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경호전문가 이채관씨정치인 경호는 '표심·안전' 두 토끼 잡기… 危害 사전 차단이 왕도

▲ 이채관 씨 / 박철중 기자
“경호는 상황 대처보다 사전 예방이 가장 중요합니다.”

지난달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의 문구용 칼 피습 사건에 이어, 지난 15일에는 이명박 서울시장 차량을 향해 둔기를 들고 접근하던 노숙자가 경찰에 검거되는 사건이 잇따라 터져 나왔다.

최근 정부 및 정치권 고위 인사들의 ‘경호’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른 가운데, 경호 전문가 이채관(45) 씨가 작금의 문제점에 대해 날카로운 일침을 놓았다.

이 씨는 “어떤 경우이든 불미스러운 사건이 일어났다면 100% 실패한 경호”라고 단정지었다. 그는 덧붙여 “위해 상황에 발 빠르게 대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은 사후약방문에 불과하다”며 “사건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어야 진정한 경호”라고 거듭 강조했다.

박 전 대표의 피습 사건은 ▲ 경호 인력의 자질 부족 ▲ 최소한의 경호 원칙 무시 ▲ 사전 정보 부재 등이 초래한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구멍 뚫린 요인경호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고 이 씨는 분석했다.

박 전 대표는 사설 경호팀의 경호를 받고 있었지만, 사건 발생 당시 (뛰쳐나갔을 때 몸으로 방어해낼 수 있는 정도의) 최소한의 안전 확보 공간 안에 경호원은 없었다.

게다가 범인은 전과 8범의 요주의 관찰대상자. 우범자의 선거 유세장 출몰에 대한 정보 부재도 근본적 한계로 지적된다. 물론 야당으로서 우범자의 정보 수집에 한계는 있었겠지만 사전에 대비는 했어야 했다는 것.

“과거처럼 보기만 해도 위압감을 주는 커다란 덩치를 내세운 ‘어깨들’의 경호는 괜히 거부감만 줄 우려가 큽니다. 최근의 경호에선 위험 요인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정보’가 특히 중요합니다.”

"경호는 과학"

“경호는 과학적 서비스입니다.” 이 씨는 경호에 대한 자신의 지론을 이 한 마디로 정리했다. 그는 올해 2월 연세대에서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논문 ‘대통령 후보자 경호에 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직 경호원의 생생한 경호 경험을 토대로 체계적인 요인경호에 관한 연구논문을 발표한 것은 이것이 처음이다.

법대(79학번)를 졸업한 뒤 23기 ROTC 장교로 군에 입대한 이 씨는 경호 특수부대에서 13년간 군 생활을 했다. 1997년 전역 후 이회창 한나라당 전 총재의 실질적 경호책임자인 수행 부장을 맡으며 1997년과 2002년 대통령 선거를 치러냈다.

이 씨에 따르면 우리나라 대선 후보자들은 혼합경호(민간ㆍ경찰이 공동 임무수행)를 받게 되는데, 통상 당의 청년위원회가 주축을 이루며 경호업무를 수행한다. 이러한 청년위원회에 의한 경호는 충성도는 높지만, 효율성은 떨어질 위험이 있다고 이 씨는 지적했다.

“대통령은 사전의 철저한 계획과 통제가 이뤄진 행사에 참석하지만, 대선 후보자들은 군중이 밀집한 공개된 현장에 찾아가야 하기 때문에 그 위험성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고 대선 후보자 경호의 어려움을 설명했다.

이회창 전 총재의 대선 경호 당시에도 아찔한 순간이 여러 번 있었다. 서울역 집회 때 역사 지붕 위에서 돌 같은 투척물이 날아왔는데, 사람들이 지붕 위에 올라가는 걸 진작에 감지하고 대비했기 때문에 대선 후보에 대한 위해를 막을 수 있었다.

운동권 대학생들이 차량에 매달려 몇 십 미터 가량을 쫓아왔던 경험은 무려 세 번이나 된다. 이때에는 똑 같은 차량을 여러 대 준비해 위장법과 정문이 아닌 다른 출입구로 나오는 이동 동선 변경법 등으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특수한 정치적 환경도 대선 후보자들의 신변 위험도를 높이는 한 원인이다.

2002년 대선 때에는 일본을 통해 “북에서 파견한 게릴라나 스파이가 야당 후보인 이회창 전 총재를 암살할 계획이라는 첩보가 나돌아 경찰청과 경호 책임자들을 긴장시킨 적도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삼엄한 경호와 통제가 당연하게 받아 들여지는 대통령과 달리, 대선 후보자들에 대한 엄중한 경호는 자칫 대중들에게 거부감을 줄 수 있다. 이 경우 유권자 ‘표심’과 후보 ‘안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야 하기에, 대통령 경호보다도 훨씬 어렵다고 그는 말한다. 때문에 대통령 경호실에 의한 강력한 공(公)경호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 씨는 “(유력) 대통령 후보는 국가 지도자의 반열에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라 테러 등을 통하여 사망할 경우 국가의 운명이 달라질 수 있다”며 “따라서 대선 후보자로 결정이 되면서부터 대통령 경호실에서 경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경호 분야의 최선진국인 미국에서는 비밀경호대(The United States Secret Service)가 대통령 선거 120일전부터 대통령 후보자에 대한 경호 업무를 맡는다.

경호 형태는 국가와 사회 이념 등에 따라서도 조금씩 다르다.

미국처럼 민주주의가 발달한 국가는 경호기관이 법에 의해서 합리적인 경호활동을 하여 국민들의 지지를 받는 반면, 사회주의 국가는 군과 경찰의 물리적인 힘을 동원한 경호기관이 강력한 경호활동을 함으로써 국민 위에 군림한다는 것. 이는 “국민의 인권보다는 통치권자의 경호에만 치중한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때로는 대선 후보자들의 성향도 경호 활동에 영향을 미친다. 경호를 어떻게 수용하는가에 따라 대통령 후보자는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눠진다. 경호 조치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호 적극 수용형’, 경호 행위에 무관심한 ‘경호 무관심형’, 경호의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고 거부하는 ‘경호 사절형’ 등.

1992년 “너희들 나 염탐하려고 왔지”하며 선거본부 사무실로 찾아온 경찰 경호원들을 쫓아낸 백기완 후보가 대표적 ‘경호 사절형’이며, DJ는 ‘경호 무관심형’, 이회창 전 총재는 ‘경호 적극 수용형’으로 꼽힌다.

정권에 따라 경호의 강도가 달라지기도 한다.

전세계적으로 3선 경호(▲(밀착) 수행 경호 ▲수류탄 투척 범위(25m) 이내의 근접 경호 ▲ 권총ㆍ소총 총격 거리(50m)의 외곽 경호)가 기본적으로 행해지는데, 군사정권 때는 박격포 유효 사정 거리인 1km안팎의 주변 산 고지까지 군인을 배치하고, 비행기 이륙을 통제하는 5선 경호까지 이뤄지기도 했다.

이렇게 강력한 경호는 “정당한 방법으로 정권을 잡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항시 통치자의 안전이 우려됐던 군사정권의 잔재”라는 인식 때문에 문민정부 출범 이후에는 대국민서비스를 고려해 변화가 있었다.

민간업체 남발, 면허제도 도입 필요

그러나 최근 박 전 대표의 피습 사건 등은 국가 주요인물에 대한 경호가 보다 확고해져야 할 필요성을 일깨우고 있다.

굳이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의 암살 사건의 예을 들지 않더라도 광복 이후 김구, 여운형 등 민족지도자의 암살이 우리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생각해보면 국가 요인의 경호는 참으로 중요하다.

이러한 인식에서 이 씨는 현재 김정훈 한나라당 의원과 연세대 최평길 교수와 함께 ‘요인 경호에 관한 법률 제정’을 위한 관계 전문가들의 의견 수렴 작업에 한창이다.

경호 면허증 도입이 그 주요 내용 중 하나다. 항간에는 조폭까지 경호업에 뛰어들고 있다는 말들이 돈다. 이러한 무분별한 민간 경호 형태를 개선하기 위해 공적 기구를 통한 면허증 발급이 필수적이라는 게 경호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 씨는 이러한 경호 체계 확립을 위해 “대통령 경호실의 역할 강화ㆍ확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을 인정 받는 청와대 경호실의 노하우와 경험을 민간 경호업계에까지 확대하여 우리나라 전체 경호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배현정 기자 hjbae@hk.co.kr