동안 왜 시작했는지도 까먹고, 그저 좀비처럼 앞만 보고 만들다 보니 완성까지 오게 되는군요. 보는 친구들마다 왜 만들었냐고 묻지만 튜닝의 매력이 뭐겠습니까. 자신만의 PC, 세상에 하나뿐인 유일한 아이템의 소유가 매력 아니겠습니까.”

자기표현 욕구, 문화로 정착

대량 생산되는 ‘붕어빵’ 제품을 수동적으로 구입해 사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개성과 취향을 한껏 가미해 고쳐 쓰는 이른바 튜닝(tuning)족이 꾸준히 늘고 있다.

1990년대 초반 자동차 튜닝에서 싹튼 국내 튜닝 문화는 근래 휴대폰, PC, 가전제품 등 웬만한 일상 용품 전반으로 퍼져나가는 추세다.

최근 튜닝 문화의 확산에 대해 전문가들은 물질적 풍요의 시대에 개인들이 개성을 중시하면서 자기 표현 욕구가 커진 점을 가장 큰 사회심리적 배경으로 꼽는다. 아울러 인터넷을 통한 정보 습득의 용이성, 관련 산업 기술의 발전 등도 튜닝 문화를 뒷받침하는 중요한 토대라는 지적이다.

국내 튜닝 문화의 원조 격은 자동차 튜닝이다. 이미 10여 년 전부터 일부 마니아 계층을 중심으로 조금씩 세를 불려와 시장도 상당한 크기에 이르렀다.

한국자동차튠업연구회 정동기 회장은 “요즘 운전자들은 자동차를 단순한 이동 수단으로 생각하지 않고 자신만의 개성과 라이프 스타일을 드러낼 수 있는 대상으로 여기는 까닭에 튜닝의 잠재 시장도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자동차 튜닝은 크게 메커니즘(퍼포먼스) 튜닝과 드레스업 튜닝으로 나뉜다.

메커니즘 튜닝은 엔진 출력이나 브레이크, 조향 장치 등을 바꿔 운전자가 원하는 성능을 구현하는 튜닝이다. 반면 드레스업 튜닝은 선루프나 스포일러 등을 달거나 내부 인테리어나 깜박이 등을 교체해 차체 모양과 편의성을 개선하는 튜닝을 말한다.

현재 업계에서 추산하는 시장 규모는 들쭉날쭉하다. 적게는 2,500억원대에서 많게는 1조원대에 이른다는 추정이다.

이처럼 시장 규모에 대한 정확한 통계가 없는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국내에서는 자동차 튜닝에 대한 관련법의 규제가 외국과 달리 엄격한 편이어서 적지 않은 튜닝 업체들이 음성적인 영업을 하기 때문이다.

휴대폰 튜닝족도 최근 몇 년 동안 급증하고 있다. 휴대폰은 1년에 수십 종의 신모델이 쏟아져 선택의 폭이 꽤나 넓은 제품이지만 튜닝족에게는 이마저도 못마땅하다. 게다가 전 국민의 필수품이 된 까닭인지 튜닝을 하는 사람들도 남녀노소 고루 분포돼 있다.

휴대폰 튜닝 전문업체 튜센의 강용희 대표는 “주로 도색을 하는 튜닝 고객이 많은 편인데 한 번 다녀간 고객은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다시 찾아오기도 한다”며 “오래 사용해 벗겨진 표면을 새로운 옷으로 입히려는 실속파들도 있지만 휴대폰을 분신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패션 기능으로 튜닝을 선택한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청소년층을 중심으로 신발, 학용품 튜닝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인터넷에서도 10대들이 개설한 관련 커뮤니티나 사이트 등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신발 튜닝은 운동화나 스니커즈에 그림을 그리거나 장식을 다는 방식이 주류다. 얼마 전 한 인기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이 튜닝 신발을 신고 나온 다음엔 붐이 일고 있다. 일부 유명 브랜드에서는 아예 튜닝용 기성품을 새로 출시했을 정도다.

이처럼 튜닝이 하나의 문화 아이콘으로 정착하면서 산업계도 발빠른 대응에 나섰다.

올 초 GM대우와 한국타이어 등이 자동차 튜닝 사업에 참여할 계획을 밝혔는가 하면 삼성전자, LG전자, 대우일렉트로닉스 등 가전업체들은 제품 케이스를 고객이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는 튜닝 제품이나 서비스를 내놓았다.

나만의 개성을 추구하는 소비자들이 갈수록 늘어나는 점을 감안하면 제조업체들도 보편성과 대량생산에 기반한 제작 시스템 자체를 ‘튜닝’해야 하는 시대를 맞을 듯하다.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