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대경大 산학일체형 특성화 교육

’퍼머 1만원, 손톱 손질 1회 2,000원, 스포츠마사지 1,000원.’

아파트 상가 미용실에 붙은 가격표가 아니다. 어느 대학교 디자인동(棟) 4층 뷰티다자인학부 실습실 입구에 나붙은 고객 유치 팻말이다.

이름은 실습실인데 손님은 학생뿐만 아니라 교직원, 인근 주민과 공장 근로자들로 북적거린다. 이곳은 바로 경북 경산시 자인면 단북리의 산자락에 위치한 대경대학의 산학일체 교육현장이다. 사장은 학생, 교수는 고문이다.

요즘 대학은 많고 신입생은 줄면서 대학의 생존 경쟁은 갈수록 치열하다. 그래서 대학 통폐합 등 구조조정이 멀지 않았다는 말도 심심찮게 나돈다. 하물며 전문대학의 사정은 더 어렵다.

전국의 수많은 전문대들이 특성화다, 차별화다 해서 생존을 위한 갖가지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지만 정작 무늬만 다를 뿐 내용은 유사한 복제판이 대부분이다. 이미 특성화는 일반화로, 차별화는 보편화로 평준화된 것이 요즘 전문대의 현실이다.

이런 식상한 캠퍼스 문화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화제의 전문대가 있는데 대경대가 그 주인공이다. 이 대학에는 학생 신분의 사장님들이 많다. 전공과 학과 특성을 살린 ‘학교기업’ 창업이 잇따르면서 특이한 대학문화를 창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내에 기업들 수두룩, 기업의 사장님은 학생

이 대학의 디자인동에 있는 ‘피부관리실’도 이방인의 눈길을 끈다. ‘발팩 4,000원, 발관리 4,000원, 등 4,000원, 복부 3,000원, 다리 3,000원, 전부 3만5,000원’ 등 ‘초특가’를 알리는 팻말들이 빼곡히 걸려져 있다.

단골이라는 한 여성고객은 ”가격은 더할 나위 없이 싸지만 교수들이 전수한 노하우가 그대로 적용되기 때문에 품질은 여느 고급 피부관리실 못지않다”며 “아마 곧바로 사회에 나가 창업해도 손색이 없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실제로 이 대학 뷰티디자인학부 학생들의 실력은 최근 세계로부터 공인받았다. 지난 4월 21일부터 25일까지 대경대에서 열린 ‘국제헤어경진대회’에서 이 대학교 학생 2명이 롱헤어와 아방가르드 부문 1위를 각각 차지한 것.

헤어패션 부문의 유니버시아드로 불리는 이 대회에는 스웨덴과 덴마크, 노르웨이, 중국, 일본 등 전 세계 28개팀 100여 명이 참가, 4개 부문에서 각축전을 벌인 결과 대경대 2학년 최미애, 이해선씨가 2개 부문에서 각각 당당히 정상에 올랐다.

대경대 뷰티디자인학부 서란숙 교수는 “대회 후 심사가 주최측에 유리했을 것이라는 추측까지 나왔으나 전 세계 심사위원들이 번호만 적힌 작품을 보고 심사했기 때문에 공정성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며 “우리 대학의 실습 교육 수준이 국제무대에서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학교측은 디자인동 4, 5층 실습실 상가의 사장은 다름아닌 학생들이라고 귀띔했다.

▲ 대경대 제과제빵 전공 학생들이 학교기업인 대경베이커리 실습실에서 직접 빵을 만들고 있다.

학생사장이 디자인 실습실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 대학 크라운동(棟) 앞을 지나다보면 빵굽는 냄새에 발걸음이 저절로 멈춰진다. 호텔조리학부 전공 동아리가 운영하는 ‘대경베이커리’에서 풍겨나오는 맛있는 유혹을 참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빵집은 여느 베이커리와 별 다름이 없어 보이지만 의젓한 중소기업 반열에 올라있다. 인근의 휴대폰 부품업체인 ㈜삼광에 매월 1만8,000여 개의 빵과 우유를 납품해 자그마치 월 2,300만원의 짭짤한 수입을 올리는 것이다.

대경대는 또 지난해 10월 캠퍼스에 포도주 생산공장도 차렸다.

‘TK 와이너리(WINERY)’라는 이름의 이 공장은 와인을 숙성시키는 7개의 발효탱크가 80평 규모의 실내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다. 2만4,000리터의 포도주 원액을 숙성시킬 수 있는 이 탱크에서는 섭씨 8∼13도의 포도주가 연간 6만병이나 출하될 예정이다.

대경대의 한 교수는 “포도밭이 즐비한 인근 경산지역의 특성을 최대한 살리면서 학생들의 실습을 위해 포도주 생산공장을 세웠다”며 “올 연말 시제품이 출하되면 시장성 등을 면밀히 검토한 후 대량생산의 길을 열 것”이라고 말했다.

대경대에는 이밖에 건축리모델링과가 운영하는 ‘TK 건축설계사무소’, 관광호텔학부의 ‘TK 호텔’ 등 학내기업들도 다양하게 생겨나 학생들은 재학 중에 성공신화의 꿈을 현실로 만들어가고 있다.

학교기업은 '산학일체형 CO-OP'교육의 산물

대경대가 이처럼 학내기업 창업으로 명성을 떨치는 배후에는 ‘산학일체형 CO-OP(CO-Operative) 교육’이라는 차세대 교육시스템이 자리잡고 있다.

이 시스템은 교육과 평가, 관리를 기업과 학교가 협력해 전문인력을 배출하는 체제로 기존 주문식 교육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탄생했다.

산학일체형 CO-OP 교육은 대학이 학생과 교수를 아예 산업체로 보내 현장에서 이론과 기술을 익히도록 하는 것으로 주문식 교육보다 현장 적응력을 한층 높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학교기업은 바로 이런 현장의 기술과 상아탑의 이론이 접목돼 탄생했다. 당초 실습실 기능에 그쳤던 이곳은 학생들의 창업의욕과 학교의 지원과 교수의 지도가 합쳐지면서 지금은 기업 소리를 들어도 손색이 없는 수준에까지 올랐다.

▲ 대경대 학생들이 정규 커리큘럼이 끝난후 '방과후 학교'에 나와 재즈댄스를 익히고 있다.

또 뷰티디자인학부는 비달사순과 크리스찬쇼브, 호텔조리학부는 이탈리아 조리대학, 관광호텔학부는 스위스 호텔경영대학, 연극영화방송학부는 미국 뉴욕대학과 보조를 맞추는 등 전문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10개국 36개 대학과 교류시스템을 공유하고 있는 것도 학교기업 발전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이에 따라 최근에는 일본의 대표적 외식기업인 ‘츠지(TSUJI)그룹’이 운영하는 츠지제과전문학교 관계자들이 대경베이커리와 호텔조리학부 한식전공 커리큘럼을 견학하기 위해 대경대를 방문하기도 했다.

2001년부터 이 시스템을 도입한 대경대는 지난해 ‘산학일체형 CO-OP 교육’으로 제2회 대한민국 지역혁신박람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았다.

그러다 보니 이 대학의 취업률도 기대 이상이다.

뷰티디자인학부와 건축디자인과, 스포츠경영계열, 연극영화 방송계열, 공연이벤트학부, 사회복지과, 패션스페셜 리스트과, 경호행정과, 호텔조리학부, 모델과 등은 지난해 취업률 100%를 기록했고 다른 학과도 90%를 넘겼다.

대경대 심갑섭(64) 학장은 “학교기업이 학생들에게 전공에 대한 의욕과 재미를 불러일으키면서 큰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며 “산업현장과 대학의 장점을 접목한 교육시스템을 계속 발전시켜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치열한 대학경쟁의 레드오션에서 ‘학교기업’이라는 블루오션을 개척해가는 대경대. 그들의 새로운 실험이 어떤 결실을 거둘지 주목을 받고 있다.


전준호 기자 jhju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